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휴가는 국내로> ⑨ 소박한 골목길이 아름다운 부산 감천문화마을6·25 때 부산에 몰린 피란민이 만든 마을파스텔톤으로 알록달록 칠해진 지붕이 예쁜 마을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감천문화마을의 매력은 소박한 골목길에 있다.꼬불꼬불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골목길.막다른 골목인 줄 알았는데 골목 끝자락에 길이 연결되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하는 막다른 골목. '예측불허' 우리 인생을 닮은 이 골목길에는 한국전쟁 이후 힘들었지만 정겨움이 가득했던 우리네 삶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그래서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했던 사람은 말한다. 그곳에 가니 사람 냄새가 나더라고. 감천문화마을 행정구역상 부산 사하구 감천 2동에 속하는 '감천문화마을'은 우리 민족 근대사의 아픈 일면을 담은 곳이다.한국전쟁 때 낙동강 이남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이 팍팍한 산 중턱에 삶의 뿌리를 내리면서 생긴 곳이다.앞집이 만들어지면 뒷집은 조금씩 산등성이를 올라가며 지어졌다. 어느새 산허리까지 집이 들어섰다.레고블록으로 쌓은 듯 계단식 집들이 촘촘히 서 있다. 비슷한 모양의 집들에 개성을 더하는 건 지붕색깔이다. 파스텔톤으로 알록달록 칠해진 집들은 독특한 색감을 자랑한다. 감천문화마을 대형 버스주차장이 있는 마을 입구부터 둘러보는 게 좋다. 이곳에서 마을 지도를 구매해 둘러볼 곳을 미리 생각해두자. 투어 코스는 모두 두 개다. 사진촬영을 나왔거나 기억에 남을 '셀카'를 찍고 싶다면 '스탬프 코스'가 좋다. 만약 감천문화마을의 방문이 두 번째라면 '공방체험 코스'를 택하는 게 좋겠다. 공방체험 코스는 '스탬프 코스' 중 몇 개의 주요코스를 예술가들이 있는 공방을 중심으로 추린 코스다. 모두 1시간 반이면 완주가 가능한 코스다. 스탬프 코스보다 짧고 주로 내리막으로 구성돼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도 추천한다.감천문화마을의 명물은 148계단이다. 마을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직선으로 한 번에 연결하는 계단이다. 어마어마한 길이에 처음 본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하늘까지 갈 것 같다고 해서 주민들은 '별 보러 가는 계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감천문화마을 148계단 일부 모습148계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감내어울터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등에서 절로 땀이 나는 것 같다.감내어울터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셀카 인증샷'을 찍어야 하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마을에 있었던 목욕탕을 고쳐 이색적인 휴식 공간으로 탄생시킨 감내어울터도 볼거리 중 중 하나다. 안으로 들어가면 그대로 보존된 욕탕과 샤워장 앞에서 의자를 놓고 쉬는 다른 관광객들과 마주칠 수 있다. 감내어울터 골목길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주민들이 전을 굽다가 식히기 위해 골목 한쪽에 놓아둔 전 바구니의 모습, 따사로운 햇볕을 피해 그늘진 골목길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 모습은 어릴 적 시골 마을의 한 풍경 같다.골목 곳곳에는 '빛의 집', '낙서갤러리' '카툰공방' '바람의 집' '현대인의 방' 등 폐가를 활용해 만든 시설이 나온다.이들 시설에서는 주민이 만든 작품과 전문작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두루 볼 수 있다. 생태공예 공방, 서양화 공방, 천연염색 공방에 들러 체험해볼 수도 있다. 감천문화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어린 왕자 동상이 있는 곳이다. 감천문화마을이 발아래 펼쳐진 도로 한 쪽에 어린 왕자 동상이 여우 한 마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있다. 동화 속에서 여우와 친구 되는 법을 보여준 어린 왕자는 관광객들에게 '이제 감천문화마을과 친구가 됐느냐'고 묻는 듯하다. 마을을 다 둘러본 뒤 아쉬움이 남는다면 마을 입구 주변에 있는 작은 박물관에 가보자. 이곳에서는 주민들이 예전에 사용했던 물품을 기증해 전시하고 있다.
