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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본토 미국에 '한국미' 새긴 그래피티 라이터 심찬양씨'한복 입힌 흑인 여성' 등 뉴욕·LA 벽면에 그려 '호평' "한국에 그래피티 매력 알리고, 저변 확대가 목표"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그래피티(Graffiti) 본토 미국에서 한 한국 청년이 그린 '한복 입은 흑인 여성과 한글' 그림에 미국인들이 환호했다.그래피티란 스프레이 페인트로 대형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 행위로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힙합 문화가 일찌감치 발달한 미국에서는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아트'다. 미국 벽에 새긴 색동저고리그래피티 라이터 심찬양씨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벽면에 그린 색동저고리 입은 흑인아이. 그래피티 라이터(Graffiti writer) 심찬양(28)씨는 최근 미국에서 한국 그래피티의 실력을 한껏 발휘했다. 심씨의 '한복 입은 흑인 여성, 꽃과 한글' 그림을 본 미국인들은 SNS에 "진정한 미다", "정말 아름답다", "가치 있는 그림이다", "멋있다"를 연신 쏟아냈다.샌프란시스코의 한 지역 신문이 심씨 그림을 소개하기도 했다. 심씨는 "미국에서 시작돼 한국에 전파된 그래피티를 한국인들이 얼마나 멋있고 재미있게 발전시켰는지 보여주고 싶어 무비자 체류 허용 기간(90일 전) 중 89일 동안 미국 4개 도시를 돌며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그는 "한국에 그래피티가 얼마나 매력적인 문화인지를 알리고,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다음은 심씨와 일문일답.-- 그래피티란 무엇인가.▲ 그래피티란 본래 낙서라는 뜻이다. 벽화나 회화와 비슷하고 스트릿 아트(Street art)의 한 분야로 불리기도 하지만 힙합(Hiphop) 문화가 발전한 미술 형태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뉴욕에 그린 심찬양씨의 그래피티그래피티 라이터 심찬양씨가 미국 뉴욕에서 힙합 스타들의 모습을 그린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그래피티는 미국 흑인 갱들이 자기 구획의 영역표시나, 상대 조직의 구획에서 자신의 대담함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이나 조직 이름을 남기던 것(태깅, Tagging)이 시초다. 이후 더 많은 지역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 기차 등에 몰래 이름을 남기는 트레인 버밍(Train Bombing) 등으로 발전했다.큰 그림을 빨리 그릴 수 있는 스프레이 페인트의 이점 덕에 지금은 대형 벽면에 그리는 회화 수준에까지 이른 것이 그래피티다.-- 미국 한복판에 한복 입힌 흑인 여성이나 꽃과 한글을 그린 것이 어떤 의미인가. ▲ LA의 유명한 더 컨테이너 야드(The Container Yard; 스트릿 아트와 그래피티의 대규모 미술관)에서 그림 그릴 기회를 얻고 흑인 여성에게 한복을 입히면 더욱 특별하고 예쁘게 잘 어울리겠다는 영감을 받았다. 거기에다 한국의 꽃과 한글을 미국에 남기고 싶어 나무에 핀 꽃, 도종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의 한 구절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글귀도 그려 넣었다. 그림을 본 미국인들은 SNS에 많은 찬사를 보냈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처음에는 화려한 색상의 한복을 입힌 흑인 여성을 그림에 담았고, 두 번째 컨테이너 야드에서 초청을 받아 그린 그림에는 단아한 한복 저고리를 입은 흑인 여성을 그렸다. 거기에는 이전 글귀와 뜻이 이어지도록 '(그)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한글로 썼다.그림이 좋았던지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그래피티 이벤트에 초대돼 대형 벽면에 색동저고리 입은 흑인 소녀와 한글을 또 그렸다.한복 입은 흑인 여성 그림은 LA에 두 곳, 샌프란시스코에 한 곳 등 모두 세 곳에 남겼다.한복 입힌 흑인 여 그림에, 한국 문화에 즐거워하는 미국인들을 보며 한국인의 자긍심과 한복의 아름다움 새삼 느꼈다.벽면에 새겨진 한글은 더욱 빛나고 아름다웠다.-- 미국 여행 계기는. 한복입은 흑인 여성과 한글그래피티 라이터 심찬양씨가 미국의 한 건물 벽면에 그린 그림. ▲ 미국에서는 비자 없이 90일 체류가 가능한데 89일 동안 그림을 그리며 여행했다.미국의 그래피티 조건과 환경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그래피티를 마음껏 그리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위해서 미국행을 계획했다. 뉴욕 브롱스(Bronx)의 MTN(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프레이 페인트 회사) 스토어 겸 타투 샵인 터프 시티(Tuff City)라는 곳 뒤뜰에는 여러 그래피티 라이터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연습하고 교류하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힙합 스타들로 뉴요커들이 좋아하는 제이지(Jay-z), 내가 좋아하는 티아이(T.I), 브롱스 사람들의 영웅인 빅펀(Big Pun) 등 세 흑인 래퍼의 얼굴을 그렸다.반응이 좋아 캘리포니아의 모데스토(Modesto), 샌프란시스코, LA 등지에 초대받아 그림을 그리게 됐다.-- 한국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 올해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내년에는 다시 미국을 여행할 계획이다.그래피티가 얼마나 매력적인 문화인지를 한국에서도 많이 알리고 싶다.