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다시 희망> ①'하면 된다'…취업문 향해 또 "한발씩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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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새해엔 다시 희망> ①'하면 된다'…취업문 향해 또 "한발씩 내딛는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조금 느리게 걷는 겁니다"
졸업 미루고 2년째 '구직전쟁' 나선 취업준비생도 새 희망

<※ 편집자주 = 새해에는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희망을 품게 됩니다. 2016년은 이웃을 좀 더 돌아보고 그들의 작은 소망에 귀 기울이는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꿈을 키워나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취업준비생, 택배기사, 전화 상담원, 아파트 경비원, 경찰관 등 그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들어봤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가요? 저에겐 해당 안 되는 이야기네요."

성탄절 황금연휴를 앞둔 작년 12월 24일 거리에는 캐럴이 울려 퍼지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지만 2년째 취업준비생 신분인 이수진(24·여·가명)씨에게는 이런 낭만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씨는 오전 9시부터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취업 스터디그룹 멤버 1명과 함께 조간신문에 나온 시사 상식을 꼼꼼히 정리하고 있었다.


1년 전부터 계속된 이 스터디그룹에는 한때 5명까지 모이기도 했지만 이제 남은 건 두 사람뿐이다. 한둘씩 취업이 됐거나 '공채 시즌'이 끝나자 마음을 정리하겠다는 등의 이유로 떠나갔다.


최근 발표된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국내 29세 이하 대졸 청년 중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으면서 고용된 상태도 아닌 이른바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은 전체의 24.4%였다.


이씨도 이 니트족에 속하는 셈이다. '취업준비생'이라는 말도 낯선데 또 다른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취준생에게 크리스마스는 '남의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취업준비생 이수진(24·여·가명)씨가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스터디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2016.1.1 2vs2@yna.co.kr
 

이씨는 "이 조사 결과를 언론들이 보도할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니트족이 세 번째로 많다며 '불명예'라는 단어를 썼다"며 "취업을 준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실패했다는 낙인을 찍는 듯한 말"이라고 불쾌해했다.


서울의 한 대학 상경계열 8학기 과정을 모두 마쳤지만 원했던 직장에 취직하지 못한 이씨는 작년 2월 학사모를 쓴 입학 동기들과는 달리 '졸업유예'를 선택했다.


"졸업을 하지 않은 채로 있어야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거든요. 또 학생 신분으로 남으면 인턴십 등 기회가 조금이라도 늘어날까 해서…."


30분의 스터디가 끝나자 이씨는 학교에서 열리는 취업특강에 출석하려 급히 짐을 챙겼다.


교정 화단에는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이씨는 여기에 시선을 두지도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작년 10월 7학기 이상 재학한 대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을 위해 1인당 평균 5.2개의 '스펙'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도 마찬가지였다. 토익 점수 900점을 넘기려고 학원에 다니는 등 스펙 쌓기에 열심이었다. 여러 취업 스터디에 참여하며 바쁘게 지냈다. 작년 1년은 그야말로 취업 준비에만 매진한 시간이었다.


졸업유예를 했다고 하지만 말만 학생일 뿐 사실상 '백수'였다. 소속 없이 취업준비를 하니 감정 기복이 심했다.


어떤 날에는 '다 잘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다가도 또 어떤 날은 '이러다 나이만 먹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며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낙방이 계속되자 아침에 일어나 제일 처음 하는 일이 인터넷으로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일 정도로 심리적으로 위축됐다.


"종교도 없고 미신도 믿지 않아서 평소의 저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아침 운세에 따라서 그날 하루의 기분이 결정되는 거죠. 길거리에서 점까지 봤네요. 어느 순간 '아, 내가 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어서 이런 데 의존하는구나. 많이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결국 손에 쥔 '합격증'은 없었다. 취업에만 매달렸지만 결과가 없으니 망연자실했다.


"막상 결과가 없으니 자신에게 가혹해지더라고요. '노력해도 안 된다'는 포기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 사이에서 자신을 괴롭혔어요. 한동안 집에서도 나가지 않다가 여행을 다녀오고서 겨우 마음을 다스렸네요."


대구에서 생활비와 용돈을 부쳐주는 부모님 얼굴도 계속 생각났다고 했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는 이른바 '수저론'을 생각하며 기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도 했지만, 자신보다 더 힘들게 준비하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도 관뒀다.


이씨는 "비록 '금수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시니 남들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계속 떨어지지만 부모님은 타박 한 번 안 하셔서 감사한 마음을 넘어 죄송한 마음마저 든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강의실을 가득 채운 100여명은 이씨의 동지이자 경쟁자였다.


극심한 취업난을 뚫으려고 교육기관인 대학 차원에서 이런 취업특강을 개설하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작년 7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782명 중 58.7%(465명)는 대학에서 제공하는 취업 관련 강좌나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좌의 주제는 기업 직무적성검사 특강이었다. 온종일 최신 출제 유형 분석과 기출문제 풀이에 할애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들을수록 아리송함이 가시질 않았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직무적성검사도 그렇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능처럼 교과서나 문제집을 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혼란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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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에게 크리스마스는 '남의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취업준비생 이수진(24·여·가명)씨가 취업 특강에 출석하고 있다. 2016.1.1 2vs2@yna.co.kr
 

이씨의 말처럼 취업준비생들은 '왜 떨어졌는지'를 알지 못해 취업준비 부담이 크다고 여기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설문조사에서 과도한 취업준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청년들이 기업에 바라는 점으로 '탈락자에 대한 결과 피드백(35.6%)'이 가장 많이 꼽혔을 정도다.


이씨는 자신과 같은 취업준비생이 너무 많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 사회가 취업 문제를 식상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취업준비생은 이제 하나의 계층이 됐죠. 저 같은 사람이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넘어가는 일시적인 과도기에 있다고 여긴다면 '취준생'이라는 줄임말도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사회가 취업난이라는 단어를 무신경하게 받아들이면서 그 계층 안에 있는 사람도 피상적으로 여기게 되는 것 같아요."


이씨의 올해의 희망은 당연하지만 '취업'이다. 졸업유예 기간도 끝나 올 2월에는 졸업장을 받아 들고 '칼바람'이 부는 학교 밖 울타리로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이씨는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무장하고서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전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년간 취업을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어요.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많은 것을 배웠기에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어요. 빨리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조금 느리게 걷는 겁니다. 올해는 제 속도에 맞춰 앞으로 한발씩 내디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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