-
"고맙습니다"…전국서 66주년 6·25행사, 참전용사 희생 기려참전용사 4명 대전현충원 안장·마산 프로야구에선 참전용사 시구 (전국종합=연합뉴스) 6·25전쟁 제66주년을 맞은 25일 다양한 추모·기념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려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안보 의지를 다졌다.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참전용사 4명 등 국군장병 10명의 안장식과 추모 시 낭송음악회, 대한민국 호국영령 영산대법회가 열려 6·25전쟁 기념일의 의미를 더했다. 참전용사 4명 가운데 고(故) 박태용 육군하사는 1953년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해 가족 묘역에 안장됐다가 전사한 지 63년 만에 전우들 곁에 잠들게 됐다. 태극기 흔드는 기념식 참가자들. 김도훈 기자 2016.6.25남북이 대치한 최일선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제4 땅굴 광장에서는 강원도와 양구군이 공동 주최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고성·속초·화천·횡성·원주 등 전장이 된 도내 곳곳에서도 기념행사가 이어졌다.영월군은 기념행사에서 지역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는 화강석 참전기념탑과 6·25전쟁 파병 지원국 기념비를 제막했다.충북 청주에서는 충북도와 충북남부보훈지청이 청주체육관에서 청주아트홀까지 2.6㎞ 구간에서 '2016 나라사랑 카퍼레이드'를 펼쳤다.충북 첫 6·25 참전용사 카퍼레이드. 이승민 기자 2016.6.25충북경찰청, 공군사관학교, 육군 37사단, 13공수특전여단 등 차량 7대와 참전 유공자 14명이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제주시 한라대 한라아트홀에서는 육군이 백마고지 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전사한 고(故) 양치원 이등상사 등 참전용사 30명 유족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이들은 6·25 전쟁 당시 무공을 세워 무공훈장 수훈 명령을 받았으나 긴박한 전장 상황으로 '가(假)수여증'만 받은 군인으로 모두 세상을 떠나 유족들이 대신 무공훈장을 받았다.이날 오후 경남 창원 마산야구장에서는 프로야구 NC-기아전에 앞서 NC 다이노스 구단이 6·25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6·25 메모리얼 데이' 행사를 연다. 6·25 참전용사 최필수(86)씨가 시구하고 외손자인 육군 39사단 차유록(22) 일병이 시타한다.경기장 주변에 페인트탄 사격 체험존을 마련하고 육군에서 사용하는 소총류, 방독면, 무전기 등 군용 물자 전시회와 전투복을 입을 수 있는 포토존을 운영한다.참전유공자 등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참전용사 28명이 호국영웅기장을 받았다. 제주 기념식에서 만세 삼창하는 참가자들. 전지혜 기자 2016.6.25 5·18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이었던 제11공수특전여단 참여 문제로 논란을 빚은 행진은 전면 취소됐다. 부산과 경북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들도 각각 기념행사를 열어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안보의식 고취를 다짐했다.김관용 경북도지사는 기념사에서 "위국헌신하신 분들이 존경받고 유가족들이 자긍심을 갖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영서 최수호 전지혜 박철홍 전창해 최병길 이주영 기자)
-
北신문 "제2의 6·25전쟁시 종착점은 미국 멸망"6.25 66주년 북한 청년 결의모임(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6·25 전쟁 발발 66주년을 앞두고 23일 청년학생들의 결의 모임이 신천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2016.6.24 <<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 utzza@yna.co.kr"화성-10 시험발사…선제 핵공격 능력 과시" (서울=연합뉴스) 문관현 기자 = 북한은 6·25전쟁 66주년인 25일 미국이 제2의 6·25전쟁을 일으킨다면 그 종착점은 미국의 멸망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6·25전쟁 발발 66주년 논평을 통해 "미제가 지난날의 패전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핵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그 도발의 대가가 얼마나 쓰디쓴 것인가를 똑똑히 알게 해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신문은 "현재 조선반도는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에 있다"면서 "미제는 남조선 괴뢰패당과 작당하여 해마다 대규모 핵전쟁연습을 끊임없이 벌려(벌여) 놓으며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핵 위협 공갈을 일삼고 있다"고 비난했다.그러면서 "공화국(북한)은 수소탄까지 보유한 핵 강국이 되였다"며 "최근 성공적으로 진행한 지상대지상(지대지)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로켓) '화성-10' 시험발사는 우리도 적들을 항시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선제 핵 공격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또다시 힘있게 과시하였다"고 주장했다.신문은 "지금 조선반도(한반도) 정세는 전쟁 전야의 초긴장 상태에 놓여있다"면서 "년례적(연례적)이니, 방어적이니 하는 것들을 벗어던지면서 임의의 시각에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핵전쟁을 도발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원인 모를 자그마한 사건으로 정세가 일순간에 교전 직전까지 치달아 올랐던 지난해 8월 사태도 미국이 남조선 괴뢰패당과 감행한 '을지 프리덤 가디언' 합동군사연습을 배경으로 하여 빚어졌다"고 억지 주장을 부렸다.