한국은 그래피티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정말 실력이 좋은 라이터들만 살아남았다.한국에서 프로로 활동하는 그래피티는 20여 명 정도로 실력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래피티 재료가 되는 스프레이 페인트 가격이 너무 비싸고 그림 그릴 장소도 마땅하지 않다. 이런 환경을 개선해 한국 그래피티 라이터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한국의 그래피티 문화 저변을 확대하려는 것이 저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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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이주민 롤모델 언더우드 서거 100년새문안교회의 첫 예배당이자 언더우드 선교사 사택으로 쓰인 정동 사랑채. [새문안교회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부활절이던 1885년 4월 5일, 일본을 떠나 제물포항에 들어온 한 상선에서 벽안의 두 청년이 내렸다. 미국의 북장로회가 파견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元杜尤)와 미국 감리회 소속의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였다. 당시 각각 27세와 26세로 연부역강하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를 열고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해 선교의 씨앗을 심는 한편 근대적 교육기관의 효시를 세워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두 사람이 우리나라를 찾은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는 아니었다. 프랑스의 가톨릭 신부 피에르 모방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보다 4년 앞선 1832년, 네덜란드 출신의 개신교 선교사 카를 귀츨라프가 중국 연안에서 풍랑을 만나 충남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에 정박했다가 주민들에게 한문 성경을 나눠줬다. 1866년에는 영국 선교사 로버트 토머스가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따라 평양에 들어왔다가 주민과 갈등을 빚어 선원들과 함께 숨졌다. 1884년에는 평신도 의료선교사인 호러스 알렌이 주한 미국공사관 소속으로 파견돼 갑신정변 때 민영익을 치료한 것을 계기로 왕실 의사가 됐다.그러나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목적을 띠고 입국한 뒤 신도에게 세례를 주고 교회를 세운 개신교 목회자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처음이었다. 출발은 언더우드가 빨랐다. 미혼인 언더우드는 방한 이틀 뒤 서울에 입성했고, 임신 중인 아내를 데리고 온 아펜젤러는 서울의 치안이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5월 3일 다시 제물포로 입항했다. 언더우드는 제중원에서 알렌을 돕다가 정동의 가옥 한 채를 빌려 고아들을 가르쳤다. 이듬해 5월 11일 언더우드학당(구세학당)을 개교했고 1905년 경신학교로 개명했다. 1915년에는 조선기독대를 설립했는데, 1917년 연희전문학교로 인가받은 뒤 해방 후 연희대를 거쳐 1957년 세브란스의과대와 합쳐져 오늘의 연세대가 됐다. 아펜젤러는 1885년 8월 3일 2명의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교육사업에 나섰다. 고종은 이듬해 6월 8일 '인재를 기른다'는 뜻의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하사하며 격려했다. 1885년 5월 3일 아펜젤러와 함께 제물포항에 발을 디딘 메리 스크랜턴은 이듬해 최초의 여성 근대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세웠고,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은 빈민 의료 봉사와 선교에 나섰다.언더우드(원두우) 선교사의 손자인 원일한 교수에게 1973년 9월 김종필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대신해 국민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교회를 세운 것도 언더우드가 먼저였다. 1886년 7월 11일 자신의 두 번째 조선어 선생인 노춘경에게 첫 세례를 준 데 이어 1887년 9월 27일 정동의 자기 집 사랑방에서 14명의 교인과 함께 첫 예배를 올렸다. 한국장로회와 새문안교회는 이날을 뿌리로 삼고 있다. 언더우드보다 앞선 1886년 4월 25일 부활절에 주한 일본대사관 직원에게 첫 세례를 준 아펜젤러도 정동의 조그만 집 한 채를 사들여 '벧엘예배당'으로 꾸민 뒤 1887년 10월 9일 첫 예배를 보았다. 한국감리회의 모교회인 정동제일교회의 시작이다. 오늘날 장로교와 감리교는 한국 개신교의 80%를 넘는 교세를 자랑한다. 언더우드는 한국어소사전과 찬송가 등을 펴냈고 아펜젤러, 윌리엄 스크랜턴과 함께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해 한글 성경을 보급했다. 이 모임에서 '여호와'를 '상제'로 번역할지 '하나님'으로 옮길지, 'eye of needle'을 '바늘귀'로 할지 '바늘눈'으로 쓸지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빵'은 당시 조선에 없었던 탓에 결국 '떡'으로 표현하기로 결정됐다. 기독교청년회(YMCA) 설립에도 앞장선 1903년 언더우드는 초대 회장을 맡아 청년 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한편 야구·농구·체조 등의 서양 근대 스포츠 보급에 나섰다. 1889년에는 명성황후의 시의로 일하던 제중원의 여의사 릴리어스 호턴과 결혼해 외아들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한국명 원한경)를 낳았다. 언더우드는 건강이 악화해 1916년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0월 12일 그곳에서 소천했다. 