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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이주민 롤모델 언더우드 서거 100년새문안교회의 첫 예배당이자 언더우드 선교사 사택으로 쓰인 정동 사랑채. [새문안교회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부활절이던 1885년 4월 5일, 일본을 떠나 제물포항에 들어온 한 상선에서 벽안의 두 청년이 내렸다. 미국의 북장로회가 파견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元杜尤)와 미국 감리회 소속의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였다. 당시 각각 27세와 26세로 연부역강하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를 열고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해 선교의 씨앗을 심는 한편 근대적 교육기관의 효시를 세워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두 사람이 우리나라를 찾은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는 아니었다. 프랑스의 가톨릭 신부 피에르 모방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보다 4년 앞선 1832년, 네덜란드 출신의 개신교 선교사 카를 귀츨라프가 중국 연안에서 풍랑을 만나 충남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에 정박했다가 주민들에게 한문 성경을 나눠줬다. 1866년에는 영국 선교사 로버트 토머스가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따라 평양에 들어왔다가 주민과 갈등을 빚어 선원들과 함께 숨졌다. 1884년에는 평신도 의료선교사인 호러스 알렌이 주한 미국공사관 소속으로 파견돼 갑신정변 때 민영익을 치료한 것을 계기로 왕실 의사가 됐다.그러나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목적을 띠고 입국한 뒤 신도에게 세례를 주고 교회를 세운 개신교 목회자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처음이었다. 출발은 언더우드가 빨랐다. 미혼인 언더우드는 방한 이틀 뒤 서울에 입성했고, 임신 중인 아내를 데리고 온 아펜젤러는 서울의 치안이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5월 3일 다시 제물포로 입항했다. 언더우드는 제중원에서 알렌을 돕다가 정동의 가옥 한 채를 빌려 고아들을 가르쳤다. 이듬해 5월 11일 언더우드학당(구세학당)을 개교했고 1905년 경신학교로 개명했다. 1915년에는 조선기독대를 설립했는데, 1917년 연희전문학교로 인가받은 뒤 해방 후 연희대를 거쳐 1957년 세브란스의과대와 합쳐져 오늘의 연세대가 됐다. 아펜젤러는 1885년 8월 3일 2명의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교육사업에 나섰다. 고종은 이듬해 6월 8일 '인재를 기른다'는 뜻의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하사하며 격려했다. 1885년 5월 3일 아펜젤러와 함께 제물포항에 발을 디딘 메리 스크랜턴은 이듬해 최초의 여성 근대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세웠고,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은 빈민 의료 봉사와 선교에 나섰다.언더우드(원두우) 선교사의 손자인 원일한 교수에게 1973년 9월 김종필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대신해 국민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교회를 세운 것도 언더우드가 먼저였다. 1886년 7월 11일 자신의 두 번째 조선어 선생인 노춘경에게 첫 세례를 준 데 이어 1887년 9월 27일 정동의 자기 집 사랑방에서 14명의 교인과 함께 첫 예배를 올렸다. 한국장로회와 새문안교회는 이날을 뿌리로 삼고 있다. 언더우드보다 앞선 1886년 4월 25일 부활절에 주한 일본대사관 직원에게 첫 세례를 준 아펜젤러도 정동의 조그만 집 한 채를 사들여 '벧엘예배당'으로 꾸민 뒤 1887년 10월 9일 첫 예배를 보았다. 한국감리회의 모교회인 정동제일교회의 시작이다. 오늘날 장로교와 감리교는 한국 개신교의 80%를 넘는 교세를 자랑한다. 언더우드는 한국어소사전과 찬송가 등을 펴냈고 아펜젤러, 윌리엄 스크랜턴과 함께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해 한글 성경을 보급했다. 이 모임에서 '여호와'를 '상제'로 번역할지 '하나님'으로 옮길지, 'eye of needle'을 '바늘귀'로 할지 '바늘눈'으로 쓸지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빵'은 당시 조선에 없었던 탓에 결국 '떡'으로 표현하기로 결정됐다. 기독교청년회(YMCA) 설립에도 앞장선 1903년 언더우드는 초대 회장을 맡아 청년 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한편 야구·농구·체조 등의 서양 근대 스포츠 보급에 나섰다. 1889년에는 명성황후의 시의로 일하던 제중원의 여의사 릴리어스 호턴과 결혼해 외아들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한국명 원한경)를 낳았다. 언더우드는 건강이 악화해 1916년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0월 12일 그곳에서 소천했다. 뉴저지 교회묘지에 묻혔다가 유족의 뜻에 따라 1999년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로 이장했다. 아펜젤러는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번역자회의에 참석하려고 배를 탔다가 군산 앞바다에서 마주 오는 배와 충돌해 익사했다.언더우드 가문의 3대, 4대, 5대 후손들이 2012년 6월 서울 신촌의 연세대를 방문해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연세대 제공]아펜젤러의 아들딸도 일제의 탄압 속에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발전시키는 데 헌신해 귀감이 됐지만 4대에 걸친 언더우드 일가의 한국 사랑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원한경은 3·1운동 때 제암리교회 학살사건 등을 세계 교회와 언론에 알려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후 아들 원일한과 투옥됐다가 1942년 강제 추방됐다. 원한경은 광복 후 미국 육군성 통역요원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으나 부인 와그너가 좌익청년들에게 살해되는 아픔을 겪었다. 6·25가 터지자 민간 고문단으로 활약하다가 1951년 2월 부산에서 숨졌다. 장남 원일한은 연희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미국 해군에 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고 유엔군 정전협상 수석통역장교를 맡았다. 3남 원재한과 4남 원득한도 각각 미군 군목과 통역요원으로 참전했다. 언더우드의 증손자 원한광은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4년 11월 한국을 떠났고, 원한석은 한국에서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며 '퍼스트 무버' 등의 저서를 펴냈다.19세기 말 개화기에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서양인 가운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처럼 불꽃 같은 삶을 살며 헌신한 인물은 드물다. 더욱이 언더우드 가문처럼 100여 년간 누대를 이어오며 기독교정신에 입각해 봉사를 실천한 집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주민 가족의 롤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는 12일은 언더우드가 세상을 떠난 지 꼬박 100년이 되는 날이다.