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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추념식 서울현충원서 거행…"고귀한 희생 잊지말자"(종합)현충탑 향하는 시민들(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이 끝난 후 시민들이 헌화를 위해 현충탑을 향하고 있다. 2016.6.6 mon@yna.co.kr朴대통령 "국민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힘합쳐야 분단 역사 마감"6·25 참전용사 2명에 국가유공자 증서 수여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이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됐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추념식에는 6·25 참전용사와 전몰군경 유족을 포함한 국가유공자, 각계 주요 인사, 시민, 학생 등 1만여명이 참석했다.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와 새누리당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등 여야 정치권 인사도 자리를 함께했다. 추념식은 오전 10시 정각 전국적으로 울린 사이렌 소리에 맞춘 묵념에 이어 헌화·분향, 추모영상 상영, 추념사, 추모 헌시 낭송, 추념 공연, '현충의 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됐다.눈물 닦는 참석자(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참석자가 추모헌시를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2016.6.6 mon@yna.co.kr 1분 동안 계속된 묵념 시간에는 세종로 사거리를 비롯한 서울 18곳 주요 도로를 포함해 전국 도로 225곳에서 차량이 일시 정차함으로써 전국민적인 추모 분위기를 조성했다.박근혜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국민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힘을 합쳐야만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며 "국가안보에는 여야, 지역, 세대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이번 추념식에서는 본인이 국가유공자인지 몰랐으나 정부가 찾아낸 6·25 참전용사인 사현동(85) 씨와 이순봉(86) 씨가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이들은 6·25 전쟁 당시 각각 경기도 포천 지역 전투와 강원도 횡성 지역 전투에서 적과 싸웠다. 고(故) 김낙현 씨를 비롯한 6·25 참전용사 3명의 유족도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박 대통령은 창극을 세계에 널리 알린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비롯한 국민대표 6명에게는 국가유공자의 희생을 기리는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를 직접 달아줬다.제61회 현충일 추념식(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mon@yna.co.kr배우 이서진 씨는 2014년 보훈문예물 공모전 수상작인 추모헌시 '무궁화'를 낭송했고 세대별 연합 합창단은 가수 거미의 선창으로 추모가 '우리는 그대들을 기억합니다'를 합창했다. 추념식은 참석자들의 '현충의 노래' 제창으로 끝을 맺었다.전국 곳곳에서도 현충일 추념식이 열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했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국가유공자를 포함한 3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념식이 거행됐다.국가보훈처는 "올해 추념식은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그들의 호국정신을 본받아 이 시대의 호국정신으로 계승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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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유족 보상 난항…은성PSD "줄 돈이 없다"'안전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4일 오후 서울 구의역 4번 출구 인근에서 알바노조 관계자들이 '전국알바행동'을 개최, 안전하게 일할 권리 등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2016.6.4 pdj6635@yna.co.kr우형찬 시의원 "메트로, 은성PSD에 입찰 특혜 줬다"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구의역 스크린도어 작업 중 사망한 김모(19)씨 유족에 대한 보상 협의가 난항인 것으로 알려졌다.서울시의회 우형찬(더불어민주 양천3) 의원은 5일 은성PSD가 스크린도어 정비 중 사망한 김씨 유족에게 위로금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우 의원은 "은성PSD가 김씨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서는 협조하고 있지만 도의적 책임과 관련한 위로금은 '줄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시와 서울메트로가 모금운동을 하거나, 서울메트로가 지급한 뒤 은성PSD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서울메트로가 직접 김씨에게 위로금을 지급할 근거가 없다. 은성PSD에 구상권을 청구해서 받을 수 있는 근거 역시 없다.박 시장이 지난달 31일 유족을 만나 고인에 대한 예우와 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김씨 유족은 사고 자체로 인한 충격과 슬픔뿐 아니라 사고 후에도 힘든 상황을 겪어야 했다.사고 당일 서울메트로가 브리핑을 하며 김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해 유족은 크게 반발했다.이들은 서울메트로가 김씨의 잘못은 없다며 사과한 뒤에야 사고 발생 나흘 만인 1일 오후 빈소를 차렸다. 그러나 아직 장례 절차를 시작하지 않았고 발인 날짜는 미정이다. 빈소는 일단 분향소로 운영 중이다.