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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무·김승우·박준규 등, KBS '불후의 명곡'서 대결(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배우 임채무, 박준금, 김승우 등이 26일 오후 6시5분 KBS 2TV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노래 대결을 펼친다.이날 '불후의 명곡'은 '배우 특집'을 마련하고 임채무, 박준금, 박준규, 김승우, 이아현, 김지우를 무대 위에 올린다.제작진에 따르면 박준금은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을 부르면서 무용 전공자답게 화려한 댄스 퍼포먼스까지 펼쳤고, 김승우는 산울림의 '청춘'과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선곡했다. 박준규는 자신을 이어 배우의 길을 걷는 큰아들 박종찬과 함께 무대에 올라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를 열창했고, 이아현은 나미의 '슬픈 인연'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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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대둔산, 암봉 사이 걷는 짜릿한 여정(완주=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자연의 오묘함과 짜릿함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대둔산(大芚山ㆍ877.7m)은 하늘을 찌를 듯한 봉우리와 기암단애, 수목이 사계절 변화무쌍한 풍경화를 연출해 ‘호남의 소금강(小金剛)’으로 불린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여름에는 운무와 계곡,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매력적인 산이다. 사진/이진욱 기자 어느 때고 산에 오르면 달력에 나올 법한 경치에 끌리게 되는 대둔산의 원래 이름은‘인적이 드문 벽산 두메산골의 험준하고 큰 산봉우리’라는 뜻의 ‘한듬산’이다. 명당자리를 계룡산에 빼앗겨‘한이 들었다’해서‘한듬산’이라는 설명도 있다. 산세가 수려하다 보니 1977년 전라북도, 1980년 충청남도가 도립공원으로 지정했다. 등산로는 전북 완주, 충남 논산과 금산 세 갈래에서 최고봉인 마천대(摩天臺)로 모인다. 완주 쪽은 기암괴석의 바위산이지만 논산과 금산 쪽은 계곡이 좋고 능선이 완만한 흙산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등산로는 완주 쪽 대둔산 국민관광단지에서 금강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을 거쳐 정상인 마천대에 오르는 길이다. 특히 이 코스에서는 케이블카로 금강구름다리 바로 밑인 산 중턱(610m)까지 단숨에 오를 수 있다. ◇ 최고 비경 지대, 금강구름다리와 삼선계단 대둔산 국민관광단지 주차장에서 상가와 대둔산관광호텔을 지나면 케이블카 정류장이 나온다. 지난 1990년부터 운행한 대둔산 케이블카는 927m 구간을 6분간 이동한다. 51인승 케이블카는 왕복요금이 어른 9천원ㆍ어린이 6천원, 편도요금은 어른 6천원ㆍ어린이 4천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무휴 운행한다. 단 설비 교체 작업으로 3월 31일까지 운행을 중단한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왼쪽으로 3∼4분 정도 아스팔트 길을 오르면 들머리인 ‘동학농민혁명 대둔산 항쟁전적비’를 만난다. 기념탑 안내판에는 “동학농민군 1천여 명이 이곳 대둔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3개월간 항쟁하였다”고 적혀 있다.계곡을 따라 완만한 오름이 이어진다. 돌길과 계단을 20여 분 오르면 동심정 휴게소에 닿는다. 이곳에서부터는 급경사이고 아직 녹지 않은 빙판이 많아 발목을 잡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동심바위가 나타난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경치에 매료돼 사흘을 머물렀던 곳이다. 두꺼비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는데 안내판이 없다면 어느 것이 동심바위인지 쉽게 찾을 수 없다.가파른 바윗길을 얼마쯤 더 오르면 암봉계곡인‘금강문’ 입구에 이른다. 지세가 가파르고 험준해 대둔산 동학군 최후 항전지였고 임진왜란 때는 권율 장군의 전승지였다. 협곡으로 들자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이곳 계곡에서부터 마천대 정상에 이르는 암릉구간은 마치 산수화 병풍을 펼쳐놓은 듯 오묘할 뿐 아니라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다. 계곡 입구인 금강문을 지나면 전망대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길은 금강구름다리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과 칠성봉 전망대로 오르는 길이다. 전망대 삼거리에서 암벽 틈새를 빠져나가자 시야가 트이면서 금강구름다리와 삼선계단, 기암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마치 선계로 들어서는 듯한 절경이다. 금강구름다리는 해발 670m에 놓여 있는 길이 50m의 철제 다리다. 다리 밑은 천 길 낭떠러지여서 발을 떼놓을 때마다 허공을 내딛는 기분이다. 구름다리는 중간쯤 지나면 흔들리는데, 심하게 흔들리기라도 하면 철제 난간을 ‘꽉’ 움켜잡아야 한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면 등골이 오싹해온다. 구름다리를 건너 작은 바위 전망대에서 뒤를 돌아보면 바위봉우리 사이에 걸쳐있는 구름다리가 한 폭의 산수화다.폭이 좁은 가파른 길과 계단을 밟고 오르면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약수정 휴게소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총 길이 36m, 계단 127개,경사 51도의 삼선계단이다. 