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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인생> 김범수 "난 상향평가돼…소리꾼 한길 가겠다"고 3때 친구 덕에 노래 재능 발견…빌보드 한국가수 첫 진입·국민 히트곡도 내데뷔 15년, 가장 빛난 무대는 '나는 가수다'…자작곡 채운 8집 계획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김범수(35)의 꿈은 복음성가(CCM)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인기와 부를 얻은 지금의 자리는 엄두도 내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여겼다. 올해로 데뷔 15주년을 맞은 김범수는 최근 강남구 신사동에서 한 인터뷰에서 "가수로서 지금의 위치가 내 나이와 경력에 비해 조금 더 상향 평가됐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종교 음악을 하고 싶었고 TV 출연하는 엔터테이너보다 대학로 어딘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그렸으니 꿈이나 목표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셈이다. "달려와 보니 너무 과분한 자리에 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 지금 출연 중인 엠넷 '슈퍼스타K 6' 심사위원도 누군가를 평가할 위치가 아니란 생각에 계속 고사했어요. 이승철, 윤종신 등의 선배들은 그 자리가 어울리지만 전 아니거든요. 그래서 심사도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조언을 해주자는 생각으로 임해요." 노래하는 재능을 발견한 게 고3 때였다. "음악은 카세트테이프가 닳도록 들었지만 이전까지 노래를 안 했다. 목소리를 발견하기 전까지 내 인생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강서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는 부모에게 반항적이었다. 공부를 못하는 '아웃사이더'였고, 친구들과 싸우기 일쑤였다. 또래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없었다. 고교 3학년 때 정보통신과에서 만난 친구인 허석(기타리스트)이 교회에 나가 찬양팀을 해보자고 한 게 음악에 발을 디디는 계기가 됐다. "허석은 신앙이 두텁고 착실한 친구였어요. 음악을 좋아하던 그 친구가 기타 치는 모습, 연주 소리가 너무 좋아서 교회로 따라나섰죠.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건 피아노를 둘러싸고 성가대 중창단이 연습하는 모습이었어요. 눈이 새롭게 떠지듯 신세계였어요." 이때부터 그는 성가대에서 활동했다. 성가대 친구들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칭찬했다. "가정 형편도 좋지 않아 옷도 못 입고 다녔는데 소리를 내니까 애들이 놀랐어요. 크리스마스 때도 솔리스트로 '오 해피 데이'를 불렀는데 음악적으로는 저의 첫 도전이었죠. 이때부터 동네에서 '노래 해봐라', '복음성가 앨범을 내보라'란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사실 중·고교 시절의 방황은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하며 시작된 도시 생활이 녹록하지 않은 탓이 컸다. 마산에서 그는 "장군동의 황태자였다"고 웃었다. "친척들이 동네에서 군락을 이루며 살았어요. 먹고 싶은 건 슈퍼를 하는 할머니 집에서, 갖고 싶은 건 장사를 하는 이모 집에서 다 가질 수 있었어요. 이모와 여자 사촌들 사이에서 크며 사랑도 많이 받았죠. 그땐 생긴 것도 좀 귀여워 어딜가나 '예쁘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하하." 아버지가 먼 친척이 운영하는 공장 관리를 맡으면서 상경한 그는 양천구 신월동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 일은 순탄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인형 눈을 붙이거나 미싱을 돌렸다. 금실 좋던 부모님의 싸움도 잦아졌다. "겨울이면 연탄가스가 새어나와 어머니가 잠을 깨워 김칫국물을 먹이곤 했어요. 여름엔 침수로 물을 퍼냈죠. 마산 생활이 꿈만 같았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반항적으로 변해갔죠. 학교와 사회에 앙심을 품은 거죠. 하하. 이때 부모님이 정말 힘들어하셨어요." 교회에 나가고 음악을 통해 심적인 안정을 찾아간 그는 허석과 함께 숭실대학교 사회교육원 실용음악과에 정원 미달로 들어갔다. 이때 스승으로 만난 사람이 가수 박선주였다. 박선주도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기획사 오디션 제의를 했다. 그가 "복음성가 가수가 되고 싶으니 대중음악 할 생각이 없다"고 하자 박선주는 "가수로 잘 된 뒤 더 큰 영향력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1997년 처음 오디션을 본 곳이 1990년대 인기그룹 알이에프(R.ef)가 있던 팀엔터테인먼트였다. "오디션을 보고서 합격했는데 댄스 가수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것 같아서 '저랑 안 맞는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네가 원하는 알앤비(R&B), 솔(Soul) 음악을 시켜주겠다', '멀리 보고 키워주겠다'고 약속하셔서 도장을 찍었죠." 