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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 ‘2021년 문화재 활용사업’…교육·체험·공연 프로그램 운영용인시 문화재 활용사업 프로그램 안내 포스터. / (사진제공=용인시) (용인=국민문화신문) 구명석 기자=용인시가 처인성, 심곡서원, 양지향고, 음애공파 고택 등 문화재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펼친다. 용인시는 시민들이 문화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2021년 문화재 활용사업’을 본격 운영한다고 3일 밝혔다. 문화재 활용사업은 지역 문화재를 활용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진행하고 있는 공모사업이다. 용인시는 생생문화재, 고택 활용, 향교서원 활용 등 3개 부문에 선정돼 국비 1억 900만원을 확보했다. 시에서는 사업을 위해 국비와 함게 시비 1억 6350만원을 투입해 활용사업 3개 부문에 향토 문화재 활용사업을 추가해 총 18개 프로그램을 오는 10월까지 선보인다. 먼저 생생문화재 부문에서는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대표 유적지인 경기도 기념물 제44호 처인성을 활용해 1박 2일 야전캠프, 샌드아트 체험, 그림그리기 대회 등 4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고택 활용 부문은 음애공파 고택에서 역사콘서트, 1박 2일 한옥체험, 달애울 단편문화제 등을 한다. 향교 서원 활용 부문에는 조선의 선비문화를 주제로 심곡서원, 충렬서원, 양지향교에서 풍류체험, 인문학콘서트 등 6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삼국시대 시간여행, 석조문화재 테마 탐방, 오토마타 체험 등도 운영한다. 신청은 문자나 네이버 예약을 통해 할 수 있고, 부문별 프로그램 정보 및 자세한 내용은 용인시 문화재 활용사업 카페에서 확인하면 된다. 시 관계자는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이 문화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문화재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과 관심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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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읍성(邑城) 성벽 최초 확인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에서 발굴조사하고 있는 “상주시 인봉동 35-5번지 유적(면적 233㎡)”에서 상주읍성의 성벽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 문화재보호기금(복권기금)을 활용하여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진행 중인 「매장문화재 소규모 발굴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다. 발굴현장 공개는 30일(화) 오후 2시에 현장에서 개최한다.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되어 문헌 속에만 존재하던 상주읍성 상주읍성은 문헌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1385년(고려 우왕 11년)에 축조되어 일제(日帝)의 읍성 훼철령(1910년)에 따라 헐리게 되는 1912년까지 약 520년 이상 유지되었다. 고려말 왜구 침임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만들어진 읍성은 조선 초기에 경상감영(慶尙監營)을 둠으로써 당시 경상도의 행정·문화·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주읍성은 지표조사와 연구를 통해 성벽의 위치에 대해 추정만 있었고, 그 실체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2019년 조사대상지의 북서쪽 40m 지점인 인봉동 73-7번지 유적에서 상주읍성의 해자(垓子)*가 처음으로 조사된 성과가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성벽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조사대상지가 일제강점기(1913년)에 제작된 지적도에 성도(城道)로 표시된 부분에 해당함을 현재 지적도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하였고, 바로 이 자리가 상주읍성의 북동쪽 성벽임을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밝혔다. 성벽 위치 최초 확인, 조선 전기에 축조한 성벽 기저부 잔존 성벽은 체성부* 아래의 기저부**만 확인되었다. 이는 1912년 일제의 읍성 훼철 당시 지상의 육안으로 보이는 성벽이 철거되고, 성벽 기저부 위쪽이 임시 도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당시 지적도 상에 ‘성도(城道)’로 표기한 연유로 볼 수 있겠다. 또한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벽 위에 건물들이 건축되면서 기저부도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기저부의 규모는 길이가 760㎝ 정도로 조사대상지의 북쪽과 남쪽 조사 경계 밖으로 계속 연장되고 있다. 너비는 성벽 외벽 쪽인 동쪽 지대석에서 내벽 쪽인 서쪽으로 470㎝ 정도만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유실되었다. 높이는 40㎝ 정도만 확인되었으나 성벽 기저부를 견고하게 축조한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대석은 가운데 부분이 유실되고 5매만 확인되었으며, 이 역시 조사 경계 밖으로 계속 연결되는 양상이다. 이와 별도로 성벽 동쪽의 일제강점기 건물지 지반 보강을 위하여 훼철된 성벽의 큰 성돌이 다수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축조시기는 성벽 기저부의 다짐층과 보강층에서 조선시대 전기 백자종지편이 출토되어 조선시대 전기로 판단된다. 