철재 계단 앞에 서서 위를 쳐다보면 현기증이 난다. 계단을 오른 뒤 위에서 내려다봐도 아찔하다. 하지만 삼선계단 정상에 서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죽순처럼 솟아오른 봉우리와 구름다리의 풍광은 신이 내린 예술품이다. 바위 위 소나무도 멋스럽다. 고려 말 한 재상이 딸 셋을 거느리고 이곳에 들어와 망국을 한탄하며 여생을 보냈는데 딸 셋이 선인으로 변해 삼선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금강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은 모두 일방통행이라서 하산할 때에는 주 등산로로 내려와야 한다. 사진/이진욱 기자 삼선계단 정상에서 급경사 오르막을 200m 정도 오르면 해발 840m의 정상 능선 삼거리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150m만 가면 마천대 정상이고, 오른쪽 용문골 삼거리까지는 450m 거리이다. 눈이 덜 녹은 능선 길은 거의 평지길이라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이윽고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에 도착했다. 1970년 완주 군민이 직접 자재를 운반해 세운 10m 높이의 개척탑이 우뚝 솟아 있다. 마천대는 ‘하늘을 어루만질 만큼 높다’는 뜻으로 원효대사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는 곳인데 지금은 개척탑이 더 높은 셈이다. 정상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뾰족하게 솟은 바위봉우리와 기암절벽이 금강산 못지않은 절경이다. 칠성바위, 왕관바위 등 기암마다 웅장함을 뽐내고, 섬처럼 솟은 크고 작은 산들의 능선이 겹치고 포개진다.정상을 뒤로하고 산행기점으로 걸음을 옮긴다. 돌 계단과 철제 계단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전망대 갈림길까지 내려간 뒤 금강문이 아닌 왼쪽 길로 접어들면 케이블카 타는 곳이다. 케이블카의 창문 밖 풍경은 산행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사진/이진욱 기자◇ 휴양과 레저를 함께 즐기는 고산 자연휴양림 전북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에 있는 고산 자연휴양림은 하룻밤 머물며 숲 속의 향긋한 냄새와 봄 내음에 취해보기에 더없이 좋은 사계절 가족휴양지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시랑천에 가로놓인 휴양교를 건너면 낙엽송을 비롯해 잣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빽빽이 들어선 숲 속에 캐러밴 파크와 숲 속의 집, 산림휴양관, 문화휴양관, 웰빙휴양관이 자리 잡고 있다. 또 휴양림 곳곳에 어린이놀이터, 인조잔디구장, 농구장, 족구장, 건강지압보도 등의 체육시설과 강당, 매점, 공동취사장, 야외화장실 등의 편의시설들이 들어서 있다.통나무집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바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피로를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아침 햇살에 눈을 뜨면 온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고산’(高山)이라는 지명처럼 해발 500m 남짓의 산들이 휴양림 주변을 에워싸고 있어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며 산책을 하거나 안수산과 동성산에 오를 수 있다.숲 속에 있는 캐러밴 파크에서는 이색적인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1대에 4명(성인 2, 어린이 2)까지 탑승이 가능하기에 가족 여행에 적합하다. 총 9대의 캐러밴은 퀸사이즈 매트와 이층침대, 탁자, TV, 냉장고, 에어컨, 주방, 화장실 등을 갖춰 숙박과 식사가 차 안에서 가능하다. 자연휴양림에서는 자연 지형지물과 공중 와이어 등을 이용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하는 레포츠 ‘에코 어드벤처’를 즐길 수 있다. 코스도 총 3가지로 10세 이상 손오공(161mㆍ어린이 코스)과 14세 이상 저팔계(170mㆍ청소년 코스)는 수직 사다리, 징검다리, 외나무다리, 타잔놀이 등 다양한 난도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10세 이상 슈퍼보드(청소년 코스)는 최대 높이 20m 상공의 120m 구름다리코스와 310m 논스톱 짚슬라이드로 이뤄졌다. 와이어를 타고 하늘을 날다 보면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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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표 "北개성공단 달러, 당에 상납…핵·미사일 개발에 사용"(종합)KBS '일요진단' 출연…"개성공단 유입 달러 70%, 당 서기실 상납" "개성공단 중단, 우리 정부 주도로 결정…국제사회는 요구 안 해""北, 우리와 국제사회 우려 해소하면 개성공단 정상화 논의 가능"(서울=연합뉴스) 김호준 황철환 기자 =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14일 개성공단으로 유입되는 자금의 70%는 당 서기실로 상납되고 있고, 당 서기실 유입 자금은 핵·미사일 개발 등에 쓰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홍 장관은 이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북한에서 당·정·군이 외화를 벌어들이면 당 서기실 또는 39호실로 이관, 보관되고 있고, 이런 돈은 핵·미사일 개발이나 사치품 구입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그는 "개성공단 임금은 달러 현금으로 지급되고, 근로자에게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북한 당국에 전해진다"며 "당국에 전해진 돈은 다른 외화와 같은 흐름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개성공단으로 유입된 돈의 70%가 당 서기실에 상납되고, 서기실이나 39호실로 들어간 돈은 핵이나 미사일, 치적사업, 사치품 구입 등에 쓰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홍 장관은 개성공단 자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된다고 파악됐을 때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켜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그런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개성공단의 의미와 효과가 있었기에 국제사회도 이를 인정해 여러 차례 핵실험 과정에서도 운영해 왔다"고 말했다.