은성PSD는 2013년 성수역에서 역시 스크린도어 사고로 직원이 사망했을 때도 충분히 보상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우 의원은 "성수역 사고 유족이 위로금과 관련해 은성PSD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해 오히려 절반이 깎였다"며 "보험금도 본인 과실이 있다고 해서 많이 받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제 은성PSD는 서울메트로와 계약이 끝나니 거리낄 것이 없다는 태도"라고 질타했다.3일 시의회 교통위 특별업무보고에서도 은성PSD 대표는 6월 말 계약이 만료되면 더이상 스크린도어 정비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오히려 서울시에서 8월 초 자회사가 출범하기 전까지 1개월간 공백기에 은성PSD에 정비용역 계약을 연장하고 싶다고 말했다.우 의원은 "서울메트로는 자사 출신이 대표로 있는 은성PSD에 상당한 특혜를 줘왔다"고 성토했다. 서울메트로는 용역업체 입찰시 서울메트로 사업을 한 실적이 있는 업체에 가점을 줬고, 그 덕분에 은성PSD가 계약을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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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포스트잇 추모' 물결…"아가, 밥 먹으렴"전날 차려진 빈소는 차분…조문객 올 때마다 모친 눈물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안전문 사망사고가 일어난 지 닷새째인 2일 사고 현장과 유족이 머무는 빈소에는 여전히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이날 오전까지 광진구 구의역 내선순환 방면 승강장에는 1천개를 훌쩍 넘는 추모 포스트잇(접착식 메모지)이 붙었다. 사고가 일어난 9-4번 탑승구 주변이 빼곡해지자 양옆으로 뻗어 나가 9-1번부터 10-1번까지 유리판을 가득 채웠다.시민들은 '죄송합니다', '네 잘못 아니야',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어' 등 저마다 추모 글귀로 숨진 김모(19)씨 넋을 달랬다. '그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안전에서도 비정규직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냐', '정규직 꿈꾸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 등 사회 구조 문제를 비판한 이들도 많았다.9-4번 탑승구 옆에는 국화꽃 수십 송이와 함께 각종 과자, 음료, 컵라면, 즉석밥, 고인이 좋아했다는 갈릭파이 등이 놓였다.서울메트로가 아래층 대합실에 마련한 추모공간에도 시민들이 놓은 포스트잇과 선물이 가득했다. 임시 게시판을 가득 메운 포스트잇은 구의역 고객서비스센터 창문까지 모두 가렸고, 100송이 넘는 국화꽃과 음식이 테이블에 쌓였다. '아가, 라면 먹지 말고 고깃국에 밥 한 그릇 말아먹어라'라는 포스트잇과 함께 밥과 국 한 그릇씩을 정갈하게 놓고 간 이도 있었다. 지나던 시민들은 승강장과 대합실의 추모공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유심히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는가 하면 즉흥적으로 참여하는 이들도 있었다.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 화장실 살인 사건에 이어 구의역 사고에도 이어지는 '포스트잇 추모' 열기에 대해 "'나도 저런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추모와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장 교수는 "국가가 공공 영역을 자본에 맡길수록 개인의 위험은 높아진다"면서 "외주 노동자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처럼 위험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이런 추모 행위로 서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뭉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구의역에서 약 2㎞ 떨어진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유족이 전날부터 빈소를 차리고 차분히 조문객을 맞았다.오전 시간이라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고인의 친구 몇 명이 함께 방문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빈소를 찾은 일반 시민도 있었다.고인의 이모는 "어제는 친구랑 선생님들이 50명 가까이 왔었고, 퇴근길이나 출근길에 들린 일반 시민도 많았다"면서 "'아들이 에어컨 설치 일하는데 이번 사고 보고 남 일 같지 않아서 왔다'는 아주머니도 계셨다"고 말했다.고인의 모친은 조문객이 올 때마다 손을 꼭 잡고 감사를 표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말없이 옆을 지키는 고인의 부친도 이따금 눈물을 찍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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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희생자 첫 언급 '성의 표시'처음엔 '모든 무고한 희생자'…한국내 민감기류 감안해 언급 결정한국인 희생자 2만여명 추산속, 오바마 "수천명" 언급해 논란 여지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시간으로 27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원폭 피폭지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인 희생자'를 직접 언급한 것은 외교적 측면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게 들여다볼 대목이다.