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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전통과 고샅길이 어우러진 낙안읍성(순천=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정겨운 고샅길을 걷다 보면 담 너머로 ‘고향 집의 정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낮은 담장과 사립문 사이로 보이는 마당가에는 조그만 장독대가 있고 마당 한쪽엔 채소밭이 있다. 양지바른 처마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시래기와 메줏덩어리, 곶감 꾸러미 등이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그 정경에 쏠려 자신도 모르게 사립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가옥 대부분이 개인 소유이다 보니 반드시 주인의 허락을 받고 집안 구경을 해야 한다. 채소밭에서 일하던 한 주민은 “살고 있는 집에 불쑥불쑥 들어오는 탐방객 때문에 불편할 때도 있다”면서 “마을 사람 대부분이 전통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산다”고 말한다. 사진/이진욱 기자 한 해 90여만 명이 찾는 낙안읍성(樂安邑城)은 순천 시내에서 18㎞가량 떨어져 있는 옛 읍성으로 성벽이라는 방어시설을 갖춘 성곽도시이자 주변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행정도시였다. 일반적으로 읍성은 외부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 산등성이에 축성하는 것이 보통인데 낙안읍성은 평지에 축성된 야성이다. 낙안은 평야가 많아 고려 시대 말엽 이후 왜구들의 침략이 매우 극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이진욱 기자 국내에서 유일하게 성내에 98세대 23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낙안읍성은 국내 읍성 가운데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낙안읍성은 진산인 금전산(667.9m)을 북에 두고, 동쪽 오봉산(591.5m)을 우 청룡으로, 서쪽 백이산(584.3m)을 좌 백호로 삼았으며 남쪽엔 제석산(563.3m)과 안산인 옥산(97m)이 있다. 성벽은 사다리꼴에 가깝다. 길이가 남쪽 약 460m, 북쪽 340m, 동쪽과 서쪽이 모두 약 310m이며 성벽의 둘레는 약 1천410m이다. 성곽 서북쪽에 조그만 구릉과 대숲이 있어 서북풍을 막아준다. 높이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략 4∼5m이다. 사진/이진욱 기자 동문으로 들어가 객사와 동헌을 둘러보고 낙민관자료전시관을 거쳐 읍성의 일반 주민이 이용하는 서문 쪽에서 석성에 올라 성벽 위의 좁은 길을 따라 남문까지 걸어본 뒤 마을로 내려와 고샅길을 걸으며 중요민속자료 가옥을 둘러보고 짚 꼬기와 길쌈 등을 체험하면 제대로 읍성을 돌아보는 것이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조선시대 일반 읍성이 남문을 이용한 데 반해 낙안읍성은 지리적 여건상 낙풍루(樂豊樓)라고 부르는 동문이 정문 격이다. 문루는 2층 다락으로 되어 있고 드나드는 문은 삼문으로 되어 있다. 동문 앞에는 조그마한 석구(石狗·삽살개) 3기가 세워져 있고 일종의 방어시설인 해자와 평석교가 놓여 있다.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평석교 위에 걸터앉아 놀기도 하고 음력 정월 대보름날이면 나이 숫자대로 다리 건너기를 하였는데 이를 다리 밟기(탑교놀이)라고 한다. 동문을 들어서면 읍성 안길이 서문 쪽으로 널찍하게 일직선으로 나 있고 길 오른편으로 관아, 왼편으로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낙안읍성은 산을 배경으로 그 앞에 관아가 형성되고, 관아 앞으로 백성들의 살림집이 들어서는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고을 경관이다. 사진/이진욱 기자 낙풍루에서 조금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임경업 군수 선정비가 있다. 비각은 팔작지붕의 대문을 갖춘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귀신, 비신, 이수의 격식을 갖춘 비석에서 임경업 장군에 대한 백성의 흠모를 느낄 수 있다.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임경업 장군이 하룻밤 사이에 쌓았다고 하나 실제로는 1397년 낙안 출신의 수군절제사 김빈길이 주민을 동원해 토성을 축조했다. 그 뒤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1626∼1628)로 봉직하면서 토성을 석성으로 중수하고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선정비 바로 앞에는 객사로 들어가는 홍살문이 설치돼 있다. 객사 입구에 홍살문을 세워 이곳이 신성한 곳임을 알리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도록 하고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의미도 있으며 하마비가 있어 말이나 가마에서 내리도록 했다.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殿) 자와 궁궐을 상징하는 ‘궐’(闕) 자가 새겨진 두 개의 나무패를 모셔 두고, 군수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여기에 대고 배례를 올렸다. 또한 중앙에서 관리가 출장을 오면 이곳에서 거처했다. 요즘의 영빈관과 같은 곳이다,객사를 나와 광장을 거쳐 동헌까지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조형물 포졸들이 지키고 있는 동헌에 들어가면 앞마당 양쪽에는 형틀과 곤장을 때리는 장면의 모형이 설치돼 있다. 용인 민속촌도 아니고, 고즈넉한 읍성 분위기와는 다소 어긋나는 느낌이다.동헌 사무당(使無堂)은 군수, 현령 등 지방관이 주재하며 향리를 거느리고 공무를 보던 지방관아 건물이다. 뒤로는 진산인 금전산 자락에 안긴 듯하고 남쪽으로 안산인 옥산을 바라보며 일직선으로 배치돼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동헌 앞에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낙민루(樂民樓)가 있다. 이 누각은 낙안의 군수였던 민중헌(1845~1847년 재임)이 지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때 불탔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장현주 문화해설사는 “수령이 동헌으로 출근하기 전에 높은 누에 올라 간밤에 백성들이 별일 없이 잘 지냈는지 길에 오고 가는 백성들의 얼굴을 살펴보고, 집집이 굶주리는 사람 없이 밥은 지어 먹는지 밥 짓는 연기가 나는 것을 살펴본다고 하여 이 누각을 찰미루(察眉樓)라 불렀다”고 설명한다.낙민루 인근의 낙민관자료전시관에는 조상들의 애환과 체취가 묻어 있는 생활용품과 향토 유물 약 7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특히 낙안의 역사적 배경과 낙안 관련 문헌,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가재도구와 생활용품, 낙안 지방에서 전래한 민속놀이와 통과의례, 음식문화를 알아볼 수 있다.◇ 초가와 돌담 그리고 고샅길 낙추문(樂秋門)이라고 불리는 서문은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다. 아직 문루는 복원되지 않았지만 옹성은 복원됐고 성문 양편으로는 성곽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성곽으로 오르는 길은 낙풍루, 쌍청루, 낙추문 양편으로 오르는 계단 이외에도 16곳이 있다. 주민들이 임경업 장군이 쌓은 성이어서 성벽에 손을 대면 부정을 탄다고 믿고 있어 성벽의 훼손이 적었다. 사진/이진욱 기자 서문 계단으로 올라 남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대나무 숲을 거쳐 곧바로 최고의 조망 지점에 닿는다. 발아래로 뭉게구름처럼 흩어져 있는 초가집과 관아, 장터 등 마을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 밖으로는 너른 들판이 아득하다.성곽을 쉬엄쉬엄 걷다 보면 이내 남문인 쌍청루(雙淸樓)에 이른다. 동문인 낙풍루와 달리 문이 하나다. 성문 앞에는 넓은 들이 있고 성내 모든 골목길이 그물처럼 남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예부터 성안에서 초상이 나면 상여가 성문 밖으로 나갈 때 남문으로 나갔다고 전한다.