그는 "그러나 굉장히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고, 우려가 전혀 해소되지 않고 북한도 해소하긴 커녕 더 (핵·미사일)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앞으로도 하겠다는 상황에서 내버려두면 안보는 악화하고, 국민은 불안해져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에 가동 중단)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유엔 안보리 제재에 앞서 개성공단 문제를 제기했냐'는 질문에는 "국제사회가 개성공단 중단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며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 등 주변국이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정부가 결정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현재 개성공단에서 우리 인원이 안전히 철수한 뒤 별다른 특이 동향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홍 장관은 개성공단 폐쇄 및 자산동결 등 북한의 조치에 대해서는 "당연히 다 예측하고 있었다"며 "예상 시나리오를 다 검토했고, 이번에 실제 북측이 내린 조치도 시나리오에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그는 "우리 자산을 북한이 맘대로 동결한 것은 국제규범에 맞지 않는다"며 "회복 노력을 할 것이나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금강산도 그랬고 북한이 응할 가능성이 굉장히 낮기에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홍 장관은 개성공단 입주기업 지원에 대해서는 "우선 (우리) 정부에서 전면 중단을 선언해서 가동을 중단시킨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기업활동을 더는 못하기에 (남북경협) 보험을 받을 요건이 된다"고 설명했다.또 "여러 가지 지원 방안의 하나로 대체지도 검토하고 있다"며 "새롭게 만드는 대체지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시간이 걸리기에 현재 있는 공단 장소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런 것도 지원하려 한다. 맞춤형으로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홍 장관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북한보다 우리의 피해가 더 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물론 추정치이나 단순 액수로 보면 우리 기업의 피해 더 크다고 볼 수 있으나 경제 영향으로 봤을 때, 남북 경제역량의 차이를 봤을 때 1억 달러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과 우리 기업의 피해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며 "북한은 분명히 아파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 재가동 조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이고, 앞으로는 북한에 달렸다"며 "북한이 우리와 국제사회 우려 해소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일 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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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신년사 키워드 분석해 보니…"경제에 초점"(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선군(先軍)에 대한 언급을 대폭 줄이고 경제를 가장 먼저 거론한 점은 북한이 올해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3일 내놓은 '2016년 김정은의 신년사를 통해 본 북한의 권력변동과 대내외 정책 전망' 보고서에서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에서 선군에 대한 언급은 2차례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정 실장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선군을 언급한 횟수는 2012년(신년공동사설) 17차례로 시작해 2013년(이하 육성 신년사) 6차례, 2014년 3차례, 2015년 4차례로, 지난해만 제외하고 줄곧 감소 추세를 그려왔다. 