향후 상주읍성 정비·복원을 위한 실마리 지금까지 상주읍성 성벽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9년 해자 조사에 이어 이번 성벽 기저부 조사가 두 번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한국문화재재단의 조사는 소규모 면적에 대한 성벽의 기저부 조사이지만, 문헌 기록으로만 확인되던 상주읍성 성벽의 실체와 위치를 정확히 찾았다는데 의의가 매우 크며, 이를 통해 향후 상주읍성 전체의 위치와 흔적을 찾고, 정비·복원을 위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본다. 30일 개최하는 발굴현장 공개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생활 속 거리두기를 준수하기 위하여 발굴현장 공개 참석자들은 발열 확인과 손 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여 방역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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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등학교 청소년 102명과 함께 ‘제 3기 현충사 문화유산 지킴이단’을 출범제 3기 현충사 문화유산 지킴이단. 사진 제공: 문화재청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소장 김재일)는 오는 3일 초‧중‧고등학교 청소년 102명과 함께 ‘현충사 문화유산 지킴이단’을 출범한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소장 김재일)는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고 이충무공묘소의 위토와 현충사 중건의 역사적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현충사 문화유산 지킴이단’을 출범하였다. 2019년 처음 활동을 시작한 청소년 문화유산 지킴이들은 그동안 현충사와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임진왜란의 영웅들’을 주제로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 활동, 이순신 장군과 현충사 관련 문화상품 제작 활용, 대학생 상담원(멘토)들과 함께하는 역사문화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또한, 문화유산국민신탁과 청년교육 사회적 협동조합인 씨드콥과 협업해 소외계층 지원, 교육, 문화재 보존기금(7백 74만 2,800원) 기부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제 3기 현충사 문화유산 지킴이단. 사진 제공: 문화재청 올해 선발된 3기 청소년 문화유산 지킴이들은 총 102명으로 그 규모가 예년에 비하여 더욱 확대되고, 참가 지역도 서울․경기권역 위주에서 충남, 세종시, 울산시 등 전국 단위로 확산되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청소년들의 모범적 문화재 보존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의 3기 현충사 청소년 문화유산 지킴이들은 이충무공과 현충사 위토 알리기 카카오 같이 가치 활동, 문화재보존 행복 주머니 씨앗 가꾸기 모금 활동, 보드게임(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하는 시간여행)을 활용하는 초‧중등생 역사교육 체험, 문화유적 답사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 이충무공의 업적과 현충사의 의미를 알리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문화유산 지킴이 운영뿐 아니라 제5회 이순신 장군 미디어 학교, 제9회 난중일기 독후감과 유적답사기 공모전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청소년들이 사회 가치를 구현하고 문화유산의 미래세대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부 혁신 활동을 발굴‧지원할 계획이다. 제 3기 현충사 문화유산 지킴이단. 사진 제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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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일 한식맞아 태조 건원릉 억새 자르는 ‘청완 예초의’ 거행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봉분을 덮고 있는 억새를 자르는 모습. 사진 제공: 문화재청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나명하)는 오는 5일 한식(寒食)을 맞아, 구리 동구릉(사적) 내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봉분을 덮고 있는 억새를 자르는 ‘청완 예초의’를 거행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관람객 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대신, 이번에는 행사 현장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4월 중 온라인(문화재청 유튜브 http://www.youtube.com/user/chluvu)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건원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봉분이 억새로 덮여있는데,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太祖, 1335~1408년)의 유언에 따라 고향인 함흥의 억새를 옮겨와 봉분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인조실록(인조 7년 3월 19일)에는 태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청완(억새)을 사초로 썼다는 기록 등장하고, 건원능지(1631년, 능상사초편)에는 태조의 유명(遺命)으로 함흥에서 옮겨왔다는 기록과 한식에 예초하는 기록이 등장한다. 예로부터 건원릉 억새는 1년에 한 번 한식날 예초(刈草, 풀베기)를 하였는데, 문화재청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듬해인 2010년부터 매년 한식날에 억새를 베는 ‘청완 예초의’를 거행하고 있다. ‘청완 예초의’는 봉분의 억새를 베는 ‘예초의(刈草儀)’, 1년간 자란 억새를 제거했음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 중대한 일의 이전이나 이후에, 일에 대한 사유를 고하는 제사)’, 고유제가 끝난 다음 제향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례’(飮福禮) 순으로 진행하는데 올해는 코로나 19 예방을 위해 ‘음복례’는 생략하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여 거행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청완예초의’에 코로나 19가 종식이 되어 조선왕릉을 비롯한 문화유산을 편안히 찾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도 함께 담을 예정이다. 