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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 다가온 일상회복을 위한 축제 기지개2021 수원 문화재 야행 행사모습. 사진제공 : 수원문화재단 (국민문화신문) 최은영 기자 = 수원문화재단(대표이사 길영배)은 오는 11월 단계적 일상 회복을 앞두고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방문할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하다. 중대본의 10월 지역축제 취소 및 연기 또는 비대면 전환 요청으로 볼 수 없었거나 축소했던 행사를 오는 11월에 선보인다. ▲ 돌아온 ‘2021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는 지난 9월 24일 개막하여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내며 성공적으로 운영되었으나 코로나19 관련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9월 30일부터 운영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오는 11월 1일부터 11월 14일까지 14일간 수원화성 화서문을 중심으로 행궁동 일원에서 ‘2021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운영을 재개한다. 우선 수원화성 화서문과 주변 성곽 최대 220m 구간에 펼쳐지는 초대형 ‘미디어파사드&라이트쇼’는 조명효과를 보강하여 정조가 꿈꾸었던 세상을 더욱더 화려하게 그릴 예정이다. 또한 기존 운영되었던 빛의 거리 ‘행행산책로’, 뉴미디어아트 작품 전시 ‘성안마을 미디어아트展’, 스마트액자를 활용한 디지털 전시 ‘정조가 그린 달빛’ 등 연계 프로그램도 운영을 재개한다. 여기에 기존 행행산책로 그린터널 구간에는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마음을 담은 시화전‘시와 빛 마음이 머물다’를 신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 기억의 찰나 225 ‘2021 수원 문화재 야행’ ‘2021 수원 문화재 야행’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진행하지 못했던 프로그램의 아쉬움을 달래고 단계적 일상 회복에 발맞춰 오는 11월 5일부터 7일까지 문화재 야행 프로그램의 하나였던 ‘기억의 찰나 225 아카이브 전시’를 개최한다.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산업화로 인해 수원에서 사라져간 직업들과 그것을 생업으로 살아왔던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라져가는 직업에 대한 기억’, 일제강점기 수원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담은 ‘수원독립운동가, 그들을 기억하라’를 담았다. 특히 수원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담고 그 정신을 이어가고자 표현한 미디어아트 작품 ‘마음에 담다’는 이번 아카이브 전시를 더욱 돋보이게 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지난 70여 년간 수원에서 일어났던 주요사건과 이슈들을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수원, 과거로 전화를 걸다’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또한 화성행궁 신풍루 건물을 배경으로 다같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맞이하는 기대와 세상의 에너지를 생동적으로 표현한 미디어파사드(Media Fasade) 작품도 새롭게 선보인다. ▲ 2주 연장 운영하는 ‘화성행궁 야간개장’ 이달 31일 마무리하는 ‘화성행궁 야간개장’은 코로나19로 힘들었던 시민들의 저녁 시간을 보다 알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게 오는 11월 14일까지 2주 연장 운영한다. 화성행궁 야간개장은 낮보다 더 아름다운 야간의 도심 속에서 밤에만 마주할 수 있는 독특한 야경으로 특별한 고궁의 분위기를 자아내며,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간 관광지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연장 운영은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와 수원 문화재 야행 등 야간 관광 프로그램과 연계한다. 한편, 화성행궁 복원공사로 인해 일부 구간 입장이 제한되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길영배 대표이사는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위드 코로나(일상회복)’를 앞두고 재개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중단 등으로 인하여 많은 분의 아쉬움이 컸던 만큼 재개와 연장 운영으로 시민들께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한다”며, “촘촘한 방역으로 안전한 행사를 진행하겠으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시민분들의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수원문화재단 누리집(www.swcf.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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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경기도 문화의 날, 경기문화재단 문화 소식두 개의 DMZ_전시장. 사진제공 : 경기문화재단 (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 =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강헌)은 9월 경기도 문화의 날을 맞아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경기도 문화의 날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로, 평등한 문화 환경 조성과 도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2019년부터 경기도가 정부의 ‘문화가 있는 날’과 연계하여 제정,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 달은 29일에 진행된다. 경기문화재단 및 소속 문화기관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에 따라 방문 전 사전예약제를 운영한다. 경기도박물관,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도어린이박물관,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경기상상캠퍼스, 전곡선사박물관, 실학박물관, 경기창작센터는 공식 홈페이지 또는 지지씨 멤버스(members.ggcf.kr)를 통하여 사전 관람 예약 신청을 할 수 있다. 경기도박물관에서는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청산을 위한 유물 기증 캠페인>을 진행한다. 캠페인은 3·1운동 102주년과 광복 76주년을 맞아 경기지역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존·계승하고, 도민들의 유물 기증 참여 활성화를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수집 대상은 독립운동가 친필자료, 사진, 유품, 일제강점기 신문 등 경기도 3.1운동을 비롯한 항일 독립운동 관련 자료이다. 기증 절차는 경기도박물관 홈페이지(musenet.ggcf.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미술관 2021 경기청년작가 초대전 <박호은 : 다각선>은 경기도를 연고로 활동하는 청년작가를 초청하여 신작활동을 지원한 전시이다. 이번 초대전에는 박호은 작가의 ‘다각선’ 작품이 선정되었다. 