그러나 기획사와 음악 방향에 대한 마찰도 있었고 주위로부터 외모 지적도 받는 등 대중 가수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그땐 그런 게 서러웠는데 당시 회사 대표님이 아니면 난 데뷔를 못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데뷔는 '늪'으로 한창 인기를 끌던 '얼굴 없는 가수' 조관우를 벤치 마킹해 '제2의 조관우'로 콘셉트를 잡았다. 조관우의 앨범을 작업한 작곡가 하광훈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그래서 나온 게 1집(1999) 타이틀곡 '약속'이다. 그러나 '약속'은 그가 소화하기에 조숙한 노래였고 10만장도 나가지 않았다. '얼굴 없는 가수'로 데뷔했지만 앨범 반응이 없자 TV 출연을 감행했다. "그때는 앨범 판매량이 매일 집계되던 시절인데 제가 TV에 출연하자 시청자의 반감이 생겼는지 판매량이 뚝 떨어졌어요. '넌 앞으로 TV 출연할 생각 말라'는 말도 들었죠. 마치 제 얼굴 때문에 앨범이 망한 것 같아서 스스로 하찮은 인간 같았어요." 1집을 내고서 '투자 가치가 없으니 그만 접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기획사는 되레 송혜교, 송승헌 등의 스타가 출연하고 호주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2집(2000) 타이틀곡 '하루'다. 앨범 시장 침체가 시작된 상황에서 판매량 20만장을 기록했으니 '중박'이라고 여겼다. 이때 교민이 운영하는 미국 국도음반에서 연락이 왔다. '하루'를 영어곡으로 녹음해 김범수를 미국에 진출시키자는 제안이었다. "한국에서도 안 유명한데 사실 허황된 도전이었죠. 미국에서 제임스 잉그램과 함께 했던 프로듀서가 날아와 편곡했고 '하루'를 '헬로 굿바이 헬로'란 영어곡으로 녹음했죠. 그때로선 나름 치밀하게 준비했어요. 하하." 이 곡은 2001년 빌보드의 부문별 차트인 '핫 100 싱글즈 세일즈' 차트 51위로 진입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 가수의 빌보드 진입은 처음이었다. 이때의 에피소드도 있다. 당시는 지금처럼 빌보드 차트를 인터넷에서 바로 확인할 수 없는 시대여서 빌보드 잡지를 미국에서 받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이 소식이 기사화되자 사람들은 '사기가 아닌가'라고 수군댔다. 결국 김범수는 '9시 뉴스'에 출연해 이를 확인시키며 논란을 잠재웠다. "지금은 싸이 형이 빌보드 메인차트에서 2위를 하며 엄청난 역사를 썼지만 당시로선 빌보드의 벽을 송곳, 숟가락으로 살짝 파본 거죠. 돌이켜보면 가수 인생의 의미 있는 도전이고 흔적이에요. 그땐 두려움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가수로서의 절정은 3집(2002) 타이틀곡 '보고싶다'가 히트하면서다. 처음에 이 곡은 '국민송'으로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드라마 '천국의 계단'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로 쓰이면서 국민 히트곡이 됐다. 이 드라마가 일본에 수출돼 그는 일본 진출 기회를 얻었고 2천~3천석 규모의 공연도 했다. "나에겐 어마어마한 노래"라고 했다. 팀엔터테인먼트에서 5집(2006)까지 낸 그는 기획사와 계약을 마무리하고 군 복무를 시작했다. 7년 동안 달려오며 정신적인 피로가 쌓인 터라 군대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됐다. 2007년 어느 날, 작곡가 황찬희의 소개로 지금의 기획사인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 이종명 대표가 군대로 면회를 왔다. 황찬희는 1999년 삼수를 해서 입학한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동기다. "신생 기획사였지만 대표님의 마인드가 좋았어요. 신앙도 같았고요. 제대 6개월 전부터는 매주 면회를 오셨는데 가수로서의 비전만 제시할 뿐 계약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그 시간이 기다려지더군요." 2008년 제대한 그는 폴라리스와 3년 전속 계약을 맺은 뒤 최근 두 번째 재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곳에서 처음 낸 6집(2008) 타이틀곡 '슬픔활용법'은 황찬희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이후 '지나간다'(2010), '끝사랑'(2011) 등의 히트곡을 냈다. 그는 "이 회사에서 '보고싶다' 만큼 대박 난 앨범은 없지만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의 갈증이 해소됐다"며 "내 나이의 감성에 맞는 음악을 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카네기홀(2012), 호주 오페라하우스(2014)에서도 단독 공연을 열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쌓은 내공을 해외 무대에서도 펼쳐보였다. "카네기홀 공연이 '솔드 아웃' 됐는데 너무 감격스런 일이었어요. 