코로나 19가 빨리 종식되어 문화유산을 편안히 찾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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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2021 백남준전 《웃어》 Humor Has It백남준 〈보이스 복스〉 (1988). 사진 제공: 경기문화재단 (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는 2021년 4월 1일부터 2022년 2월 2일까지 백남준전 《웃어》를 개최한다. 백남준과 플럭서스를 유머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리투아니아 요나스 메카스 비주얼아트센터, 빌뉴스 시, 리투아니아 문화원, 리투아니아 대사관과 협력하여 대규모 플럭서스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리투아니아는 플럭서스의 주창자인 조지 머추너스가 난 곳이다. 이번 전시는 3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의 플럭서스 작품과 아카이브 200여 점이 출품되며 9월 중 일부를 교체하여 더 많은 플럭서스 작품과 아카이브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유머는 입장을 표명하는 데 있어 유용한 전략이다. 우리는 웃음으로 구현되는 농담을 통해 전복적 움직임을 은유적으로 표명할 수 있다. 또한, 유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통념이 정해 놓은 것들을 자유롭게 해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의, 조롱, 모순, 해방, 파괴 등의 제스처를 담은 우스갯짓은 사회의 현상과 전통적 가치에 대해 균열을 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웃어》 전시는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예술 제도에 도전한 플럭서스와 백남준을 유머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플럭서스는 유럽과 미국에서 1950년대 후반에 태동한 파격적 예술 네트워크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유로운 연합과 해체를 거듭하며, 전통적인 고급예술의 경계에 도전했고, 대중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을 선보였다. 1960년대 격변하는 사회에서 플럭서스는 혁명적인 예술 흐름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진지한 도전을 지속했다. 예술과 사회의 문제들을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다룬 플럭서스의 중심에 백남준이 있었다. 비디오 아트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그가 선보였던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퍼포먼스는 플럭서스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백남준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신체를 매체로 활용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소리를 조합하고,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선문답과도 같은 지시문들로 질문을 던졌다. 《웃어》 전시에서는 기록 사진과 영상을 통해 플럭서스의 당시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장피에르 빌헬름에 대한 경의〉(1978),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테이프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1958-1962), 〈사우스 2번(백남준에게)〉(1964) 등의 오마주 작품들을 포함하여 《플럭서스 국제 신음악 페스티벌》(1962), 《페스텀 플럭소럼 플럭서스》(1963), 《오리기날레》(1961), 《플럭스소나타》(1975),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1963-1980) 등의 아카이브가 출품될 예정이다. 그리고 조지 머추너스가 중심이 되어 제작한 플럭스키트들과 이벤트 스코어들이 전시되며,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이를 직접 실행해 볼 수 있다. 또한, 신문, 출판물, 상점의 상품 등의 형식으로 된 전시작을 통해 플럭서스가 제안했던 새로운 예술 유통망을 확인할 수 있다. 〈최초의 휴대용 TV〉(1975), 〈냄비(한국 조리법)〉(1985), 〈컬러의자, 흑백의자〉(1984), 〈귀거래〉(1992) 등 일상성을 구현한 백남준의 작품들도 전시 예정이다. 이 전시는 플럭서스를 통해 백남준을 바라본다. 플럭서스가 보여주었던 경계의 해체, 자유로운 연대, 사회적 금기에의 도전, 사회정치적 개입, 고급예술에 대한 반격 등은 백남준의 예술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백남준은 짜인 틀이나 규칙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실험을 지속하고, 진지하고 혁명적인 사유를 유쾌하게 제안했다. 만프레드 레베 〈장피에르 빌헬름에 대한 경의〉, 뒤셀도르프 (1978). 사진 제공: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은 만프레드 레베에게 ‘걷는다, 뛴다, 행인들을 바라본다, 생각에 잠긴다, 웃는다.’와 같은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찍어 달라고 청했다. 장소는 갤러리 22가 위치했던 곳으로, 백남준이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테이프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1959)을 처음 발표할 수 있었던 곳이다. 당시 25살 이었던 백남준은 다름슈타트 국제 현대음악 하기강좌에서 자신의 첫 곡을 발표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잘 성사되지 않았고 낙심한 백남준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갤러리 22를 운영하던 장피에르 빌헬름이었다. 