박호은 작가는 ‘다각선’ 작품을 통해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은 미술관 몸체를 이루었던 폐기물을 소재로 유리벽판과 파편이 사용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경기도미술관 홈페이지(gmoma.ggcf.kr)에서 확인 가능하다. 백남준아트센터 집중감상 프로그램 <피드백>은 백남준의 주요 작품을 감상하고 활동지를 통해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며 초등학생 이상 가족 대상이다. 참여를 원하면 사전 예약이 필요하고 신청은 GGC 멤버스를 통해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백남준아트센터 홈페이지(njp.ggcf.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실학박물관 <마재마을의 사계>는 박물관 인근 다산생태공원이 계절마다 변하는 모습과 생태해설을 영상으로 담은 온라인 생태해설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여 집안에서도 자연을 느끼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유튜브에 ‘실학박물관’ 또는 ‘마재마을의 사계’를 검색하면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실학박물관 홈페이지(silhak.ggcf.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전곡선사박물관에서는 반구대 암각화 발견 50주년 기념 교류전 <반구대 암각화 ; 고래>를 진행한다. 전곡선사박물관과 MOU 체결기관인 울산암각화박물관의 교류전이다. 올해 2월 문화재청 UNESCO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되어 주목받는 반구대 암각화를 경기북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암각화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동물 ‘고래’를 주제로 구성하였고, 세계적으로 드문 가치로 평가받고 있는 고래사냥의 4단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함께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실학박물관 홈페이지(silhak.ggcf.kr)에서 확인 가능하다. 경기도어린이박물관 기획 전시 <두 개의 DMZ>는 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전이다. 전시는 미디어, 실감 영상, AR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였고, DMZ의 평화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 이룰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어렵거나 무거울 수 있는 주제 DMZ를 모험을 통해 어린이들이 주체적으로 즐겁게 알아볼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전시는 연령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자율 체험’과 초등학생 어린이 동반 가족이 사전 예약 후 참여할 수 있는 두 가지 관람 형태로 운영된다. 전시 외 교육 프로그램으로 <개미 세계 탐험>과 <폴짝폴짝 개구리>가 있다. <개미 세계 탐험>은 6세 이상 어린이를 대상으로 사회성이 발달한 곤충 개미에 대해 알아보고 개미가 어떻게 역할을 나눠서 문제를 해결할지 상상하며 이야기책을 만들어볼 수 있다. <폴짝폴짝 개구리>는 26-42개월 영유아를 대상으로 전시실 ‘자연놀이터’에서 체험할 수 있다. 연못 속 개구리와 연계하여 그림책을 읽어본 후 개구리의 성장과정과 서식환경을 신체, 미술놀이를 통해 이해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자세한 내용은 경기도어린이박물관 홈페이지(gcm.ggcf.kr)에서 확인 가능하다. 경기상상캠퍼스에서는 <도자랩 : 안전장비교육>이 있다. 경기상상캠퍼스 내 도자랩 공간 소래와 함께 도자기를 굽는 가마 설명과 토련기 사용방법, 물레 사용방법을 교육한다. 매주 화, 금 10시, 11시에 교육이 있으며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경기상상캠퍼스 홈페이지(sscampus.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장소 장르 행사명 경기도박물관 캠페인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청산을 위한 유물 기증 캠페인 경기도미술관 전시 박호은 : 다각선 백남준아트센터 프로그램 집중감상 프로그램 <피드백> 실학박물관 프로그램 실학박물관과 함께하는 <마재마을의 사계> 전곡선사박물관 전시 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기념 교류전 <반구대 암각화 ; 고래>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전시 두 개의 DMZ 교육 주말가족 프로그램 <개미 세계 탐험> 교육 9-10월 영유아 교육 프로그램 폴짝폴짝 개구리 경기상상캠퍼스 교육 도자랩 : 안전장비교육 경기문화예술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 ‘지지씨(ggc.ggcf.kr)’에서 ‘문화의 날’을 검색하면 더 다양한 경기문화재단의 문화 사업과 도내 다양한 문화 소식을 확인할 수 있다. 지지씨에 소개된 주요 소식으로, 안산문화재단의 <예술열차 안산선>이 있다. ‘예술열차 안산선’은 안산시를 관통하는 4호선 및 서해선을 중심으로 역사 공간의 특징을 살려 특화된 프로그램이다. 9월 27일부터 10월 3일까지 수인분당선 사리역사 내에서 ‘사동, 이야기를 꺼내다’ 전(展)이 진행되고 사동 청소년이 참여하는 사리역 푸른 나무들의 밤 공연 영상 내용으로 구성된다. 자세한 내용은 안산문화재단 홈페이지(ansanart.com)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천문화재단에서는 경기도 문화의 날을 맞아 9월 16일부터 10월 3일까지 전시 <쇠뿔에 혼을 담아 맥을 잇다>를 진행한다. 경기 제29호 무형문화재 화각장 故 한춘섭과 그의 이수자 한기호의 전시이다. 화각은 쇠뿔을 얇게 펴 그림을 그린 후 목기물 위에 붙여 장식하는 공예기법으로 이 전시는 ‘화각 연화문 대약장’, 화각 쌍룡문 보석함‘ 등 화각 작품 28점을 만나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천문화재단 홈페이지(artic.or.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소개된 내용 외에 경기도 문화의 날에는 경기도와 31개 시군이 함께한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이 진행된다. 김포에서는 문화유산 소재지에서 진행되는 전통놀이 공연 <김포의 유유자적 전통문화 유랑기>가 있고, 과천문화재단에서 현대무용 <스윙> 공연 실황을 상영한다. 안성 박두진문학관에서는 집에서 체험할 수 있는 문학체험 프로그램 <박두진 시 압화책갈피, 그립톡 만들기 꾸러미>를 운영한다. [경기도내 31개 시·군 행사 소식] 지역 기관 장르 행사명 예약링크 안산 안산문화재단 프로그램 예술열차안산선'사동,이야기를꺼내다' - 이천 이천시립박물관 전시 경기 제29호 무형문화재 화각장 故 한춘섭과 그의 이수자 한기호의 『쇠뿔에 혼을 담아 맥을 잇다』展 - 김포 김포문화재단 공연 김포의 유유자적 전통문화 유랑기 - 과천 과천문화재단 공연 현대무용 <스윙> https://www.gcart.or.kr/kr/concert/concertView.do?concertIdx=16 안성 박두진문학관 체험 박두진 시 압화책갈피, 그립톡 만들기 꾸러미 https://www.anseong.go.kr/portal/munhak/edu/list.do?mId=08150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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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용담, 새로이 기억하다> 개최'용담 새로이기억하다'. 물속의 마을을 들여다보다. 사진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 = 국립전주박물관(관장 홍진근)은 오는 8월 31일 특별전 <용담, 새로이기억하다>를 개최한다. 