제가 생각한 가수의 방향이 소박했기에 이런 권위있는 홀에서 공연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시 무대에 압도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그는 가수로서 가장 빛난 무대로 2011년 MBC TV '나는 가수다'를 꼽았다. 이때 남진의 '님과 함께'로 경연했는데 "지금껏 살면서 가장 김범수다운 만족스러운 무대"라고 말했다. 이 방송에서 파격적인 패션과 무대 연출을 선보이며 '비주얼 가수'란 수식어도 생겨났다. 그는 "이 무대는 내 음악 인생을 통째로 뒤집는 사건이었다"며 "객석에선 기립 박수를 보냈고 이 곡으로 음원차트 1위도 했는데 내 인생에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후 내가 가진 루저로서의 상처, 외모 열등감, 피해의식이 한꺼번에 치유됐다. 더는 '누가 못생겼다'고 해도 상처가 안 될 정도로 자존감이 높아진 계기였다.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고 웃었다. 그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인복이 많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히트곡을 만들어준 윤일상을 비롯해 하광훈, 황찬희 등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가 마음속에 꼽는 여러 조력자 중 하나로 남동생도 꼽았다. 남동생은 현재 자신의 기획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동생은 처음에 이 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왔죠. 애물단지가 될까 걱정했어요. 일부러 모른 척했는데 기특하게도 운전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지금은 매니지먼트 장이 됐어요. 이젠 동생 없이 일이 안될 정도로 제가 도움을 받는 위치가 됐죠." 아버지에 대한 뭉클함도 있다. 그는 "내가 말썽을 피우자 아버지에게 한밤중 팬티만 입고 왕복 4차선 도로로 쫓겨난 적도 있다"며 "가수의 길까지 반대하셔서 아버지와 불협화음이 있었다. 솔직히 싫어했다"고 고백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데뷔 때부터 제 기사를 스크랩해놓은 걸 서랍에서 발견했어요. 아버지가 절 지지해준다는 걸 처음 느꼈죠. 눈물이 나더라고요. 지금은 연세가 든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요. 가끔 사우나도 같이 가는데 이런 사이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15년을 보낸 지금 그는 이승철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인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간간이 자작곡을 앨범에 실었지만 신승훈, 김동률 같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이미지는 빈약하다. 그는 "난 소리꾼이니 '소리로 끝까지 가자'는 생각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 작업 중인 8집에서는 전곡을 공동 작곡하는 도전을 했다.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아서다. "8집이 지금껏 들려준 음악과 변화가 커서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흥행에 성공 못 할 수도 있고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으려고요. 대중이 제 얘기를 담은 앨범을 신선하게 받아들여 준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아요." 마침 인터뷰한 날은 같은 소속사 걸그룹으로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레이디스코드의 멤버 고(故) 은비의 49재였다. 사실 그의 8집은 이 사고로 발매가 미뤄졌다. 그는 갑작스러운 아픔을 겪으며 가수로서 해야 할 목적이 하나 더 생겼다고 말했다. "이 친구들이 데뷔를 준비하며 고생한 걸 다 봤어요. 이제 시작인데 꿈이 꺾이니 혼란스럽더라고요. 이 친구들 몫까지 열심히 하는 게, 이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게 선배로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인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음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슈퍼스타K 6' 심사 때 재벌 2세로 태어나는 건 안 부럽지만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럽단 얘길 한 적이 있다"며 "그 어떤 부와 유산보다 음악적인 재능은 바꾸고 싶지 않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가수의 길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주위에서는 가수도 한때라며 '투잡' 하라는데 전 돈을 벌어도 어디에 투자한 것 없이 차곡 차고 모으는 스타일이죠. 