이후 빌헬름은 백남준을 비롯한 플럭서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빌헬름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 백남준은 가장 평범한 일상의 행동을 통해 빌헬름을 추모했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깊은 관계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백남준 〈보이스 복스〉 (1988)는 보이스가 세상을 떠난 후 백남준이 추모의 뜻을 담아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보이스의 목소리’라는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듯이 다양한 보이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1961년 서로 잘 알지 못하던 때에 제로 그룹 전시에서 우연히 같이 찍힌 사진, 1962년 백남준의 책에서 발견된 “Josef”라고 서명된 메모, 1965년 두 작가가 같이 참여했던 퍼포먼스 《24시간》의 사진을 비롯하여 백남준과 보이스가 함께 공연한 〈조지 머추너스를 추모하며〉(1978)의 사진과 LP 레코드 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제도, 규범, 통념을 받아치는 백남준식 웃음의 반격을,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접하는 태도로 한 번쯤은 차용해 봄 직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유머와 웃음은 적어도 숨통을 틔우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021 백남준전 《웃어》를 통해 우리는 백남준식 웃음의 반격을 느껴보고, 코로나 19 사태로 각박해진 현실을 유머와 웃음으로 극복해 나갈 것이라 기대해 본다. 한편, 2021 백남준전 《웃어》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관람요금은 무료이며, 입장은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이다.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은 휴관일이니 이점 참고하여 방문하길 바란다. 백남준아트센터 2021 백남준전 《웃어》 Humor Has It 포스터. 사진 제공: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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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의사 충절 기리는‘칠백의총기념관’16일 개관<칠백의총기념관 내부 모습. 사진제공 : 문화재청 문화재청 칠백의총관리소(소장 류시영)는 칠백의총기념관을 오는 3월 16일부터 개관한다. 신축 개관하는 칠백의총기념관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싸운 칠백의사의 충절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건립되어 지난해 9월 준공식까지 마쳤으나 코로나19로 개관이 미뤄지다가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가운데 이번에 개관하게 되었다. 칠백의총기념관은 전체면적 2,442㎡,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의 규모로, 유물 관리 수장고, 전시실, 4차원 입체(4D) 영상관, 학예연구실 등을 갖췄다. 전시공간은 크게 2개 전시실로 구성되었다. 1전시실은 임진왜란의 개요와 1592년 7~8월 사이에 있었던 1차‧2차 금산전투의 전개과정, 의미, 전후 칠백의총의 조성과정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2전시실은 고경명, 조헌, 영규대사 등 당시 전투를 이끌었던 의병장들에 대한 소개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며 함께 싸웠던 칠백의사와 승병들에 대한 추모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칠백의총기념관 관람은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하여 일일 최대 관람객수가 270명으로 제한되며, 마스크 착용 의무화, 발열 확인, 안전거리 유지 등 방역수칙이 철저하게 준수된다. 참고로,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선생과 승장 영규(靈圭)대사가 이끄는 700여 명의 의병이 금산 연곤평(延昆坪)에서 1만 5,000여 명의 왜적과 싸우다 모두 순절하자 그분들의 유해와 의로운 넋을 함께 모셔놓은 곳이다. 민족의 빛나는 호국정신의 상징이자 그 숭고한 가치를 가슴에 새겨야 할 뜻깊은 유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청 칠백의총관리소는 앞으로도 임진왜란 당시 의병사의 연구·전시·교육활동을 통해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고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공감하고자 한다. 또한, 조헌의『조천일기』(보물 ‘조헌 관련 유품’ 중 일부)등 보물급 소장유물을 수록한 상설전시도록을 발간하고 다양한 교육·체험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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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궁궐 봄꽃 평년보다 2~7일 정도 빨리 상춘객 맞이한다경복궁 경회루 일원 봄풍경. 사진 제공: 문화재청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본부장 나명하)는 다가오는 봄을 맞아 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4대 궁과 종묘, 조선왕릉의 봄꽃 개화시기를 안내했다. 올해 궁궐과 조선왕릉의 봄꽃은 평년보다 2~7일 정도 빨리 상춘객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창경궁 옥천교 일원. 사진 제공: 문화재청 14일부터 28일까지로 개화가 가장 먼저 예상되는 창덕궁 후원 관람지와 창경궁 경춘전 뒤편 화계(花階, 계단식 화단) 일원의 노란 생강나무 꽃을 시작으로, 3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종묘 등 4대 궁궐과 종묘 일대에서는 개화시기가 서로 다른 매화와 앵두, 살구, 벚나무 등 의 봄꽃들이 앞 다퉈 피어나면서 아름다운 전통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고유 식생환경과 다양한 관람객 편의시설 등을 정비 완료한 조선왕릉 산책길 곳곳에서도 산수유, 매화, 복사, 진달래, 앵두 등 아름다운 꽃나무와 들꽃이 봄의 기운과 더불어 하루가 다르게 피어난다. 