성곽을 둘러본 뒤 마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읍성의 중심 도로가 아닌 길들은 완만한 곡선형의 좁은 골목길이다. 양옆으로 눈높이 정도의 돌담이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형의 길이다. 돌담길의 폭은 1∼2m가 대부분이었지만, 3∼4m쯤 돼 보이는 제법 넓은 길도 있었다. 낮은 담 너머로 성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기웃거리다 보면 어디선가 개구쟁이 꼬마들이 누렁이와 함께 뛰어 나올 것 같다. 잊고 지낸 어린 날의 동경이 되살아나지만 이곳도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친 지 오래다. 젊은 사람들은 순천 시내에서 거주하며 아이를 키우기 때문이다. 초가집은 천천히 살펴보면 같은 듯 각각 다른 구조와 형태를 지녔다.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일자형 가옥으로 초가삼간이 많다. 간이란 기둥 사이를 말하며, 초가삼간은 네 개의 기둥이 세워진 3개의 공간으로 부엌 1칸, 안방 1칸, 윗방 1칸이 된다. 초가삼간 다음으로 많은 주택 형식은 네 칸 집이다. 그것은 세 칸에 대청을 하나 추가한 꼴인데 대청은 큰방과 작은방 사이에 들어간다.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은 동내리의 박의준 가옥(92호), 최창우 가옥(97호), 최선준 가옥(98호), 서내리의 김대자 가옥(95호), 주두열 가옥(96호), 김소아 가옥(99호), 남내리의 양규철 가옥(93호), 이한호 가옥(94호), 곽형두 가옥(100호) 등이다. 사진/이진욱 기자 남문을 내려오면 바로 문 앞에 초가삼간 최선준 가옥이 있다. 길가 쪽으로 가게를 두고 그 뒤에 살림방과 부엌을 붙여 놓아서 평면이 밭전(田) 자 형이다. 네 칸 집인 박의준 가옥은 19세기 중엽에 지어진 이방의 집이다. 1천300㎡(400여 평)에 달하는 너른 대지에 부속 채를 하나 거느리고 있다. 남내리의 길가에 위치한 이한호 가옥은 토담집 특유의 수수함과 소박함을 보여주는 집으로 부엌에는 부엌신인 조왕신이 모셔져 있다.대지와 사람이 두루 평안하다는 ‘낙토민안’(樂土民安)에서 유래된 마을 이름 ‘낙안’(樂安)처럼 이곳에서는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듯 참 평온하다. 관람 시간은 동절기(12∼1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2월부터 4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요금은 일반 4천원, 청소년과 군인 2천500원, 어린이 1천500원. 문의 061-749-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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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겨울 볕 아래 둘러보는 남해 바래길(남해=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남쪽 바다를 끼고 걷는 바래길은 겨울에도 푸르다. 해안의 언덕배기 밭마다 파릇파릇한 마늘과 시금치가 초록을 뿜어낸다. 여기에 소박한 마을 풍경과 이국적인 펜션, 따스한 겨울 볕까지 더해져 걷는 이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지난 2010년 11월 조성사업이 시작된 남해 바래길은 현재 10개 코스가 완성됐다. 1코스 다랭이지겟길, 2코스 앵강다숲길, 3코스 구운몽길, 4코스 섬노래길, 5코스 화전별곡길, 6코스 말발굽길, 7코스 고사리밭길, 8코스 동대만진지리길, 13코스 이순신호국길, 14코스 망운산노을길로 나뉜다. 사진/이진욱 기자 총 151.5㎞, 도보로 51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도보여행길이다. ‘바래’는 물때에 맞추어 갯벌과 갯바위 등에서 해초류와 해산물을 캐는 행위를 일컫는 남해 토속말이다. 바래길은 어머니들이 가족의 먹을거리를 위해 갯벌이나 갯바위 등으로 바래하러 다녔던 길을 말한다.겨울에 걷기 좋은 코스는 단연 1코스인 다랭이지겟길이다. 바래길의 본령에 가장 가까운 이 코스는 남서쪽의 평산항에서 출발해 사촌해수욕장을 지나 선구마을과 향촌을 거쳐 가천 다랭이마을까지 이어지는 16㎞ 구간이다. 걷는 데 5시간 안팎이 걸린다. 바래길은 원점 회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자가운전을 할 경우 평산이나 가천에 주차하고 버스나 콜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사진/이진욱 기자 바래길 1코스 시발점은 활어위판장이 있는 남면 평산항이다. 평산보건진료소를 리모델링해 지난 10월 문을 연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에서는 도보여행객의 마음을 치유하는 ‘치유와 소통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술관 맞은편 조그만 골목길 입구에 바래길 안내판과 ‘남면로 1739번길’이라는 도로표지판이 있다. 벽화가 그려진 담장을 따라 콘크리트 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초록을 뿜어대는 밭 사이를 걷게 된다. 남해 특산품인 마늘은 가을 추수 후 파종해 이듬해 5~6월 수확한다. 숲이 아니라 밭두렁을 걷는 길이라서 시야를 가리는 것도 없고, 쪽빛 바다에 떠 있는 소죽도와 대죽도, 초록의 마늘밭이 어우러져 “추운 겨울에 이곳으로 정말 잘 왔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진/이진욱 기자‘체리풀빌라’ 앞을 지나 좁은 흙길을 내려가면 캠프장과 갯벌체험장을 갖춘 평산2항이다. 항구라기보다는 조그마한 포구인 이곳에서 다시 오르막 산길을 걸으면 길을 넓히는 터 닦기 공사가 한창이다.평산2항에서 유구진달래군락지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면 푸른 바다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는 자그마한 언덕을 넘고 마을을 지난다. 푸른 바다가 늘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반짝이며 일렁이는 물결은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옆구리가 탁 트인 곳에서는 대형 선박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여수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이진욱 기자 남쪽 해안에 내리쬐는 따스한 겨울 햇볕을 받으며 걷다 보면 여러 겹 입었던 등산복을 벗게 된다. 바닷바람마저 포근해 마치 봄날을 연상케 할 정도다.길은 언덕과 해변을 반복해 이어지고,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어느새 사촌해수욕장에 닿는다. 해변 길이가 650m, 너비가 20m로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모래가 곱다.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는 일은 낭만 그 자체다. 사촌해수욕장에서 호젓한 산길과 흙길, 해안도로와 콘크리트 길을 반복해서 걷다 보면 선구 몽돌해안에 닿는다. 이 구간에서는 이정표나 리본이 드물어 길 찾기가 쉽지 않다.몽돌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향촌 조약돌해안으로 이어진다. 크고 작은 몽돌이 지천이다. 발아래로 ‘잘그락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마음은 이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향촌 조약돌해안에서 다시 언덕에 올라 돌아보면 해안을 끼고 걸어온 길과 선구마을이 보인다. 향촌전망대를 거쳐 길을 따라 올라가면 해안도로와 만난다. 바로 길을 건너 남해의 펜션 건축 양식들을 살펴볼 수 있는 ‘남해빛담촌’으로 올라간다. 응봉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산토리니’, ‘블루그라드’, ‘13월의 오후’ 등의 펜션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진/이진욱 기자 펜션 단지를 벗어나면 제법 가파르고 험한 산길이 이어진다. 줄곧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가 ‘초콜릿펜션’ 옆으로 내려선다. 콘크리트 길로 내려가면 다시 1024번 도로와 만난다. 