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는 경제 분야를 가장 먼저 거론하고 나서 정치·군사 분야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해 정치·군사 분야에 대해 우선적으로 언급한 다음 경제 분야에 대해 말한 것과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정 실장은 "(현재) 북한 지도부가 김정일 시대에 비해 군사보다 경제를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정치를 펴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2016년 한 해의 정책초점을 경제에 맞추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첫 공식활동으로 과학기술전당 준공식에 참석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직·간접적인 언급이 2012년 76차례에서 2013년 47차례, 2014년 21차례, 2015년 16차례, 올해 11차례로 대폭 감소해온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정 실장은 "유훈통치는 2014년을 계기로 사실상 종료되고 2015년부터는 김정은의 독자적인 리더십과 노선 및 정책이 강조돼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에 대한 언급 횟수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40차례 이상이었다가 지난해 53차례, 올해에는 60차례로 늘어났는데, 이는 북한이 오는 5월 초 36년 만에 개최하는 노동당 제7차 대회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또 신년사에서 '경제·핵 병진' 노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며, 통일에 대한 언급 횟수는 늘렸다. 정 실장은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공세적인 통일전선전략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평화공세를 역이용해 한반도에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금강산관광 재개 카드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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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추진…독립정신 되새겨2015년 을미년은 광복 70주년, 을사늑약 110년, 한·일국교정상화 50년, 6·15 남북공동성명 15주년이 되는 의미가 남다른 해였다. 수원시(시장 염태영)는 이 뜻 깊은 해를 맞아 역사가 가르쳐준 정신을 되새기고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고자 평화·인권·통일을 주제로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였다. 이 사업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시민위원회 구성 등 시민참여를 절대적 전제조건으로 했고, 시민공모사업을 추진하며 그 의지를 확고히 했다. 2015년 3월 28일 행궁광장에서 열린 ‘수원 그날의 함성’이 그 대표적인 사업이다. 수원지역에서 있었던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이선경, 김향화 선생 등 수원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조명한 총체극으로, 시민과 학생 5천여 명이 관람한 바 있다. 이후 수원시는 8월까지 각종 학술회의를 개최하며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수원지역에서 있었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찾아 알려 나갔고, 시민들에게 지역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찾아주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광복 70주년이 되는 8월 15일, 수원 제1야외음악당에서 개최된 ‘7000인 시민대합창’에 1만 1천여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아빠의 청춘, 아침이슬, 아름다운 강산, 우리의 소원, 애국가를 다함께 목청껏 부르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수원시는 이 날의 시민참여를 기리고 참여문화를 확산해 가고자 참여시민의 이름이 새겨진 상징 조형물을 수원 제1야외음악당에 설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12월 31일, 수원의 남쪽 관문 곡선동의 비상활주로 변 소공원에 대형태극기가 게양됐다. 이는 사)한국생활국악연합회(이사장 박승화)에서 추진한 시민공모사업으로 시민과 함께한 광복70주년 마지막 기념사업이다. 수원시의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해오며 생겨난 우리 국민의 갈등과 고민을 풀고 미래를 지향해 가고자하는 지역적 노력의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수원시의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이 출발점이 되어 도미노처럼 주변지역으로 퍼져 나가 국가적 차원의 갈등 해소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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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선교장, 역사 숨 쉬는 한국 최고 전통가옥시인·묵객이 드나들던 풍류문화의 산실 (강릉=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강릉시 운정동에 있는 선교장은 300여 년 동안 그 원형이 잘 보전된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이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인 무경 이내번(1692∼1781)은 어머니 안동 권씨와 함께 충주에서 강릉으로 이주했다. /이진욱 기자 집터를 찾던 안동 권씨와 이내번 모자는 족제비 무리를 쫓아가다 명당 터를 발견했고, 1703년 처음 안채인 주옥을 시작으로 활래정,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열화당, 중사랑채 등 무려 10대에 걸쳐 증축을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다. 