희생자를 열거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포함된 것이 아니라, 한·미 양국이 막후에서 외교적 교섭을 거친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심사숙고 끝에 '성의'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한국인 원폭 피해자 숫자가 실제로는 2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수천 명'이라고 언급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헌화한 뒤 행한 약 17분간의 연설에서 "우리는 10만 명 이상의 일본인 남성과 여성, 아이들, 수천 명의 한국인, 십여 명의 미국인 포로들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피해 희생자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전처럼 일본과 미국인 희생자를 거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을 특정하게 거론한 것은 그만큼 한국인 피해자가 컸던 사실을 미국 정부가 분명히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원폭피해자 문제 논의에 있어 나름대로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사실 백악관 측이 당초 연설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모든 무고한 희생자들'(all innocent)이라는 표현이 검토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주변국 가운데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대만인 등도 적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한국인만을 `특정'하는데 따른 부담감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한국과 일본 내에 있는 희생자 유족과 시민단체, 언론에서 한국인 희생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이어 정부도 대미 외교채널을 통해 나름 역할을 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무고하게 희생된 한국인 희생자 숫자가 일본인 다음으로 많았던데다가, 이번 사안에 대한 한국 사회 내부의 기류가 민감하게 흘러가면서 뒤늦게나마 백악관도 한국인 희생자 문제를 거론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사안을 자칫 소홀히 다룰 경우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국인들의 정서를 또다시 자극할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에 대한 아베 신조 정권의 태도에 강하게 비판해온 한국인들이 이번에는 미국이 과거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불만을 공개 표출할 가능성이 있고 그 경우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나아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고 대(對) 중국 견제구도를 만들기 위한 한·미·일 3각 안보협력 체제가 예기치 않게 와해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전략적 고려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최종 결정권을 쥔 오바마 대통령은 나름대로 고민을 거친 이후에 한국인 희생자를 언급하는 선에서 성의를 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희생자 숫자를 '수천 명'(thousands of Koreans)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논란을 낳고 있다. 일단 미국 당국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thousands'가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을 포괄하는 '수많은'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외교소식통들이 전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개인적으로 접촉한 미국 당국자들은 분명히 한국인 원폭 피해자가 2만여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며 "thousands라는 표현에는 만 단위가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미국 당국자들의 설명"이라고 소개했다.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일본인 희생자 숫자를 '10만 명 이상'(over 100,000), 미국인 포로 희생자를 '십여 명'(a dozen)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을 감안해볼 때 thousands라는 표현은 단순히 수효가 많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수천 명이라는 분명한 인식 속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에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 측의 논리와 입장이 투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장소인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에 있는 한국인 위령비를 찾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연설 이후 '짧은 투어'가 예고돼 있던 데다가 동선이 복잡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설명이지만,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과 위령비가 갖는 상징성 등을 감안해볼 때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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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묻지마살인' 이틀전 범행결심…"후회? 잘 모르겠다"(종합2보)현장 검증 전 한마디(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강남 '묻지마 살인' 사건 피의자 김모씨가 24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인근 주점 화장실에서 범행 장면을 재연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6.5.24 pdj6635@yna.co.kr오늘 검찰 송치…거듭 묻자 뒤늦게 후회 심경 시사하기도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강남역 인근 주점 건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묻지마 살인'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됐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피의자 김모(34)씨 수사를 마무리하고 살인 혐의를 적용해 26일 오전 기소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경찰은 수사결과 브리핑을 통해 김씨가 사건 이틀 전 범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예전에 일을 한 적이 있어 지리가 익숙하고 새벽에 사람들의 통행이 드물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주점 건물 화장실을 범행장소로 택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범행 전날인 16일 오후 5시 40분 자신이 일하던 강남역 부근 식당에 "볼일이 있다"며 조퇴하면서 흉기를 가지고 나왔고, 가출 후 지낸 적이 있는 화곡동으로 이동해 건물 화장실에서 3시간을 보낸 뒤 다시 강남역으로 돌아와 17일 새벽 범행했다. 