잠깐 걷다가 가천마을 표지석이 나오면 해안으로 난 오른쪽 길로 내려선다. 50m쯤 지나 모퉁이를 돌면 국가지정 명승지인 가천 다랭이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바다로 뚝 떨어지는 가파른 비탈에 조성된 손바닥만 해 보이는 논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비탈진 마을 골목길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마을 중앙에는 길쭉하게 하늘로 우뚝 솟은 ‘숫바위’와 임산부 모습을 한 ‘암바위’가 보인다. 여기서 기도를 올리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암수바위다.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 해안산책로를 따라 10여 분을 걸으면 바래길 안내판이 ‘제2코스 앵강다숲길’ 시작점임을 알린다. 길을 되돌아 나와 비탈진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평산과 가천을 연결하는 1024번 도로와 만난다. 이곳에 가천 버스정류장이 있다.◇ 피톤치드 가득한 남해 편백자연휴양림 제주도를 제외하면 전국 휴양림 가운데 평균 기온이 가장 높은 남해 편백자연휴양림은 사계절 내내 삼림욕이 가능한 곳이다. 서울 여의도 면적 1.5배 규모의 산림에 편백나무 10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대부분 1960년대에 심은 나무들이다. 산림욕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 겨울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편백나무에는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어떤 나무보다 많은데, 소나무보다는 4∼5배 많다고 한다. 휴양림 내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 가슴이 탁 트이고 머리끝까지 알싸해진다. 사진/이진욱 기자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편백나무 숲의 통나무 집에 누워만 있어도 신선한 공기와 편백 향기에 상쾌함을 느낀다. 잠시 머무르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남해 편백자연휴양림은 다른 휴양림에 비해 숙박시설이 많은 편이다. 휴양림에는 숲속의 집 25동, 산림문화휴양관 1동, 숲속수련장 1동, 야영할 수 있는 데크 28개(공영데크 8개 포함)가 있다. 부대시설로 취사장, 샤워장, 잔디광장, 족구장, 물놀이장, 목공예체험실 등이 있다. 숲속수련장은 숙박시설과 식당, 다목적 강당 등의 시설을 갖춰 수련회나 워크숍 장소로 인기가 높다. 사진/이진욱 기자 매표소에서 숲속의 집을 거쳐 임도와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전망대인 한려정(閑麗停)이 나온다. 쉬엄쉬엄 40분 정도 걸린다. 여기서 전봇대처럼 쭉쭉 뻗은 편백나무 숲과 한려해상국립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mailto:chang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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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음식> 식감 좋고 영양 풍부한 도루묵(양양=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겨울 동해의 포구와 어촌은 아무리 바닷바람이 매서워도 도루묵이 있어 훈훈해진다. 노란 배에 터질 듯 알이 가득하고 살 또한 부드럽기 그지없다. 숯불에 익히는 도루묵 구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할 뿐 아니라 고소하고 깔끔한 맛에 입 또한 즐겁다. /이진욱 기자 도루묵은 한때 동해안 지역에서는 ‘개도 물고 다닐 만큼 흔한’ 생선이었다. 흔하다고 해서 맛이 없는 것은 아닌데, 맛과 영양 등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연·근해 어자원이 하루가 다르게 고갈돼 가면서 도루묵은 진가를 발휘했다. 도루묵은 생김새는 볼품이 없지만 미각은 한껏 돋운다. 이제 동해안 영북 지역의 겨울 별미로 대접받는다. /이진욱 기자 조선 정조 때 문신 이의봉이 편찬한 ‘고금석림’(古今釋林)과 조재삼이 지은 ‘송남잡식’(松南雜識)에 도루묵의 우여곡절 사연이 기록돼 있다.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는 피란길에 수라상에 오른 ‘묵어’라는 생선을 맛보고 감탄해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함부로 잡지 못하도록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선조가 다시 은어를 먹어보고는 당시 먹던 그 맛이 나오지 않자 “도로 묵이라고 하라”고 해서, 도루묵이 됐다고 한다. 겨울철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도루묵은 수심 200~400m의 바다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11~12월이 제철이다. 도루묵은 등쪽은 황갈색을 띠고 옆구리와 배는 은백색이다. /이진욱 기자 도루묵 맛을 제대로 즐기는 요리법은 찌개와 구이, 조림 등 다양하다. 냄비에 무를 깔고 도루묵을 얹은 다음, 파·마늘 등 갖은 양념에 굵은 소금으로 맛을 낸 도루묵 찌개는 비린내가 거의 없는데다 국물 맛이 담백하다. 알 밴 도루묵 구이도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통통하게 알이 밴 도루묵을 숯불이나 연탄불 위 석쇠에 올려놓고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구운 다음, ‘톡톡’ 알 터지는 소리를 곁들여 먹는 구이야말로 별미 중의 별미다. 도루묵은 조림이나 식혜로도 만들어 먹는다.도루묵에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중성지방을 감소시키는 불포화지방산인 DHA와 EPA가 많이 포함돼 있어 성인병 예방과 성장기 청소년의 두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 칼슘도 풍부하다.◇ 바다 낭만과 별미 즐길 수 있는 수산항 싱싱한 활어회를 맛볼 수 있는 양양의 수산항은 삶의 활력이 넘치는 포구다. 권영환 수산리 어촌계장은 “도루묵은 먼바다에서 돌아와 연안에 알을 낳는데 수산항에서는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1월 초까지 제철”이라며 “도루묵과 함께 동해에서 못생긴 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도치도 겨울 별미로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지난 199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수산항은 동해안 포구 중에서도 산책과 바다낚시, 요트, 카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북쪽 수산봉에는 옛날의 통신수단이었던 봉수대가 있는데 나무 계단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240m 남방파제와 700m 북방파제를 갖춘 수산항의 전경과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양양 수산항>/이진욱 기자 지난 2009년 5월에 들어선 요트마리나에는 60척이 계류할 수 있는 시설과 지상 2층 규모 클럽하우스 등이 들어서 있다. 요트마리나 시설 바로 옆에는 소원을 빌면 신기하게도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깃든 두꺼비 바위가 푸른 바다를 쳐다보고 있다.