이 전시는 전북의 주요 시설인 용담댐 건설 20주년을 기념하여 진안군(군수 전춘성) 및 K-water 용담댐지사(지사장김종래)와 공동으로 주최하였다. 2001년 국내 5번째 규모로 완공된 진안 용담댐은 전북 지역과 더불어충남 일부지역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는다목적 댐이다. 댐 건설로 형성된 용담호의 물은 전북도민의 생명수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마이산 등의 관광명소와 함께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어 전북 지역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시설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댐 건설로 인해 잠긴 용담 마을사람들의 삶을 조명하고,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댐 건설 과정과 의미, 그리고 발굴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옛 용담 사람들의 흔적을 살펴본다. 또한 이제는 사라진 고향, 용담을 기억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들을 한자리에모았다. 1부 ‘물속의 마을을 들여다보다’에서는 용담 사람들이 쓰던 생활용품과 물속에 잠긴 학교의 물건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다.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보면 개근상을 받으며 상기된 얼굴로 뿌듯해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곧바로 집으로 가서집안일을 도와야지.”라는 급훈을 보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가 정성 어린 손 글씨로 쓴 편지에는 집배원 아저씨를 기다리던 소녀의 설렘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신랑의 사주를 적은 종이는 함을 파는 넉살 좋은 함진아비의 우렁찬 목소리를 떠오르게 한다. 2부 ‘변화의 파도가 밀려오다’는 용담댐의 건설과정과 의미를 조명한다. 용담댐의 건설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계획되었으나 일본이 전쟁에 지면서 계획은 그치고 만다. 그러나 광복 이후에도 이 지역은 댐건설 예정지라는 이유로 주민들은 마을을 개발하는 것도, 땅을 소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에서 갖고 있던 토지를 주민들에게무상으로 분배하기도 하였지만 1992년에 공사를 시작한 댐은 2001년에 완공되었다. 3부는 용담댐을 건설하면서 진행된 발굴조사 성과를 압축해서 선보이는 ‘옛 사람의 흔적을 찾다’이다. 용담댐 수몰지구에서는 우리나라 전시대를 보여주는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전북 지역 최초의 구석기시대 유적인 진그늘 유적, 고인돌 윗돌 이동로와 대규모 밭까지 포함한 대규모 고인돌군인 여의곡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황산리 무덤군과수천리 무덤군에서는 삼국시대~조선시대에 이르는 용담 사람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유적들은 용담지역이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주된 삶의 터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4부에서는 용담을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했던 여러 사람들의 노력들을 모았다. ‘용담을 기억하다’에서는 수몰 마을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촬영한 사진과 수집한 물건들을 정리한 목록집, 고향마을을 그림과 서예로 남긴 작품들, 1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발굴 조사 보고서, 용담의 아름다운 풍경과 정겨운 모습을 찍은 사진집 등이 주요 전시품이다. 아쉽게도 고향 마을은 사라졌지만 그 추억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국립전주박물관은 이번 특별전을 통해 전북 지역의 중요 시설인 용담댐을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지역의 역사문화와 지역민들의 삶을 이해·공감하며, 이를 토대로 지역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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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숭실대, 그 역사를 담아내다숭실대학교. (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 올해 개교 124주년을 맞이하는 숭실대학교(총장 장범식)는 1897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으로 많은 역사와 아픔이 담겨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숭실대학교는 ‘진리와 봉사’를 건학이념으로, ‘통일시대의 창의적 리더’를 인재상으로 하여 혁신을 이끌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숭실대학교의 역사는 1897년 10월 10일 미국 북장로교의 베어드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숭실 학당에서 시작된다. 숭실 학당은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참된 교사와 교역자 양성이라는 설립 목적 아래 중등 교육기관으로 문을 열었다. 숭실 학당은 1900년 가을 신학기부터 수업연한 5년의 중학과정인 숭실학교로 발전하여 1904년 5월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숭실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에 기초하여 민족의 독립에 이바지할 젊은 인재를 양성했다. 대다수졸업생들이 교역자·교육자로 활약했으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졸업생도 상당수가 있다. 최초의 근대대학 숭실대학교는 1906년에 4년제 대학부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과정의 교육을 실시했다. 장로교 감리교 선교부가 합동으로 학교경영에 참여했으며, 교명은 ‘Union Christian College’, ‘평양예수교 대학’ 또는 ‘평양숭실대학’이라고 했다. 숭실대학은 미장로교 선교부가 주체가 되어 세워졌지만, 선교사들과 한국인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면서 기독교 선교사들의 한국민을 위한 ‘기독교정신’과 평양주민들의 교육구국을 위한 ‘민족정신’이 결합되어 설립된 기독교 대학이었으며 근대민족대학이었다. 숭실대학은 근대학문체계를 최초로 도입하여 교육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대학교육의 효시가 됐다. 숭실대학 교육. 숭실대학 교과서. 숭실대학 초기 교과는 성경, 수학, 물리학, 자연과학, 역사학, 인문과학, 어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개설됐다. 초기 교재는 주로 미국에서 사용하던 교과서를 번역, 재편집하여 인쇄했다. 숭실대학에서 운영하던 기계창에서 등사하여 사용하였으며, 나중에는 한글 활자를 구비한 일본 요코하마[橫濱]의 복음출판사에 보내어 인쇄했다. 이후 대학 내에 출판부를 설치하고 교과서를 비롯하여 기독교 서적 및 각종 학술서적을 간행했다. 숭실대학은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대항했다. 이는 숭실대학이 기독교 정신 함양과 민족의식 고취에 주력하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했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숭실대학은 일제의 식민지교육 강요로 인하여 1925년 전문학교로 개편됐다. 