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는 개신교단들은 힘을 합쳐 전도에 나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주의) 운동을 본받고, 학교를 사리사욕에 이용한다고 손가락질받는 몇몇 사학 설립자 집안들은 신교육의 요람을 만든 선교사들에게 육영사업의 참뜻을 배우며, 외국 국적을 병역 기피와 탈세에 이용하는 일부 부유층·권력층 인사들은 언더우드 일가를 보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되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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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 옆 만리동 공원에 대형 원형렌즈 작품 설치(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내년 봄 공원으로 탈바꿈하는 서울역 고가 옆에 있는 만리동 공원에 연말까지 폭 25m·깊이 4m 규모의 대형 원형 광학렌즈 작품이 설치된다.서울시는 '서울역 7017과 연계한 만리동 공원 공공미술 작품설치 지명공모' 당선작으로 SoA 강예린 대표의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을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건축·도시·공간디자인회사 SoA를 이끄는 강 대표는 2015 문화체육관광부 '젊은 건축가 상', 2016 김수근 시사회 상 등을 수상하고, 네이버 제2 사옥 기획설계 등에 참여한 건축가다.선정작은 지면 아래 다양한 문화행사가 가능한 원형 공간을 설치하고, 상단을 스테인리스 스틸(슈퍼 미러)을 통해 도시 내외부를 물결처럼 비추도록 했다. 야간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하단에 설치된 LED 조명으로 작품 내부를 밝혀 시민이 바닥에서 휴식하고 서울의 새로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작품명에 들어간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춰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윤 대표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로 인해 생기는 오르고, 내리고, 올려보고, 내려보는 행위의 경험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시민이 서울의 새로운 모습을 느끼며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받도록 기획했다"고 설명했다.서울시는 "전문가 심사 결과 선정작은 독창성이 뛰어나고 시민이 참여하고 소통하기에 가장 현실성 있다는 면 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다.시는 전문가 협의를 거쳐 12월까지 만리동 동원에 작품을 설치하고, 앞으로 3년간 작품과 연계한 문화예술 행사를 열 계획이다.변태순 서울시 디자인정책과장은 "윤슬 작품 맞은편에는 대형 LED 스크린을 담은 미디어파사드 '7017캔버스'를 설치해 예술작품과 시민 참여 영상을 내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제공=연합뉴스] 강예린씨 작품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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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시원하게, 지구는 건강하게!… 쿨맵시 캠페인경기도가 시원하게 여름을 나면서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의 건강도 챙기자는 취지의 ‘쿨(Cool) 맵시 캠페인’을 전개한다. 도는 올 여름 냉방 사용량 증가 등 전기에너지 소비 급증에 대비하고, 온실가스 1인 1톤 줄이기 운동의 일환으로 13일부터 8월 말까지 ‘쿨맵시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쿨맵시’는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자는 의미의 ‘쿨(COOL)’과 옷차림 모양새를 의미하는 순 우리말 ‘맵시’의 합성어로. 시원하고 예절을 갖춘 옷차림으로 체감온도를 낮추고 냉방온도를 높여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취지이다. 경기도가 제안한 쿨맵시 옷입기는 넥타이와 상의 첫 단추 풀기, 반소매 셔츠와 블라우스 입기, 겹쳐 입지 않기 등이며, 쿨맵시를 실천하면 체열과 땀을 쉽게 배출해 체감온도를 2℃가량 낮추는 효과가 있다. 도는 쿨맵시를 실천하면서 여름철 실내 냉방온도를 26℃~28℃로 유지해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한편, 도는 13일 오전 도 청사에서 출근 직원 등을 대상으로 쿨맵시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날 캠페인에서는 쿨맵시 의상 착용하기, 냉방온도 높이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장바구니 이용하기 등의 내용이 담긴 ‘온실가스 1인 1톤 줄이기 실천 서약서’도 받는다. 도 관계자는 “경기도와 각 시군은 쿨맵시 실천을 비롯해 에너지 절약, 온실가스 줄이기 주민 교육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생활 속 저탄소 실천 캠페인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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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 성공시대> ① 강광문 서울대 로스쿨 교수베이징대·도쿄대서 학위받고 2011년 서울대 교수 임용된 '빈농의 아들'"조선족 3세, 한민족 DNA·중국인 기질 겸비…각계에서 눈부신 성취""한국, 제국의 경험 없다…조선족과 공존은 다문화·글로벌국가 디딤돌" <※ 편집자 주 =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4월 말 기준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이 가운데 중국동포(조선족)는 63만 명을 헤아립니다. 귀화자 7만여 명과 불법체류자를 포함하면 70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모국을 찾아온 조선족의 숫자가 늘어나고 세대가 교체되면서 단순노무직에 머물던 이들의 직업도 학계·금융계·무역업계·문화예술계·법조계·공직자 등으로 다변화·전문화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어려운 여건과 차별적 시선을 딛고 자신의 분야에서 값진 성취를 이룬 인물을 매주 한 명씩 소개함으로써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로잡고 다문화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자 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서울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강광문 교수. 2016.6.20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중국 베이징(北京)대 졸업, 일본 도쿄(東京)대 박사, 한국 서울대 교수. 동양 3국의 명문대를 거친 수재 중의 수재다.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강광문(42) 부교수의 이력을 보면 대부분 그가 줄곧 성공가도만 달려왔을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질투 섞인 선망의 시선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중국 지린(吉林)성의 소도시에서 빈농의 아들로 자란 조선족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가 겪었을 신산한 역경을 떠올리며 경외심을 품게 된다. 1993년 지린성 중부의 작은 도시 메이허커우(梅河口)에서는 경사가 났다. 그곳의 조선족 학생이 지린성 대입 시험에서 문과 수석을 차지한 것이다. 창춘(長春)이나 지린처럼 대도시도 아니고, 옌지(延吉)처럼 조선족이 많은 곳도 아니어서 놀라움은 더했다.그 주인공이 바로 강 교수다. 강 교수의 할아버지는 경북 안동, 할머니는 경북 영천에서 각각 만주로 이주해 그곳에서 짝을 이뤘다. 먹고살기 힘들어 지린성과 랴오닝(遼寧)성을 옮겨 다니며 번번이 새로 땅을 갈았다고 한다. 끝없는 유랑 속에 자식 8남매는 모두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농사를 지으며 3남매를 키웠다. 아버지는 농번기가 끝나면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자녀의 학비를 모았다. 강 교수의 남동생도 명문 칭화(淸華)대를 나와 베이징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누나 역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다. 1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겸손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이력과 조선족으로서의 한국 생활을 털어놓았다. "제가 특별히 머리가 좋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남보다 엄청나게 노력한 것도 아니고요. 