궁궐과 조선왕릉의 봄꽃은 3월 중순을 시작으로 4월에 절정을 이루고 5월 말까지 이어지는데 봄꽃 개화 시기에 궁궐과 조선왕릉을 답사하면 향긋한 봄 내음 가득한 고풍스러운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 영원 일원. 사진 제공: 문화재청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코로나 19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관람객 간 3m 이상 거리 두기’, ‘숲길 내 일방통행하기’, ‘화장실 등 다중이용시설을 비롯한 전 구간 마스크 항시 착용’ 등 관람객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관람객들에게 꾸준히 안내할 계획이다. 또한, 전 직원 마스크 착용, 입구마다 손 세정제 비치 등 안전하고 청결한 궁능 관람시설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편, 봄꽃이 가득한 궁궐에서는 다양한 봄맞이 행사도 마련되어 있다. 창덕궁 후원에서는 4월 24일부터 5월 20일까지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 권의 책> 행사가 양화당, 존덕정, 농산정, 최규정에서 펼쳐진다. 덕수궁에서는 4월 6일부터 27일 매주 금요일마다 즉조당 앞에서 <덕수궁 봄 음악회>가 열린다. 방문객들은 봄꽃 가득한 궁에서 문화행사를 즐기는 특별한 봄나들이를 만끽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 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민들이 5월 말까지 계속되는 봄꽃 개화 기간에 4대 궁과 종묘, 조선왕릉을 방문하여 향긋한 봄꽃 내음 가득한 아름다운 전통 경관을 감상함으로써 조금이나마 휴식과 위로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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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새로운 비전과 미션으로 2021년 사업 추진 계획 밝혀경기도박물관 선사고대실. 사진출처 : 경기도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관장 김성환)은 1996년 개관 이후 25년여 만에 전시실 전면 리뉴얼을 마치고 2020년 8월 4일 재개관하였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예전처럼 많은 관람객의 방문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대내외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 도박물관의 정체성 재정립과 혁신을 이뤄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하나로 지난해에 내부 TF팀을 운영하여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개년 중단기 운영계획을 만들었다. 여기서 나온 비전과 미션이 ‘여기가 경기!’,‘새롭게 보는 국가근본의 땅, 경기’이다. 이를 위해 5대 전략 14개의 핵심 과제를 설정해 5년간 단계별로 추진할 계획이다. ‘박물관 교육 체험의 일번지’ 경기도박물관-2021년 교육체험프로그램 11종 선뵈다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상설전시실을 개편한 경기도박물관은 작년에 이어 코로나19에 적극 대응하면서 교육의 양적 팽창보다는 프로그램의 내실화에 힘쓸 계획이다. 대표적인 것이 수원교육지원청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여기가 경기” 교육체험수업이다. 이 체험수업은 교과서에 나오는 경기도의 역사 문화를 전시 내용과 묶어 스스로 관찰, 탐구, 상상하게 한다. 아울러 청소년을 대상으로 뮤지엄-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을 용인교육지원청과 함께 운영할 예정이다. 성인 및 가족 대상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기획되어 있다. 2020년에 이어 인문도시지원사업으로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과 함께하는 뮤지엄 아카데미 인문학 강좌와 용인지역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학습들이 봄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로 문화생활에 갈증을 느끼는 도민들을 대상으로 전시감상과 강연, 연주회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뮤지엄 화(畵)-화(話) 콘서트”도 준비하고 있다. 매년 박물관에서 실행해왔던 초등학생 참여 그림그리기 대회도 가을에 진행할 계획이다. 더불어 경기도박물관은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맞이하여 경기도 내 문화소외지역의 어린이·어르신·장애인 대상으로 대면·비대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박물관 문화나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원격교육 스튜디오를 조성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박물관 문화나눔 교육’은 2008년부터 꾸준히 운영해온 ‘찾아가는 경기도박물관’의 취지를 살려 2019년에 리뉴얼한 ‘여기가 경기’ 교구재와 2020년 개발한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가지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거나 원격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누구나 차별 없는 문화나눔을 실현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은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흥미롭게 배울 수 있는 ‘여기가 경기’라는 주제의 강의와 연극, 멀티북과 VR체험교구로 구성되어 있고, 시각·청각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은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제작한 점자촉각카드와 수어영상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어르신 대상 프로그램은 초상화와 보자기를 주제로 개발한 체험키트를 활용하여 한발 더 맞춤형 교육에 다가서려고 한다. 경기도박물관은 올해도 경기도를 주제로 다양한 전시회를 개최한다. 봄철인 4월부터 6월에는 “개성 만월대 특별전”을, 여름~가을철인 7월부터 10월에는 “경기도 고고학 특별전”을, 겨울의 초입인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디지털 3D 초상화 특별전-초상화 밖으로 걸어 나오다”를 개최한다. 