선교장은 경포호수가 집 앞까지 이어져 배로 다리를 놓아 건넜다고 해 ‘배다리마을’ 또는 ‘배다리집’으로도 불린다. 이름을 풀면 사람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다녔다 하여 선교(船橋)이고, 식량과 물품을 직접 생산할 수 있다 하여 장(莊)이다. /이진욱 기자 지금 경포호의 둘레는 4㎞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12㎞에 달할 정도로 드넓은 호수였다고 한다. 심명숙 문화해설가는 “선교장은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백미”라며 “선교장 바로 옆에 경포호수와 경포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수많은 시인, 묵객이 선교장을 찾았다”고 말한다.조선 후기 전형적인 사대부 저택인 선교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활래정(活來亭)과 사방연지(四方蓮池)가 반긴다. 연못을 끼고 오른쪽으로 걸으면 월하문(月下門)에 이른다. 너비가 2m 남짓한 작은 문 기둥에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승고월하문’(僧鼓月下門 :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이란 시가 걸려 있다. 심명숙 문화해설가는 “이 주련(기둥에 써 붙이는 글씨)은 하루 묵고 갈 거처를 찾는 나그네는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리고 쉬었다 가라는 뜻”이라며 “문 크기도 규모에 비해 작은 편에 속하는데 이는 나그네가 저택을 보고 발길을 돌릴까봐 일부러 대문을 작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진욱 기자 집주인의 너그러운 성품을 생각하며 월하문을 통과하면 시인, 묵객이 남긴 여러 글씨와 함께 활래정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처마 곳곳에 다양한 ‘활래정’ 편액이 6개나 걸려 있다. 1816년 지어진 활래정은 정자 건물의 반이 연못에 뿌리박은 돌기둥 위에 세워져 있고, 물 위에 떠있는 누마루와 온돌방, 다실로 구성돼 있다. 연못 내 작은 섬과 마당을 이어주는 목교(木橋)는 6·25전쟁 직후 망가져 철거된 후 지난 2011년 복원됐다. 벽이 없는 활래정은 문을 모두 열면 정자에 앉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수려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활래’는 서쪽 태장봉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나간다는 의미이다. 이곳에서는 시 한 수가 저절로 나올듯 바라보는 풍광이 빼어나다. <선교장의 특이한 문>/이진욱 기자 네모난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을 믿었던 당시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한국 민가정원 정자의 극치를 이루는 활래정을 지나면 소나무 숲 아래 고색창연한 건물과 담, 대문들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로 안내하는 듯하다. 선교장의 본채 건물들은 담장과 대문 1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물 전면의 행랑채에는 문이 2개 있다. 신선이 기거하는 그윽한 집이라는 ‘선교유거’(仙嶠幽居)란 현판이 걸려 있는 솟을대문은 남자만 드나드는 곳이다. 여자와 하인이 드나들 수 있는 평대문에는 내외벽이 있어 안채와 밖이 구분된다. 솟을대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평대문 내외벽과 안채(主屋), 동별당(東別堂)이 있다. 선교장 최초로 지어진 안채는 종부(안방마님) 거처이며, 집의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소박한 건물이다. 안채는 전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ㄷ자 형태로 대청 양쪽에 온돌방과 고방이 있다.세간을 보관하던 고방은 여름철이면 평상을 놓고, 그 위에서 시원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여자들의 은밀한 공간이기도 하다. 안채의 오른편에 동별당, 왼편에는 서별당(西別堂)이 이어져 있다.동별당은 집안의 여자들과 여자 손님이 거처하던 곳으로 방과 마루의 모든 벽체가 문으로 되어 있어서 활달하고 개방적인 선교장 가족의 성품과 면모를 보여준다. 동별당에는 ‘오은고택’(鰲隱古宅) 현판이 걸려 있는데 오은은 이내번의 손자 이후(李后)의 호이다. 동북쪽 산 중턱에는 선조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남자들의 서재로 사용되었던 서별당은 안채와 담으로 구분되어 있고, 중간에 작은 문 하나가 나 있다. 담장은 고개를 내밀어 소통하기에 충분하도록 야트막하다. 서별당 아래의 연지당(蓮池棠)은 집안의 홀로된 여인들이 안채의 살림을 도와가며 지내던 곳이다. 앞마당은 ‘받재마당’이라 하여 안채로 반입되는 재물을 확인하는 장소였다. 현재 서별당과 연지당은 한옥스테이 장소로 사용된다.솟을대문을 지나 왼편으로 들어서면 선교장의 중심인 열화당(悅話堂)을 만난다. 팔작지붕에 홑처마 구조인 열화당은 바깥주인이 기거하는 사랑채로, ‘일가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을 담고 있다.지난 1815년 완공된 열화당의 특징은 툇마루 앞에 설치된 동판 구조물인 차양으로, 한말에 선교장에 머물렀던 러시아 공사관 사람들이 보답으로 지어준 것이다. <선교장 열화당>/이진욱 기자 심명숙 문화해설가는 “학식이 높고 귀한 손님들만 이 사랑채에 머물게 했다”면서 “지난 7월 열화당 건립 200주년을 기념해 대관령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 ‘강원’이 이곳에서 열렸다”고 설명한다.열화당 뒤편 초정(草亭)은 인상적이다. 열화당 후원의 정자로, 시문을 짓고 책을 읽던 곳이다. 또한 초가에 살고 있는 소작인들의 애환과 삶을 공감하고 검소와 베풂의 덕을 수련하도록 소박하게 지었다고 한다. 