범행 당시 숨진 A씨보다 먼저 화장실에 들어왔던 6명의 남성을 공격하지 않은 것에 대해 경찰은 "김씨는 애초 범행 대상을 '불상의 여성'으로 특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6차례 입원한 전력이 있는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인 김씨가 여성들에게서 괴롭힘 당한다는 망상 때문에 범행한 것으로, 전형적인 '묻지마범죄'라고 결론 내렸다. 고개숙인 강남 살인사건 범인(서울=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강남의 한 주점 화장실에서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 김 모 씨가 현장검증을 받기 위해 24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16.5.24 chc@yna.co.kr김씨는 26일 오전 8시 30분께 경찰서를 떠나 검찰로 향하면서 범행을 후회하는지를 묻자 "그런 질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재차 후회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에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저도 인간이니까 나름대로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후회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당초 김씨는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 하다가 질문이 거듭 이어지자 간신히 입을 열었다. 김씨는 "피해자에 대한 원한이나 감정이 없고, 제 범행으로 사망한 나이 어린 피해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불거진 여성혐오 논란에 대해서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저 말고도 여러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면서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검찰로 떠났다. 김씨는 17일 오전 1시께 강남역 근처에 있는 서초동 주점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A(23·여)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경찰은 김씨를 검거했을 때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압수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 흉기와 그가 입은 바지에 묻은 혈액이 A씨 것임을 확인했다. 사건 당일 경찰은 김씨의 유일한 진술로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해 범행했다"는 내용을 공개해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 논란으로 확산했다. 그러나 정작 경찰은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다.경찰은 여성혐오범죄 논란이 확산하자 수사가 끝나면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수사 책임자인 한증섭 서초서 형사과장은 이날 수사결과 최종 브리핑에서 "여성혐오 범죄는 학술·전문적인 부분도 있고 처음 접해보는 용어라 정확하게 입장을 표명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대답을 피했다. 경찰은 피해자 유가족에게 심리적·경제적 지원을 지속할 예정이다. 현재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으며, 범죄피해자 지원센터를 통해 장례비를 지원했다. 앞으로 유족 구조금도 지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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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님∼행진곡' 셀프 제창…정의화 정진석도 동참'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참석자들(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고 있다.5·18 기념식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태극기 흔들며 '제창'황총리·현기환 정무수석은 일어선 채 입 다물고 무대만 응시 (광주=연합뉴스) 박수윤 서혜림 류미나 기자 =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로 정부와 야권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제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거행됐다.이날 화창한 날씨 속에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현역 의원들과 당선인들이 대부분 참석한 것을 비롯해 정·관계 주요 인사가 대거 자리했다.가장 앞줄에 앉은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와 둘째 줄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웃으며 서로 인사하는 등 두 야당은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정치 본문배너 그러나 전날 새누리당 전국위원회 개최 무산으로 비상대책위원장 추인이 좌절된 정진석 원내대표는 유족으로 보이는 참석자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5ㆍ18 유족 항의 받는 정진석(광주=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ㆍ18 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의 항의를 받고 있다.