다만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이 좋았습니다. 주로 철학이나 역사 쪽이었죠. 지금도 남보다 재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그저 공부가 좋아서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에서는 한 반의 30명 중 유일한 소수민족이었다. 고향의 조선족학교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콤플렉스를 경험했고 정체성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정파(政法)대 석사과정을 다니며 변호사 자격증과 법학석사 학위를 땄다. 졸업 직전부터 1년 반가량 로펌에서 일했다.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던 중 친구가 일본 유학을 권했다. 그에게는 새로운 무대였다. 2000년 12월 도쿄대 법학정치학연구과에 외국인 연구생으로 입학했다. "일본 유학 시절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환경도 다르고 말도 익숙지 않았으니까요. 변호사 시절 모은 돈을 갖고 갔는데, 당시에는 두 나라의 임금이나 물가 차이가 워낙 커 금세 바닥이 났지요. 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통번역 일을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습니다."자연히 수학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쿄대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다시 딴 데 이어 마침내 2010년 박사모를 쓸 수 있었다.그의 전공은 헌법학. 그중에서도 헌법사와 법철학에 관심이 많다. 박사 논문은 일본과 독일의 헌법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도쿄대에서 연구원으로 박사후과정을 보내던 중 서울대에서 제의가 왔다. 중국과 일본의 법률을 함께 강의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선배의 권유에 따라 지원서를 냈고 2011년 초 조교수로 임용됐다. 서울대에서는 2009년 임용된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나노융합학과의 박원철(45) 교수에 이어 두 번째이고 인문사회계에선 처음이다. "제가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선조의 고향이라 친근감은 느끼고 있었지만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지요. 중국과 일본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제가 한국에서 교수로 일한다면 시야가 넓어지고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했지요. 이번 학기에는 일본법과 헌법사상사를 강의했습니다. 보통은 한국어로 강의하고 중국법과 일본법은 각각 중국어와 일본어로 가르칩니다."강 교수는 전형적이면서 대표적인 조선족 3세다. 1세는 일제강점기 때 건너간 조선인이고, 2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태어난 조선족 중국인이다. 3세는 문화대혁명(1966∼1969)을 겪지 않은 이른바 '70후(後)' 이후 세대로 개혁 개방의 물결과 함께 자라 이념의 틀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국제 감각도 지녔다.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온 조선족은 대부분 2세였다. 남자들은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단순 노무자로, 여자들은 식당 종업원·가사도우미·간병인 등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국내 조선족 사회에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고학력 엘리트들이 늘어나 전문직에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강 교수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KCN)에 관여하며 계간지 '맥(脈)'의 발행을 돕는가 하면, 2011년에는 예동근 부경대 교수 등 국내 거주 조선족 3세 12명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족 3세들의 서울 이야기'(백산서당)를 함께 펴내기도 했다. 오는 8월에도 이들과 공동으로 (가칭)'동북아의 허브를 만나다-글로벌 조선족:경계를 넘어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모국의 동포들은 여전히 우리를 정형화된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듯합니다. 이건 대부분 2세에 의해 틀지어진 것이지요. 3세들은 이중언어와 다문화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각계에서 눈부신 성취를 거두고 있습니다. 특히 관광업이나 화장품 판매 등의 분야에서는 상당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지요. 지금도 북한을 대상으로 사업하는 조선족이 적지 않지만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이면 조선족 3세들이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봅니다."강 교수는 한국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먼저 배워 중국보다 앞서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는 했으나 지금은 중국의 성장 속도가 빨라 여러 분야에서 역전 현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특히 조선족 3세들은 한민족의 DNA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중국인 기질이 더해져 사업이나 장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는 것이다.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조선족을 멸시하는 듯한 시선을 거두려고 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최근에는 반다문화 정서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국은 제국의 경험이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1105년 고려가 탐라국(제주도)을 복속시킨 것 정도가 있을 뿐이지요. 일본은 지난 세기 다른 나라를 침략해 이민족을 다스려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이민족에게 공격받고 이들을 지배하며 제국을 경영해왔지요. 한국은 단일민족이란 이름 아래 균일한 구성원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질적인 집단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모르고 사회 시스템의 탄력성이 약합니다." 그는 외국인 범죄가 일어날 때 집단 전체를 겨냥해 반감을 드러내거나 비난을 퍼부으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범죄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집단 간의 갈등으로 번져 수습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흔히 '조선족 사투리'로 연상되는 '보이스피싱'도 조선족에게만 화살을 겨눌 것이 아니라 허술한 금융 시스템을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물론 그렇다고 범죄 집단을 두둔하거나 피해자들의 슬픔을 도외시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한국은 같은 핏줄인 조선족과 어울려 사는 법을 익히면서 다문화 사회로 순조롭게 이행하고 글로벌 국가로 도약해야 합니다. 한국인은 중국, 미국 등 강대국에 대한 사대의식을 지닌 적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이 한국으로 몰려오니 이들을 낮잡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탈북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탈북자도 포용하지 못하는데 통일 이후 어떻게 남북이 어울려 살 수 있겠습니까. 