원추리 군락지가 조성돼 있어 ‘녹야원’이라고도 불리는데, 원추리의 야생력과 번식력이 선교장가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선교장 안채 부엌>/이진욱 기자 열화당 부속건물인 중사랑은 풍류객들과 교분을 나누던 곳이다. 23칸의 행랑채는 관동팔경과 금강산을 유람하는 시인, 묵객과 집안일을 하던 집사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이밖에도 안팎으로 볼거리가 많다.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교장에는 곳간채, 홍예헌, 자매재, 초가, 선교장 박물관 등이 있다. 1908년 곡식창고인 곳간채를 개조해 신학문을 가르치던 동진학교(東進學校)를 설립했으나 일제의 탄압에 의해 폐교됐다.활래정의 단골손님이었던 몽양 여운형이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현재 선교장 생활유물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선교장 매표소 인근의 선교장 박물관에는 300년 집안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도 만년에 이곳에 들러 ‘홍엽산거’(紅葉山居) 라는 작품을 남겼는데, 편액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다.선교장이 건축되기 전부터 자생한 노송 수백 그루가 우거져 있는 선교장 뒷동산 솔숲 길을 걸으면 솔향기와 전통가옥의 멋을 더욱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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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문화·환경' 남북 3대 통로 열리나<<연합뉴스 TV 제공>>우리측 당국회담서 제기 전망…북측 호응 여부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황철환 기자 = 11일 개성에서 열리는 제1차 남북 당국회담에서는 이산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이외에도 민생·문화·환경이라는 '남북 3대 통로' 개척과 관련한 문제도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이른바 남북 3대 통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를 통해 처음 언급한 개념이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자는 '작은 통일론'을 바탕으로 민생·문화·환경 협력의 통로를 열어 서로 소통하고, 이를 통해 평화를 실현하자는 것이다.박 대통령은 지난 8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상임위원회 합동회의 축사에서도 '3대 통로' 개척을 위한 노력을 재차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식 <<연합뉴스 자료사진>>정부는 1년여간 3대 통로 개척을 위한 다양한 대북사업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북측이 호응할지 관심이 쏠린다.대북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모자 패키지 사업과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공모사업 등 주로 인도지원 관련 사업이 '민생의 통로'와 관련이 있다.이와 관련해 정부는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북한내 1만8천853개 영유아·산모 시설에 영양식을 보냈고,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UNICEF)의 마을진료소 시설·의료인력 교육·의약품 지원 사업을 후원하는 등 188억원 상당의 물자를 지원했다.8일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상임위원회 합동회 그러나 북측은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은 받으면서도 남측 민간단체의 지원은 꺼리는 경향을 보여왔다.남측 민간단체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대북 인도지원을 받기 시작했지만, 지난달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의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방북 일정을 갑작스레 연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문화의 통로' 격인 사회문화교류 분야는 활성화되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1∼10월간 방북 교류는 31차례로 지난해(21회)보다 48% 늘었다. 이중 상당수는 8·25 합의 이후 이뤄졌다.지난달 북한 개성 고려성균관에서 열린 개성 만월대 출토유물 남북공동 전시회'를 관람중인 국회 외통위 위원들 <<연합뉴스 자료사진>>10월에만 개성 만월대 출토 유물 전시회(개성),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평양),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회의(금강산) 등 남북 공동행사가 잇따라 열리면서 남측 방북인원이 880여명에 달했다.농축산 및 산림·환경협력 등 '환경의 통로' 분야의 협력에서도 나름 원활한 성과를 보이는 양상이다.정부는 국제기구와 함께 함남·황북·강원 지역 온실·식수 개선 등 농촌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며, 국내 민간단체 6곳의 온실·낙농 협력사업에도 14억3천만원을 지원했다.29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자료사진>>지난 10월에는 금강산 일대의 소나무가 고사(固死)하는 것과 관련해 1억3천만원 상당의 방제 장비와 약제를 지원했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민간단체인 아시아녹화기구는 지난달 북한 산림녹화 차원에서 묘목 2만3천 그루와 종자 4t을 북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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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남북경협기업 특별대출금 5년 만에 첫 회수(종합)2010년 1차 대출기업에 원금의 최대 5% 상환 요구(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정부가 5.24 조치로 경영난에 처한 남북경협 기업에 제공한 특별 저리대출에 대해 5년만에 처음으로 회수작업에 나섰다.