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료 못내 서울 떠난 '대학로극장' 산골마을서 재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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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

대관료 못내 서울 떠난 '대학로극장' 산골마을서 재개관

14378043415925.jpg충청도 산골에 재개관한 '대학로극장' 축하공연(단양=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치솟는 대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28년 역사의 서울 대학로 극장 문을 닫고 귀촌한 '대학로극장'이 24일 충북 단양에서 '만종리 대학로극장'으로 재개관했다. 마을주민들이 축하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2015.7.25 kong@yna.co.kr
단양서 '노인과 바다' 첫 공연…300여명 장대비 뚫고 달려와 잔치

(단양=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만종리 만세! 대학로극장 만세!"

24일 저녁 충북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 개울가 숲 속에 자리 잡은 야외무대 주변에서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치솟는 대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28년 역사의 서울 대학로 극장 문을 닫고 귀촌한 '대학로극장'이 이날 '만종리 대학로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조금 전까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세차게 퍼붓던 장대비도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그쳤다.


행사 시작은 오후 8시였지만 한참 전부터 빗속을 뚫고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마실 나온 주민과 마을 이장, 파출소장, 읍장, 서울에서 달려온 배우들까지 3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이런 날씨에 과연 괜찮을까?' 하는 회의도 있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기타와 국악이 어우러진 축하공연, '만종리 대학로극장'의 성공을 기원하는 고사, 재개관 첫 작품인 '노인과 바다' 공연에 이어 뒤풀이가 밤늦도록 계속됐다.


형식도 체면치레도 없었다. 공연을 보다 출출하면 파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한 잔 걸쳤다. 어른도 아이도, 배우도 관객도, 주인도 손님도 없이 모두가 한데 어울려 웃음꽃을 피웠다.

14378043389807.jpg충청도 산골에 재개관한 '대학로극장' 첫 작품(단양=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치솟는 대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28년 역사의 서울 대학로 극장 문을 닫고 귀촌한 '대학로극장'이 24일 충북 단양에서 '만종리 대학로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숲속 무대에서 첫 작품 '노인과 바다'를 공연하고 있다. 2015.7.25 kong@yna.co.kr

시간과 공간이 빡빡한 대학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풍경이었다.


정동환, 안석환, 서이숙, 이호성 등 유명 배우들도 여러 자리를 함께 했다.


'끼'가 넘치는 예술인들이 모인 만큼 재치 있는 발언도 쏟아졌다.


단양의 한 연극인은 "연극 공모사업에 선정됐지만 역량 부족으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서울 대학로극장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듣고 '야호' 환호성을 질렀다"며 "만종리 대학로극장은 단양 연극계에 불을 지펴줄 것"이라고 말해 큰 박수와 함께 웃음을 자아냈다.


만종리 대학로극장 공동대표 배우 기주봉은 "농사를 지을 줄 모르는 놈들이 무더기로 농촌에 왔다"며 "연극 농사를 제대로 지어 보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대학로극장은 비싼 임대료 등으로 운영난을 겪으면서 오랜 보금자리였던 서울 대학로를 떠나 올봄 만종리로 옮겼다.  


이름도 '만종리 대학로극장'으로 고치고 단원들은 낮에는 농부로, 밤에는 연극인으로 살아간다.  


대학로에선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관료를 견딜 수 없었지만 숲 속에 자리 잡은 이곳 공연장은 임대료 걱정이 없다. 1년치 임대료를 다 합쳐봐야 서울 극장의 한 달 전기료 수준이다.


14378043341508.jpg충청도 산골에 재개관한 '대학로극장' 첫 작품(단양=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치솟는 대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28년 역사의 서울 대학로 극장 문을 닫고 귀촌한 '대학로극장'이 24일 충북 단양에서 '만종리 대학로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숲속 무대에서 첫 작품 '노인과 바다'를 공연하고 있다. 2015.7.25 kong@yna.co.kr

마을에서 마련해 준 빈집과 마을회관 등을 거처로 쓰니 주택비용을 걱정할 일도 없다.


개관작인 헤밍웨이 원작 '노인과 바다'에는 만종리 대학로극장 대표 배우 정재진과 이동준, 백효성이 출연해 열연한다.  


'노인과 바다'에 이어 내달 1일부터 9일까지는 연극 '다녀왔습니다', 7∼8일에는 '이별의 말도 없이'가 산골마을 간이무대에서 선보인다. 


본 공연이 끝나면 자정까지 부대공연이 이어진다. 가수 한영애와 해바라기, 프로젝트그룹 별하의 무대가 예정돼 있고, 마임 등 순서도 마련된다.


대학로에 있던 150석 규모의 대학로극장은 동숭동에 본격적인 소극장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1987년 개관했다. 샘터파랑새극장, 연우소극장에 이어 세 번째로 역사가 깊었다.


만종리 대학로극장 허성수 총감독은 "아픈 추억을 뒤로하고 새로운 문화실험을 하고자 한다"며 "연극은 비상업적인 순수기초예술이라는 생각으로 입장료 수입이나 지원금에 기대지 않고 친환경 농업과 가공상품 개발을 통해 자생력을 확보하면서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산촌마을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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