-
현충일 추념식 서울현충원서 거행…"고귀한 희생 잊지말자"(종합)현충탑 향하는 시민들(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이 끝난 후 시민들이 헌화를 위해 현충탑을 향하고 있다. 2016.6.6 mon@yna.co.kr朴대통령 "국민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힘합쳐야 분단 역사 마감"6·25 참전용사 2명에 국가유공자 증서 수여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이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됐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추념식에는 6·25 참전용사와 전몰군경 유족을 포함한 국가유공자, 각계 주요 인사, 시민, 학생 등 1만여명이 참석했다.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와 새누리당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등 여야 정치권 인사도 자리를 함께했다. 추념식은 오전 10시 정각 전국적으로 울린 사이렌 소리에 맞춘 묵념에 이어 헌화·분향, 추모영상 상영, 추념사, 추모 헌시 낭송, 추념 공연, '현충의 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됐다.눈물 닦는 참석자(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참석자가 추모헌시를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2016.6.6 mon@yna.co.kr 1분 동안 계속된 묵념 시간에는 세종로 사거리를 비롯한 서울 18곳 주요 도로를 포함해 전국 도로 225곳에서 차량이 일시 정차함으로써 전국민적인 추모 분위기를 조성했다.박근혜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국민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힘을 합쳐야만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며 "국가안보에는 여야, 지역, 세대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이번 추념식에서는 본인이 국가유공자인지 몰랐으나 정부가 찾아낸 6·25 참전용사인 사현동(85) 씨와 이순봉(86) 씨가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이들은 6·25 전쟁 당시 각각 경기도 포천 지역 전투와 강원도 횡성 지역 전투에서 적과 싸웠다. 고(故) 김낙현 씨를 비롯한 6·25 참전용사 3명의 유족도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박 대통령은 창극을 세계에 널리 알린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비롯한 국민대표 6명에게는 국가유공자의 희생을 기리는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를 직접 달아줬다.제61회 현충일 추념식(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mon@yna.co.kr배우 이서진 씨는 2014년 보훈문예물 공모전 수상작인 추모헌시 '무궁화'를 낭송했고 세대별 연합 합창단은 가수 거미의 선창으로 추모가 '우리는 그대들을 기억합니다'를 합창했다. 추념식은 참석자들의 '현충의 노래' 제창으로 끝을 맺었다.전국 곳곳에서도 현충일 추념식이 열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했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국가유공자를 포함한 3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념식이 거행됐다.국가보훈처는 "올해 추념식은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그들의 호국정신을 본받아 이 시대의 호국정신으로 계승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
<집창촌 탈바꿈> ②산업형 성매매 역사…1900년 일본인 거류지서 시작5공화국때 전성기, 2004년 성매매특별법 발효후 쇠락 (전국종합=연합뉴스) 밤마다 홍등을 밝혔던 도심 집창촌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집창촌이 하나둘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지만 '성매매 근절'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성매매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 국내 집창촌의 역사 국내 '산업형 성매매'가 시작된 시기는 1900년 전후다. 조선시대까지는 철저한 밀매음 형태였다.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인 집단 거류지에서 일본식 유곽(遊廓)이 형성되기 시작해 1900년대 부산에 집창촌이 생겼다.일본강점기 성매매의 특징은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는 공창 형태였다.일제는 1916년 '유곽업 창기 취체규칙'을 만들어 성매매를 공식화하고 창기들로부터 세금을 받았다. 국내 최초의 공창 제도다.부산, 인천 등 개항지를 중심으로 생겨나던 성매매여성 집결지는 성병 예방, 풍기문란 예방을 위해 한 곳으로 집중된다.유곽에서 시작된 집창촌은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1947년 공창제가 폐지되면서 발 빠르게 변모한다.정부는 1961년 윤락행위 방지법을 제정했지만 집창촌을 묵인했다.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일본인들 기생관광이 외화벌이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이후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향락 산업이 더욱 확산했다. 도시 뒷골목에는 속속 집창촌이 형성됐다.1970년대 중반에는 티켓다방이 등장했고, 1980년 이후 제5공화국 시절에는 군사정권의 3S(Sports, Screen, Sex) 정책 중 하나로 성매매가 전성기를 맞았다.특히 1988년 올림픽 개최와 규제 완화로 산업형 성매매와 음성적 매매춘이 등장해 홍등가는 더욱 번성했다.집창촌의 확대는 포주의 학대와 대규모 화재 등 각종 문제를 초래했다.