그러나 전문학교로 개편된 이후에도 대강당, 기숙사, 본관의 신축 및 증축을 통하여 교육 시설을 완비하고, 농과를 설치하여 농촌지도자를 배출하는 등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최고 교육을 통해 숭실이 배출한 인재들은 교역자, 교사, 음악인, 학자 등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상당수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일제강점기 숭실대학의 학생들은 전도활동을 비롯하여 음악, 체육, 문예 등 다양한 방면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한국민에게 희망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전도 활동을 전개했으며, 한국 근대음악의 도입에 초석을 닦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체육활동에서도 축구를 비롯하여 각종 종목에서 한국 체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문예활동에서도 한국의 훌륭한 문인들을 다수 배출했다. 근대적 문물수용에 앞섰고, 항일의식이 강했던 평양에서 출범한 숭실대학은 일제의 식민정책에 대항하여 민족적 자존과 양심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했다. 한말 외교권 박탈에 항거하여 을사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했으며, 많은 졸업생들이 신민회 등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하여 민족운동에 헌신했다. 일제강점기에는 1910년대 국내 최대의 비밀결사인 조선국민회(朝鮮國民會)를 주도했고, 평양지역의 3·1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항일학생운동에 앞장섰다. 폐교관련 보도자료. 평양숭실 캠퍼스모형(1930년대). 또한, 1930년대 일제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숭실대학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1938년 3월 자진 폐교했다. 이것은 기독교의 진리와 민족혼을 지킴으로써 ‘기독교 대학’이자 ‘민족대학’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행동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숭실 동문들은 평양에 숭실대학을 재건하고자 했으나 공산정권 수립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6·25 전쟁 직후인 1954년 5월 10일 서울 영락교회의 부속 건물을 임시교사로 하여 재건했다. 1957년에는 현 상도동 캠퍼스로 이전하여 서울 숭실로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됐다. 1960년대 숭실대학 모형. 1967년에는 김형남 학장이 취임하면서 지난날 신문화와 과학문명 도입에 앞장섰던 전통을 되살려 공학부를 설치하고 국내 대학 최초로 전산교육을 실시했다. 1971년에는 대전대학교와 통합, 종합대학으로서의 체제를 갖췄고, 1983년에는 대전캠퍼스와 분리하여 유서 깊은 옛 이름 ‘숭실대학교’로 교명이 환원됐다. 현재 숭실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에 두고 지식 정보화 교육을 선도하는 등 첨단 교육환경을 배경으로 21세기를 선도하는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코로나 19 상황 이전부터 비대면 교육을 준비해온 숭실대는 지난 2018년 NHN와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스마트 캠퍼스를 선도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 MOU’를 체결했다. 올해 3월 서버 안정화를 위해 기존 서버를 클라우드로 이관을 마쳤으며, 교수 대상 원격교육 역량강화 지원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속될 비대면 수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건물마다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강의실 6개 실을 확충하고 문제 해결 중심의 자기주도형 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인게이지드 러닝(Engaged learning) 강의실을 구축했다. 아울러 비대면 강의를 위한 신규 1인 스튜디오의 꾸준한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기독교박물관.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숭실역사실. 숭실대학교와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숭실대학교 정문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 숭실대학교 부속 ‘한국기독교박물관’을 찾아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에는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한 약 1만 600여 점의 한민족 및 한국 기독교 관계 자료와 유물을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대 중국과 로마 시대의 유물을 다량 소장하고 있다. 역사를 보다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기독교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전반적인 한국의 역사와 배경, 문화적 가치에 대해 배우고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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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읍성(邑城) 성벽 최초 확인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에서 발굴조사하고 있는 “상주시 인봉동 35-5번지 유적(면적 233㎡)”에서 상주읍성의 성벽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 문화재보호기금(복권기금)을 활용하여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진행 중인 「매장문화재 소규모 발굴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다. 발굴현장 공개는 30일(화) 오후 2시에 현장에서 개최한다.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되어 문헌 속에만 존재하던 상주읍성 상주읍성은 문헌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1385년(고려 우왕 11년)에 축조되어 일제(日帝)의 읍성 훼철령(1910년)에 따라 헐리게 되는 1912년까지 약 520년 이상 유지되었다. 고려말 왜구 침임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만들어진 읍성은 조선 초기에 경상감영(慶尙監營)을 둠으로써 당시 경상도의 행정·문화·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주읍성은 지표조사와 연구를 통해 성벽의 위치에 대해 추정만 있었고, 그 실체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2019년 조사대상지의 북서쪽 40m 지점인 인봉동 73-7번지 유적에서 상주읍성의 해자(垓子)*가 처음으로 조사된 성과가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성벽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조사대상지가 일제강점기(1913년)에 제작된 지적도에 성도(城道)로 표시된 부분에 해당함을 현재 지적도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하였고, 바로 이 자리가 상주읍성의 북동쪽 성벽임을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밝혔다. 