조선족은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한국이 아시아의 모범 국가가 되려면 자기보다 못산다고, 생김새가 다르다고, 우리말을 못한다고 무시하는 태도를 하루빨리 버려야 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강광문 교수는 "한국이 다문화 사회, 글로벌 국가로 나아가려면 먼저 같은 핏줄인 조선족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충고한다. 2016.6.20강 교수는 같은 조선족에게도 충고를 잊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관행과 질서를 존중하고 공존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지금은 돈 벌기 바빠 여유가 없다며 시민의식을 등한시하면 여전히 주변인으로 남게 됩니다. 또 각자 실력을 키우고 어떤 일을 하든지 성실한 태도로 임해야 주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지요." 강 교수는 조선족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마다 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중언어에 능통하다는 것은 엄청난 자산입니다. 저는 한국어·중국어·일본어를 다 구사하지만 일본어에는 익숙지 못합니다. 어릴 때 자라면서 익힌 모국어와 철들고 난 뒤 배운 외국어는 다르거든요. 또 양국의 문화와 관습에 익숙한 것도 큰 장점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학생들에게 '지금은 한민족이면서도 중국인인 경계인의 처지를 불우하게 여길지 모르나 나이 들어 보면 내 말이 맞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늘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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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① 비단 물결 따라 짚어가는 백제의 향취(공주·부여=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백제,/ 예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금강,/ 예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 중에서 금강(錦江)은 전라북도 장수군 신무산의 뜸봉샘에서 시작해 무주, 옥천, 대전, 공주, 부여, 강경, 군산 등을 거쳐 서해로 흘러들어 간다. 394.79㎞의 길이, 천 리의 물길은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다. 즉 상류에서부터 적득진강·차탄강·화인진강·말흘탄강 등으로 부르고,공주에 이르러서는 옹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하류에서는 고성진강으로 부른다. 사진/이진욱 기자 인류의 문명이 갠지스강이나 유프라테스강 또는 황허(黃河) 유역에서 발달했듯이, 남한에서는 한강과 낙동강 다음으로 긴 강인 금강의 물줄기에는 역사와 문화가 있고, 그 유역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서로 기대며 살고 있다. 금강 유역은 선사시대부터 최적의 삶의 터전이었다. 금강과 접한 산의 완만한 경사면이 만나는 지대에 위치한 공주시 장기면의 석장리에는 약 1만년 전 구석기인이 살았다. 사적 334호로 지정된 석장리 유적지에서는 깬석기, 밀개, 긁개, 찍개, 찌르개, 주먹도끼 등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돼 그 시대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전기, 중기, 후기의 유적층이 다 있을 뿐 아니라 약 2만5천 년에서 3만 년 전 집터도 발견됐다.유적 내 석장리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선사 박물관으로 석장리 유적을 발굴, 전시하고 있다. 구석기 인류의 진화 과정,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구석기인의 생활 모습, 석장리 유적의 발굴 과정이 차례로 이어진다. 박물관 외부에는 구석기인의 생활상을 담은 선사공원과 발견된 집터를 토대로 막집을 복원한 석장리 구석기 유적지가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금강을 끼고 쌓은 천혜의 요새 공산성 석장리 유적지에서 금강이 흐르는 쪽으로 내려오면 금강을 끼고 쌓은 천혜의 요새 공산성(公山城)이다. 웅진 시기(475∼538) 백제의 왕궁이었던 공산성은 해발 110m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은 포곡형 산성이다. 성곽의 총 길이는 2천660m이다.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이다. 고구려 장수왕의 위례성 침범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긴 백제는 공주의 옛 지명인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고, 웅진은 지금의 부여인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60여 년 동안 백제 왕국의 중심이었다. 비록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밀려 공주까지 내려왔지만, 차령산맥과 금강으로 둘러싸인 공주는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유리한 천혜의 방어벽을 갖추었다. 또 백제와 긴밀한 관계의 지방 세력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왕권이 약하여 혼란이 거듭되었으나 무령왕대부터 안정을 되찾고 백제의 중흥을 일궜다. 공산성 내에서 확인된 다량의 기와, 연꽃무늬와 바람개비무늬로 장식된 와당, 중국제 자기는 백제 시기 공산성의 위상을 짐작게 하는데, 문화와 교류 강국이었던 백제의 개방성과 국제성은 서해로 연결되는 금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이진욱 기자 공산성에는 네 개의 문이 있는데, 공산성을 일주할 때는 푸른 숲이 우거진 언덕 위에 석축을 쌓아 올려 공산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문의 금서루를 출발지로 삼는다. 금서루에서 금강이 흐르는 왼쪽으로 걸어가면 공산성에서 가장 높은 공북루가 나온다. 누각에 오르면 공산성을 휘감아 돌아가는 비단 물결과 ‘강물을 끌어당기는 누각’이란 뜻을 지닌 만하루(挽河樓), 성벽을 따라 노란색 바탕에 백호·주작 등이 그려진 깃발, 공주 신시가지의 고층 아파트, 1933년에 놓은 금강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하루는 금강 쪽을 지키는 군사적 기능과 금강의 경승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누각으로 뒤쪽에는 연못과 임진왜란 때 승병 훈련소로 사용되었던 영은사가 있다.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1천500년 전 고대 왕국 백제의 향취가 가슴속 깊이 전해져 온다. 조선 시대 이괄의 난 당시 인조의 피란한 역사를 품고 있는 쌍수정 아래는 옛 백제 왕궁지로 추정하는 너른 터와 인공 연못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나 사치하지 않았다”고 기술돼 있다. 밤에 조명이 켜지니 은은한 불빛을 받은 성곽이 금강에 반영되고, 성 건너편 둔치에서 바라보는 공산성 야경은 마치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이다.공산성에서 금강 쪽으로 1.5㎞ 정도 가면 곰이 뛰어놀았다고 해 ‘곰나루’라는 뜻을 가진 고마나루가 나온다. 공주는 옛날엔 우리말로 고마나루라 부르고 웅진(熊津) 등으로 적었는데, 고려 태조 때 공주(公州)가 됐다. 고마나루는 금강을 오가던 배가 사람과 물자를 부렸던 가장 큰 나루터였다. 이곳에는 공주의 대표 전설인 인간을 사랑한 곰의 슬픈 이야기인 ‘곰나루 전설’이 서려 있다.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 터와 곰을 모신 곰사당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서쪽으로 흐르는 금강이 방향을 갑자기 꺾어 남쪽으로 흐르는 곳으로, 금강변의 넓은 백사장과 솔밭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 백제의 흥망을 지켜본 부소산성538년 백제 성왕은 왕국의 미래를 기약하며 농경에 유리하고 외침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사비(부여)로 천도한다. 