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이자 최근 논란의 중심인 마지막 순서 '님을 위한 행진곡' 합창에서는 대부분 참석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는 각각 일어서서 오른팔로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제창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태극기를 든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제창에 동참했다.이시종 충북도지사와 안희정 충남도지사,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과 정의화 국회의장과 이석현 국회부의장,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등도 마찬가지였다.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태극기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 주먹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5ㆍ18 기념식장의 여야(광주=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ㆍ18 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여야 대표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화 국회의장,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천정배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그러나 황교안 총리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일어서서 가만히 무대 위를 바라볼 뿐 태극기를 흔들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진 않았다. 이날 행사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방침에 대한 야권 인사의 항의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문재인 전 대표는 행사 시작 전 유족들을 만나 "오늘은 당당하게 부르고요, 다음에 저희가 지정곡으로 하겠습니다"라고 했고, 안철수 대표도 입장하면서 "님을 위한 행진곡은 사회통합을 위해 제창돼야 한다"고 밝혔다.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는 자리에 앉아 "임을 위한 행진곡 지정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침묵의 시위를 벌였다. 5·18 기념식장 떠나는 박승춘(광주=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려다 유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발길을 돌려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행사가 끝나자 "말이 안 되는 행사잖아요 이게 무슨 광주민주화운동 행사에요"라며 외쳤다.박지원 원내대표는 행사 시작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승춘 보훈처장을 '보안처장'으로 잘못 말했다가 곧바로 정정했고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분자'라는 표현도 곧바로 '사람'으로 고치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박승춘 보훈처장은 5·18 유족의 반발 속에 결국 자리에 앉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기념식이 끝난 후 "5·18 민주화운동이 그야말로 화해와 용서, 국민화합, 국민통합의 정신으로 승화되길 진심으로 빌고 간다"며 민주묘지에 있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합동묘 앞에 무릎 꿇고 비석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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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지진때 사망 韓人명단 日공문서에서 발견…학살된 사람 포함일본인 대학교수, 도쿄 지진 희생자 위령시설 창고서 찾아내 정부 공식 확인 피해자·과거 증언 희생자 신원과 일치 '주목'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1923년 간토(關東·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사람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이 포함된 사망자 명부가 일본 공식문서에서 발견됐다. 이 71명의 명부에는 한국 정부가 지난해 말 공식 확인한 간토 조선인 대학살사건 피해자 중 일부와 당시 학살 증언 내용과 일치하는 조선인 이름이 포함돼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이는 다카노 히로야스(高野宏康) 홋카이도 오타루 상과대학 교수와 조선인 학살의 진상 규명에 반평생을 바친 일본인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씨, 오충공(吳充功) 다큐멘터리 감독 등에 의해 9일 공개됐다. 이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지진 이듬해인 1924년부터 일본 도쿄시 진재구호사무국이 신고를 받아 작성한 피해자 기록 카드인 '지진재앙 임시사망자명부'(震災假靈名簿 震災死亡者調査表·진재가령명부 진재사망자조사표)에 조선인 기록이 포함된 것을 2008년 다카노 교수가 도쿄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 공원 도쿄도위령당의 납골당 창고에서 발견했다. 다카노 교수는 당시 도쿄도위령협회가 보관하는 일본인 희생자 카드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조선인 카드가 섞여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니시자키씨가 조선인 명부를 꾸준히 정리했다.5만장에 달하는 사망자명부 조사표 가운데 니시자키씨가 현재까지 추려낸 조선인은 71명이다. 중국인 등 외국인까지 합치면 모두 100여 명이 된다. 조사가 더 이뤄지면 조선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사망자 명부는 일본 정부의 지시를 받은 도쿄시 진재구호사무국이 보상금을 주기 위해 피해자 신고를 받아 작성한 것이다. 사망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본적, 사망주소 등이 적혀 있다.