뉴저지 교회묘지에 묻혔다가 유족의 뜻에 따라 1999년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로 이장했다. 아펜젤러는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번역자회의에 참석하려고 배를 탔다가 군산 앞바다에서 마주 오는 배와 충돌해 익사했다.언더우드 가문의 3대, 4대, 5대 후손들이 2012년 6월 서울 신촌의 연세대를 방문해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연세대 제공]아펜젤러의 아들딸도 일제의 탄압 속에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발전시키는 데 헌신해 귀감이 됐지만 4대에 걸친 언더우드 일가의 한국 사랑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원한경은 3·1운동 때 제암리교회 학살사건 등을 세계 교회와 언론에 알려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후 아들 원일한과 투옥됐다가 1942년 강제 추방됐다. 원한경은 광복 후 미국 육군성 통역요원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으나 부인 와그너가 좌익청년들에게 살해되는 아픔을 겪었다. 6·25가 터지자 민간 고문단으로 활약하다가 1951년 2월 부산에서 숨졌다. 장남 원일한은 연희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미국 해군에 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고 유엔군 정전협상 수석통역장교를 맡았다. 3남 원재한과 4남 원득한도 각각 미군 군목과 통역요원으로 참전했다. 언더우드의 증손자 원한광은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4년 11월 한국을 떠났고, 원한석은 한국에서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며 '퍼스트 무버' 등의 저서를 펴냈다.19세기 말 개화기에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서양인 가운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처럼 불꽃 같은 삶을 살며 헌신한 인물은 드물다. 더욱이 언더우드 가문처럼 100여 년간 누대를 이어오며 기독교정신에 입각해 봉사를 실천한 집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주민 가족의 롤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는 12일은 언더우드가 세상을 떠난 지 꼬박 100년이 되는 날이다.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는 개신교단들은 힘을 합쳐 전도에 나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주의) 운동을 본받고, 학교를 사리사욕에 이용한다고 손가락질받는 몇몇 사학 설립자 집안들은 신교육의 요람을 만든 선교사들에게 육영사업의 참뜻을 배우며, 외국 국적을 병역 기피와 탈세에 이용하는 일부 부유층·권력층 인사들은 언더우드 일가를 보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되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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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한복축제…광화문광장에서 1천여명 강강술래종로구, '한복축제-한복자락 날리는 날' 행사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서울 광화문광장과 인사동, 북촌 등 종로구 일대에서 한복 축제가 열린다. 도심 한복판에서 1천여명이 강강술래를 하는 장관도 펼쳐진다.서울 종로구는 23∼25일 한복과 전통문화를 한 자리에서 즐기는 '한복축제-한복자락 날리는 날'을 개최한다.이번 축제 하이라이트는 23일과 24일 저녁 광화문광장 강강술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김종심, 박종숙과 진도군립예술단, 외국어학당 학생 등 시민 1천여명이 신명나게 원을 그리며 뛴다. 23일에는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과 선종효황후 가례 퍼레이드 및 재현이 열린다.100여년 전 가례를 했던 안동별궁 옛 터인 풍문여고에서부터 광화문 북측광장까지 퍼레이드를 한다. 풍문여고 재학생과 졸업생 300여명이 참가한다. 이어 오후 5시에는 개막식 후 광화문 주무대에서 가례 재현을 한다.마지막 날인 25일에는 북촌과 인사동에서 궁중의상 퍼레이드와 한복 패션쇼가 펼쳐진다.한복 4대 명인 윤성호 디자이너와 모델 등 100여명이 북촌 정독도서관에서 인사동까지 1천150m를 대취타에 맞춰 행진한다.백옥수 한복 작품을 선보이는 서울 365 패션쇼와 시민이 참가하는 한복 뽐내기 대회, 전통혼례 체험도 있다.한복체험 부스나 한복과 소품 관련 장터, 한식 장터 등도 마련됐다.23∼24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이수자인 권원태 명인의 줄타기와 '풍장21'의 길놀이·사물놀이 공연 등이 흥을 돋운다.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1호 침선장 보유자 박광훈 등이 참가하는 한복전시회와 한복포럼도 열린다.축제기간 한복을 입으면 혜택이 많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에 무료입장된다. 특히 경복궁 야간개장이 시작하는 24일에는 한복을 입으면 인원 제한에 관계없이 무료 입장할 수 있다.한복사랑 실천음식점 101곳에서는 음식값 10%가 할인되고 종로구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jongnotong)에 한복 사진을 올려 뽑히면 경품을 준다.한복축제 총예술감독은 2013년 서울 드럼페스티벌 총감독 등을 역임한 공연 연출가 김영수 감독이 맡았다.