공주에서 35㎞ 남서쪽에 있는 부여는 ‘날이 부옇게 밝았다’는 뜻으로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또한 멸망의 처절한 아픔을 맞았던 고도다. 성왕은 부소산 일대를 중심으로 철저한 계획을 통한 도읍을 건설했다. 백제의 마지막 왕성인 부소산성은 군창지와 사자루의 산봉우리를 머리띠 두르듯 쌓은 테뫼식 산성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성 앞의 관북리 유적은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며 건물터, 공방시설, 도로, 연못 등이 확인됐다.백마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부소산성에는 백제의 마지막 숨결이 곳곳에 스며있다. 해발 106m의 나지막한 구릉인 부소산의 정상부에 쌓은 부소산성에는 백제의 마지막 충신 성충과 흥수, 계백의 영정을 모신 삼충사, 군량미를 보관하던 창고나 피란 시설이 있었던 군창터, 땅을 파고 생활하던 수혈 주거지, 사자루, 반월루, 부여 동헌과 객사 등 많은 유적이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부소산성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백마강가에 서 있는 높이 40m의 절벽인 낙화암이다. 사비도성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됐을 때 삼천궁녀가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 정상에는 죽은 궁녀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자 백화정이 있고, 낙화암 절벽 아래에는 아담한 절고란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고란사에서 목을 축이고 매표소로 다시 나오거나 바로 옆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백마강에서 낙화암을 감상하고 구드래나루터로 갈 수 있다. 부소산성과 삼천궁녀, 그 이름만으로도 백제의 희미한 숨결이 느껴진다. 사진/이진욱 기자 경주 동궁과 월지보다 먼저 만들어진 부여 궁남지는 궁궐 남쪽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다. ‘삼국사기’는 “무왕 35년(634년)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서 물을 20여 리 끌어들였다”고 전한다. 패망한 백제의 수도 부여의 궁남지는 여름이면 홍련, 백련, 수련 등 갖가지 연꽃을 활짝 피워낸다.아름다운 경관과 나라 잃은 슬픔이 곁들여져 있는 공산성과 부소산성을 돌아본 뒤 금강 변에 있는 청벽산(277m)에 오른다. 폭 100m, 높이 25m의 거대한 바위 절벽 위에 있는 금강 조망 포인트에 서면 발아래로 굽이굽이 도도히 흐르는 금강의 장쾌한 풍광이 펼쳐진다. 강물은 쉼 없이 흘러가고, 강과 산을 물들이는 해넘이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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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이 있는 곳스트라디움·웨스트브릿지·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스트라디움 '사운드 갤러리'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화려하고 떠들썩한 연말이다. 조명으로 밝혀진 거리는 화사하고 다채로운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은 열기로 가득하며 식당과 술집은 부산하다. 이런 때일수록 혼자만의 공간과 사색할 시간이 더 필요해지는 것 같다. 세파에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줄 음악이 고픈 계절, 음악이 있는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 본다.◇ 스트라디움, 음악이 사로잡는 고품격 공간'스트라디움'(Stradeum)은 세계적인 명품 현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와 음악당이나 극장을 뜻하는 오디움(Odeum)의 합성어이다. 즉 좋은 음악이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스트라디움에서는 고품질 음악을 귀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즐길 수 있다.번잡한 이태원 거리를 지나 지하철 한강진역으로 향하는 도로변에는 나무 벽돌 1만 장 이상을 쌓아 외관을 꾸민 스피커 모양의 독특한 건물이 들어서 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나무의 그림자 길이가 달라지며 시시각각 다른 느낌을 전한다. 복합 음악문화 공간 '스트라디움'은 건물에 음악과 빛에 의한 변화를 담고자 했다.어느 날 음악을 듣고 감동을 하였다는 박일환 아이리버 대표가 젊은이들이 좋은 음악을 듣고 감화되는 경험을 하고, 연주자나 음악감독이 들려주고 싶은 진정한 소리를 함께 나누기 위해 젊은이가 많이 모이는 이태원에 문을 열게 됐다고 한다. 스트라디움 '사운드 갤러리'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지상 4층, 지하 1층의 스트라디움은 고품질 음향시설을 갖춘 스튜디오와 음악감상실, 사운드 갤러리, 라운지 등으로 구성됐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미술관 같은 ㄷ자형 공간이 방문객을 맞는다. 음악과 미술을 접목한 '사운드 갤러리'이다. 이곳에선 먼저 "음악은 우리를 어떻게 사로잡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는 "들으려고 한다면 이 땅에는 음악이 가득 차 있다",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 등과 같은 글귀들이 채워져 있다. 구스타프 말러부터 레너드 번스타인, 빅토르 위고, 프란츠 카프카, 존 키츠, 알버트 슈바이처, 신해철, 정태춘, 공자에 이르기까지 음악가와 위인이 음악에 대해 했던 말들이다. 음악이 얼마나 우리를 사로잡는지에 관해 얘기하는 오르페우스의 악기 '리라', 음악의 치명적 매혹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이렌'의 전설도 엿볼 수 있다. 나머지 두 개 벽면에는 헤드폰들이 오선지에 적힌 음표처럼 걸려 있다. 이곳에선 의자나 바닥에 앉아 스트라디움 큐레이터가 '가요', '팝', '재즈', '클래식'을 주제별로 선곡한 음악을 고음질 포터블 플레이어인 '아스텔앤컨'(Astell & Kern)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지하 1층은 사운드 앨코브(Sound Alcove)와 뮤직 룸 두 개로 구성된 음악 감상 공간이다. 서재처럼 꾸며진 사운드 앨코브는 책장에 사람이 들어앉을 수 있게 만든 공간으로 방문객은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뮤직 룸은 10여 명이 함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큐레이터가 새로 나온 앨범, 주목할 만한 음악, 아티스트 포커스, 시기별 이슈와 맞물려 소개할만한 음악 등을 틀어준다. 특히 이곳에는 미국 CES(국제전자제품 전시회)에서 '올해의 하이파이' 상을 받은 네트워크 플레이어인 '아스텔앤컨 500N'이 설치돼 최고의 음질을 경험할 수 있다. 2~3층은 스튜디오다. 영국의 애비로드 스튜디오, 일본의 빅터 스튜디오 등 세계적인 녹음 스튜디오를 설계한 샘 토요시마가 설계, 감수하고 디자인을 총괄한 곳으로 음악 녹음 작업, 상설 음악 감상 프로그램, 라이브 공연과 토크 등이 진행된다.4층은 커피나 음료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루프 톱 라운지이다. 라이브 공연이나 토크 전후에 아티스트와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며, 아트숍에서는 음악 관련 기념품과 명반을 구입할 수 있다. 스트라디움 '사운드 앨코브'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웨스트브릿지, 인디의 부활을 위한 음악 발전소'웨스트브릿지'는 뮤지션과 관객, 아티스트와 기획사, 음반과 애호가, 악기와 연주자, 교사와 학생을 연결해주는 '음악의 다리'다. 특히 침체된 인디 음악을 부흥시키는 튼튼한 가교가 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홍익대학교 주변은 한국 인디음악의 중심지이다. 크라잉넛, 언니네 이발관, 노브레인, 황신혜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십센치, 장미여관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밴드가 이곳에서 활동하며 성장했다.2015년은 한국의 인디음악 탄생 20주년. 