먼저 “개성 만월대 특별전”은 고려시대 황궁(皇宮)이자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 유적”의 발굴성과를 선보이는 자리이다. 지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진행된 남북공동 발굴조사의 결과를 정리한 전시이다. 지금은 교류가 중지되어 갈 수 없지만, 옛 경기 땅이면서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개성역사유적지구의 문화유산을 이해해 볼 수 있는 이 전시는 통일부,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공동주최로 개최한다. 다음으로 “경기도 고고학 특별전”은 전국에서 개발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경기 남부지역의 최근 발굴성과를 선보는 자리이다. 도시가 확장되고 신도시가 생기면서 선사시대부터 삼국~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발견된 출토 유물을 통해 경기 땅의 첫 국가인 백제를 소개함으로써 매장문화재의 중요성을 알리고, 도민들이 경기도의 유구한 역사성을 체감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유산협회와 공동으로 개최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3D 초상화 특별전-초상화 밖으로 걸어나오다” 특별전은 경기도박물관의 대표유물인 초상화 속 인물을 주제로 한다. 실제 조선시대에 그려진 초상화 작품과 첨단 기술을 접목시켜 3D 실감콘텐츠로 개발하며 디지털 매체를 통해 그림 속 인물을 직접 만나는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021년 문체부 실감콘텐츠 공모에 선정된 “경기사대부 잔치로의 초대”사업으로 미디어아트 상영 디지털 영상관도 연말에 개관할 예정이다. 또한 경기도박물관이 소장한 2만여 점의 유물 가운데 “이달의 유물”을 선정하여 전시할 계획이다. 조선시대 의학서 “증급유방(拯急遺方)”(보물1577호)을 비롯, 기후와 생태, 질병을 주제로 한 다양한 유물들을 공개할 계획이다. 문화유산의 꾸준한 수집과 연구, 관리를 통해 경기문화 정체성을 찾고, 문화재의 가치를 지키고 키운다. 2020년 경기도박물관은 지구환경협약에 따라 화재예방 등 유물의 안전을 위해 그간 사용하던 하론 소화용제 대신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은 청정소화약제로 교체하였다. 이를 위해 상당수의 유물을 임시수장고에 옮기고 전체 가스배관 교체와 수장고 천정 전체를 헐어내고 다시 붙이는 작업을 했다. 경기도박물관은 지속적으로 유물 수집을 위한 기증활동을 추진해 왔는데, 특히 올해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박천민’ 선생이 기증한 자료 중 보존 및 활용을 위한 가치가 높은 자료를 대상으로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등록문화재란 국보, 보물, 중요민속문화재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정문화재 외에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것’ 중 보존가치가 있는 것을 국가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고 보호하는 제도이다. 흔히 근대문화재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유물의 가치를 보존하고, 확대하기 위한 작업으로 보물 제930호 ‘사궤장연회도화첩’이 국고보조사업으로 보존처리가 진행 중이며, 상반기 중에 깔끔한 모습을 되찾을 예정이다. 이 외에도 2019년 ‘기계 유씨 자산공파 종중’에서 기증한, 유직기(1694~1768)와 그의 부인 경주김씨(1694~1784) 묘 출토 복식 150여점 중 상태가 열악하여 시급성을 요하는 복식을 우선 선별하고 이를 보존처리할 예정이다. 또한 2017년에 출토되어 보존처리가 완료된 16~17세기 ‘청송 심씨 사평공파 일가 묘 출토복식’에 대한 보존처리와 조사 분석 자료를 정리한 연구 내용을 보고서로 발간할 예정이다. 한편, 현재 진행되는 특별전 “경기별곡 : 민화, 경기를 노래하다”는 오는 3월 14일 까지 한 달간 연장 개최될 예정이다. 경기도박물관 전시관람은 사전 예약 후 입장이 가능하다. 또 교육프로그램 참여는 경기도박물관 홈페이지(http://musenet.ggcf.kr) 를 통해 온라인으로 접수 가능하며, 보다 자세한 내용과 일정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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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세계 여성의 날 맞아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 발표!워터멜론 우먼. 사진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준동)가 세계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여성 독립영화 감독 7인을 집중 조명하는 특별전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Special Focus: I am Independent)’을 공개했다. 스페셜 포커스는 창의적인 실험과 혁신적인 정신을 지닌 독립·예술영화를 소개하는 전주국제영화제가 그해 가장 중요한 화두 또는 복기해야 할 주제를 제시하는 섹션으로, 올해 두 가지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중 처음 공개되는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은 지난 20년 넘게 독립영화를 지지해 온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다시 발굴하고 새로운 영화 역사를 만들려는 대안적 시도로 독립영화를 만든 여성 감독들의 작품을 주목하며 세계 각국에서 활약한 여성 감독 7인의 작품 15편을 소개한다. 1950년대 활동을 시작한 이탈리아 다큐멘터리의 선구자 체칠리아 만지니부터 70년대 여성실험영화집단 '카이두클럽'을 이끈 한옥희 감독, 20세기 이란 뉴시네마의 대표 감독이자 시인인 포루그 파로흐자드, 1970년대 미국 최고의 독립영화 중 한 편을 연출한 바바라 로든, 프랑스 뉴웨이브의 대표적인 스타이자 감독인 안나 카리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듀녜멘터리’라는 자신만의 영화 형식을 만든 감독 셰럴 두녜이, 뉴아르헨티나시네마의 초기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알베르티나 카리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이어진 여성 감독 7인의 데뷔작과 대표작을 총망라한 것이다. 