성벽 위치 최초 확인, 조선 전기에 축조한 성벽 기저부 잔존 성벽은 체성부* 아래의 기저부**만 확인되었다. 이는 1912년 일제의 읍성 훼철 당시 지상의 육안으로 보이는 성벽이 철거되고, 성벽 기저부 위쪽이 임시 도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당시 지적도 상에 ‘성도(城道)’로 표기한 연유로 볼 수 있겠다. 또한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벽 위에 건물들이 건축되면서 기저부도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기저부의 규모는 길이가 760㎝ 정도로 조사대상지의 북쪽과 남쪽 조사 경계 밖으로 계속 연장되고 있다. 너비는 성벽 외벽 쪽인 동쪽 지대석에서 내벽 쪽인 서쪽으로 470㎝ 정도만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유실되었다. 높이는 40㎝ 정도만 확인되었으나 성벽 기저부를 견고하게 축조한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대석은 가운데 부분이 유실되고 5매만 확인되었으며, 이 역시 조사 경계 밖으로 계속 연결되는 양상이다. 이와 별도로 성벽 동쪽의 일제강점기 건물지 지반 보강을 위하여 훼철된 성벽의 큰 성돌이 다수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축조시기는 성벽 기저부의 다짐층과 보강층에서 조선시대 전기 백자종지편이 출토되어 조선시대 전기로 판단된다. 향후 상주읍성 정비·복원을 위한 실마리 지금까지 상주읍성 성벽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9년 해자 조사에 이어 이번 성벽 기저부 조사가 두 번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한국문화재재단의 조사는 소규모 면적에 대한 성벽의 기저부 조사이지만, 문헌 기록으로만 확인되던 상주읍성 성벽의 실체와 위치를 정확히 찾았다는데 의의가 매우 크며, 이를 통해 향후 상주읍성 전체의 위치와 흔적을 찾고, 정비·복원을 위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본다. 30일 개최하는 발굴현장 공개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생활 속 거리두기를 준수하기 위하여 발굴현장 공개 참석자들은 발열 확인과 손 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여 방역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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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박물관,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 6월 30일까지 개최2019년 1월 9일에 촬영한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모습. 사진 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 연세대학교 박물관(관장 조태섭)은 2021년 3월 새 학기 첫 기획전으로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를 3월 12일부터 6월 30일까지 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광주 민주 항쟁, 종군 위안부, 징용노동자와 같은 일제와 군사독재정권의 만행을 그려온 일본의 실천 주의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기획전이 연세대학교 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와 공동으로 준비한 전시이다. 인류 보편적인 인권, 반전, 평화를 위해 격랑의 100년을 살아오며 세계의 현실을 응시하고 예술작품으로 증언해온 일본화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이다. 드로잉, 유화, 판화, 영상 작업 등 1950년대부터 제작한 작품 170여 점을 선보인다. 2021년 3월 5일에 촬영한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모습. 사진 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도미야마 다에코는 1921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올해 만 100세가 되는 현역 화가이다. 그녀는 1933년 12세에 만주 지역으로 이주하여 청소년 시기를 보내며 조선,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동화되지 않는 예리한 감수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도미야마가 화가로서 사회 참여적인 작품을 그리도록 이끌었다. 작가는 생애를 통해 소외되거나 배제된 낮은 목소리를 채굴하고 증폭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 시작은 석유 시대로 전환될 무렵의 1950년대 탄광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한국의 6.25 전쟁으로 인한 석탄 호황도 끝나가고 안전사고 등으로 광산 폐쇄가 이어지자 일부 광부들은 브라질로 일자리를 찾아 이민을 떠난다. 작가는 이들을 따라 찾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일어나는 저항 정신 가득한 제3 세계 예술운동을 접한다. 이후 그는 군사독재정권과 대치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 상황에 시선을 돌리게 되며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1970년대에 도미야마는 한국의 지식인들이나 재일조선인 유학생들이 군사정권에 의해 정치범이나 간첩으로 몰리는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범들을 그려 그들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일을 병행했다. 이번 전시는 제국주의 백 년을 관통하며 세계 곳곳의 낮은 목소리들을 시각 이미지로 제작해 온 도미야마 다에코의 증언을 5개의 주제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작가는 전쟁의 시대 20세기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의 증언을 통해 고난을 감당하고 받아내며 견딘다는 것의 힘을 전하려고 한다. <찢긴자들> 시리즈를 통해 강제동원 되어 가혹한 노동을 당한 조선인 노동자의 삶을 담아내고, <바다의 기억> 시리즈를 통해 위안부 여성들의 '한'을 해원 하고자 하였다.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벽 안의 원한. 사진 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찢긴자들> 시리즈 중 특히, 작품 ‘벽안의 원한-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에게 바치다’를 통해서 일본의 억압과 폭력에 의해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옥사한 윤동주의 아픔을 그려냈다. 윤동주가 갇힌 후쿠오카 형무소를 그리면서 이를 윤동주에게 바치는 작품으로 명명하였다.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남태평양의 해저에서. 사진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바다의 기억> 연작 중 ‘남태평양의 해저에서’ 작품에서는 무당을 등장시켜 태평양 바다 아래 잠긴 ‘위안부’ 여성의 ‘한’의 목소리를 듣는 형식으로 그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광주의 피에타. 