하지만 홍대 주변 분위기는 예전과 다르다. 홍대 인근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며 임대료가 폭등하자 라이브 클럽들이 밀려나거나 폐업하고, 대기업의 후원 없이 커 나가는 뮤지션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공연장 수 곳을 돌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클럽데이'가 4년 만에 부활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이다. 서울재즈아카데미(SJA)가 세운 '웨스트브릿지'는 홍대 인디음악의 위기 타개와 부흥을 위한 다리가 되기 위해 지난 7월 탄생했다. '음악으로 가교 역할을 한다'는 뜻을 품고 있는 웨스트브릿지는 홍대가 있는 서교(西橋)동을 영어로 표기한 것이다. 홍대 인근을 부르는 순우리말인 '잔다리'도 이 지역에 작은 다리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웨스트브릿지는 현재 음악기업이 힘을 모아 가능성 있는 뮤지션을 발굴하는 '사운드 유레카1 뮤지션 공모'와 뮤지션들이 직접 쇼케이스 무대를 기획해 만드는 홍대 축제인 '잔다리 페스타'를 후원하고 있다.지하 3층, 지상 6층 건물에는 라이브 홀, 합주실과 개인 연습실, 뮤직 아카데미, 레코드 숍, 목관 악기 전문 수리점, 카페 등 음악 관련 공간이 마련돼 있다.지하 3층 라이브 홀은 객석 150석(스탠딩 300석)을 갖춘 콘서트홀이다. 오디션, 콘서트, 팬 미팅, 쇼케이스 등을 위한 공간으로, 누구든지 합리적인 가격에 대여할 수 있다. 무대 악기와 장비, 테크니션을 무료로 받고 대기실도 사용할 수 있다. 지하 2층에는 합주실과 개인 연습실이 있다. 이곳은 밴드나 동호회, 개인이 시간 단위로 빌려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팝과 록, 재즈로 방이 구분된 합주실에는 드럼과 키보드, 신시사이저, 콘솔, 베이스 앰프, 스피커 등이 기본으로 갖춰져 있다.지하 1층에서는 세계적인 뮤지션의 LP 음반과 CD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지난 9월 발매된 가수 이장희의 소장용 한정판 LP 음반도 있다. 이 음반은 웨스트브릿지가 소장 가치가 있는 LP 음반을 제작해 대중화시키기 위한 사업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1층은 현대적인 분위기의 카페이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스윙 아메리카노', '콘체르토 라떼', '탱고 에스프레소'처럼 커피 메뉴 이름에 음악을 가미했다. 원래 카페 한쪽에는 지난 20년간 잘 알려지지 않은 전 세계의 음반을 취급해온 레코드점인 '레코드포럼'이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 최근 문을 닫았다.2층과 3층은 뮤직 아카데미이다. 전자음악·힙합·보컬·악기 교실, 뮤직비디오 제작, 뮤직아트디자인, 공연사진 찍기, 축제와 공연 기획, 홍보마케팅 등 음악과 관련한 다채로운 강의가 진행되는 곳이다. 2층에는 미국 랜턴대학교 악기수리과를 졸업하고 유럽 유명 악사에서 연수한 유찬선 실장이 운영하는 목관악기 전문 수리점도 있다. 서교동이 환하게 내려다보이는 6층 루프 톱은 공연이나 행사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김원중 웨스트브릿지 기획팀 차장은 "인디음악의 부흥을 위한 다리가 되고 싶다"며 "앞으로 음악과 접목되는 다양한 것들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웨스트브릿지 '라이브 홀'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아날로그 향기 풍기는 최첨단 공간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가 디자인 라이브러리와 트래블 라이브러리에 이어 음악을 주제로 선보이는 세 번째 라이브러리이다. 이곳에서는 음악을 감상하고 책을 보며 아날로그의 감성을 만끽할 수 있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는 우선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끈다. 뻥 뚫린 사각형 구조물의 절반은 건물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빈 공간이다. 빈 공간의 원래 경사를 그대로 남겨둔 것도 특징이다. 최문규 연세대 건축과 교수는 공간을 건물로 가득 채우는 대신 최대한 비우는 열린 공간을 추구했다고 한다. 빈 공간을 통해서는 남산과 주택가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빈 공간의 커다란 벽은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알타몬트(Altamont)에서 그룹 롤링스톤스가 공연할 때 관객석을 포착한 사진 한 장으로 채워졌다.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당시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음악 공연도 진행된다.커다랗고 투명한 창을 통해서는 책이 빼곡한 음악 도서관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건물 1층에는 리셉션과 카페, 2층에는 뮤직 라이브러리가 있고, 지하는 공연을 위한 무대와 스튜디오가 있는 '언더스테이지'(Understage)이다.엘리베이터를 통해 2층으로 오르면 아날로그 음반 1만여 장과 음악 관련 서적 3천여 권을 보유하고 있는 뮤직 라이브러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층고가 높은 이곳은 다시 레벨 1과 2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레벨 1 진열장을 보면 세로축은 음반들이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로 분류돼 있고, 가로축은 재즈, 소울, 록, 일렉트로닉, 힙합 등 다섯 장르를 색깔로 구분하고 있다. 시대에 따른 음악의 변화 양상을 엿볼 수 있게 한 배열이다. 진열장에는 시대별 추천 앨범도 따로 모여 있다. 예를 들어 70년대 박스(70's Picks)에서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퓨전재즈의 선언문'이라 일컬어지는 '비치스 브루'(Bitches Brew)를 비롯해 블랙사바스의 '파라노이드'(Paranoid), 딥 퍼플의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 더 클래쉬의 '런던 콜링'(London Calling), 스티비 원더의 '송스 인 더 키 오브 라이프'(Songs in the Key of Life) 등 명반을 만날 수 있다.다른 쪽 벽면에는 1977년 발매돼 전 세계에 10장 정도만 존재하는 섹스 피스톨의 싱글 앨범 '갓 세이브 더 퀸'(God Save the Queen)을 비롯해 1969년 나온 레드 제플린의 데뷔 앨범,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발매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 앤드 투데이'(Yesterday and Today) 등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음반 300여 장이 진열돼 있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음반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치된 서치패드에서 듣고 싶은 노래나 음반을 선택하면 진열된 위치가 나타나고 직접 음반을 찾아 턴테이블에 올려 헤드폰을 통해 들을 수 있다. 물론 아티스트 이름과 곡명을 적어 신청함에 넣으면 디제이(DJ)가 백그라운드 뮤직으로도 틀어준다. 희귀 음반은 디제이에게 신청해야만 들을 수 있다.레벨 2에는 한국을 비롯해 남미, 중미,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음반, 음악 관련 책과 잡지가 있다. 한국 음악의 경우 대중음악의 역사를 엿볼 수 있도록 트로트, 포크송, 그룹사운드, 발라드, 댄스뮤직 등 음반 400여 장이 진열돼 있다.음악 관련 책은 장르, 서브컬처, 이론, 송북, 매거진, 전권 컬렉션 등으로 구분돼 있다. 특히 창간호부터 최신호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롤링스톤 전권 컬렉션'은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창간호는 '롤링스톤' 본사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한쪽에는 매월 '네오 브리티시 인베이전'(Neo British Invasion) 같은 주제를 정해 '롤링스톤'을 진열하고 있다. 