특히,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발견된 1950년대 한국 정부가 작성한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피해자 명부 중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지원위원회)'가 공식 확인한 피해자도 일부 포함됐다. 한국과 일본의 기록에서 모두 확인된 학살 추정자는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의 박덕수, 박명수씨 등이다. 이외에도 간토 조선인 대학살 때 도쿄 고토(江東)구 가메이도(龜戶) 경찰서에서 자행된 학살을 기록한 증언에 나오는 희생자인 제주도 대정읍 인성리 출신의 조묘송(趙卯松·1891∼1923·당시 32세)씨 가족도 포함됐다.당시 증언과 이후 이뤄진 연합뉴스 추적조사(2014년 1월 21일자 '91년 전 관동조선인대학살 희생자 유족 찾았다' 제하 보도)를 통해 조씨 일가족 5명이 몰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자료에는 조묘송씨와 그의 아내 문무연(文戊連·1885∼1923·38세), 그의 동생 조정소(趙正昭·1900∼1923·23세) 3명의 이름만 포함됐다.증언은 '일본 군인들이 일제히 칼을 빼 조선인 83명을 한꺼번에 죽였으며 이때 임신한 부인도 한 사람 있었는데 그 부인의 배를 가를 때 배에서 어린 아기가 나왔다. 그 어린 아기까지 찔러 죽였다'고 전하고 있다. 만삭의 상태에서 학살당한 부인은 바로 조묘송의 아내 문씨였다. 조묘송씨 가족 사망자명부 (제주=연합뉴스) 다카노 교수와 니시자키씨가 제공한 '진재사망자조사표'. 왼쪽부터 조묘송, 조정소, 문무연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다카노 히로야스·니시자키 마사오 제공]제주 대정읍 민적부와 일본 사망자 명부 ((제주=연합뉴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기록사랑마을 기록물 전시관에 소장된 대정읍 안성리 민적부에 당시 희생된 묘송, 정소, 정화(사진 위의 오른쪽부터 첫째·세번째·네번째)씨의 이름에 사망을 의미하는 두줄이 그어져 있다. 아래 사진은 다카노 교수와 니시자키씨가 제공한 '진재사망자조사표'. 조묘송의 이름이 적혀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카노 히로야스·니시자키 마사오 제공]정혜경 전 지원위원회 조사과장은 "당시 지진이 발생했던 곳은 도쿄 중심부였고 조선인은 주로 도쿄 외곽에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대량 학살됐기 때문에 조선인의 경우 순수 지진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정 과장은 "일본 정부에서 보상금을 주겠다고 신고를 받았으나 조선인의 경우 학살로 인한 두려움이 커 많은 사람이 신고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성주현 청암대학교 교수는 "자료를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이 명부에 지진으로 희생된 조선인과 학살된 조선인이 섞여 있을 수 있다"며 "자료에 대한 좀 더 면밀한 분석과 조사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기록이 발견된 요코아미초 공원의 도쿄도위령당은 1923년 간토 대지진과 1945년 연합군에 의한 도쿄 대공습 때 일본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납골당으로 일본인 희생자 수만명의 유골이 묻혀 있다.이곳은 1920년대 육군피복공장과 인근에 조선인 노동자 밀집지가 있던 지역으로, 간토대지진 당시 불길이 번지면서 일본 주민과 이 일대로 피난해 온 조선인 노동자 등 3만8천여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곳이다.요코아미초 공원 한쪽에는 간토대지진 때 자행된 조선인 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있다.다카노 교수와 니시자키씨는 "진재사망자조사 카드가 있다는 것은 조씨 가족의 유골 역시 이 일대에 묻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며 "한국의 유족들이 위령당 방문과 기록 열람을 원한다면 일본에서도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록이 2008년에 발견됐으나 한일 양국 간의 문제 등으로 인해 이전에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며 "중요한 것은 증언에 나오는 희생자의 이름과 본적이 일치하는 사망자 기록이 나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조선인 대학살을 주제로 세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재일동포 오 감독은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이 일대와 다른 지역에서 학살된 한국인 시신이 한꺼번에 이곳으로 옮겨져 묻혔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며 "위원회가 지난해 해산됐지만 본격적인 추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와 요코하마 등 관동지방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10만5천명 이상(행방불명자 포함)이 사망했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조작되고 일본 사회의 내부 불만이 조선인에게 향하면서 도쿄, 지바(千葉)현, 가나가와(神奈川) 등 관동 일대에서 재일동포가 일본군과 경찰, 자경단 등에 의해 대량 학살됐다. 당시 살해된 한국인은 6천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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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억울함 풀어달라" 제주 중국인 피살여성 유족 애원(종합)'변사자 여성 신원 찾는다''변사자 여성 신원 찾는다' [연합뉴스 자료사진]제주서 돈 벌어 가족에 송금…경찰, 범인 검거 난항 (서귀포=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제주 산간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중국인 여성피살사건 수사가 뚜렷한 해결 단서를 찾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피해 여성인 A(23)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지 11일이 지난 24일에도 경찰은 A씨가 한국에 입국, 숨지기 직전까지 행적을 분석하고 있다.