다른 일로 스트레스받으면 노래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반감될 것 같아요. 노래만 할 수 있다면 조금 어려운 상황이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이다. 주위 친구들도 하나 둘 가정을 꾸렸다. 그는 그간 스캔들 한번 없이 사생활도 밋밋했다. "아직은 저를 확 줄이고 아내와 자녀로 제 생활을 채울 자신이 없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정을 꾸리면 그 소중함을 잘 아니까요. 나이에 쫓기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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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정체 점차 풀려…부산→서울 5시간(서울=연합뉴스) 채새롬 기자 = 추석인 8일 저녁이 되면서 고속도로 정체가 점차 풀리고 있지만 자정까지 경부선, 서해안선 곳곳에서 정체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현재 서울로 향하는 승용차의 출발지별 예상 소요시간(요금소 기준)은 부산 5시간, 울산 5시간 10분, 대구 4시간 10분, 목포 5시간, 광주 4시간 50분, 대전 3시간 10분, 강릉 2시간 20분 등으로 낮보다 많이 줄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는 경우 부산에서는 4시간 20분, 울산은 4시간 40분, 대구는 3시간 30분, 광주는 3시간 20분, 대전은 1시간 40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됐다. 사회 본문배너 서울에서 지방으로 향하는 도로의 정체도 많이 풀려 자가용을 기준으로 부산은 4시간 20분, 대구는 3시간 30분, 광주는 3시간, 대전은 1시간 30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다.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서울 방향으로 총 27.49㎞ 구간이 정체됐다. 정체 구간은 천안나들목→안성분기점, 양재나들목→반포나들목 등지로 서울 방향으로 많이 올라왔다. 서해안고속도로는 당진분기점→화성휴게소, 일직분기점→금천나들목 49.80㎞ 구간에 차량이 서행하고 있다. 영동고속도로는 인천 방향으로 여주분기점→여주휴게소 구간 3.82㎞ 구간만이 막히고 있다. 도로공사는 이날 504만대의 차량이 고속도로에 나올 것으로 예상했으며, 이날 10시까지 491만대가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고속도로 정체가 많이 풀리고 있지만 자정까지는 경부선, 서해안선 곳곳에서 정체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rch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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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귀성객 5·6일 오후 출발하면 비교적 여유>귀성길 '여유' 귀경길 '혼잡'…8∼9일 대중교통 막차 연장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다가오는 추석 연휴 서울시내에서라도 차량정체를 피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서울시는 올해 추석 연휴와 패턴이 같았던 2011년 추석 연휴 도시고속도로 평균 속도 추이를 지난해 추석과 비교한 결과 이번 추석은 귀성객이 상대적으로 분산돼 비교적 여유로운 귀성길이 될 것으로 4일 내다봤다. 전국 본문배너 한국교통연구원 설문조사 결과 귀성객의 약 33%가 7일 오전에 출발할 것으로 응답해 5일 오후 1시 이전이나 오후 8시 이후, 6일 오후 4시 이후 출발하면 도시고속도로의 정체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난해는 추석 이후 주말이 끼어 귀경객이 분산됐던 반면 올해는 추석 당일 오후에 귀경객이 몰릴 것으로 보여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다소 혼잡할 것으로 전망된다. 명절 당일은 성묘, 나들이, 친지 방문 등으로 해마다 극심한 차량정체가 반복된다. 올해 설 명절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망우로, 동부간선도로, 동일로, 통일로 등 시립묘지 주변 도로는 심하게 정체돼 도시고속도로 평균 속도가 평소 휴일보다 약 24%(61.3→46.7㎞/h)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부간선도로와 동부간선도로 등은 온종일 혼잡이 계속돼 이들 도로를 이용하려면 오전 8시 전에 이동하고 동일로나 안양천길 같은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연휴 시작 전날 시내 주요 시장과 마트 주변도로도 온종일 정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올해 설 연휴 경동시장, 영등포시장 등 주요 재래시장 주변 도로의 차량속도를 분석한 결과 연휴 시작 전날 오후에 정체가 가장 극심했으며 명절 당일은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가장 혼잡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휴 기간 도로 정체뿐만 아니라 교통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올해 설에도 설 당일엔 연휴 평균보다 50% 이상 사고 건수가 증가했다. 