야트막한 야산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수산마을에는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에 최씨, 문씨, 김씨 세 가구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 뒤편 소나무 숲은 어부들이 “나무가 많으면 고기가 잡힌다”는 믿음을 갖고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예부터 물이 귀하다 하여 ‘수무’(水無)라고 불렸고 이후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수산’(水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현재 70여 가구 15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수산항 인근에는 신석기 시대 유적인 오산리 선사유적과 선사유적박물관, 대명리조트 쏠비치, 오산해수욕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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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선교장, 역사 숨 쉬는 한국 최고 전통가옥시인·묵객이 드나들던 풍류문화의 산실 (강릉=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강릉시 운정동에 있는 선교장은 300여 년 동안 그 원형이 잘 보전된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이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인 무경 이내번(1692∼1781)은 어머니 안동 권씨와 함께 충주에서 강릉으로 이주했다. /이진욱 기자 집터를 찾던 안동 권씨와 이내번 모자는 족제비 무리를 쫓아가다 명당 터를 발견했고, 1703년 처음 안채인 주옥을 시작으로 활래정,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열화당, 중사랑채 등 무려 10대에 걸쳐 증축을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다. 선교장은 경포호수가 집 앞까지 이어져 배로 다리를 놓아 건넜다고 해 ‘배다리마을’ 또는 ‘배다리집’으로도 불린다. 이름을 풀면 사람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다녔다 하여 선교(船橋)이고, 식량과 물품을 직접 생산할 수 있다 하여 장(莊)이다. /이진욱 기자 지금 경포호의 둘레는 4㎞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12㎞에 달할 정도로 드넓은 호수였다고 한다. 심명숙 문화해설가는 “선교장은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백미”라며 “선교장 바로 옆에 경포호수와 경포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수많은 시인, 묵객이 선교장을 찾았다”고 말한다.조선 후기 전형적인 사대부 저택인 선교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활래정(活來亭)과 사방연지(四方蓮池)가 반긴다. 연못을 끼고 오른쪽으로 걸으면 월하문(月下門)에 이른다. 너비가 2m 남짓한 작은 문 기둥에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승고월하문’(僧鼓月下門 :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이란 시가 걸려 있다. 심명숙 문화해설가는 “이 주련(기둥에 써 붙이는 글씨)은 하루 묵고 갈 거처를 찾는 나그네는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리고 쉬었다 가라는 뜻”이라며 “문 크기도 규모에 비해 작은 편에 속하는데 이는 나그네가 저택을 보고 발길을 돌릴까봐 일부러 대문을 작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진욱 기자 집주인의 너그러운 성품을 생각하며 월하문을 통과하면 시인, 묵객이 남긴 여러 글씨와 함께 활래정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처마 곳곳에 다양한 ‘활래정’ 편액이 6개나 걸려 있다. 1816년 지어진 활래정은 정자 건물의 반이 연못에 뿌리박은 돌기둥 위에 세워져 있고, 물 위에 떠있는 누마루와 온돌방, 다실로 구성돼 있다. 연못 내 작은 섬과 마당을 이어주는 목교(木橋)는 6·25전쟁 직후 망가져 철거된 후 지난 2011년 복원됐다. 벽이 없는 활래정은 문을 모두 열면 정자에 앉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수려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활래’는 서쪽 태장봉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나간다는 의미이다. 이곳에서는 시 한 수가 저절로 나올듯 바라보는 풍광이 빼어나다. <선교장의 특이한 문>/이진욱 기자 네모난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을 믿었던 당시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한국 민가정원 정자의 극치를 이루는 활래정을 지나면 소나무 숲 아래 고색창연한 건물과 담, 대문들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로 안내하는 듯하다. 선교장의 본채 건물들은 담장과 대문 1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물 전면의 행랑채에는 문이 2개 있다. 신선이 기거하는 그윽한 집이라는 ‘선교유거’(仙嶠幽居)란 현판이 걸려 있는 솟을대문은 남자만 드나드는 곳이다. 여자와 하인이 드나들 수 있는 평대문에는 내외벽이 있어 안채와 밖이 구분된다. 솟을대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평대문 내외벽과 안채(主屋), 동별당(東別堂)이 있다. 선교장 최초로 지어진 안채는 종부(안방마님) 거처이며, 집의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소박한 건물이다. 안채는 전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ㄷ자 형태로 대청 양쪽에 온돌방과 고방이 있다.세간을 보관하던 고방은 여름철이면 평상을 놓고, 그 위에서 시원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여자들의 은밀한 공간이기도 하다. 안채의 오른편에 동별당, 왼편에는 서별당(西別堂)이 이어져 있다.동별당은 집안의 여자들과 여자 손님이 거처하던 곳으로 방과 마루의 모든 벽체가 문으로 되어 있어서 활달하고 개방적인 선교장 가족의 성품과 면모를 보여준다. 동별당에는 ‘오은고택’(鰲隱古宅) 현판이 걸려 있는데 오은은 이내번의 손자 이후(李后)의 호이다. 동북쪽 산 중턱에는 선조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남자들의 서재로 사용되었던 서별당은 안채와 담으로 구분되어 있고, 중간에 작은 문 하나가 나 있다. 담장은 고개를 내밀어 소통하기에 충분하도록 야트막하다. 서별당 아래의 연지당(蓮池棠)은 집안의 홀로된 여인들이 안채의 살림을 도와가며 지내던 곳이다. 앞마당은 ‘받재마당’이라 하여 안채로 반입되는 재물을 확인하는 장소였다. 현재 서별당과 연지당은 한옥스테이 장소로 사용된다.솟을대문을 지나 왼편으로 들어서면 선교장의 중심인 열화당(悅話堂)을 만난다. 팔작지붕에 홑처마 구조인 열화당은 바깥주인이 기거하는 사랑채로, ‘일가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을 담고 있다.지난 1815년 완공된 열화당의 특징은 툇마루 앞에 설치된 동판 구조물인 차양으로, 한말에 선교장에 머물렀던 러시아 공사관 사람들이 보답으로 지어준 것이다. <선교장 열화당>/이진욱 기자 심명숙 문화해설가는 “학식이 높고 귀한 손님들만 이 사랑채에 머물게 했다”면서 “지난 7월 열화당 건립 200주년을 기념해 대관령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 ‘강원’이 이곳에서 열렸다”고 설명한다.열화당 뒤편 초정(草亭)은 인상적이다. 열화당 후원의 정자로, 시문을 짓고 책을 읽던 곳이다. 또한 초가에 살고 있는 소작인들의 애환과 삶을 공감하고 검소와 베풂의 덕을 수련하도록 소박하게 지었다고 한다. 원추리 군락지가 조성돼 있어 ‘녹야원’이라고도 불리는데, 원추리의 야생력과 번식력이 선교장가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선교장 안채 부엌>/이진욱 기자 열화당 부속건물인 중사랑은 풍류객들과 교분을 나누던 곳이다. 23칸의 행랑채는 관동팔경과 금강산을 유람하는 시인, 묵객과 집안일을 하던 집사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이밖에도 안팎으로 볼거리가 많다.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교장에는 곳간채, 홍예헌, 자매재, 초가, 선교장 박물관 등이 있다. 1908년 곡식창고인 곳간채를 개조해 신학문을 가르치던 동진학교(東進學校)를 설립했으나 일제의 탄압에 의해 폐교됐다.활래정의 단골손님이었던 몽양 여운형이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현재 선교장 생활유물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선교장 매표소 인근의 선교장 박물관에는 300년 집안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도 만년에 이곳에 들러 ‘홍엽산거’(紅葉山居) 라는 작품을 남겼는데, 편액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다.