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종로 한복 축제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류문화관광축제로 만들겠다"며 "역사와 문화가 바로 종로의 정체성이므로 앞으로도 한복뿐만 아니라 한옥, 한글, 한식 등 4韓(한) 전통문화 보급 및 확산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강강술래[서울 종로구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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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 백색순교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8월 무더운 여름에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오르는 길은 마냥 뙤약볕만은 아니었다.좌우에는 숲이 우거져있었고, 오르막 그늘에 세워져있는 순교자 기념비가 우리에게 숭고함과 경건함을 선물해 주는 듯했다.기념관 앞에 있는 기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안내판과 십자가를 보며, 침묵으로 순교자들을 기리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국내,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모든 순교자분들을 위한 기념관으로, 1983년 한국기독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경기도 용인 소재 10만 평의 땅을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재단에 기증함으로써 세워지게 되어 1989년 11월에 개관하였다.역사화 40여 점이 전시된 1층을 시작으로 1930년대 이전 개화기의 한국 교회와 사회상을 담은 사진 120점이 전시되어 있는 2층, 순교자들의 존영과 유품이 전시돼 있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 한국교회를 위해 순교하신 545명의 순교자들의 이름 우리나라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숨진 순교자들은 2600명 정도이지만, 대부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수는 북한에서 순교하셨기 때문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으며, 이곳에는 545명의 순교자분들의 이름이 올려져 있다. 모든 순교자들 중 시대의 흐름에 따른 6분의 순교자들은 우리의 믿음 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왼쪽부터 토마스 목사, 백홍준 장로, 주기철 목사 토마스 목사는 1840년 영국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출생하여, 런던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1864년 선교사가 되어 중국에 부임하였다. 중국에서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그는 조선 선교의 꿈을 지니게 되어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내한하였으나, 9월 3일 평양 대동강변에서 순교하였다. 백홍준 장로는 1848년 평북 의주 출생으로, 1876년 중국 만주에서 로스 목사를 만나 한국인 최초로 세례교인이 되었고, 그의 성경 번역을 도와 최초의 한글 성경이 출간되는데 기여했다. 1887년 조선인 최초의 장로가 되었지만, 그는 사교를 전한다는 죄목으로 구금되어 2년간의 옥중생활 끝에 1893년 순교했다. 주기철 목사는 1897년 11월 경남 웅천 출생으로, 오산학교와 연희전문을 거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 부산과 마산에서 목회를 하던 시절부터 신사참배 반대를 주도했으며,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끝까지 투쟁했다. 그는 결국 7년여의 옥고 끝에 1944년 4월 21일 순교했다. ▲ 왼쪽부터 신석구 목사, 문준경 전도사, 손양원목사 신석구 목사는 1875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감리교 목사로 서울 수표교교회를 시무하면서 33인 민족대표로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일제 말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으나, 교단이 굴복하자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목회했다. 해방 이후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공산정권에 저항하다가 체포, 구금되었다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1950년 10월 10일 총살을 당해 순교했다.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2월 전남 신안 출생으로, 증도의 믿음의 어머니로 불린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59세의 일기로 해남에서 패퇴하던 북한군에 의해 순교하기 전까지 18년 동안 증도를 비롯한 전남 신안군 일대 도서지역을 고무신을 신은 발로 누비며 100여 곳의 교회를 세웠고, 이를 통해 많은 교계 지도자가 배출되었다. 손양원목사는 1902년 경남 함안 출생으로, 첫 목회 지인 여수 나환자 마을의 애양원 교회에서 평생을 시무하며 환자들을 지성으로 보살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5년간 옥고도 치렀다. 1948년 여수·순천 사건 때 두 아들이 피살되었으나, 그는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다. 그러나 자신도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게 총살을 당해 순교하였다. 모든 순교자들을 비롯하여 시대별로 순교하신 6분의 순교자들은 모진 수모를 겪음에도 믿음을 지켜 적색 순교 시대를 지나 오늘날 백색 순교의 시대를 열어주셨다.