용의자로 경찰에 체포까지 됐던 한국인 남성은 용의 선상에서 멀어지는 등 현재까지 중국인 여성 살해범을 압축하지 못해 사건은 의문에 빠졌다. A씨의 유족은 수사진에 전화를 걸어 "범인을 꼭 잡아서 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애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경찰 관계자는 "유족들은 '딸이 성인이 되면서부터 따로 살았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워 제주도 간 것으로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경제적 어려운 상황 속에도 A씨는 제주에서 짧은 기간 일을 해 번 돈 일부를 가족에게 송금한 것으로 경찰의 관련 수사에서 밝혀졌다.이 관계자는 "피해 여성의 금전 거래와 사생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며 "범인을 잡아달라는 이야기와 수사상 필요한 경찰의 질문에 답하는 것 외에는 피해자의 성품 등에 대한 대화도 없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경찰이 유족과 연락했을 때는 중국총영사관으로부터 딸의 사망사실을 통보받고 며칠이 지났을 때이기 때문에 유족들은 담담하게 전화 조사에 응했다"고 덧붙였다.타지에서 불법 체류 신분으로 힘들게 일하던 A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을 때부터 현재 수사 상황까지 되짚어봤다. 유류품 찾는 경찰시신 발견현장서 유류품 찾는 경찰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사리 채취객 부패 여성시신 발견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지난 13일 법정 공휴일을 맞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들녘에는 고사리를 채취하는 봄 나들이객들로 붐볐다.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간간이 빗줄기도 이어졌지만 들녘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즐거움도 잠시 정오께 보리밭을 뒤지며 고사리를 찾던 한 남성이 옆 구렁에 부패한 시신을 발견하면서 일순간 공포가 번졌다.시신은 나지막한 나무 아래에 머리 부위가 풀과 흙에 덮여 엎드려 누운 모습이었다. 한 눈에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게 방치돼 있었다.부패가 상당 기간 진행된 듯 시신의 신원을 육안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다.경찰 조사결과 시신의 키는 163㎝가량이고 밝은 갈색이나 노란색의 고수머리였다. 상의는 노란색과 청록색 패턴 줄무늬가 있는 스웨터, 하의는 중국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청색 치마와 검정 레깅스(쫄바지)를 입고 있었다.신발은 신발 바닥에 'Design By Korea'라고 적혀 있고 밑창 주변에 삼각뿔 모양의 징이 박혀 있는 검은색 반 부츠(235㎜)를 신고 있었다.시신이 발견된 곳은 지목이 임야로, 듬성듬성 나무들이 있는 야초지였다. 제주 서부권 연결도로인 평화로에서 직선으로 100m가량 떨어졌으며,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넓이의 시멘트길이 나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경찰, 신속 신원 파악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당일과 다음날인 14일 이틀간 시신 발견 지점에서 반경 5㎞ 구간에 경찰력 80여명을 동원, 혹시 있을 수 있는 유류품을 수색했다.동시에 1차 검안과 부검을 진행했다. 경찰 부검 결과, 이 여성은 목과 가슴에 모두 6차례나 흉기에 찔린 것으로 드러났다.시신 발견 현장에서 별다른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데다 부패하지 않고 남은 약간의 지문에 대한 대조에서도 한국인 실종자로 확인되지 않았다.신원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자 경찰은 외국인의 시신일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시작했다. 옷차림 등 인상착의도 중국인에 가까웠다.피해 여성의 인상착의를 담은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했다.경찰은 "주변에 거주 중이거나 취업 중인 여성이 보이지 않거나 갑자기 고향이나 중국 등에 일이 있어서 갔다는 말을 들었을 경우 꼭 신고 바란다"고 외국인 관련 기관과 단체, 업체에 당부하기도 했다.신원에 대한 단서는 신속하게 찾을 수 있었다.대부분 부패한 피해 여성의 시신에서 유독 왼손 지문만은 숨진 후 최장 4개월 내외의 기간에도 끝까지 완전히 부패하지 않았다.육안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1㎝의 작은 지문이 왼손 끝에서 나타난 것이다.경찰은 곧바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있는 출입국 기록상의 외국인 지문을 일일이 대조했다.15일 밤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해 이 여성이 중국 남부지방 출신의 한족인 A씨임을 통보받았다.부패하지 않고 남은 지문이 이 여성이 입국 당시 찍은 지문의 모양과 일치한 것이었다.이틀여 만에 부패한 시신이 외국인임을 밝혀낸 경찰은 또 이 여성을 안다는 제보자까지 확보했다.피해 여성은 중국 남부 출신의 23세 여성으로 지난해 10월 7일 무사증으로 제주에 입국했다.이후 체류 기간인 30일을 넘기도록 출국하지 않아 불법 체류 신분으로 제주에 지내고 있었다. 경찰은 탐문을 통해 이 여성이 지난해 12월 제주시 내 한 주점에서 일했던 것도 파악했다.◇ 범인 검거에 어려움 겪는 경찰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 통신 기록과 주점 관계자 등의 진술을 토대로 A씨가 지난해 연말 연락이 끊긴 것을 파악했다.경찰은 피해 여성이 다닌 주점 단골이며 연락 두절 시기까지 심야 시간에 만나는 등 연락을 취해 온 한국인 남성 B씨를 18일 체포하기에 이르렀다.피해 여성의 신원과 일부 행적이 밝혀지면서 통신기록 등을 통해 이 남성을 찾은 것이다.경찰은 B씨가 피해 여성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으로 안부를 묻고 야간에 개별적으로 만나는 등 여러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고 판단, 사건 관련성을 추궁했다.B씨는 피해 여성과의 관계와 사건 전후의 행적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데다, 범죄의 연관성에 대한 증거가 부족했다. 경찰은 결국 20일 0시 그를 귀가시켰다.경찰은 B씨의 차량과 옷, 컴퓨터 등에 대한 감정 결과를 토대로 이 남성의 연관성에 대한 수사는 계속 이어가고 있다.