사진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1980년 5월 항쟁 당시, 도쿄에 있던 도미야마는 광주의 소식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강제 연행되어 노동을 강요당한 조선인 광부들의 억울한 죽음과 발리섬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들의 넋을 위로하는 작품들을 그렸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은 시민들의 손으로 기획된 순회전이나 집회장, 해외의 대학과 교회 등에서 주로 전시되었고 한국의 문화나 상황을 모르는 사람도 심리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미디어 예술’로서도 역할했다. 나아가 90년도에는 고도성장으로 버블경제에 취해 있는 일본과 그런 일본에 일하러 온 태국 여성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작품 속에서 다루었고, 패전 50주년이 되는 1995년 무렵에는 괴뢰국 만주의 역사를 그린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렇게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묻는 여러 작품을 그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도미야마의 작품은 일본의 화단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한편 한국에서도 ‘정식으로’ 작품이 소개된 것은 1995년이 되어서이다. 그전까지는 정치범을 면회한다는 이유로, 군사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한국 입국이 거부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미야마의 저서 『해방의 미학』 또한 판금 조치를 당했다. 다행히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 컬렉션에 도미야마의 광주 연작이 포함되어, 최근 광주를 중심으로 작품 전시가 이루어졌다. 이번 연세 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는 작가의 전 생애에 걸친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번 전시에 대해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전 이사장은 “코로나 19로 한층 단절된 한일 관계속에서 미술작품을 통한 문화교류는 끊어진 인적 교류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기회이다. 도미야마 작가가 예술을 통해 외치고 있는 인권, 평화의 이념은 한일 간 역사적 과제까지 뛰어 넘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는 “청일전쟁부터 이어지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모순의 응집과 그로부터 연유한 고통의 기억, 그를 넘어서는 연대(連帶)의 정동(affection)을 형상화한 예술세계를 이 시대의 ‘듣는 역사’의 귀감으로 삼고 싶다” 라고 전했다. 광복 50년을 맞이한 1995년,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개인전을 한국에서 처음 기획하고 개최했던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980년대 도쿄에서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가슴 뭉클함을 다시 기억한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시대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담은 작품을 서울에서 만난지 4반세기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다.” 라며 개인전에 대한 기대심을 표했다. 한편, 전시와 연계해서 열리는 학술대회는 3월 12일 13시부터 열였다. 여성운동가, 민주화 운동가로 1995년 일본에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던 단체의 세미나에서 인연을 맺은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와 오랜 친분을 이어오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1970년대 미술사 분야에서 영어권 국가에 제일 먼저 도미야마 작가를 알린 하기와라 히로코(오사카부립대학) 명예교수가 기조강연을 했다. 논문 발표는 연세대학교 신지영 교수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미술운동’이라는 현재적 공명판 - 1950년대와 1980년대 강제노동(탄광) 및 위안부 관련 작품, 다큐, 글을 중심으로, 리츠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서윤아 객원 연구원이 도미야마 다에코가 모색한 ‘새로운 예술’이란 무엇인가: 패전 후부터 1960년대까지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다카하시 아즈사 전문연구원이 도미야마가 만난 김지하, 돗쿄대학 다카기와 유아 강사가 ‘도미야마 다에코에 있어서 라틴아메리카 경험’에 대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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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및 친척들과 함께하지 못한 2021년의 설, ‘구정(舊正)’이라 불리우는 설날의 역사를 되새겨 볼 기회추석 때 가족들 송편 빚는 모습(1957).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국민문화신문) 심가원 기자=우리나라 명절에는 음력 1월 1일 설날, 15일의 대보름, 4월의 한식과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流頭), 7월 백중(百中), 8월 추석, 11월 동지(冬至) 등이 있다. 명절은 우리나라의 전통을 이어가고 오랜만에 모인 가족 및 친지 간에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날이다. 이러한 명절 중 가장 중요한 날을 꼽자면 단연코 음력 1월 1일 설날일 것이다. 설날이 되면 우리는 한복을 차려입고 차례를 지낸 뒤,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웃어른에게 세배를 하며, 서로 덕담을 나누고 아이들은 세뱃돈을 받는다. 또한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의 민속놀이를 하며 설날을 맘껏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쁜 설날에도 한민족의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없애기 위한 명목으로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였다. 그중 하나가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는 일이었고, 그때부터 음력설은 오래되어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舊正)’, 양력설은 새롭고 진취적이라는 의미에서 ‘신정(新正)’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제는 ‘구정(舊正)’에 기존에 하던 대로 한복을 입거나 성묘를 하는 등의 행위를 보면 식민지배에 항의하는 운동이라며 탄압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이런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일제가 정한 ‘신정(新正)’은 더더욱 지키지 않고 몰래 음력설을 지내며 저항하였다. 광복 후에도 정부는 국민이 양력설을 지내게 하기 위해 ‘신정(新正)’을 유일한 설날이자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설날에 하는 모든 행사 역시 양력설에 맞춰 하도록 장려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음력설을 지냈고, 음력설과 양력설에 대한 긴 논의 끝에 결국 음력설이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되었다. 