그들의 신앙과 헌신과, 결단과, 순교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피를 세운 한국교회를 든든하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 ▲순교자들의 유품을 돌아보고 있는 정한조 목사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담당 정한조 목사는 ‘성경을 읽다 보면 예기치 않은 구절에서 말씀에 은혜가 될 때가 있다. 이곳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어느 순교자의 삶이라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우리에게 들게 하시면 그분이 어떻게 이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라면서 ‘여기 있는 순교자들은 적색 순교를 하신 분들이시다. 적색 순교는 악한 시대에 악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 일어나는 순교이고, 오늘날에도 순교의 시대가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지금은 백색 순교의 시대이다.’ (백색 순교는 과거 악한 시대와 같이 믿는다고 하여 피를 흘리는 핍박을 받지 않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삶 속에서 오는 핍박을 받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12장 1절~2절에 있는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백색 순교자들이고,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이 들 때 이곳에 찾아와서 한번 둘러보게 된다면 신앙에 큰 유익이 있으리라 생각된다.’라고 말씀하셨다.▲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고난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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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내동마을과 내동교회내동교회의 아름다운 전경8월의 무더운 여름날 내동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내동교회에 들어서자마자 교회의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졌고, 주일을 기쁘게 준비하는 목사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내동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 내동마을을 잠깐 소개한다면 내동마을은 용인에 있는 8경 중 하나로, 아름다운 숲과 2~3만 평의 연꽃 단지가 있다. 또한 마을 앞에는 농촌테마파크와 용담저수지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내동교회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위치해 있는 교회로, 1952년에 문촌 교회로 예배를 가던 교인들이 산 넘어 있는 교회보다 가까이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바램에 세워졌다. (좌):리모델링 전 내동교회, (우):리모델링 후 내동교회이병희 담임목사는 2008년에 부임하여 현재까지 시무하고 있다. 부임한 이후 교인들과 함께 교회와 사택을 리모델링했고, 교육관을 준비하였다. ‘내동교회 안에서 이병희 담임목사의 목회 이야기’이병희 담임목사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으며, 마을과 지역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전도에 힘쓰고 있었다.이병희 담임목사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도하다가 성도들이 신앙생활에 자유함을 누리도록 힘써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성도들이 행복한 신앙생활과 자유함를 누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이병희 담임목사는 앞으로 지역아동센터, 노인 한글교실, 도자기, 꽃꽂이, 청소년 사역, 장애인복지 등의 문화복지 사역들을 통하여 마을이 복음화되기를 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문화복지센터를 건립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다음은 내동교회에서 주일예배 때 드려지는 기도문이다.날마다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 저희들은 주님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 수가 없나이다. 주님께서 저희들의 손을 잡아주시지 않으면 저희들은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나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의 쾌락 때문에, 물질의 욕심 때문에 주님의 손을 놓고 세상으로 멀리 떠나 살았던 저희들입니다. 주님을 떠나 살다가 험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외면하다가 건강도 잃고, 마음의 평안도 잃었습니다. 오! 주여, 탕자처럼 상처뿐인 몸과 마음을 이끌고 돌아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한 번 사랑의 손길로 저희들을 붙잡아 주옵소서. 의로운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고백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내동교회 이병희 담임목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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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요일엔 한강‘열린놀이마당’에서 놀아요~한강에서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어린아이부터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방학과 휴가가 시작되는 7월 셋째 주 주말나들이는 가까운 한강으로 떠나볼까?