집창촌은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전주 집창촌인 '선미촌'의 밤 풍경◇ 주요 집창촌의 유래 서울 청량리 588과 파주 용주골, 부산 완월동, 대구 자갈마당, 춘천 난초촌, 전주 선미촌 등 전국 곳곳의 집창촌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대부분이 역이나 터미널 근처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으로 짐작하지만 지역마다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서울의 대표적인 집창촌인 '청량리 588'.이곳은 6·25전쟁 때 경원선 종점이었다. 당시에 강원도 철원·화천·양구 등 동부전선 격전지로 떠나는 군인들을 상대로 성매매가 이뤄졌다. 명칭은 전농동 588번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588번 시내버스가 이곳을 지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부산 서구 초장동과 충무동에 걸쳐 있는 완월동은 일제가 만든 최초의 계획된 집창촌이다.일본강점기 이후에는 미군정에 의해 형식적으로 공창제가 폐지됐으나 항구를 낀 부산은 물자나 사람이 모여들었고 완월동에서는 성매매가 번창했다.윤락행위 방지법이 시행됐지만 완월동은 사라지지 않았고 19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여성인권단체 '살림'의 기록을 보면 1979년 당시 완월동에는 124개의 성매매 업소가 있었다.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생기면서 쇠락의 길을 걷던 완월동은 암암리에 영업을 해왔고 현재는 영업규모가 크게 줄어 50여개 업소에 250여명의 여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6·25전쟁 때 미군기지가 들어서며 생겨난 경기도 파주시 용주골은 한때 2만여㎡에 성매매업소가 200여 곳, 종사자가 500∼600명에 달했다.2000년대 들어 미군기지가 이전한 데다 2004년 말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자 업소와 종사자 수가 크게 줄었다. 지금은 80여 업소가 180여 명의 종사자를 두고 영업하고 있다.인천시 남구 숭의동 360번지 일대에 형성된 '옐로하우스'는 인천의 집창촌이다.인천 개항 후 1902년 현재 인천 중구 신흥동 신흥시장 일대에 들어선 일본 유곽으로 시작했다. 1961년 군사정부의 사회정화 방침에 따라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옐로하우스는 2008년 도시 환경정비 구역으로 지정돼 철거사업이 추진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재 경기 침체로 재개발 사업은 진척이 없는 상태다.1950년대 당시 전주역(현 전주시청) 주변에 들어선 전북 전주시 선미촌은 한때 400명이 넘는 여성이 있었지만 이곳 역시 성매매방지특별법 발효 이후 종사자가 100명 밑으로 급감했다.강원 춘천시 난초촌은 해방 후 미군기지가 들어선 이후 조성됐다. 2006년 재개발로 문을 닫은 장미촌과 함께 성업을 이뤘다.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과 2005년 10월 경춘선 무궁화 열차의 종착역이던 옛 춘천역이 폐쇄된 데 이어 미군기지까지 문을 닫자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들 집창촌의 시작은 달랐으나 공통으로 '성매매방지특별법'이란 직격탄을 맞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 집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굴곡진 인생 스토리…문학작품과 영화의 배경 집창촌은 각종 문학작품과 영화의 배경으로 주목받았다. 1973년 소설가 조선작이 발표한 '영자의 전성시대'는 성매매 여상을 다뤘다. 부잣집에서 식모로 일하던 시골 아가씨 영자는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행당한 뒤 집을 뛰쳐나와 버스 안내양으로 일하다 한쪽 팔을 잃고 성매매여성으로 전락한다.이 소설은 2년 뒤 영화로도 제작돼 히트했다.소설은 당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상경했던 젊은 여성들의 잔혹한 삶을 그려 충격을 던졌다.임권택 감독은 '티켓(1986)'과 '노는 계집 창(1997)'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필름에 담았다.김기덕 감독도 영화 '나쁜 남자(2001)'에서 성매매를 다뤘다.집창촌 폭력배인 남자 주인공은 우연히 만난 여대생에게 모욕을 당하자 복수심으로 그녀를 성매매여성으로 타락시킨다.그는 한 면은 거울, 다른 한 면은 유리인 벽을 통해 그녀를 지켜본다. 청량리 588은 소설가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과 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 홍성철 '유곽의 역사'
-
힘없고 보호자 없는 홀몸 노인들, 강력범죄에 무방비 노출충북 노인 겨냥 5대 범죄 3년간 4천852건…경찰, 집중 순찰활동 돌입 (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A(85)씨는 1994년부터 충북 영동의 한 주택 집에 세들어 혼자 살았다. 가족은 있었다. 그러나 다들 개인 사정으로 바빠 안부만 묻고 사는 정도였다.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다행히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6·25 참전용사였던 남편이 보훈대상자여서 정부로부터 매달 보조금을 받았다. 그런 A씨가 지난 14일 오후 3시께 자신을 돌봐주던 요양보호사에 의해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다. 부검결과 사망 원인은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였다.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3일째 되던 날 범인을 붙잡았다.범인은 8년간 그녀와 이웃으로 지낸 청년 B(23)씨였다. 범행 목적은 A씨가 가진 금품이었다. B씨는 강도살인 혐의로 지난 18일 구속됐다. 평소 가까운 거리에서 A씨를 알고 있었고 그녀가 혼자 살았다는 점을 노린 것 같다고 경찰은 전했다.홀로 사는 노인들이 흉포화하는 강력범죄에 노출돼 있다. 자신이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고령화 추세에 따라 홀로 사는 노인들이 늘면서 이들을 노린 범죄가 증가하는 것이 사실이다.충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5대 범죄가 도내에서 모두 4천852건 발생했다.2013년 1천534건, 2014년 1천603건, 2015년 1천715건 등 증가 추세에 있다.자신을 지킬 힘이나 보호자가 없다 보니 주로 절도나 폭력과 같은 범죄의 주 표적이 되곤 한다. 