올해는 코로나19 위기로 많은 국민들이 설날을 가족 및 친지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 비록 평소처럼 즐거운 설날을 보내지는 못했더라고 하더라도, 설날의 역사를 되새기며 보내는 하루도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저항 정신이 모이고 모여 자리 잡은 지금의 설날은 우리가 지켜야 할 유산이다. 세배하는 모습(1972).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설날 민속놀이 널뛰기를 하는 시민들(1990).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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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때와 땅’지난 2월 9일부터 전시 진행때와 땅 전시전경. 사진출처 : 대구미술관 (대구=국민문화신문) 최정수 기자=대구미술관(관장 최은주)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지역미술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대구시민에게 문화적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대구 근대미술을 조명하는 전시 ‘때와 땅’을 2월 9일(화)부터 5월 30일(일)까지 대구미술관1전시실에서 개최한다.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 대구 근대미술을 망라하는 작가 64인의 140여 점을 출품한다. 또한 서양화를 대구에 도입한 이상정의 전적 발굴 및 공개하고, 근대화가와 예술가들의 교류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10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때와 땅’은 대구에 서양화구가 들어와 미술의 개념이생긴 1920년대부터 한국전쟁의 상흔을 극복하는 1950년대까지의 대구미술을 다루어 대구 근대미술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의 계기를 마련한다. 은행이 있는 거리. 사진출처 : 대구미술관 이번 전시 제목 ‘때와 땅’은 단순히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시대적 고난에 맞서고, 나라를 지키고자 한 의지와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이어나간 근대 예술가들의 정신, 즉 ‘시대정신’과 ‘민족정신’을 상징한다. 대구는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 중 하나로 어느 지역보다 근대 예술과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당시 고난 가운데 꽃피웠던 예술을 살펴본다. 전시는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첫 번째 섹션 ‘예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에서는 대구의 전통 서화가 미술로 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3·1운동의 여운이 남아있던 1920년대 시작된 새로운 미술과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찾아보았다. 두 번째, ‘대구 근대의 색’에서는 서양화 도입 후 대구 최초의 양화 전문 단체인 향토회를 살펴본다. 김용준 등의 평론가들의 주장으로 향토성 논쟁이 일던 1930년 설립된 향토회의 특징과 이를 이끈 화가들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 세 번째, ‘이인성과 이쾌대’에서는 대구가 낳은 한국화단의 대표작가 이인성과 이쾌대의 작품으로 근대미술의 백미를 느껴본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의 조국을 그린 이인성과 1940년대 격동의 조국을 그린 이쾌대의 대표작을 전시한다. 네 번째, ‘회화 전문(專門)에 들다’에서는 근대미술이 성장하게 된 요인으로 사제관계와 교육의 영향을 다룬다. 일본인 교사와 일본 미술의 영향과 전문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미술인들을 담았다. 다섯째 ‘피난지 대구의 예술’에서는 해방과 전쟁의 혼란기에 지켜온 예술정신을 살펴본다. 피난지 대구에서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예술의 혼을 지킨 이들의 행적을 찾아보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첫째는 이전에 있었던 여러 대구근대미술전에서 찾지 못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였다는 것이다. 1920년대 대구에 처음 서양 화구를 들여온 이로 알려진 이상정의 활동과 예술적 성과를 보여준다. 이상정(1896-1947)은 이상화 시인의 형이자 중국군 장교로 복무한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17년과 1919년 사이 계성학교 도화교사로 근무하였고, 1921년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23년 대구미술전람회에 양화 작품을 출품한 화가였으며 1923년에는 대구에 미술연구소 벽동사를 설립하여 미술연구와 교육을 도모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1925년경 중국으로 망명한 후 전각에 심취한 이상정이 자신의 전각작품을 모아 편집한 인보집 2종을 소개한다. 또한 탁월한 문장력을 보여주는 그의 문학적 소양과 미술에 대한 이상을 담은 글을 소개한다. 두 번째는 한국 근대미술의 백미를 보여주는 작가 ‘이인성’(1912-1950)과 ‘이쾌대’(1913-1965)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 수창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이지만 이인성은 1930년대 천재성을 보여주었고, 이쾌대는 1940년대에 절정기를 보여주었다. 이인성과 이쾌대는 굴절된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불의와 고난을 떨치고 극복하려는 시대정신을 작품에 담았다. 또한 작품의 형식과 기법에서 당대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최고의 기량과 원숙함을 보여준다.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 ‘경주의 산곡에서’(1935)은 붉은 흙, 민족을 상징하는 소재의 묘사, 비애의 정서와 같은 민족적 특징을 보여준다. 그가 그린 적토는 조국, 즉 땅에 대한 사랑이고, 땅이 가진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쾌대의 1940년대 작품은 해방공간의 이념갈등과 사회적 혼란을 반영하고 있으나 동시에 이러한 현실 극복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던진다. 그의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0년대 말)은 풍요롭고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서 정면을 응시하며 휘날리는 바람을 맞고 있다. 또한 밝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군상’(1948~1949)시리즈에서는 조국과 민중의 저력을 믿고 미래를 낙관하는 희망을 볼 수 있다. 대구미술관 최은주 관장은 이 전시의 의미에 대해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로서 대구가 지닌 문화적 자양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전시로 사회를 생각하는 대구근대미술의 정신을 느낄 수 있고, 대구 시민들이 대구 예술에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대구에 선보이기 힘들었던 이인성과 이쾌대의 최고 걸작을 한자리에 모아 시민들과 관람객에게 큰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은 대구시민을위해 근대 걸작 이인성의 ‘가을어느날’(1934)과 ‘경주의 산곡에서’(1935) 두 점을 함께 대여해 주었고, 이쾌대 유족은 대작 ‘군상Ⅰ’(1948)과 ‘군상Ⅱ’(1948) 두 점이 전시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또한 서울, 부산, 대구, 안동 등 전국의 근대미술 소장자들의 도움으로 140여 점의 작품을 모아 전시한다. 