명절 연휴 기간 도시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돌발 상황을 분석한 결과 차량사고(58%) 다음으로 차량고장(35%)이 많아 귀성·귀경 전 차량점검은 필수라고 시는 당부했다. 시는 8·9일에는 주요 기차역, 터미널을 지나는 시내버스 12개 노선과 지하철 막차를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연장 운행하고, 심야전용 시내버스도 정상 운행할 계획이다. 7∼9일에는 망우리·용미리 시립묘지 성묘객을 위해 시내버스 4개 노선(201, 262, 270, 703번)을 66회 증편 운행한다. 실시간 도로 상황이나 대중교통 정보는 다산콜센터(☎ 120), 홈페이지(topis.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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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보리 덕에 저도 힐링…이 기분 말로 다 못해요"MBC '왔다! 장보리' 타이틀롤 오연서 "시청률 고공행진 행복하고 황홀" (고양=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너무 행복하고 황홀해요. 이 기분 뭐라 표현할 수 없고 말로 다 못해요. 보리를 만나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엄청나게 힐링이 되고 있어요." 오연서(27)는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살짝 붉혔다. 환하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벅찬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지 어느새 두 눈망울에 물기가 차오르는 게 툭 치면 콸콸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왜 아니겠나. 연기를 하면서 자신이 타이틀 롤을 맡은 드라마가 대박을 치는 경험은 결코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장안의 화제'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MBC TV 주말극 '왔다! 장보리'가 그렇고, 그 주인공 보리가 그렇다. 시청률이 35%(TNmS 수도권)를 넘어섰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시청률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악녀가 등장하는 '막장'이지만 그 악녀를 온몸으로 막아서는 선하고 건강한 보리 덕에 전반적으로 밝은 기운을 뿜어낸다. 보리가 키워온 비단이가 사실은 연민정(이유리 분)의 딸임이 드러나는 최고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는 '왔다! 장보리'는 이제 종영까지 한 달 남았다. 엄청난 대사와 최근 가슴을 쥐어짜는 감정소모 탓에 인터뷰가 쉽지 않았던 오연서를 지난달 29일 저녁 경기 고양시 일산 MBC스튜디오에서 만났다. 10년의 무명생활 끝에 2012년 KBS 2TV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싸가지 없는' 방말숙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오연서는 이후 '우리 결혼했어요', '오자룡이 간다', '메디컬 탑팀'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방말숙으로 얻은 인기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왔다! 장보리'가 내리막길을 타던 그를 다시 단숨에 건져 올려 구름 위에 사뿐히 놓았다. 오연서는 "일이 안 풀리고 힘들 때 보리를 만나 모든 게 잘 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 드라마 인기를 실감하나. ▲ 얼마 전 명동에서 촬영을 했는데 겁이 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이런 게 시청률 35%의 위엄이구나 싶었다. 촬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리고 적극적으로 반응을 해주셨다. 다들 다가오셔서 재미있게 잘 보고 있다고 반갑게 말씀해주셨다. 솔직히 전작('메디컬 탑팀')을 할 때는 극 중 '숏컷'을 하고 나오는데도 (시청률이 낮아서인지) "왜 머리카락을 잘랐어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딜 가든 다들 "보리보리 왔냐"라며 반가워해 주신다. 또 사람들이 다음 회를 너무나 궁금해한다. 이 드라마 하면서 정말 문자를 많이 받았다. 다들 다음 회 내용을 물어보는 거다.(웃음) 시청자의 사랑과 관심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 우리 드라마는 작가와 연출의 힘은 물론이고, 어른부터 아역인 비단이까지 캐스팅이 정말 완벽했던 것 같다. 