선교장이 건축되기 전부터 자생한 노송 수백 그루가 우거져 있는 선교장 뒷동산 솔숲 길을 걸으면 솔향기와 전통가옥의 멋을 더욱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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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음식> 임금에게 진상하던 별미 임진강 참게(파주=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남북한을 흘러 서해로 통하는 임진강 주변은 사시사철 맛 좋은 별미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봄에는 황복, 가을에는 참게’라는 말이 있듯이 참게는 전국에서 으뜸가는 진미(珍味)로 알려진 황복과 함께 임진강의 별미다. 참게를 말할 때 ‘가을바람이 참게를 살찌운다’는 말이 있듯이, 이맘때 참게의 속살이 가장 통통하게 오르고 맛도 제일 좋다. 참게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서 산란한 뒤 민물 상류로 이동해 겨울에 필요한 영양분을 몸속에 가득 채우고 가을에 다시 바다 쪽으로 내려간다. 짝짓기를 향한 본능이다. 이런 습성을 이용해 9∼11월에 주로 통발로 참게를 잡는다. 이진욱 기자 게딱지의 크기는 보통 10㎝ 내외이고, 암놈보다 수놈이 조금 크다. 강에 쳐진 통발이나 낚싯줄에 희생되지 않고 바다로 내려간 참게들은 이듬해에 알을 낳는다. 참게는 물고기 등이 죽어 가라앉으면 말끔하게 처리해주는 최고의 청소부로도 알려졌다.요즘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노란 장(영양분)이 가득한 놈들이 한창 잡히고 있고, 임진강변에 위치한 맛집은 ‘가을철 최고의 밥도둑’으로 불리는 참게를 맛보려는 식도락가들로 붐비고 있다. 이진욱 기자 민통선을 앞에 둔 임진강변에 위치한 ‘원조두지리매운탕 1호점’의 장석조 대표는 “참게는 크기가 작아 꽃게에 비해 먹을 것이 없지만 노란 장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맛이 가히 일품”이라고 말했다.최근 싼값에 들여 온 중국산 냉동 참게가 임진강 참게로 둔갑해 버젓이 팔리고 있지만 자연산과 양식 참게, 중국산을 구별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장 대표는 “임진강 참게는 특유의 독특한 향을 지녔지만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힘들다”며 “음식점 주인의 양심을 믿고 먹을 수밖에 없는데 두지리 매운탕촌에 오면 진짜 자연산을 맛 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진욱 기자‘참궤’라는 이름으로 참게의 생태를 기록한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가늘고 긴 다리를 가지고 둥근 사각형의 갑각껍데기에 알갱이들이 촘촘히 널려 있고 집게 아래쪽에 연한 털다발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참게는 단백질이 듬뿍 들어 있어 발육기의 어린이나 노약자에게 건강식으로 그만이다. 또 간을 해독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지닌 키토산과 필수아미노산도 풍부하다. 참게는 참게탕, 참게장, 참게매운탕 등 요리 방법이 다양하다. 그 가운데 참게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게장이 으뜸이다. 임진강 참게는 ‘축양’(畜養) 기간을 거친다. 큰 수조에 참게를 넣고 물을 부어 하룻밤 지나면 몸속 찌꺼기를 토해낸다. 덜 자란 참게에게는 먹이를 줘 살이 통통하게 오르도록 한다. 축양이 끝나면 장을 담근다. 팔팔 끓인 간장을 붓고 간장을 따라내 다시 끓인 뒤 식혀서 다시 참게에 붓는 과정을 서너 차례 되풀이하면 참게장이 된다. 이진욱 기자 참게는 대게나 꽃게와 달리 크기도 작고 맛도 고소한데, 따끈한 흰 쌀밥에 잘 익은 참게장 속살을 뜯어 살짝 얹은 뒤 입에 넣으면 고소함과 감칠맛이 입안으로 퍼진다. 고추장과 미나리를 넣고 끓인 참게탕도 군침이 절로 돈다. 시원한 국물은 기본이고, 게 특유의 비린 맛이 없으며 구수하고 매콤하다. 속이 꽉 들어찬 참게는 담백하면서도 고소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참게에 메기와 민물새우를 넣어 진하게 끓여 내는 참게매운탕도 색다른 별미다. 국물 맛이 구수하면서도 칼칼할 뿐 아니라 참게의 풍미가 가득 밴 부드러운 우거지의 맛도 어지간하다. 게장과 달리 참게탕과 참게매운탕은 가을에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급랭시킨 게는 아무래도 고소함과 독특한 향이 덜하다. << 임진강 >>이진욱 기자 파주 적성면과 파평면, 연천군 백학면 일대에 참게 맛을 볼만한 집이 여럿 있다. 대부분 게장 한 마리와 함께 나오는 백반 정식(1인분)이 1만2천∼1만5천원, 참게 두 마리를 넣어주는 참게탕이 1만8천원∼2만원 선이다.두지리 마을은 지난 2001년 행정자치부(구 안전행정부)가 지정한 주민주도형 ‘평화생태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됐다. 파주 임진강변은 강과 산이 어우러져 수도권 주민의 나들이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에서 자유로의 임진강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율곡 이이가 제자들과 함께 시와 학문을 논했다는 화석정(花石亭), 조선 초기 명재상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갈매기를 벗 삼아 만년을 보냈다는 반구정(伴鷗亭) 등에서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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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여행> 특별한 유스호스텔 캠프 그리브스(파주=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이라고 흔히 표현하는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는 민간인출입통제선 지역으로 경기도와 강원도에 걸쳐 있다. DMZ는 1953년 7월 유엔과 북한, 중국이 서명한 정전협정으로 규정된, 남북한의 적대적 행위 억지 공간이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 방향으로 2㎞, 동서 248㎞를 가로질러 만들어 놓은 비전투지역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북한 모두 군대를 주둔시켜 총을 겨누는 긴장의 공간이다. 이진욱 기자DMZ는 한편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로 주목받고 있다. DMZ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여행에 제한이 많지만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와 분단의 아픔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관광지 중 하나다.경기도는 분단의 상징이자 생태계의 보고인 DMZ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캠프 그리브스(Camp Greaves)는 6·25전쟁 정전협정 후 지난 1953년 7월 30일부터 50여 년 간 미군 2사단이 주둔해오다 2007년 우리나라 정부에 반환된 시설이다. 이진욱 기자 캠프 그리브스는 반환된 이후 역사·문화적 가치에도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경기도와 파주시가 군 당국을 끈질기게 설득해 민간인을 위한 평화안보 체험시설로 증·개축했다. 지난 2013년 7월 개관한 ‘캠프 그리브스 DMZ 체험관’은 지난 10월 말까지 1만6천246명이 이용했다. ◇ DMZ 숨결 느끼며 하룻밤 보내는 공간 서울에서 쭉 뻗은 자유로를 40분 남짓 달리면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임진각 평화누리에 닿을 수 있고, 간단한 절차를 밟으면 민통선 내의 도라산역·도라전망대·제3땅굴 등 평화안보 관광지도 둘러볼 수 있다. 긴장감이 감도는 판문점, 길게 뻗은 철조망, 그 안에 묻힌 1만여 개의 지뢰 등 한국전쟁 이후 남북 간 충돌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비무장지대는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다. 민간인이 이곳을 방문하려면 사전신청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임진강역이나 통일대교 검문소에서 신원조회 절차를 거쳐야 한다. 