서울시(한강사업본부)는 “오는 7월 23일(토) 15시부터 19시까지 뚝섬한강공원에서 한강 놀이대장, 한강지킴이 등 한강공원 자원봉사자 300명과 함께 연합봉사활동으로 ‘열린 놀이마당’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강 열린 놀이마당은 먼저, 청담대교 하부에 자연 놀이터, 어울림 놀이터, 호기심 놀이터, 한글놀이터, 안전놀이터 등 테마별로 구성하여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또한 공원이용 소외계층과 함께하는 장애인 나들이 프로그램도 연계해 진행할 예정이다. 1365 나눔포털을 통해 한강 놀이 프로그램 운영 보조 등 자원봉사자로 신청해서 참여할 수 있다.한강놀이대장과 꾸러기들은 광진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함께 이웃나라의 놀이를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자벌레 닫힌 공간에서는 ‘청아랑 문답하라! 톡!톡!TALK!’ 특강을 마련하여 대학 장학생이 진행멘토로 참여하여 대입 준비전략, 공부 노하우, 전공선택 방법 등 진로상담을 실시한다.열린 놀이마당 참여는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시스템에서 사전 접수를 통해 신청하거나 당일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이상국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총무부장은 “ ‘열린 놀이마당’은 한강 자원봉사자 300명이 함께 직접 기획‧추진한 행사로 더 의미가 깊다”며,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한강에서 다양한 놀이와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더위를 날려버리는 시간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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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로 선도하는 가상현실(VR) 산업 생태계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 이하 문체부)는 7월 7일(목) 오전 10시에 개최된 무역투자진흥회의(이하, 무투회의)의 후속조치로서 ‘가상현실 콘텐츠산업 육성 방향(이하,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는 무투회의의 ‘제10차 투자 활성화 대책’의 ‘가상현실 산업 육성’ 관련 내용 중 ‘가상현실 콘텐츠’ 분야를 구체화한 방안으로 마련되었다. 무역투자진흥회의(7. 7.)에서 ‘가상현실 산업 육성 방안’ 논의 무투회의에서는 문체부·미래부·기재부·산업부 등이 추진하는 가상현실 관련 정책들이 소개되었다. ▲'가상현실 클러스터(상암DMC)', ▲‘가상현실 펀드’, ▲신성장 기술개발(R&D) 세액공제에 가상현실 기술 추가, ▲가상현실 원천기술 및 콘텐츠 응용기술 연구개발, ▲수요 창출형 대형 프로젝트 발굴, ▲가상현실 콘텐츠 이용 지침(가이드라인) 마련, ▲가상현실 게임의 안전 관련 시스템 구축, ▲가상현실 융·복합 콘텐츠 개발 지원, ▲문화·관광·콘텐츠 시설에 특화된 체험관 조성 등 정책이 그것이다. 이는 무투회의 안건의 정책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알리기 위해, 이 중, 문화·관광·스포츠·콘텐츠 등 문체부 소관의 ‘가상현실 콘텐츠’ 분야를 구체화한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콘텐츠로 선도하는 가상현실 생태계 이번 정책은 현재 가상현실 산업을 구성하는 생태계 중 콘텐츠 부문이 취약한 상황임을 감안하여, 가상현실 콘텐츠 공급을 통해 가상현실 산업 전체의 성장을 견인하고자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문체부는 일반적인 콘텐츠 제작 지원이 아닌, 가상현실 콘텐츠의 초기 기획부터 연구개발(R&D)과 스토리, 제작, 유통 등 가상현실 콘텐츠 생애주기의 전 단계를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민간기기 개발사 등 대기업과의 협력, 기재부·미래부·산업부 등 관련 부처와의 협력을 통해 민관 합동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가상현실 콘텐츠, 좀 더 쉽게 개발하고, 좀 더 많이 접할 수 있어야 이번 정책은 가상현실 콘텐츠를 좀 더 쉽게 개발하고, 좀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체부는 미래부 등 관련 부처와 협력하여 고가의 콘텐츠 개발과 테스트 장비를 지원하고,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며, 콘텐츠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하는 등 개발에 따른 위험(리스크)을 정부가 함께 부담함으로써,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우리 콘텐츠기업들이 부담 없이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 나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을 촉발하고 가상현실 콘텐츠를 통해 국민들이 시공을 초월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일상 곳곳에서 가상현실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가상현실 콘텐츠가 활발하게 유통되는 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다. (1) 케이-가상현실(K-VR), 매일(Everyday), ‘가상이 일상으로’ ‘가상현실 콘텐츠 프런티어 프로젝트’: <아바타>급 대표 콘텐츠 5개 육성 문체부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대표 가상현실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핵심 기술개발(R&D) - 가상현실용 스토리 개발 - 콘텐츠 개발 - 테스트 - 국내외 유통’ 등 가상현실 콘텐츠 생애 주기의 전 단계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에 테마파크와 게임, 영화·영상·방송, 케이팝(K-POP), 관광 등 시장성 및 수출 가능성이 높은 5대 대표 분야를 지원 대상으로 하고, ’16년 하반기 기술개발(R&D) 지원(약 50억 원)을 시작으로 프로젝트를 출범한다. 