지난해 8월 혼자 사는 노인 집을 턴 혐의(상습절도)로 박모(43·여)씨가 경찰에 붙잡혔다.박씨는 혼자 사는 노인 집만 골라 들어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니 커피 한 잔 타 달라'고 했다.그러고는 노인들이 경계를 푼 틈을 타 절도 짓을 벌였다. 벼룩의 간을 내먹은 것이었다.박씨는 지난해 6월부터 2개월간 청주와 대전 등지의 농가에서 홀로 사는 노인을 대상으로 9번이나 몹쓸 짓을 벌여 410만원 상당의 금품을 털었다.조사결과 박씨는 이전에도 노인 혼자 사는 집에서 절도 행각을 벌이다가 붙잡혀 3년6개월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꾼'이었다. 충북의 홀로 사는 노인은 2014년 말 현재 5만297명이다. 1년 전인 2013년보다 10.6% 증가했다. 홀로 사는 노인이 범죄의 목표가 되자 충북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9일부터 '노인 대상 범죄 예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노인이 밀집한 지역이나 시설을 중심으로 집중 순찰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역 경찰이 112순찰 중에 홀몸노인 가정을 직접 방문해 안부를 묻는 '문안 순찰' 활동도 펼친다. 경찰은 노인 안전 협의회 운영으로 범죄 취약지역의 환경을 개선하는 등 노인 안전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로 했다.충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5대 범죄뿐만 아니라 사기와 전화금융사기, 교통사고 등 노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건·사고 예방을 위해 치안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개벽' 폐간후 90년…시인 이상화 가족 독립운동에 관심 커져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개벽 발표 후 잡지 폐간형수 권기옥, 비행기타고 조선총독부에 폭탄투하 꿈꿨다 (대구=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시인 초상 시인 이상화(1901∼1943)가 1926년 국내 최초의 종합잡지 '개벽(開闢)' 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저항시다.일제는 이 시가 실렸다는 이유로 '개벽'을 발매 금지 처분했다. 그해 8월 1일 개벽은 72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된다.3·1 독립운동을 주도한 천도교 이념을 기반으로 발간된 '개벽' 폐간 90년을 맞아 시인 이상화와 그의 집안 사람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저항 민족시인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이상화는 어린 시절부터 일제에 저항하는 면모를 보였다.대구 수성못에 세워진 이상화 시비1901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1918년 서울 중앙학교 3년을 수료한 뒤 이듬해 대구 3·1 운동 거사 모임에 참석했다가 사전에 발각되자 다시 서울로 몸을 피한다.1922년 문예지 '백조(白潮)' 동인으로 참여해 '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등 시를 발표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던 그는 이듬해 9월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모습에 분노해 1924년 귀국한다.그해 서울 가회동에 머물며 시 '나의 침실로'를 발표하고 1925년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발기인으로 참여한 뒤 이듬해(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개벽'에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저항 민족시인 반열에 오른다.그 후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1928년 6월 신간회 출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우국지사들이 달성군의 한 부호를 권총으로 위협한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는다.1936년에는 독립운동가인 형 이상정 장군을 만나러 중국을 다녀온 뒤 일본경찰에 붙잡혀 심한 고초를 당한다.1939년에는 교남학교 조선어, 영어, 작문교사로 지내며 불온한 내용의 교가를 지어 부르게 했다는 이유로 가택 수색을 당해 자신의 작품 원고는 물론 시인 이장희의 유고까지 압수되는 고통을 겪었다.1941년 시 '서러운 해조'를 문장 폐간호에 발표한 그는 결국 1943년 4월 25일 대구 계산동에서 숨을 거둔다.1948년 그를 기리는 문인들이 해방 후 최초로 대구 달성공원에 그의 시비를 세웠고 1985년 죽순문학회가 '상화 시인상'을 제정한 이래 매년 수상자가 나오고 있다.이상화 시인 고택2008년 8월 광복 63년을 맞아 대구시민 정성으로 문을 연 그의 고택은 해마다 20만명이 찾는 명소가 돼 있다.그의 형 이상정(1897∼1947)은 계성·신명학교 교사로 일하다 1923년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다.상해·남경 등 중국 각지에서 항일투쟁하던 그는 1939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내고 신한민주혁명당을 조직하는 한편 화중군 사령부 고급막료로 남경전투, 한구전투에 참전해 일제와 싸웠다.해방 후 상해에 머물며 교포 보호에 힘쓰던 그는 1947년 귀국 후 뇌일혈로 별세했다.정부는 1977년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이상정의 부인이자 시인 이상화의 형수인 권기옥(1901~1988)은 한국과 중국 양국의 첫 여성 비행사로 유명한 인물이다.1901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숭의여학교에서 송죽결사대에 가입,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6개월 옥고를 치렀다. 