남북협력기금 특별대출은 천안함 사태와 5·24 조치 등으로 타격을 입은 남북경협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2010년과 2012년, 2014년 3차례에 걸쳐 이뤄졌다.통일부 당국자는 2일 "지난해까지는 원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매년 만기를 연장해 왔으나, 올해부터는 대출상환이 가능한 기업에 대해선 만기연장시 일부상환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이와 관련해 남북협력기금 수탁관리기관인 한국수출입은행은 2010년 1차 특별대출을 받은 184개사 중 대출금 전액을 상환했거나 폐업한 51개사를 제외한 133개사에 관련 공문을 발송했다.이들 133개사에 대출된 남북협력기금은 약 325억원이며, 37개사는 현재 이자를 연체하고 있다.통일부는 대기업은 최대 10%, 중소기업은 최대 5%까지 원금을 갚아야 한다는 만기연장시 상환조건을 제시했다.올해 공문을 받은 133개사는 모두 중소기업으로 최대 5%까지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다만 정부는 개별상담 및 재무조사를 통해 심각한 경영난이 확인된 기업이나 금강산 투자기업(15개), 개성공단·금강산외 북한 내륙지역 투자기업(4개)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원금 상환을 유예하고 만기를 연장키로 했다.원금 상환 대상이 된 기업 일부는 반발하고 있다.익명을 요구한 남북경업 기업인은 "당시 입은 타격이 워낙 컸고 경기침체로 여전히 경영난을 겪고 있어 난감할 따름"이라면서 "이후 필요시 시중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라고 주장했다.하지만, 정부가 5년만에 처음 남북협력기금 회수 작업에 나선 배경에는 일부 경협기업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통일부 관계자는 "2010년 1차 특별대출 이후 5년이 흐른 만큼 절반 이상의 기업이 기존 사업거래선 전환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수출입은행의 기업별 정기 재무조사 결과에서도 상당수 기업이 대출상환 능력을 갖췄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정부는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남북교역 및 남북경협 221개사에 남북협력기금 560억 원을 연이율 2% 조건으로 특별대출해 줬고, 2014년에도 특별대출을 실시했다.정부와 수출입은행은 2012년 2차와 2014년 3차 특별대출 기업에 대해서는 아직 원금 상환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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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作 추정 10쪽 병풍 美 대학박물관서 발견'신윤복 낙관' 풍속도도 소장…"정부, 온라인 전시 지원 나서야"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단원 김홍도가 1788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10쪽짜리 병풍과 혜원 신윤복의 낙관이 찍힌 풍속도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견됐다.22일 재미 민간사학자 유광언씨에 따르면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박물관은 단원의 낙관이 찍힌 중국 황실 사냥도 등 1천869점의 한국 예술품과 민속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이번에 발견된 단원의 병풍은 제목은 따로 기재돼 있지 않고 로버트 C. 베르빌이란 사람이 기증한 21점의 예술품 중 하나라는 사실만 알려졌다.그러나 그림 마지막에 '戊申(무신)'과 '檀園(단원)'이란 글자가 쓰여있고 낙관도 선명하게 찍혀 있다.또 높이 2m, 폭 4.5m의 거대한 병풍이 실물로 그대로 보존된데다 한지에 칠한 색채도 선명하게 남아있을 만큼 보존 상태도 양호해 그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단원의 그림은 주로 정조의 직접 명령이 있거나 고객이 일대일로 의뢰했을 때 그려진 데다, 병풍의 크기를 고려하면 위작일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그림은 중국 황실이 대규모로 무사들을 대동하고 사냥에 나선 장면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사냥에 나선 군사들이 호랑이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보다 크게 표현돼 산을 타넘으면서 활을 쏘는 장병들의 호기로움을 부각했으며, 황족이 탄 가마와 말은 화려하게 색채를 입혀 눈길을 끈다. 단원 그림으로 추정되는 10쪽 병풍 <<유광언씨 제공>> 'Family Life'라고 적힌 족자 그림 2점은 전형적인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를 담았다.그림은 초가삼간 처마 아래 삼대 가족이 옹기종기 모인 장면을 묘사했으며, 산 중턱에 뜬 보름달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온화한 가정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또 다른 그림도 가족들이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각자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렸으며, 두 그림 모두 상단 가운데 '蕙園(혜원)'이란 글자와 낙관이 찍혀 있다. 