연기자들끼리 주고받는 기운이 대단하다. -- 막장드라마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 속상하다. 실제 현실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연민정의 악행 때문에 막장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인데 그 역시 사람 사는 일들 중 하나 아니겠나.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있고 못된 사람도 있다. 또 인생에는 단맛과 쓴맛이 다 있지 않나. 우리 드라마는 그 모든 게 잘 버무려진 가족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악녀 연민정에게도 아픔과 슬픔이 있을 것이다. 그게 다 사람 사는 얘기다. -- 보리는 비현실적으로 착한 거 아닌가. ▲ 나도 연기하면서 '이렇게 착할 수 있을까' 싶은 대목이 많다. 보리는 천사이거나 좀 모자란 아이가 아닐까 싶다.(웃음) 실제의 나 같으면 벌써 연민정의 머리끄덩이를 잡았을 것이다. 하하. 하지만 보리는 항상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다. 벌써 모든 것을 까발릴 수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남들이 다칠까 봐 주저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지금 답답해하고 있지만 보리는 비단이가 다칠까 봐 비단이의 생모가 누구인지를 차마 못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 보리를 연기하면서 나 자신도 좀 성숙해진 것 같고 힐링도 되는 느낌이다. -- 처녀가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것도 다분히 극적이다. ▲ 보리 자신이 버려져서 거지처럼 돌아다녔던 경험이 있다고 믿고 있으니 비단이를 내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 부분이 많이 걱정되긴 했다. 모성애는 내가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확 와 닿지도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비단이 역의 지영이가 워낙 연기 신동이라 나한테 감정적으로 많이 줬고 덕분에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이 드라마 찍으면서 낳은 정과 기른 정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다. 예전에는 낳은 정이 더 우세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기른 정이 더 큰 것 같다. 보리가 지금 비단이 때문에 죽고 사는 것은 그만큼 기른 정이 깊기 때문이다. 보리는 절대로 비단이를 생모인 연민정에게 못 보낸다. -- 초반에는 코미디가 많았지만 후반 들어서는 눈물 연기가 이어졌다. ▲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다. 힘들었다. 눈물 연기를 잘 못하는데 요즘 정말 매회 운 것 같다. 웃는 신이 한 장면도 없는 회도 있었다. 대본 자체가 너무 슬퍼서 절로 감정이 잡혔다. 장흥 시절은 잠을 거의 못 잘 정도로 강행군이었지만 코믹한 부분이라 행복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하도 울어서 에너지가 방전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해서 좋은 장면도 건진 것 같아 기쁘다. 보리가 유전자 검사를 한 후 아빠(안내상)와 부둥켜안고 우는 신이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촬영할 때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내가 봐도 울컥했다. -- 후반으로 가면서 지칠 법도 한데 얼굴이 점점 더 예뻐진다는 평이 많았다. ▲ 극 중 보리 엄마로 나오는 황영희 선배님이 "너 요즘 눈이 진짜 맑아졌다. 선해졌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보리의 선하고 건강한 기운을 받아 내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얼굴에도 드러난 것 같다. 또 살도 많이 빠졌다. 극 초반 뽀글머리 천방지축 장흥 시절 연기를 하면서 분량이 너무 많아서 살이 정말 쭉쭉 빠졌고 대사 치는 게 힘이 들어 성대 결절까지 왔다. 우리 드라마가 말로 풀어가는 게 많아서 대사가 정말 많다. 촬영은 했는데 분량이 넘쳐서 편집돼버린 부분도 많다. 살이 빠지면서 선이 살아난 면도 있다. 무엇보다 시청자의 사랑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 전라도 사투리는 아킬레스건이었다. ▲ 힘들었다. 날마다 사투리 선생님께 배웠다. 그래도 턱도 없어서 죄송하지만 노력 중이니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난 경남 창녕 출신이다. 15세까지 창녕서 자라다 상경했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다르긴 하지만 사투리 특유의 감성은 비슷하다. 투박하면서도 운율이 있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서울토박이가 전라도 사투리 흉내 내는 것보다는 좀 쉽게 전라도 사투리를 익힌 것 같다. 