그 뒤 임시정부공채 판매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하던 중 일제의 추격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권기옥은 중국에서 미국인 비행사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보고 "비행기를 타고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지겠다"고 결심한다. 1924년 중국 윈난성 윈난항공학교에 입학한 뒤 이듬해 2월 여성 비행사 자격을 얻었지만 항공 전투단을 구성할 여력이 없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신에 중국 공군에 들어가 일제와 싸웠다.해방 후 한국 공군 창설에 기여했고 6·25 당시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최초로 여성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이처럼 항일에 앞장선 이상화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최근 여러 예술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소설가 정혜주는 최근 권기옥 평전 '날개옷을 찾아서'(하늘자연)를 출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권기옥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섬세한 필치로 다룬 이 작품은 식민지 여성의 수동성을 뛰어넘어 진취적인 여성상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대구시립극단도 최근 권기옥·이상정 부부와 시인 이상화 일대기를 연극과 뮤지컬로 동시에 제작해 눈길을 끈다.대구 두류공원에 세워진 이상화 동상 지난 4∼6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른 연극 '비상'은 항일 독립운동가 권기옥을, 지난 11∼13일 무대에 오른 뮤지컬 '비 갠 하늘'은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을 중심으로 이상화 집안 사람들과 항일운동가들의 애환을 그려냈다.특히 뮤지컬 작품에서 이상화 역을 맡은 배우가 '빼앗긴 들의 봄을 찾아서'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이상화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상화 집안 사람들은 엄혹한 일제시대에 불같은 저항정신으로 나라 잃은 백성의 책무가 무엇이며 지조와 애국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 준 참된 애국지사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연천 임진강나룻배마을 '평화 생태마을'로 탈바꿈나룻배학교·관광농원·글램핑장 등 조성…4일 문열어 (연천=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38선 이북에 위치해 6·25전쟁 때 치열한 격전이 치러진 경기도 연천군 북삼리의 임진강나룻배마을이 평화생태마을로 조성돼 4일부터 문을 연다.군 관계자는 3일 "임진강나룻배마을이 2012년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평화생태마을 조성사업으로 선정된 이후 이곳에 최근까지 25억원을 들여 낙후한 접경지역 소득관광 자원화를 위한 시설물들을 조성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기존 폐교를 증·개축해 나룻배 체험학교를 조성하고 지역주민들이 생산한 참기름과 들기름, 고춧가루 등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가공판매장도 만들었다.또 관광객이 농작물을 심거나 수확할 수 있는 관광농원(3천643㎡)과 야영을 즐길 수 있는 글램핑장(9천963㎡)도 조성했다.나룻배체험학교에는 어린이들이 트랙터에 연결된 보트를 타고 임진강을 건너거나 겨울철 논두렁을 달릴 수 있는 대형 놀이기구도 준비했다. 가족단위 관광객과 어린이들은 봄에 모내기 체험과 딸기 따기, 감자·고구마심기, 여름에는 메기잡기, 옥수수·수박·토마토 수확, 가을에는 벼 베기, 메뚜기 잡기, 겨울에는 눈썰매·얼음썰매 타기, 팽이치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이밖에 지역 특산품인 율무를 이용한 율무강정·율무를 넣은 김치·두부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으며 태풍전망대와 열쇠전망대를 둘러보는 안보견학도 할 수 있다.평화생태마을은 주민 의견과 지역 전문가의 맞춤형 컨설팅, 군의 행정 지원과 관리 등 주민과 전문가, 군의 공동참여 방식으로 조성됐다.북삼리 주민으로 구성된 연천나룻배마을영농조합법인(대표 전해원)이 직접 운영해 마을 소득증대와 주민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군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도 접경지역의 주민주도형 소득창출 사업들을 더 많이 발굴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문화유산> 선교장, 역사 숨 쉬는 한국 최고 전통가옥시인·묵객이 드나들던 풍류문화의 산실 (강릉=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강릉시 운정동에 있는 선교장은 300여 년 동안 그 원형이 잘 보전된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이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인 무경 이내번(1692∼1781)은 어머니 안동 권씨와 함께 충주에서 강릉으로 이주했다. /이진욱 기자 집터를 찾던 안동 권씨와 이내번 모자는 족제비 무리를 쫓아가다 명당 터를 발견했고, 1703년 처음 안채인 주옥을 시작으로 활래정,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열화당, 중사랑채 등 무려 10대에 걸쳐 증축을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다. 선교장은 경포호수가 집 앞까지 이어져 배로 다리를 놓아 건넜다고 해 ‘배다리마을’ 또는 ‘배다리집’으로도 불린다. 이름을 풀면 사람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다녔다 하여 선교(船橋)이고, 식량과 물품을 직접 생산할 수 있다 하여 장(莊)이다. /이진욱 기자 지금 경포호의 둘레는 4㎞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12㎞에 달할 정도로 드넓은 호수였다고 한다. 심명숙 문화해설가는 “선교장은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백미”라며 “선교장 바로 옆에 경포호수와 경포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수많은 시인, 묵객이 선교장을 찾았다”고 말한다.