용의자가 아니더라도 사건을 풀 단서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수사 인력은 24일 현재 서귀포경찰과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제주동부·서부경찰 형사 등을 더 증원했다.제주시 아라1동 제주지방경찰학교에 전담팀도 마련했다.경찰은 남녀 간 애정 문제와 채무 관계, 유흥업계 내부 문제 등 다양한 범행 동기를 놓고 다각적으로 수사하고 있다.A씨의 정확한 사망 시기를 밝히려고 시신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A씨의 옷가지 등에서도 다른 이의 DNA가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피해 여성이 한국에서 개통한 휴대전화가 다른 사람 명의의 별정 통신사의 것이어서 기록을 살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며 "마지막으로 끊긴 위치를 파악, 주변에 탐문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시신이 발견된 평화로 주변 폐쇄 회로(CC) TV의 녹화 화면 등 여러 가지 자료를 분석하며 용의자를 특정할만한 자료를 축적하는 중"이라며 "반드시 범인을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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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다롄 안중근의사 매장추정지에 암장한 분묘 수백기(다롄=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안중근 의사가 일제에 의해 순국한 뒤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야산은 수십 년 동안 곳곳에 암장(暗葬)한 개인분묘로 가득했다.안 의사 순국일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다롄 뤼순(旅順)구의 뤼순감옥박물관 북쪽 예전 '마잉허우'(馬營後)로 불린 야산을 답사했다.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추적해온 연구자와 시민단체가 유해 매장 가능성이 크다고 공통으로 지목하는 곳이다. 야산을 뒤진 끝에 지난 2001년 다롄시문물관리위원회가 옛 뤼순 감옥 묘지터에 세운 비석을 발견했다.일제는 1907년부터 1945년까지 이 묘지 터에 길이 90~100m, 넓이 1m, 깊이 2m 정도의 도랑을 5개 파서 사형을 집행하거나 옥사한 수감자들의 시신을 매장했다.일제 패망 이후 방치되던 감옥묘지에 인근 주민들이 개인분묘를 설치하면서 현재 수백여기(基)가 난립했고 상당수는 허물어졌다.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도랑이 있던 자리엔 나무들이 자라나 원형을 찾기도 힘든 상태이다.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이 소장한 사형보고서는 "당일(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 20분 안중근의 시신을 특별히 감옥에서 제작한 침관(寢棺)에 넣고 흰 천으로 덮어 교회당으로 운구한 뒤 우덕순·조도선·유동하 등 공범 3명을 끌어내 예배하게 하고 오후 1시 감옥 묘지에 매장했다"고 적었다.그러나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를 처형한 일제는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유해를 어디에 묻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순국 당시 뤼순 감옥 형무소장의 딸 이마이 후사코(今正房子)가 제시한 두 장의 사진과 증언에 기초해 지난 2008년 한국 정부가 뤼순 현지에서 유해 발굴을 시도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감옥 주변은 20층 이상의 고층 건물과 아파트 등이 빼곡히 들어선 개발지역으로 변해버려서 안 의사의 유해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한국 정부는 재작년 중국 측에 감옥 묘지 일대에 대한 지표투과레이더(GPR) 조사를 요청했으나 공식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 뤼순 일대가 군사보호지역인 데다가 안 의사 고향이 황해도 해주인 점을 들어 유해 발굴에 적극적인 북한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다롄안중근연구회는 "유해 매장지와 관련한 네 가지 설 가운데 유력하던 원보산 남사면이 발굴에서 성과가 없었고 나머지 3곳은 감옥 묘지의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다롄=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안중근 의사가 일제에 의해 순국한 뒤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옛 뤼순감옥 묘지터는 수십년동안 암장(暗葬)한 개인분묘로 가득했다. 2016.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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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3.21만세운동’ 기념행사 열려용인 ‘3.21만세운동’ 기념행사가 21일 처인구 원삼면 좌전고개에 위치한 용인 3.1만세운동 기념탑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정찬민 용인시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시민, 학생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용인만세운동 재현과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기렸다. 정 시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자라고 있는 후손들이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아 대한민국의 번영과 용인발전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21만세운동은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21일 원삼면 현 좌전고개에서 시작돼 포곡, 기흥, 수지 등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돼 1만3천여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 중 700여명이 넘는 선열들이 고귀한 희생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