대구 근대미술의 최대 규모의 작품과 풍성한 아카이브로 시민에게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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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어교재 ‘수화’ 등 3건 문화재 등록 예고연희전문학교의 언더우드 교장이 건립했던 주택인「연세대학교 언더우드가기념관」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2월 3일 제1회 ’한국수어의 날’을 맞아「한국수어교재 『수화』」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 또한, 1910년대 실시된 토지조사와 관련된 유물인 「고성 구 간성기선점 반석」과 연희전문학교의 언더우드 교장이 건립했던 주택인「연세대학교 언더우드가기념관」을 같이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 예고기간을 마친 일제강점기 당시 불교 관련 서적인「대각교의식(大覺敎儀式)」은 문화재로 등록한다. 참고로, ‘한국수어의 날’은 농인들의 공용어로서 한국수어의 사용 권리를 신장하고 한국수어에 대한 국민 인식을 고취하기 위해 2월 3일로 지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이번에 등록 예고되는 「한국수어교재 『수화』」는 1963년 서울농아학교(現국립서울농학교)의 교장, 교사들이 수어를 체계화하고 한글로 설명한 교재로, 문법적·인위적 수어가 아닌 농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관용적인 수어를 정리한 내용이다. 한국 청각장애인들의 언어생활을 기록했다는 점과 이들이 교육·사회 등 각종 영역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이바지했다는 점 등에서 사회·역사적 가치와 희귀성이 높아 문화재 가치가 크다. 「고성 구 간성기선점 반석」은 1910년대 국토 전역에서 실시된 토지조사사업과 관련하여 삼각측량의 기준이 되었던 유물이다. 당시 국토 전역을 23개의 삼각망으로 구획하고 정확한 삼각측량을 위해 전국에 13개소(남한 6개소)의 기선을 설치하여 각 기선 사이의 거리를 정밀하게 실측하였는데, 간성기선은 강원도 지방의 지형, 거리 등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본 유물은 근대 측량 기법을 통해 전국 면적, 지형 등을 계량한 우리나라 측량의 기틀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로, 역사·학술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가기념관」은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제3대 교장인 H.H. Underwood(한국명: 원한경) 박사가 1927년에 거주 목적으로 건립한 주택이다. 연세대학교의 역사적 흔적들이 건물 곳곳에 남아 있으며, 독특한 건축형태와 함께 근대기 서양 주택양식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면에서 보존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번에 등록 예고한「한국수어교재 『수화』」, 「고성 구 간성기선점 반석」,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가기념관」등 3건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될 예정이다. 한편, 국가등록문화재 제803호가 된 「대각교의식(大覺敎儀式)」은 3·1운동에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던 백용성(白龍城, 1864~1940)이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대각교’를 창립하고 저술한 서적이다. 「대각교의식(大覺敎儀式)」은 일제강점기 불교계에서 행해지던 복잡한 각종 의식(예불·향례·혼례·상례 등)을 실용적으로 간소화하고, 왕생가, 권세가 등 찬불가 7편을 수록하고 있다. 본 유물은 불교 의식문을 한글로 보급하여 일제강점기 불교의 대중화와 개혁을 꾀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한 점에서 역사·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자료로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대각교의식(大覺敎儀式)」을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협력하여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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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발간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사진출처 :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소장 유재은)는 일제강점기 농촌수탈과 해방 후 농촌 보건의 역사가 남아있는 전라북도 정읍시 화호리에서 실시한 학술조사 결과를 담은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조선을 영구적으로 식민지화하기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필두로 농업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였으며, 이 시기 화호리는 정책 초기 이주지로 선정되면서 다수의 일본인이 이주하였고 대규모 농장이 개설되었다. 개간된 화호리의 많은 농지와 대지 소유권은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 등 많은 일본인에게 이전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영농이었던 토착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해방 후에는 구마모토 리헤이 농장 소속 의사(醫師)였던 쌍천 이영춘 박사가 열악한 농촌 보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지 않고 농장 시설물을 활용하여 입원실과 내과 등 5과 진료과목을 갖춘 화호중앙병원을 설립하였으며 현재도 이런 흔적이 남아있다. 이번에 발간한 보고서에는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을 중심으로 한 화호리의 조사연구 성과를 수록하였다. 먼저 ▲ ‘인문환경 고찰’에서는 식민지 화호리의 일본인 지주들, 정읍 화호리의 식민지 기억과 경관을 살펴보았다. ▲ ‘문헌자료 고찰’에서는 신문기사, 지도, 사진, 공문서 등을 통해 당시 화호리 역사와 인문지리를 고증하였으며, ▲ ‘현장조사’에서는 건축물 현황과 부재 수종조사, 식생조사, 석재 산지조사, 디지털 기록을 시도하여 근현대 유형자산에 대한 종합적 조사·연구ㆍ기록 성과를 수록하였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 성과를 더 쉽게 이해하고, 교육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화호리에 남아있는 적산가옥 6동과 해방 이후 공간변화 등을 디지털 영상자료로도 제작하였으며, 이 영상을 보고서에 정보무늬(QR코드)로 삽입하여 스마트폰 등 휴대기기로 재생하여 볼 수 있게 했다. 이번에 발간한 보고서는 국공립 도서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 배포되며, 문화재청 누리집(http://www.cha.go.kr)과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누리집(http://www.nrich.go.kr/wanju)에 공개하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고대부터 근대까지 전라북도에 산재한 건축유산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그 결과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