조선 후기 전형적인 사대부 저택인 선교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활래정(活來亭)과 사방연지(四方蓮池)가 반긴다. 연못을 끼고 오른쪽으로 걸으면 월하문(月下門)에 이른다. 너비가 2m 남짓한 작은 문 기둥에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승고월하문’(僧鼓月下門 :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이란 시가 걸려 있다. 심명숙 문화해설가는 “이 주련(기둥에 써 붙이는 글씨)은 하루 묵고 갈 거처를 찾는 나그네는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리고 쉬었다 가라는 뜻”이라며 “문 크기도 규모에 비해 작은 편에 속하는데 이는 나그네가 저택을 보고 발길을 돌릴까봐 일부러 대문을 작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진욱 기자 집주인의 너그러운 성품을 생각하며 월하문을 통과하면 시인, 묵객이 남긴 여러 글씨와 함께 활래정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처마 곳곳에 다양한 ‘활래정’ 편액이 6개나 걸려 있다. 1816년 지어진 활래정은 정자 건물의 반이 연못에 뿌리박은 돌기둥 위에 세워져 있고, 물 위에 떠있는 누마루와 온돌방, 다실로 구성돼 있다. 연못 내 작은 섬과 마당을 이어주는 목교(木橋)는 6·25전쟁 직후 망가져 철거된 후 지난 2011년 복원됐다. 벽이 없는 활래정은 문을 모두 열면 정자에 앉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수려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활래’는 서쪽 태장봉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나간다는 의미이다. 이곳에서는 시 한 수가 저절로 나올듯 바라보는 풍광이 빼어나다. <선교장의 특이한 문>/이진욱 기자 네모난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을 믿었던 당시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한국 민가정원 정자의 극치를 이루는 활래정을 지나면 소나무 숲 아래 고색창연한 건물과 담, 대문들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로 안내하는 듯하다. 선교장의 본채 건물들은 담장과 대문 1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물 전면의 행랑채에는 문이 2개 있다. 신선이 기거하는 그윽한 집이라는 ‘선교유거’(仙嶠幽居)란 현판이 걸려 있는 솟을대문은 남자만 드나드는 곳이다. 여자와 하인이 드나들 수 있는 평대문에는 내외벽이 있어 안채와 밖이 구분된다. 솟을대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평대문 내외벽과 안채(主屋), 동별당(東別堂)이 있다. 선교장 최초로 지어진 안채는 종부(안방마님) 거처이며, 집의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소박한 건물이다. 안채는 전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ㄷ자 형태로 대청 양쪽에 온돌방과 고방이 있다.세간을 보관하던 고방은 여름철이면 평상을 놓고, 그 위에서 시원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여자들의 은밀한 공간이기도 하다. 안채의 오른편에 동별당, 왼편에는 서별당(西別堂)이 이어져 있다.동별당은 집안의 여자들과 여자 손님이 거처하던 곳으로 방과 마루의 모든 벽체가 문으로 되어 있어서 활달하고 개방적인 선교장 가족의 성품과 면모를 보여준다. 동별당에는 ‘오은고택’(鰲隱古宅) 현판이 걸려 있는데 오은은 이내번의 손자 이후(李后)의 호이다. 동북쪽 산 중턱에는 선조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남자들의 서재로 사용되었던 서별당은 안채와 담으로 구분되어 있고, 중간에 작은 문 하나가 나 있다. 담장은 고개를 내밀어 소통하기에 충분하도록 야트막하다. 서별당 아래의 연지당(蓮池棠)은 집안의 홀로된 여인들이 안채의 살림을 도와가며 지내던 곳이다. 앞마당은 ‘받재마당’이라 하여 안채로 반입되는 재물을 확인하는 장소였다. 현재 서별당과 연지당은 한옥스테이 장소로 사용된다.솟을대문을 지나 왼편으로 들어서면 선교장의 중심인 열화당(悅話堂)을 만난다. 팔작지붕에 홑처마 구조인 열화당은 바깥주인이 기거하는 사랑채로, ‘일가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을 담고 있다.지난 1815년 완공된 열화당의 특징은 툇마루 앞에 설치된 동판 구조물인 차양으로, 한말에 선교장에 머물렀던 러시아 공사관 사람들이 보답으로 지어준 것이다. <선교장 열화당>/이진욱 기자 심명숙 문화해설가는 “학식이 높고 귀한 손님들만 이 사랑채에 머물게 했다”면서 “지난 7월 열화당 건립 200주년을 기념해 대관령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 ‘강원’이 이곳에서 열렸다”고 설명한다.열화당 뒤편 초정(草亭)은 인상적이다. 열화당 후원의 정자로, 시문을 짓고 책을 읽던 곳이다. 또한 초가에 살고 있는 소작인들의 애환과 삶을 공감하고 검소와 베풂의 덕을 수련하도록 소박하게 지었다고 한다. 원추리 군락지가 조성돼 있어 ‘녹야원’이라고도 불리는데, 원추리의 야생력과 번식력이 선교장가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선교장 안채 부엌>/이진욱 기자 열화당 부속건물인 중사랑은 풍류객들과 교분을 나누던 곳이다. 23칸의 행랑채는 관동팔경과 금강산을 유람하는 시인, 묵객과 집안일을 하던 집사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이밖에도 안팎으로 볼거리가 많다.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교장에는 곳간채, 홍예헌, 자매재, 초가, 선교장 박물관 등이 있다. 1908년 곡식창고인 곳간채를 개조해 신학문을 가르치던 동진학교(東進學校)를 설립했으나 일제의 탄압에 의해 폐교됐다.활래정의 단골손님이었던 몽양 여운형이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현재 선교장 생활유물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선교장 매표소 인근의 선교장 박물관에는 300년 집안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도 만년에 이곳에 들러 ‘홍엽산거’(紅葉山居) 라는 작품을 남겼는데, 편액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다.선교장이 건축되기 전부터 자생한 노송 수백 그루가 우거져 있는 선교장 뒷동산 솔숲 길을 걸으면 솔향기와 전통가옥의 멋을 더욱 느낄 수 있다.