특히, 무투회의 안건의 ‘수요 창출형 대형 프로젝트(CPND 기업이 컨소시엄으로 공동투자-미래부, 문체부)’와 관련, ‘프론티어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되는 가상현실 콘텐츠를 연계하는 등 양 프로젝트 간 협력으로 그 효과를 극대화 할 계획이다. (2) ‘가상현실(VR) 타운’: 일산 빛마루에 문화창조융합벨트의 ‘가상현실 특화 공간’ 조성 문체부는 일산 빛마루에, 문화창조융합벨트의 ‘가상현실 특화 공간’이자, 대규모 가상현실 테마파크가 조성될 ‘케이-컬처밸리’와 연계하여 ‘가상현실 종합지원센터(이하 센터)’를 구축한다. 이곳은 페이스북(오큘러스) 등 민간의 기술·기기 지원과 정부의 기획?제작 지원이 결합된 민관 협력 공간으로서 ▲‘가상현실 멤버십’ 기업을 선정하여 ‘스마트 오피스’를 제공한다. 또한 센터는 ▲'가상현실 랩(VR Lab)'에서 최신 개발기기를 사용하여 제작·시험할 수 있게 하고, ▲‘가상현실 아카데미’를 통해 민간 개발사가 제공하는 전문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가상현실 협업(Co)-프로젝트’로 가상현실 기술기업과 콘텐츠기업, 시나리오 작가 등을 연계해주고, ▲국내외 구매자들과 상시 접촉이 가능한 ‘가상현실 비즈룸’을 조성할 계획이다. 센터에서 만들어진 가상현실 콘텐츠는 ‘케이-컬처밸리’에서 소비·판매된다. 아울러 문체부는 인근의 ‘스토리창작지원센터’와 ‘방송영상지원센터’, ‘방송영상문화 콘텐츠밸리(경기도, ~’22년)’ 등과 센터를 연계하여 가상현실 콘텐츠가 매일매일 탄생하고, 가상현실 콘텐츠인들이 서로 교류하는 ‘가상현실(VR) 타운’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의 ‘가상현실(VR) 클러스터(미래부)’와 공동 멤버쉽 운영, 상호교류 프로그램 마련, 시설 공동 활용 등 ‘도심형 집적 거점(누리꿈)’ , ‘대규모 테마파크 연계 가늠터(테스트베드, 일산 빛마루)’ 간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3)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지원: 7대 분야 ‘공공활용형 가상현실 콘텐츠’ 발굴 문체부는 민간 가상현실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정부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해외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이 우선 활용할 수 있는 ‘공공활용형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 지원을 시행하여, 콘텐츠 수요를 창출하고 개발자들에게 다양한 제작경험을 부여할 계획이다. 문체부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소재 가상현실 콘텐츠와 소멸 위험이 높은 유·무형 문화재 체험 가상현실 콘텐츠, 전통문화 체험 가상현실 콘텐츠, 해외 거주 한류팬 등을 대상으로 한 한글교육 가상현실 콘텐츠 등 공공부문에서 우선 활용 가능한 7대 대표 분야를 대상으로, 우수한 가상현실콘텐츠의 개발을 지원한다. 7대 대표 분야 개발 예시 활용 기관 예시 ① 2018 평창올림픽 동계스포츠 VR게임콘텐츠, 강원도 관광지 패러글라이딩 체험콘텐츠 평창조직위, 강원도 등 ② 한국 대표 관광 한국 대표관광지 100선 지자체, 공공기관 등 ③ 전통문화, 역사 고궁 종묘대제 체험, 궁중생활 체험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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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개봉 첫날 관객 28만9천명…역대 청불영화 3위(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으로 화제를 모았던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가 개봉 첫날부터 관객몰이에 나섰다. 2일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아가씨'는 개봉 첫날인 1일 관객 28만9천449명을 동원해 1위로 박스오피스에 입성했다. '아가씨'가 기록한 첫날 관객 수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영화 중 역대 3위에 해당한다. 역대 청불 영화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는 '화이: 괴물의 삼킨 아이'(2013)가 수립한 36만280명이다. 2위는 '친구 2'(2013)의 30만4천184명이다. 공휴일인 한글날에 개봉한 '화이'를 제외하고 평일 기준으로 삼으면 '아가씨'는 역대 2위로 올라선다. '아가씨'는 또한 '친절한 금자씨'(2005)의 첫날 관객 수인 20만6천653명을 넘어서 역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귀족 가문 출신인 히데코와 그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는 백작, 백작의 의뢰를 받고 재산 탈취에 동참한 하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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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아름다움 세계에 알린다" 한글플래닛 출범이사장에 장태평 전 장관…한글 매개 '문화 외교' 펼치기로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문화 콘텐츠 단체인 '한글플래닛'이 출범했다.