먼저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에서 주목한 첫 번째 감독은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최초의 여성 다큐멘터리스트 체칠리아 만지니 감독이다. 도시 개발의 이면, 종교와 파시즘의 결탁, 노동자와 여성이 처한 현실까지 다양한 사회‧정치적 문제들을 과감하고도 독특한 연출력으로 풀어내는 만지니 감독의 데뷔작인 <미지의 도시>(1958)부터 <마리아와 나날들>(1960), <스텐달리 (스틸플레이)>(1960), <습지의 노래>(1961), <여자-되기>(1965), <목의 굴레>(1972) 등 초기 단편 총 6편이 상영된다. 한국 실험영화의 내·외연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 한옥희 감독의 작품은 단편 4편을 준비했다. 1970년대 유신정권 시기에도 불구하고 여성 영화인의 활동과 실험영화 제작에 앞장선 개척자 한옥희 감독은 관객들의 의식을 실험하고 도전하는 저항 운동으로서의 영화를 만들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영화적 실험을 감행했다. 억압받던 한국 사회에서 급진적이고 전위적인 영화 언어를 다각도로 표현한 작품 <구멍>(1973), <중복>(1974), <색동>(1976), <무제 77-A>(1977)를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한옥희 감독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예술 세계에 영감을 준 포루그 파로흐자드 감독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도 소개된다. <검은 집>(1962)은 한센병 환자 수용소에서 12일간 거주하며 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낸 다큐멘터리로, 당시 폐쇄적인 이란 사회의 정치와 종교를 향한 비판적 목소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배우로 더 잘 알려진 바바라 로든 감독과 안나 카리나 감독의 대표작 2편 역시 독립·예술영화 역사에서 다시 새겨봐야 할 작품으로 이번 스페셜 포커스에서 조명한다. 1964년 토니상 연극 부분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바바라 로든 감독의 유일무이한 연출작 <완다>(1970)는 길거리를 떠돌다 은행 강도 사건에 휘말린 한 여성의 실화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영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와 칸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다. 누벨바그의 대표 얼굴로 알려진 배우 안나 카리나는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의 <국외자들>(1964) 등에 출연한 스타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연출적 재능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안나 카리나 감독의 첫 번째 연출작 <비브르 앙상블>(1973)은 자유로운 히피 여성이 운명 같은 격정적인 사랑 후 독립적인 삶을 살아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안나 카리나는 <비브르 앙상블>로 1973년 칸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스타 배우가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의 감독이 된 초기 사례로 기록되었다. 1990년대 ‘뉴퀴어시네마’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기, 아프리카계 미국 레즈비언이 연출한 첫 번째 장편 극영화 <워터멜론 우먼>(1996)을 만든 셰럴 두녜이 감독과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에 부모가 납치된 자전적 경험을 투영한 영화 <금발머리 부부>(2003)를 만든 알베르티나 카리 감독 역시 올해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에서 주목한 감독이다. 전주국제영화제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이들 7인의 영화에 대해 “당대에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시대적 관습을 이유로 작품이 가진 가치에도 불구하고 깊이 논의되거나 널리 상영되지 못했다. 그러나 산업 논리와 관습에서 벗어나 기존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화 형식을 제시하고, 사회에서 금기시된 주제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집단에 대한 공감을 이야기하는 등 거침없는 도전을 시도했던 작품”이라 설명하며 “실존과 자유 의지라는 인간 보편의 가치에 질문을 던지는 이들의 영화가 현재의 비평과 만나 새로운 영화 역사를 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주국제영화제는 ‘7인의 여성 감독과 7인의 여성 비평가의 시선으로 보는 또 하나의 영화 역사’를 테마로 한 비평집 『인디펜던트 우먼– 7인의 감독전』(가제)과 특별 웹사이트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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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제암리 대학살, 그 순교의 현장을 찾다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화성 제암교회 순교 유적지는 3.1운동 이후 일제가 저지른 양민 학살사건 현장이며, 순교의 현장이다. 화성지역 3.1운동이 과격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일제의 행정기구인 면사무소, 경찰관주재소, 우편국과 일본인 가옥들이 파괴되고, 일본인 순사 2명이 처단되었다. 일제는 화성지역의 강렬하고 거센 3.1운동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기 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특별검거반을 파견하였던 것이다.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 소재하는 제암리 교회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안종후 권사가 1905년 8월 5일 집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된다. 제암리 마을은 씨족 중심 농촌 마을로, 3. 