대중음악 악보도 500권 이상 진열해 필요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한편 언더스테이지 지하 1층 스튜디오에는 합주실 2개와 음악 작업실 1개가 있으며, 지하 2층 공연장에서는 음악 콘서트, 뮤지컬, 연극 등이 무대에 오른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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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원류 논쟁…한국 종이접기 vs 일본 오리가미(도쿄=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국내외 동포들이 힘을 모아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만들었듯이 잃어버린 종이접기 역사를 다시 찾고 새 한류 문화로 재창조해 세계화해야 합니다."28일부터 3일간 일본 동경한국학교에서 '한반도 평화통일과 세계 평화 기원 종이접기 축제 한마당'을 개최하는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이 27일 일본에 도착해 동행한 지부 원장과 강사들에게 당부한 말이다.종이문화재단은 태권도(Taekwondo)가 가라테(唐手·Karate)를 누르고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격투기 스포츠로 우뚝 선 것처럼 한국식 종이접기(Jongie Jupgi)도 일본의 '오리가미'(折紙·Origami)를 제치고 전 세계인의 문화로 뿌리내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실제로 세계종이접기연합의 각국 강사들은 태권도가 '차렷', '경례', '앞차기' 등의 우리말 구령과 명칭을 전 세계에 통용시킨 것을 본떠 외국인에게도 '삼각접기', '학접기' 등 한국식 용어로 지도하며 세계화를 꾀하고 있다. 국회에서 종이접기로 만든 고깔을 쓰고,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장면. 종이접기 세계화를 위한 퍼포먼스다. ◇ 세계적으로는 오리가미가 대세…도전장 낸 종이접기연합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미 대부분 국가에서 종이접기를 '오리가미'로 부르고 있다. 프랑스나 스페인 등 자국의 문화적 전통에 자부심이 강한 일부 나라만 예외다. 영어로는 'Paper Folding', 독일어로는 'Papierfalten'이라고 하는데 미국종이접기협회 창시자인 릴리언 오펜하이머가 제안해 오리가미가 종이접기를 일컫는 국제용어로 통용됐다고 한다.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됐지만 세계적으로는 각각 '젠'(Zen), '진셍'(Ginseng), '도후'(Tofu)라는 일본어로 불리는 '선'(禪), '인삼'(人蔘), '두부'(豆腐)와 비슷한 처지다.비단 명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종이접기의 기호도 일본의 종이접기 작가인 요시자와 아키라(吉澤 章·1911∼2005)가 사용하던 도면 표기법이 국제적인 표준이 됐으며, 미국과 유럽 등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오리가미란 이름으로 일본식 종이접기를 가르치고 있다. 종이학 1천 마리를 접어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것도 일본이 전 세계에 퍼뜨린 습속이다.일본은 2차대전 후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 등을 앞세워 기모노, 다도(茶道)와 함께 오리가미를 적극적으로 세계에 전파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맞서 종이접기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겠다고 나선 곳이 종이문화재단이다. 노영혜 이사장은 1987년 한국 종이접기·종이문화 재창조 운동을 제창한 이래 한국종이접기협회, 종이나라박물관, 종이문화재단, 세계종이접기연합 등을 잇따라 설립하며 한국 전통 종이접기의 복원과 현대화와 보급에 힘쓰고 있다. 종이로 접은 작품들. 서울 장충동 종이문화재단 내 종이나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고구려 승려 담징이 종이제조법 일본에 전해 그러면 역사적으로 종이접기 원류는 과연 어느 나라에서 비롯됐을까. 역사학자들은 종이가 중국에서 발명돼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으므로 종이접기도 이 순서를 따라 발전되고 전파됐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스이코 천황 18년(610년) 고구려왕(영양왕)이 보낸 승려 담징이 그림에 능했고 종이와 먹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이때 종이접기도 함께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삼국시대부터 무속 신앙에 쓰였던 '고깔'을 우리나라 종이접기의 원형이라고 보기도 한다. 안동 봉정사 창건 설화에 따르면 통일신라 초기 문무왕 12년(672년) 의상 대사가 영주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리고 그것이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세워 봉정사(鳳停寺)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조선 초 재상 하륜(1347∼1416)이 만들었다는 승경도놀이도 우리나라의 오랜 종이접기 전통의 증거로 꼽힌다. 막대나 주사위 모양의 윤목을 굴려 높은 벼슬을 차지하는 것을 겨루는 놀이인데, 관직 이름을 적어놓은 말판을 접는 방식이 고차원의 수학적 원리를 담고 있다.◇ 오리가미의 원형도 고대 신앙 풍습에서 기원 오리가미의 원형도 고대 신앙 풍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에게 기도하며 죄나 부정을 씻는 '하라이'라는 의식에 종이로 인형을 접어 사용한 것이 시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례용 종이접기는 무로마치 시대(1336∼1573)에 발달해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그에 앞서 헤이안 시대(794∼1185) 말기 문인이자 시인인 후지와라노 기요스케가 지은 '청보조신집'(淸輔朝臣集)에 개구리 종이접기에 관한 설명이 있고, 에도 시대(1603∼1867)에는 학·배·개구리 등의 모양을 종이 한 장으로 접는 방법이 70가지나 성행했다고 한다.오리가미는 가위나 풀을 쓰지 않고 한 장의 정사각형 종이로만 접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이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노영혜 이사장은 "종이접기를 체계화하고 세계화하는 데는 일본이 앞섰지만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가 먼저였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도 "우리나라가 일본과 종이접기 원조 경쟁을 펼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곤란하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실제로 몇 해 전 우리나라의 한 신문이 노 이사장의 말을 인용해 "종이접기의 종주국은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고 보도하자 이를 본 일본 관계자들이 노 이사장에게 "근거를 대라"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종이접기의 원류라고 알려진 고깔을 접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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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서경덕, 한글날 맞아 '우리말 사랑 노래' 공개(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그 누군가의 한마디가 시가 되어/ 날아가는 새들의 노래가 되고/ 어느덧 날아가는 새들에 반하여/ 시인이 시를 적어 간다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하면 할수록/ 어느새 사랑에 난 빠져들고/ 그리웠었기에 만나는 거고/ 기다린다는 걸 배우게 되고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네."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과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의기투합해 우리말 사랑 노래인 '노래처럼'(부제 '안녕! 우리말')을 8일 유튜브((http://is.gd/CKbWgR)에 공개했다.