캠프 그리브스 유스호스텔은 민통선 안에 자리 잡은 유일한 안보체험 숙박시설이다. 이진욱 기자이진욱 기자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자유로를 따라 달려 ‘통일의 관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통일대교 앞에서 속도를 줄였다. 임진강변의 황금 들녘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지만 차량을 통제하기 위해 겹겹이 쳐진 바리케이드는 분단된 현실을 차갑게 일깨웠다. 초소의 군인들이 얼굴과 신분증을 하나하나 대조한다.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와 화물차량이 민간인출입통제선 북쪽으로 들어가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통선을 넘어 휴전선 남방한계선에 다가간다는 생각에 약간의 긴장감도 감돈다. 신분 확인을 마친 뒤 통일촌을 지나 3분 정도를 더 달려 캠프 그리브스에 도착했다. 이진욱 기자 미군 장교 숙소 한 동을 증·개축한 ‘캠프 그리브스 DMZ 체험관’은 1층에 사무실, 2·3층에 숙소, 4층은 강당과 식당으로 꾸며졌다. 숙소는 옛 군대 내무반을 재현해 놓았고 식사 때는 병영식당처럼 식판에 배식된다. 캠프 그리브스 안보체험에는 당일과 1박 2일, 2박 3일 프로그램이 있다. ‘캠프 그리브스 DMZ 체험관’ 홈페이지(www.dmzcamp131.or.kr)를 통해 예약할 수 있으며 30명 이상 단체만 이용할 수 있다. 캠프 그리브스 당일 프로그램에 참여한 초등학생 40여 명은 관광버스로 캠프 그리브스에 도착, 오전에 제3땅굴, 도라전망대, 도라산역, 도라산 평화공원을 차례로 견학했다. 이때 워크북을 활용한 ‘DMZ 1129’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며 분단의 아픔을 가진 DMZ의 역사와 지리 등을 배웠다. 오후에는 캠프 놀이마당과 평화기원 리본 달기 등이 진행됐다. ‘1129’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3일까지의 기나긴 전쟁 기간을 의미한다.이외에도 불후의 명작(전쟁 영화의 다음 장면을 상상하여 스톱모션 무비 만들기), 나라사랑 콘서트(1사단 장병들의 안보교육과 뮤직 콘서트), 통일 기원 미니 장승 솟대 만들기, 도전 DMZ 골든벨, DMZ 자전거 투어, DMZ 철책선 걷기, DMZ 초콜릿 만들기, DMZ 티셔츠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반세기 넘게 주한 미군 최전선 기지였던 캠프 그리브스에는 DMZ 체험관 이외에 미군이 쓰던 생활관과 체육관, 탄약고, 장교 부사관 숙소, 정비소 등 다양한 군사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비닐하우스 모양으로 지붕을 함석으로 만든 막사인 ‘콘센트 막사’는 거미줄이 무성한 채 텅텅 비어 있었고, 다른 건물들도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황량한 모습이었다. 체육관과 탄약고는 DMZ국제다큐영화제 행사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기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캠프 그리브스 DMZ 체험관’은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인 DMZ를 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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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마실길, 바닷길 걸으며 절경에 취해볼까(부안=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부안 변산 마실길은 바다와 맞닿아 있어 송림과 대나무로 우거진 숲길과 바닷길을 한꺼번에 걸을 수 있다. 마실은 ‘마을’을 뜻하는 사투리로 ‘마실길’은 옆집에 놀러 갈 때 걷던 고샅길이다. 지난 2009년 10월에 조성된 변산 마실길은 해양수산부로부터 2011년 ‘해안누리길’로 뽑힌 데 이어 2012년에는 ‘전국 5대 명품길’로 선정됐다. << 부안 변산 마실길 >>사진/이진욱 기자 변산 마실길의 해안코스는 모두 8개 코스로 나뉜다. 1코스(조개미 패총길, 새만금전시관~송포 5㎞), 2코스(노루목 상사화길, 송포~성천 6㎞), 3코스(적벽강 노을길, 성천~격포항 7㎞), 4코스(해넘이 솔섬길, 격포항~솔섬 5㎞), 5코스(모항갯벌 체험길, 솔섬~모항갯벌체험장 9㎞), 6코스(쌍계재 아홉구비길, 모항갯벌체험장~왕포 11㎞), 7코스(곰소 소금밭길, 왕포~곰소염전 12㎞), 8코스(청자골 자연생태길 곰소염전~부안자연생태공원 11㎞)이다. 해안누리길은 새만금방조제에서 격포항까지로, 코스가 완만해 누구나 무리 없이 즐기기 좋은 길이다. 마실길은 밀물 때와 썰물 때의 길이 다르지만 썰물 때를 골라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닷길을 걷는 것이 좋다. 바다 내음이 상쾌하고 해안 절경이 빼어나다.◇ 굽이굽이 절경, 마실길 3코스 성천포구에서 격포항까지 3코스는 변산 마실길의 백미다. 길은 줄곧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가는데 변산반도의 명소인 적벽강(赤壁江)과 채석강(彩石江), 그리고 바닷길이 드러나는 하섬과 격포리 후박나무 군락지를 품고 있다.3코스 들머리는 성천포구다. 포구 맨 끄트머리에서 하섬 전망대까지 산비탈 오솔길이 이어진다. 오솔길에는 ‘잘 왔네 마실길 걸으며 근심걱정 잊어 버리세’라는 팻말이 걸려 있고, 길옆엔 철거되지 않은 녹슨 철조망이 그대로 깔려 있다.온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걷다 보면,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하섬 전망대다. 하섬은 10만㎡ 정도의 작은 섬이지만 매월 음력 보름과 그믐날에는 길이 1㎞, 너비 30m의 바닷길이 생겨 걸어서도 섬에 들어갈 수 있다. << 하섬 전망대 >>사진/이진욱 기자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 있는 하섬은 '바다에 떠 있는 연꽃 같다’하여 연잎 '하'(蕸)를 따서 하섬이라는 말도 있고, 새우가 웅크린 모양을 하고 있어 새우 '하'(鰕)자를 써서 하섬이라고도 한다. 옛날 옛적에 육지에서 노부모와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태풍이 불어와 부모님이 탄 고깃배가 하섬까지 떠내려가서 돌아오지 못하자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용왕님께 빌고 빌어 용왕님이 바닷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하섬 전망대부터 길은 변산해변도로와 해안 숲길, 바닷길이 만나고 헤어지며 격포항까지 이어진다. 한 사람이 걸을 정도로 좁은 오솔길은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와 함께 한다. 숲 속을 나와 해변도로변에 있는 반월마을 안내센터에 도착하면 회화나무 고목이 탐방객을 반긴다. 고목 앞 팻말에는 “500여 년 전 부안 현청 동헌에 심어졌던 것으로 수령이 다하여 그 몸통을 수거 보관하다가 변산 마실길 반월 안내소 개소를 기념으로 비록 수명을 다한 고목이나 향토의 애환을 지켜온 수혼을 변산 마실길의 수호신으로 삼아 탐방객의 안녕을 빌고자 세워 두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반월마을 안내소 옆에 위치한 정자 쉼터는 제법 시원한 풍경 전망대다. 아름다운 서해와 새만금방조제, 하섬, 위도, 고군산군도 등을 두 눈 가득 담을 수 있다. 이곳에서 숲길과 해안 일주도로를 번갈아 걷다 보면 격포자연관찰로와 만난다. 썰물 때만 적벽강 몽돌해안관찰지를 자박자박 걸을 수 있는데, 걷는 맛이 각별하다. 해안관찰지를 지나면 중국의 적벽강만큼 경치가 뛰어나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는 적벽강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검붉은색을 띤 암반으로 이뤄진 적벽강의 해안은 한 폭의 그림 같다. 특히 석양 무렵 바위 단애는 진홍색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 해장죽 숲 터널 >>사진/이진욱 기자 적벽강 해안가에서 계단을 오른 뒤 벼랑 위를 따라 ‘시누대’라고 하는 해장죽(海藏竹) 길을 따라가면 수성당이 있다. 수성당은 딸 여덟 자매를 낳아 일곱 딸을 팔도에 한 명씩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를 다스렸다는 개양할머니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수성당을 내려와 마실길을 다시 걸으면 후박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123호)가 나온다.