1운동 당시 총 33가구 중 2가구를 제외한 31가구가 순홍 안 씨로, 안 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었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은 제암리 학살사건이 있은 지 63년이 지나서야 마을에서 4km 떨어진 도이리 공동묘지에 평토장으로 안장되었던 유해를 발굴해 제암교회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유택을 마련했다. 후세에 이 사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전시관, 교육관 조형물 등을 설치하여 나라 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의 배경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가던 당시 제암리 교회 교인들과 주민들은 장날이었던 3월 31일에 발안 장터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다. 장터에 모인 천여 명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자 이에 당황한 일본 경찰은 위협사격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고 주도자를 체포했다. 격분한 시위 군중은 일본인 가옥과 학교를 파손하고, 이튿날부터 밤마다 산에서 봉화를 올리고 만세 시위를 이어간다. 4월 3일에는 수촌리 주민들이 주동이 되어 우정면과 장안면 면사무소를 부수고 주재소를 불태웠다. 사건의 진행 일제는 1, 2차에 거쳐 수촌, 화수리를 습격해 마을을 불태우고 지도자들을 잡아들였다. 당시에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일본 육군 제79보병연대 소속의 중위 아리타 외 11명의 보병이 4월 13일에 발안 지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제암리의 지도자들이 아직 잡히지 않았음을 알았고 제암리를 습격하기로 결정했다. 4월 15일 발안에서 정미소를 하던 사사카, 순사보 조희창, 일본인 순사 1명을 대동하고 제암리로 이동했다. 이들은 병력을 나눠 주민들의 퇴로를 봉쇄했고 조희창과 사사카를 내세워 마을 사람들을 교회로 모이게 했다. 명단을 가지고 오지 않은 사람들까지 불러 모았고 아리타 중위가 교회에 들어갔다 나오자마자 교회를 포위하고 있던 보병들이 일제히 사격했으며 이후에는 석유를 이용해 불을 질렀다. 제암리에서 23명 살해되었다. 또한, 당시 바람이 많이 불어 교회 아랫집들은 불이 옮겨붙었으며 불이 붙지 않은 윗집까지 일일이 태우고 다녔다. 사건 후 일본의 반응 일본은 무장한 폭도들의 저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포하였고 정당방위라고 주장하였다. 재한 일본인들의 생각 역시 다를 게 없어서 이는 조선인들의 독립이라는 망상이 원인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선교사들에 의해 진실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일제는 당혹스러워했지만 지속적으로 정당방위를 강조했다. 세계의 여론이 악화되자 복구비를 내놓고 조선 총독이 현장을 방문하였다. 또 주범 육군 중위 아리타를 군법 재판에 회부하였다. 하지만 이는 악화된 여론을 달래기 위한 기만책이었고 여론이 잠잠해지자 아리타 중위는 나중에 무죄 방면된다. 스코필드 박사 동상. 서구의 반응 4월 6일에 일어났던 수촌리 방화에 대한 소식을 듣고 4월 16일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이동하던 선교사 스코필드, 커티스, 언더우드 등의 귀에 이 비극의 소식이 들려왔다. 이들은 제암리로 가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뒤 본국의 교회에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이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이 때문에 일제는 곤혹스럽게 된다. 선교사들은 본래 정치적인 중립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3.1 운동 당시 비무장인에 대한 폭력적인 행태를 보고는 마음을 바꾸었고 적극적으로 일제의 만행에 대해 각국 영사관에 항의와 요청을 하였다. 이들의 요청 때문에 미국과 영국의 영사관에서는 파악에 나섰다. 이들은 수촌리와 제암리 사건 현장으로 안내해 실상을 알렸고 본국으로 이를 알려 진실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국제적인 여론이 일제에 불리하게 돌아가도록 했다. 이중 주목할 만한 사람은 프랭크 스코필드다. 그는 캐나다 감리교 선교사로 일제의 만행을 지속적으로 언론에 투고했으며 이 때문에 미움을 사서 귀국하게 된다. 스코필드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34번째 민족대표로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스코필드 박사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스코필드는 일본 헌병 몰래 현장 사진을 찍어 미국으로 보내 일제의 야만 행위를 국제사회에 알렸다. 뉴욕 타임스의 1919년 4월 17일 자 기사는 임시정부인 ‘한성 정부 수립’ 소식을 알렸고 한국인의 만세 시위를 ‘평화 시위’, ‘평화 혁명’이라 불렀다. 4월 24일 자 기사에서는 “일본군은 서울 동남방 45마일의 촌락에서 남성 기독교인을 교회에 모이게 한 후 총살하고 대검으로 찔러 무참히 죽였다. 일본군은 만행 후 그 마을의 교회와 그 밖의 건물들을 불태워 없앴다.”라고 보도했다. 제암리 교회당 1969년에는 일본의 기독교인들이 사죄의 의미로 제암리 교회당을 재건하였는데, 일본 기독교인들은 이미 사건 직후부터 현장을 찾아 전모를 확인하고 일본 내 기독교 신문에 고발기사나 추도시를 실었다. 이 교회당은 3.1운동 순국기념관을 지으면서 헐렸고 지금은 그 옆에 제암리 교회가 건립되어 있다. 화성지역 3.1운동 의의 백 년 전 3.1운동과 화성 전역을 울리던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세상을 바꾸는 불씨가 되었다. 화성 3.1운동의 저항과 독립,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향한 불굴의 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위대한 자산이 되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수많은 독립운동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1운동은 기독교인들의 국가관을 잘 설명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순교하는 기독교인들의 정신을 오늘날 우리는 기억하고 본받아 평화와 자유를 위한 헌신의 발판으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