단원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병풍과 마찬가지로 족자 그림도 보관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족자봉도 상아로 만들어져 있다는 박물관 측 설명을 보면 최고급품으로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혜원 그림으로 추정되는 풍속도 <<유광언씨 제공>>이외에도 로버트 C. 베르빌이 기증한 21점 작품 중에는 조선시대 식사용품과 금강산을 묘사한 족자, 서화 족자, 결혼 행렬을 그린 그림 2점, 화살과 화살통, 12세기 고려시대 동화병 등이 포함돼 있다.그러나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단원과 혜원의 작품 뿐이다.유광언씨는 "한국 정부가 작품들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박물관 소장품을 최소한 온라인으로 국민이 감상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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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상봉> 다시 아들 알아본 치매 노모 "죽어도 소원 없어"(종합)<이산상봉> 아이고, 우리아들(금강산=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김월순(93) 할머니가 북측에서 온 아들 주재은(72) 할아버지를 만난 뒤 기쁨에 겨워 오열하고 있다.김월순 할머니 작별상봉서…북측 아들 주재은 씨 "통일되면 만나요" 왈칵 눈물 (금강산=연합뉴스) 공동취재단·임은진 기자 = "고마운 세상이야. 우리 재은이를 만나고…. 내가 죽어도 소원이 없어."헤어지는 순간, 다행히 아들을 다시 알아본 구순(九旬)의 노모는 아들의 볼에 입을 맞췄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이제 정상이시네." 60여 년 만에 어머니가 불러주는 이름에 아들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치매로 앞에 앉은 아들조차 인식하지 못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던 김월순(93) 할머니가 26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다시 아들을 알아보고는 눈물을 흘렸다.그러고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붉은색 알이 박힌 금반지 하나를 빼서 북측에 두고 온 장남 주재은(72) 씨에게 건넸다. 아들이 결혼하면 며느리에게 주려고 오랜 시간 끼고 있던 반지다. 재은 씨는 괜찮다고 한사코 사양했으나 김 할머니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일 수도 있는 반지를 아들의 손에 꼭 쥐여줬다. "안 필요해도 내가 주고 싶어. 갖다 버리더라도 갖고 가라."그러면서 긴 세월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던 아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쓰다듬었다. 김 할머니의 목에는 전날 개별상봉 때 재은 씨가 선물한 연갈색의 꽃무늬 스카프가 곱게 자리했다.김 할머니는 상봉 첫날인 지난 24일 재은 씨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다 25일 개별상봉 때 잠시 알아보기도 했지만, 이후 열린 공동중식과 단체상봉에서는 "이이는 누구야?"라며 다시 알아보지 못했다.그러다 상봉 마지막 날인 이날 아들과 기나긴 이별을 준비하려는 듯 다시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함경남도 갑산군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1·4 후퇴 때 재은 씨를 친정에 맡긴 채 둘째 아들 재희 씨만 업고 먼저 피난 간 남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재은 씨에게 "열흘만 있다 올게. 갔다 올게"라고 하고 나간 것이 60여 년이 될 줄 몰랐던 것이다.어느덧 칠순의 노인이 된 재은 씨는 어머니에게 부부증명사진을 보여주며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다시 들려줬다. 북쪽에서 낳은 아이들도 장성해 대학도 보내고 교수도 됐다고 자랑했다. "통일되면 우리 집에 와서 살아요, 할머니. 우리는 할머니 고향에서 살아요"라는 북측의 손녀의 말에 할머니는 잠시 옛날 생각이 나는 듯 "고향에서 왔어? 기가 막히는구나…"라며 먼 산을 바라봤다.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온 작별의 시간.북측의 장남은 몸이 편치 않은 어머니가 타고 갈 휠체어를 묵묵히 폈다. 그리고 한동안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 건강하십쇼. 통일되면 내가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한 재은 씨는 남측 동생 재희 씨를 부둥켜안으며 "건강하게 살아라"라고 당부했다. "형, 마지막이 아니야. 이건 시작이야, 형이 어머니 모셔야 해. 왜 내가 어머니를 모셔. 장남인 형이 모셔야지. 나 이제 안 모실 거야." 동생은 형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정을 부리며 오열했고, 형은 그런 동생에게 "알았다, 알았다"라며 어깨를 토닥여줬다.이내 마음을 강하게 먹은 재은 씨는 "어머니, 살아 있으십쇼"라며 어머니에게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인사를 했다.김 할머니는 그러나 그러는 아들이 낯선 듯 "같이 안 가? 나 데리고 집에 갈 거지?"라며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다시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에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지 못했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통일되면 만납시다, 어머니"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