해안가 200m에 걸쳐 모두 10그루의 후박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 지역이 후박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다.죽막마을과 대명리조트를 지나면 격포해수욕장과 채석강에 발길이 닿는다. 1.5㎞의 해안절벽인 채석강은 중생대 백악기(약 7천만 년 전)에 형성된 퇴적암으로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올린 것 같다. << 부안 마실길 적벽강 >>사진/이진욱 기자 자연이 빚은 해식애(海蝕崖)를 관찰하면서 채석강을 돌아나가면 3코스 종착지인 격포항이다. 1986년에 1종항이 된 격포항은 위도와 고군산군도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중심항이다. 사계절 싱싱한 횟감이 넘쳐나는 격포항은 적벽강처럼 해넘이도 장관이다.◇ 변산 자연휴양림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에 위치한 변산 자연휴양림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휴양림으로, 전 객실에서 아름다운 서해가 눈앞에 펼쳐진다.국내 첫 해안생태형 자연휴양림인 변산 자연휴양림은 지난 1월 개장했다. 대부분 다른 휴양림과 달리 숲과 바다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인지 가장 인기가 많은 국립자연휴양림이다.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 따르면 변산 자연휴양림은 올 상반기 운영객실 수 대비 이용량을 나타내는 가동률이 93%로, 전국 38개 국립 자연휴양림 중 1위를 차지했다.리아스식 해안을 끼고 있는 변산 자연휴양림은 마실길 해안 탐방로 8개 구간 중 6코스 ‘쌍계재 아홉구비길’에 있다. 휴양림에서 5코스의 모항까지는 2.3㎞, 7코스인 곰소염전까지는 10.7㎞이다. 서해의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변산반도 해안 일주도로를 타고 가다가 ‘국립변산자연휴양림’ 간판을 보고 해안 쪽으로 내려서면 바로 매표소다. 이곳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방문자 안내소, 산림문화휴양관, 수영장, 생태습지관찰원, 주차장이 나온다. 숙소인 산림문화휴양관은 2동으로 원룸형(5인실), 투룸형(7인실), 원룸형 복층(다락방, 9인실) 등 다양한 타입의 객실을 갖췄다. << 변산 자연휴양림 >>사진/이진욱 기자 최근 개장해 객실이 깨끗하고, 야영장이 없는 대신 전 객실에서 생태습지관찰원과 아름다운 변산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날이 어둑해지면 휴양림 맞은편인 고창 심원면의 불빛이 오징어 어선의 집어등처럼 황홀경을 연출한다.이곳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시설로 각광받고 있는 목재펠릿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보일러의 원료인 목재펠릿은 나무 톱밥 등을 압축해 만든 작은 원통 모양의 청정 연료다.휴양림 뒤편으로 솔 향기와 피톤치드가 가득한 솔바람 숲길 3㎞가 조성돼 있다. 숲길 곳곳에서 서해와 휴양림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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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음식, 담백·고소한 가을철 별미 대하(홍성=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가을은 풍성한 맛으로 온다. 가을 진미로 꼽히는 대하(大蝦)의 담백, 고소한 맛은 가을철 빼놓을 수 없는 별미이다. 인천 앞바다에서 전라남도 앞바다까지 서해안 전역에서 잡히는 대하는 서해안의 대표 먹을거리. 서해안을 따라 움직이면 조그맣고 이름 없는 항에서도 어김없이 대하를 맛볼 수 있다. (홍성=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대하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곳으로는 충남 홍성군 남당항이 제격이다. 안면도와 마주보고 있는 남당항은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 나는 ‘맛의 항·포구’로 통한다. 천수만을 끼고 있어 봄에는 주꾸미, 가을에는 대하, 겨울에는 새조개가 많이 잡히는데, 9∼10월이면 제철 대하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인다. 특히 10월 초 ‘남당항 대하축제’ 때는 맨손 대하잡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 충남 홍성군 남당항 >> (홍성=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대하를 즐기기에 제격인 충남 홍성군 남당항.남당항 대하는 천수만에서 잡아 올린 자연산이다. 대하는 요즘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상태라 씹는 맛이 좋다. 대하는 몸집이 큰 새우라는 뜻으로 살이 많고 맛이 좋은 고급새우를 가리킨다. 대하는 저칼로리 고단백 식품으로 스태미나에 좋고 키토산과 무기질 함량이 풍부해 가을 영양식으로도 손색없다. 4∼5월에 알에서 깬 대하는 가을 무렵 10∼15㎝ 정도까지 자란다. 11월이 되면 대하는 깊은 바다로 들어갔다가 이듬해 봄에 천수만으로 올라와 산란을 하고 죽는다. 따라서 대하가 가장 맛있고 크기도 적당한 시기는 보통 9월 중순부터 10월이다. 이곳에서 맛보는 제철 대하의 맛은 대형마트에서 파는 수입산 냉동 대하와는 완전히 다르다. 수입산은 대하 특유의 고소한 맛이 없고, 속살이 뻑뻑하게만 느껴진다.김용태 남당항 대하축제추진위원장은 “천수만 갯벌은 대하에게 풍부한 영양을 제공해 살이 통통하고 그 맛이 담백하다”며 “10월이 되면 대하가 어른 손바닥만해지고 맛도 더 진하다”고 자랑한다.대하를 먹는 방법은 구이, 회, 튀김, 탕, 찜 등 다양하다. 이중 토실토실한 속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소금구이를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프라이팬에 굵은 소금을 깔고 대하를 올린 뒤 뚜껑을 덮고 불에 올려놓으면 된다. 구이에서는 특히 소금이 중요한데, 서해에서 나온 입자가 굵은 천일염만을 사용한다. 보통 소금은 간수를 빼기 위해 미리 구입해 저장했다가 가을에 쓴다. (홍성=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대하를 너무 오래 구우면 살이 껍질에 달라붙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뒤집어줘야 한다. 8분 정도 지나면 대하 특유의 비린내가 없어짐과 동시에 불그스레 익는다.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기도 하는데 소금구이로 간이 어느 정도 돼 굳이 안 찍어 먹어도 된다. 빨갛게 익은 대하의 껍데기를 살짝 벗기고 탱글탱글한 속살을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에 착 붙는다. 그리고 가을 바다 냄새가 입안 가득 번져온다. (홍성=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횟집 수조에 있는 대하는 거의 양식이다. 양식산 구이는 대하가 퍼덕거리기 때문에 불소금 위에 올리자마자 유리 뚜껑을 덮어줘야 한다. 머리 부분은 버리지 말고 몸통을 먹고 난 뒤 바싹 익혀 껍질째 먹어야 제맛이라고 한다. 특히 맥주 안주로 그만이다.붉게 물든 서해 낙조와 함께 대하를 맛볼 수 있는 ‘바다나라’의 김연숙씨는 “자연산은 전반적으로 흰빛이 도는 가운데 약간 불그레한 자갈색을 띠는 반면 양식 새우는 검은빛이 강하다”며 “자연산이 좀 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있지만 양식과의 맛 차이는 일반인이 구분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 자연산과 양식 대하 >> (홍성=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자연산은 전반적으로 흰빛이 도는 가운데 약간 불그레한 자갈색을 띠는 반면 양식 새우는 검은빛이 강하다.대하의 맛을 그대로 즐기려면 회가 좋지만 자연산 회를 맛보기는 어렵다. 성질이 급한 대하는 잡히는 즉시 죽기 때문에 바로 얼음을 채워 아이스박스에 담기는 탓이다. 대하 회는 대부분 양식으로 머리와 껍질만 대충 떼어내 초장에 찍어 먹는다. 탱탱하고 오독오독하게 씹히는 맛이 입안을 감싼다.남당항에서 판매되는 자연산 대하 가격은 9월 중순 1㎏에 3만5천원이다. 