한글플래닛(장태평 이사장)은 지난 11일 서울시로부터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설립 허가를 받고 본격적인 한글 세계화 활동에 나섰다고 29일 밝혔다.한글플래닛은 2013년 미국에서 해외 입양 한인과 그 가족에게 한글을 알려주는 재능기부 모임으로 시작했다. 지난해엔 시카고, 뉴욕 등 미국 각지에서 한글 캘리그라피(손글씨)를 전파하는 '한글파티' 활동으로 진화했다.미네소타대학교 등에서 열린 한글파티에서는 캘리그라피 작가인 박병철 씨의 지도 아래 한인 청소년과 외국인들이 붓글씨를 써보며 한글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한글플래닛은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단장하면서 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이사장으로 위촉하고 각계 전문가 11명을 이사로 영입해 조직 기반을 강화했다. 앞으로 국내외 대학으로 한글 캘리그라피 행사를 확산하고, 세계인과 한글을 매개체로 소통하는 '문화 외교'에 나설 계획이다. 또 국내 다문화 가정과 소외 계층, 재외동포 어린이 등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한민족 정체성을 키우도록 지원할 예정이다.장 이사장은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려는 순수한 열정이 모여 사단법인으로까지 성장하게 됐다"면서 "과학적이면서도 따스한 문자인 한글의 매력을 세계인에게 알려 새로운 한류 바람이 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곳곳에서 열린 한글 캘리그라피 행사인 '한글파티' 모습. (한글플래닛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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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 선호이름…1940년대 영수·영자에서 2010년대 민준·서연서울의 한 신생아 병실모습1940년대 이후 이름 전수조사…역대 최고 인기는 '지훈·영숙'외자 이름 '준과 진'·한글 이름 '한결·사랑'…개명은 '지원'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갓 태어난 아기에게 부모가 지어주는 이름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영수·영호'와 '영자·영숙' 등 무난한 이름이 유행을 타다가 요즘은 '민준' 또는 '서연' 등이 인기를 끄는 것으로 나타났다.외자 이름으로는 남자는 '준', 여자는 '진'이 가장 많았다. 꾸준히 늘어나는 한글 이름의 경우 남자 '한결', 여자 '사랑'을 많이 선택했다.9일 대법원에 따르면 사법부가 출범한 1940년대 이후 지난해까지 60여년간 시대별로 출생신고한 이름을 모두 분석한 결과, 2010년대에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은 남자는 '민준', 여자는 '서연'이었다. '민준'은 1990년대까지 20위 안에 든 적이 한 차례도 없다가 2000년대와 2010년대 계속해서 가장 많이 사용된 남자 아이 이름에 올랐다. '서연'은 2000년대 사용 현황 2위였다가 2010년대 들어 1위로 뛰어올랐다. 시기별 '대표 이름'은 ▲1940년대 영수·영자 ▲1950년대 영수·영숙 ▲1960년대 영수·미숙 ▲1970년대 정훈·은주 ▲1980년대 지훈·지혜 ▲1990년대 지훈·유진 ▲2000년대 민준·유진 ▲2010년대(2015년까지) 민준·서연으로 나타났다.1940년대 남자 이름은 '영수·영호·영식'이, 여자 이름은 '영자·정자·순자'가 많았다. 1960년대까지 남자는 '영수·영철·영호·성호' 등이 엎치락뒤치락 많이 쓰였다. 여자는 '영숙·순자·미숙·미경' 등이 많았다. 산업화가 본격 시작된 1970년대부터 다소 변화가 생겼다. 1990년대까지 남자 이름은 '정훈·성호·지훈·동현' 등이, 여자 이름은 '은주·은정·지혜·지영·민지' 등이 많이 사용됐다.2000년대 이후 남자는 '민준·현우·서준·예준·주원' 등을, 여자는 '유진·서연·수빈·서윤·서현' 등을 많이 썼다.시대에 따라 뚜렷한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1940년대 가장 흔한 이름이었던 '영수'와 '영자'는 2010년대 들어 20위 안에 들지 못했다. 반대로 2010년대 가장 인기 있는 '민준'과 '서연'도 1940년대에는 20위권에 없었다.모든 시기를 통틀어 가장 많이 쓰인 이름은 남자 '지훈'과 여자 '영숙'이었다. 두 이름의 인기는 다소 엇갈렸다. '지훈'은 1980년대~1990년대 큰 인기를 얻은 뒤 2010년대에도 상위 12위에 올라 여전히 많이 사용된다. 반면 '영숙'은 1950년대 최고 인기를 누렸지만 신청 수가 점점 줄어 지난해에는 1명이었다.역대 2번째로 많이 쓰인 남녀 이름은 '동현'과 '정숙'이었고 ▲'현우'와 '정희' ▲'성민'과 '순자' ▲'정훈'과 '영자'가 3~5위를 차지했다. 모든 시기를 통틀어 순위권에 오른 건 전부 두 글자 이름이다. 가장 많이 사용된 외자 이름은 남자 '준'과 여자 '진'이었다. 다만, 20위 안에는 한 차례도 진입하지 못했다. 남녀 각각 2~5위는 ▲'현'과 '숙' ▲'훈'과 '현' ▲'건'과 '솔' ▲'철'과 '미'였다.한글 이름은 최근 매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08년에는 총 1만6천680건으로 전체의 3.54%였지만 지난해에는 총 3만4천843건으로 전체의 7.7%까지 높아졌다.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은 남자 '한결', 여자는 '사랑'이었다. 시대별로는 ▲1980년대 요한·아름 ▲1990년대 한솔·슬기 ▲2000년대 한결·하늘 ▲2010년대(2015년까지) 한결·사랑으로 조사됐다. '봄'은 외자에선 유일하게 인기 있는 한글 이름 순위에 들었다. 여자 이름 '봄'은 2013년 8위, 2014년 7위, 작년 2위였다.지난해 개명 신청자 사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은 '지원'이었다.신생아 이름으로 큰 호응을 받은 '민준'과 '서연'은 개명 신청 때에도 사랑받았다. 작년 개명 순위는 남자는 '민준'-'현우'-'도현'-'지훈'-'서준', 여자는 '서연'-'지원'-'수연'-'서윤'-'서현' 순이었다.시대별 이름 사용 현황. (자료=대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