아,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김순옥 작가님께 속았다.(웃음) 처음에 내가 전라도 사투리 자신 없다고 했더니 걱정 말라고, 사투리는 10회 미만으로 나올 거라고 하셨다. 서울로 올라오면 사투리를 교정하게 될 거라고 하셨는데 웬걸, 지금도 보리는 사투리를 쓰고 다닌다. 하하. 오연서는 "대본보다 연기를 못 한 것 같아서 속상한 적도 많았고 항상 부족한 것 같았다. 다른 연기자들이 다 너무 훌륭해서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면서 "시청자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그 기운을 받아 끝까지 힘내서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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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화려한 기교…'타짜: 신의 손'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도박에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타짜'(2006).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바탕으로 '범죄의 재구성'(2004)의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개봉 당시 684만 관객을 모으며 상업적으로 주목받았다. 마치 전설의 주먹들처럼, 도박 천하를 삼분했던 아귀, 짝귀, 평경장에게 도전장을 내밀거나 사사한 야심만만한 고니의 이야기는 성장과 고난 그리고 복수라는 익숙한 구성에 쾌속한 최동훈식 스타일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범죄영화로 시선을 끌었다. 8년 만에 나온 속편 '타짜: 신의 손'은 '과속스캔들'(2008)과 '써니'(2011)로 1천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강형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전편에 나왔던 고광렬(유해진)과 아귀(김윤석)도 그대로 출연한다. 이야기는 전설의 '타짜' 고니(조승우)가 아귀를 꺾고 나서 유유히 강호에서 사라진 후, 그의 재능을 물려받은 조카 대길(최승현)이 등장하면서 출발한다. 삼촌 고니를 닮아 유년시절부터 뛰어난 손재주를 보인 대길. 자장면을 배달하며 가끔 노름판을 기웃거리던 중 동네 잔챙이 도박꾼 광철(김인권)의 동생 미나(신세경)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어느날 도박빚에 허덕이는 할아버지를 구하려다 하우스 조직원을 상하게 한 그는 서울로 도망가고, 고향 선배의 도움을 받아 꼬장(이경영)이 운영하는 강남하우스에 취직하게 된다. 타고난 손재주 덕에 주목받는 '타짜'로 성장한 대길은 부유한 유부녀 우사장(이하늬)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강남하우스의 2인자 서실장(오정세)과 작은마담(박효주)이 우사장을 사기도박의 목표로 삼으면서 대길은 의리와 사랑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 전작인 '과속스캔들'과 '써니'에서 보여준 강 감독의 화려한 스타일이 영화 도입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배우들의 장난기, 화려한 색감, 일반 상업영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앵글과 곳곳에 넘쳐나는 아이디어들이 잇달아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 다양한 미술로 창조해낸 강남하우스, 유령하우스, 아귀하우스의 분위기도 돋보인다. 대길에게 도박을 전수하는 유해진의 연기는 역시 손꼽을 만하다. 최근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 물오른 코미디를 보인 그가 "오광하시고"를 도박꾼들에게 사심 없이 건넬 때, 웃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청춘스타 최승현과 신세경부터 곽도원, 김윤석, 이경영, 오정세 등 연기파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하모니는 고스톱에서 청단과 홍단, 초단을 싹쓸이한 듯한 파괴력을 선사한다. 신세경도 데뷔 후 처음으로 노출연기를 선보였다. 영화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대길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남부럽지 않은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여자의 도움으로 부활했다가 또 위기를 맞는다. 고점과 저점을 넘나드는 플롯상의 변곡점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쫄깃쫄깃했던 긴장감은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처진다. 2시간 30분에 이르는 상영시간은 아무래도 조금 과하다. 9월3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시간 14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