다수의 유명 대중가요를 만든 김태원이 작사와 작곡을 맡고 서 교수는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펼치게 된다. 서 교수는 "인터넷과 SNS의 시대를 사는 요즘 비속어나 줄임말 등이 난무해 아름다운 우리말이 파괴되고 있는 형편"이라면서 "이를 개선하고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권장하고자 노래 캠페인을 기획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들의 언어폭력이 심각한 상황인데, 음악이라는 친숙한 문화 콘텐츠를 활용해 언어문화 개선 운동을 벌인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김태원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가요를 만들고자 했다"면서 "특히 합창곡으로 제작한 것은 누구나 다 따라 부르기 쉽게 만들어야 우리말 보급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은 지난 4월부터 '노래처럼' 음원 제작에 매달렸다. 부활의 보컬 멤버였던 박완규, 김재희 등 5명이 함께 불렀으며 KBS, MBC 등 한국아나운서연합회 합창단 회원 15명이 후렴구 녹음에 동참했다. 8일 정오부터는 멜론, 지니, 엠넷, 벅스 등 국내 주요 음원 유통 사이트에서 무료로 스트리밍 및 내려받기가 가능하다. 휴대전화 벨 소리로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전 세계 외국인 대상의 한글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재단 이사로도 활동 중인 서 교수는 "K-팝이 외국인에게 친숙해진 만큼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외국인에게도 이 노래를 널리 알려 자연스럽게 우리말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겠다"고 밝혔다. '언어문화 개선 범국민운동'을 펼치는 문화체육관광부도 노래 제작과 보급을 후원하고 나섰다. 문체부는 서 교수와 함께 공연, 영상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언어문화 개선운동을 계속 펼쳐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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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팀 옹알스 '언어문화 개선' 전국 공연에 나선다서경덕 교수와 8개 도시에서 '우리말 유랑단' 프로젝트 전개(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전 세계에 한류 개그를 선보이는 '옹알스'가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의기투합해 청소년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전국 공연에 나섰다.옹알스는 세계적인 공연 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2년 연속 별 5개의 최고 평점을 받았으며, 지난해에는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디렉터초이스에 뽑힌 세계적인 넌버벌 퍼포먼스팀이다.옹알스와 서 교수는 오는 17일 국립진주박물관 공연을 시작으로 서울, 공주, 청주, 세종, 제주, 대구, 전주, 부여 등 전국 8개 도시를 돌며 개그 공연을 펼친다. '우리말 유랑단'이라는 프로젝트명도 붙였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서 교수는 "인터넷과 SNS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는 비속어나 줄임말 등이 난무하는 게 사실"이라며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권장해 혼탁한 언어문화를 개선하고자 옹알스와 무대를 꾸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들의 언어폭력이 심각한 상황이므로 이들에게 친숙한 '개그'라는 문화 콘텐츠를 활용해 언어문화 개선 공연을 벌인다면 건전한 우리말 사용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옹알스의 맏형 조준우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우리말 개그 공연을 준비 중"이라며 "특히 관객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말 사용의 중요성을 깨닫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외국인 대상의 한글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재단의 이사로도 활동 중인 서 교수는 "이번 전국 공연을 마친 후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외국인에게도 선보여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익힐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공연은 '언어문화 개선 범국민운동'을 벌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현재 서 교수와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우리말 사랑 노래'를 만들어 오는 한글날(10월 9일)에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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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 교수와 8개 도시에서 '우리말 유랑단' 프로젝트 전개(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전 세계에 한류 개그를 선보이는 '옹알스'가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의기투합해 청소년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전국 공연에 나섰다.옹알스는 세계적인 공연 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2년 연속 별 5개의 최고 평점을 받았으며, 지난해에는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디렉터초이스에 뽑힌 세계적인 넌버벌 퍼포먼스팀이다.옹알스와 서 교수는 오는 17일 국립진주박물관 공연을 시작으로 서울, 공주, 청주, 세종, 제주, 대구, 전주, 부여 등 전국 8개 도시를 돌며 개그 공연을 펼친다. '우리말 유랑단'이라는 프로젝트명도 붙였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서 교수는 "인터넷과 SNS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는 비속어나 줄임말 등이 난무하는 게 사실"이라며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권장해 혼탁한 언어문화를 개선하고자 옹알스와 무대를 꾸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들의 언어폭력이 심각한 상황이므로 이들에게 친숙한 '개그'라는 문화 콘텐츠를 활용해 언어문화 개선 공연을 벌인다면 건전한 우리말 사용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옹알스의 맏형 조준우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우리말 개그 공연을 준비 중"이라며 "특히 관객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말 사용의 중요성을 깨닫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외국인 대상의 한글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재단의 이사로도 활동 중인 서 교수는 "이번 전국 공연을 마친 후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외국인에게도 선보여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익힐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공연은 '언어문화 개선 범국민운동'을 벌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현재 서 교수와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우리말 사랑 노래'를 만들어 오는 한글날(10월 9일)에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