-
<테마 여행> 특별한 유스호스텔 캠프 그리브스(파주=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이라고 흔히 표현하는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는 민간인출입통제선 지역으로 경기도와 강원도에 걸쳐 있다. DMZ는 1953년 7월 유엔과 북한, 중국이 서명한 정전협정으로 규정된, 남북한의 적대적 행위 억지 공간이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 방향으로 2㎞, 동서 248㎞를 가로질러 만들어 놓은 비전투지역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북한 모두 군대를 주둔시켜 총을 겨누는 긴장의 공간이다. 이진욱 기자DMZ는 한편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로 주목받고 있다. DMZ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여행에 제한이 많지만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와 분단의 아픔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관광지 중 하나다.경기도는 분단의 상징이자 생태계의 보고인 DMZ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캠프 그리브스(Camp Greaves)는 6·25전쟁 정전협정 후 지난 1953년 7월 30일부터 50여 년 간 미군 2사단이 주둔해오다 2007년 우리나라 정부에 반환된 시설이다. 이진욱 기자 캠프 그리브스는 반환된 이후 역사·문화적 가치에도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경기도와 파주시가 군 당국을 끈질기게 설득해 민간인을 위한 평화안보 체험시설로 증·개축했다. 지난 2013년 7월 개관한 ‘캠프 그리브스 DMZ 체험관’은 지난 10월 말까지 1만6천246명이 이용했다. ◇ DMZ 숨결 느끼며 하룻밤 보내는 공간 서울에서 쭉 뻗은 자유로를 40분 남짓 달리면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임진각 평화누리에 닿을 수 있고, 간단한 절차를 밟으면 민통선 내의 도라산역·도라전망대·제3땅굴 등 평화안보 관광지도 둘러볼 수 있다. 긴장감이 감도는 판문점, 길게 뻗은 철조망, 그 안에 묻힌 1만여 개의 지뢰 등 한국전쟁 이후 남북 간 충돌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비무장지대는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다. 민간인이 이곳을 방문하려면 사전신청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임진강역이나 통일대교 검문소에서 신원조회 절차를 거쳐야 한다. 캠프 그리브스 유스호스텔은 민통선 안에 자리 잡은 유일한 안보체험 숙박시설이다. 이진욱 기자이진욱 기자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자유로를 따라 달려 ‘통일의 관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통일대교 앞에서 속도를 줄였다. 임진강변의 황금 들녘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지만 차량을 통제하기 위해 겹겹이 쳐진 바리케이드는 분단된 현실을 차갑게 일깨웠다. 초소의 군인들이 얼굴과 신분증을 하나하나 대조한다.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와 화물차량이 민간인출입통제선 북쪽으로 들어가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통선을 넘어 휴전선 남방한계선에 다가간다는 생각에 약간의 긴장감도 감돈다. 신분 확인을 마친 뒤 통일촌을 지나 3분 정도를 더 달려 캠프 그리브스에 도착했다. 이진욱 기자 미군 장교 숙소 한 동을 증·개축한 ‘캠프 그리브스 DMZ 체험관’은 1층에 사무실, 2·3층에 숙소, 4층은 강당과 식당으로 꾸며졌다. 숙소는 옛 군대 내무반을 재현해 놓았고 식사 때는 병영식당처럼 식판에 배식된다. 캠프 그리브스 안보체험에는 당일과 1박 2일, 2박 3일 프로그램이 있다. ‘캠프 그리브스 DMZ 체험관’ 홈페이지(www.dmzcamp131.or.kr)를 통해 예약할 수 있으며 30명 이상 단체만 이용할 수 있다. 캠프 그리브스 당일 프로그램에 참여한 초등학생 40여 명은 관광버스로 캠프 그리브스에 도착, 오전에 제3땅굴, 도라전망대, 도라산역, 도라산 평화공원을 차례로 견학했다. 이때 워크북을 활용한 ‘DMZ 1129’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며 분단의 아픔을 가진 DMZ의 역사와 지리 등을 배웠다. 오후에는 캠프 놀이마당과 평화기원 리본 달기 등이 진행됐다. ‘1129’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3일까지의 기나긴 전쟁 기간을 의미한다.이외에도 불후의 명작(전쟁 영화의 다음 장면을 상상하여 스톱모션 무비 만들기), 나라사랑 콘서트(1사단 장병들의 안보교육과 뮤직 콘서트), 통일 기원 미니 장승 솟대 만들기, 도전 DMZ 골든벨, DMZ 자전거 투어, DMZ 철책선 걷기, DMZ 초콜릿 만들기, DMZ 티셔츠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반세기 넘게 주한 미군 최전선 기지였던 캠프 그리브스에는 DMZ 체험관 이외에 미군이 쓰던 생활관과 체육관, 탄약고, 장교 부사관 숙소, 정비소 등 다양한 군사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비닐하우스 모양으로 지붕을 함석으로 만든 막사인 ‘콘센트 막사’는 거미줄이 무성한 채 텅텅 비어 있었고, 다른 건물들도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황량한 모습이었다. 체육관과 탄약고는 DMZ국제다큐영화제 행사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기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캠프 그리브스 DMZ 체험관’은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인 DMZ를 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