대하는 위판 가격에 따라 날마다 가격이 달라지는데, 더 커지는 10월이면 4만∼5만원까지 오른다.요즘 남당항에 가면 대하뿐 아니라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돌아올 정도’로 별미 중의 별미로 꼽히는 전어도 맛볼 수 있다. 가장 맛 좋을 때가 9월 말부터 11월 초까지이고, 15㎝ 정도의 전어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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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물, 숲이 어우러진 괴산 산막이옛길(괴산=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걷기 좋은 계절이다. 깊은 골을 따라 흐르는 자연 그대로의 계곡이 많은 충북 괴산에는 사계절 아름다운 명품길이 있다. 제주도의 올레길 만큼이나 아름다운‘산막이옛길’이다.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골 오지인 산막이마을까지 이어진 십 리 길을 말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은 1957년에 괴산댐이 건설됨에 따라 대부분 물에 잠겨 없어지고, 일부만 남아 있었다. 산막이는 산의 마지막, 산이 막혔다는 뜻이다. 아슬아슬 걷는 재미, 괴산 산막이 옛길(괴산=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괴산군은 4년 전 호수 가장자리에 나무받침(데크)을 설치해 4㎞의 벼랑길을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특히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고 살아 있는 자연미를 그대로 보여 주기 위해 친환경 공법으로 나무받침 길을 만들었고, 트레킹 코스 곳곳에 자연이 빚은 비경에다 '스토리텔링'을 더했다.산막이옛길은 2011년 개장 첫해 88만1천195 명에서 2012년 130만2천775 명, 2013년 140만2천252 명에 이어 지난해 150만 명을 넘는 사람이 찾아 제주의 올레길 못지않은 명품 길로 떠올랐다.산막이옛길 주차장 입구에서 주차료 2천원을 내고 식당과 기념품점을 지나 산막이옛길로 들어섰다. 맨 먼저 사랑을 상징하는 연리지(連理枝)와 갖가지 모양의 돌조각들이 도열해 있는 고인돌 쉼터가 반긴다. 이곳에서 50m가량 올라가면 작은 골짜기에 아슬아슬한 밧줄로 연결한 ‘소나무 출렁다리’가 있다. 나무 위를 걷는 출렁다리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더한다.출렁다리 우회도로에는 정사목(情事木)이 있는데 이름대로 남자 소나무와 여자 소나무가 ‘사랑’을 나누는 자세로 자라고 있다. 팻말에는 ‘지구 상에서 유일한 사랑 나누는 소나무’라고 적혀 있는데 1천 년에 한 번, 10억 주에 한 그루 정도 나올 수 있는 음양수라고 한다. 이처럼 산막이옛길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산책로 곳곳에 이야깃거리를 숨겨 놓았다. 산길과 뱃길이 어우러진 산막이옛길(괴산=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출렁다리를 건너면 야생동물이 지나다니면서 목을 축였다는 노루샘이다. 노루샘에 서면 산책길과 등잔봉 등산로 중 택일해야 한다. 2시간 걸리는 2.9㎞ 등산길과 3시간 걸리는 4.4㎞의 등산길은 가파르고 환상적이지만 그 대신 숨이 차오르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산책 코스로 들어서면 연꽃을 심어놓은 연화담과 세상의 근심 걱정을 모두 잊는다는 망세루가 이어진다. 망세루는 호수 양쪽을 모두 볼 수 있을 만큼 전망이 좋다. 일상의 시름을 잠시 잊고 다시 걷다 보면 호랑이굴과 매바위와 여우비 바위굴, ‘옷 벗은 미녀 참나무’를 거쳐 '앉은뱅이 약수'에 닿는다. 옛날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이곳의 물을 마시고 벌떡 일어났다는 전설을 생각하며 목을 축일 수 있다. 넓은 쉼터를 마련해 놓은 호수 전망대는 마치 공원의 야외카페 같다. 괴산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호수 전망대는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지역 예술인들의 시를 감상할 수 있어, 사색하기에 좋은 곳이다. 그윽한 솔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줘 걷는 내내 발걸음이 가볍다. 산막이옛길 고공전망대(괴산=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느티나무 고목 위에 만들어 놓은 괴음정을 지나면 고공전망대가 나온다. 호수 위로 난간을 설치하고 바닥에 강화유리를 깐 고공전망대의 맨 끝에 서면 살짝 오금이 저려 온다. 하지만 발 밑으로 새파란 호수를 내려다보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낀다. 인천에서 온 탐방객은 “스릴을 느끼게 하는 전망대뿐만 아니라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풍경이 빼어난 숲길이 있어 몸과 마음이 다 재충전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이어 ‘마흔 고개’라고 이름 붙인 40계단을 타박타박 오르면 시원한 바람이 가슴까지 맑게 한다. 다래숲 동굴, 진달래 동산, 가재연못, 물레방아, 산딸기길 등을 느릿느릿 걷다 보면 어느새 산막이마을과 선착장이 눈에 들어온다. 산막이마을의 끝머리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노수신(1515~1590)이 귀양살이하던 수월정(水月亭)이 복원돼 있다.산막이마을에서 배를 타고 출발지인 주차장으로 되돌아 나올 수도 있고, 온 길을 되짚어갈 수도 있다. 등산을 좋아하거나 시간이 허락된다면 산막이옛길을 둘러싼 천장봉과 등잔봉을 오르는 것도 좋다. 1코스는 산막이마을∼천장봉(해발 437m)∼한반도 전망대∼등잔봉(해발 450m)∼노루샘까지 4.4㎞이며, 2코스는 진달래 동산∼천장봉∼한반도 전망대∼등잔봉∼노루샘을 잇는 2.9㎞이다. 천장봉 한반도 전망대(괴산=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천장봉에서 등잔봉까지는 호젓한 능선 길인데 풍경이 장쾌하다. 천장봉을 조금 지나면 한반도 전망대다. 괴산호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한반도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 길을 가는 내내 오른쪽으로 괴산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산막이옛길을 걸을 때는 설레발 놓으며 앞서가는 발걸음을 성큼성큼 따라가지 말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나무와 대화하며 느릿느릿 걸어보자. 지친 몸과 마음이 시나브로 치유되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대야산 자연휴양림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드는 대야산(931m)과 둔덕산(970m)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대야산 자연휴양림은 2009년 5월 문을 열어 시설이 깨끗하다. 다른 휴양림과 달리 객실 앞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다. 대야산 자연휴양림괴산 산막이옛길 부근에 있는 대야산 자연휴양림 지난해 문을 연 제2산림문화휴양관에는 학천정, 용추, 월영대, 물봉선등 주변의 명소와 식물 이름이 붙어 있다. 기존의 제1산림문화휴양관의 방에는 갈참나무, 조리대, 졸참나무처럼 휴양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 명칭이 부여됐다. 대야산자연휴양림은 야영을 할 수 있는 캠핑장이 없지만 캐빈이 있다. 캐빈은 취사와 샤워시설 없이 숙박만 가능한 통나무집을 일컫는다. 따라서 침구와 식기를 따로 준비해야 한다. 캐빈은 소음을 방지하고 난방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중창으로 설계됐다. 제1산림문화휴양관 뒤편 등산로는 둔덕산 정상까지 이어진다. 산정까지 거리는 2㎞로, 1시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산림청은 9월부터 주중은 기존대로 선착순 예약이지만 주말(금·토)과 법정공휴일 이용은 추첨제로 전환했다.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매월 4일 오전 9시부터 9일 오후 6시까지 다음달 사용분에 대해 홈페이지(www.huyang.go.kr)에서 추첨 신청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