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개벽' 폐간후 90년…시인 이상화 가족 독립운동에 관심 커져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개벽 발표 후 잡지 폐간형수 권기옥, 비행기타고 조선총독부에 폭탄투하 꿈꿨다 (대구=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시인 초상 시인 이상화(1901∼1943)가 1926년 국내 최초의 종합잡지 '개벽(開闢)' 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저항시다.일제는 이 시가 실렸다는 이유로 '개벽'을 발매 금지 처분했다. 그해 8월 1일 개벽은 72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된다.3·1 독립운동을 주도한 천도교 이념을 기반으로 발간된 '개벽' 폐간 90년을 맞아 시인 이상화와 그의 집안 사람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저항 민족시인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이상화는 어린 시절부터 일제에 저항하는 면모를 보였다.대구 수성못에 세워진 이상화 시비1901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1918년 서울 중앙학교 3년을 수료한 뒤 이듬해 대구 3·1 운동 거사 모임에 참석했다가 사전에 발각되자 다시 서울로 몸을 피한다.1922년 문예지 '백조(白潮)' 동인으로 참여해 '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등 시를 발표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던 그는 이듬해 9월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모습에 분노해 1924년 귀국한다.그해 서울 가회동에 머물며 시 '나의 침실로'를 발표하고 1925년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발기인으로 참여한 뒤 이듬해(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개벽'에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저항 민족시인 반열에 오른다.그 후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1928년 6월 신간회 출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우국지사들이 달성군의 한 부호를 권총으로 위협한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는다.1936년에는 독립운동가인 형 이상정 장군을 만나러 중국을 다녀온 뒤 일본경찰에 붙잡혀 심한 고초를 당한다.1939년에는 교남학교 조선어, 영어, 작문교사로 지내며 불온한 내용의 교가를 지어 부르게 했다는 이유로 가택 수색을 당해 자신의 작품 원고는 물론 시인 이장희의 유고까지 압수되는 고통을 겪었다.1941년 시 '서러운 해조'를 문장 폐간호에 발표한 그는 결국 1943년 4월 25일 대구 계산동에서 숨을 거둔다.1948년 그를 기리는 문인들이 해방 후 최초로 대구 달성공원에 그의 시비를 세웠고 1985년 죽순문학회가 '상화 시인상'을 제정한 이래 매년 수상자가 나오고 있다.이상화 시인 고택2008년 8월 광복 63년을 맞아 대구시민 정성으로 문을 연 그의 고택은 해마다 20만명이 찾는 명소가 돼 있다.그의 형 이상정(1897∼1947)은 계성·신명학교 교사로 일하다 1923년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다.상해·남경 등 중국 각지에서 항일투쟁하던 그는 1939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내고 신한민주혁명당을 조직하는 한편 화중군 사령부 고급막료로 남경전투, 한구전투에 참전해 일제와 싸웠다.해방 후 상해에 머물며 교포 보호에 힘쓰던 그는 1947년 귀국 후 뇌일혈로 별세했다.정부는 1977년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이상정의 부인이자 시인 이상화의 형수인 권기옥(1901~1988)은 한국과 중국 양국의 첫 여성 비행사로 유명한 인물이다.1901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숭의여학교에서 송죽결사대에 가입,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6개월 옥고를 치렀다. 그 뒤 임시정부공채 판매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하던 중 일제의 추격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권기옥은 중국에서 미국인 비행사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보고 "비행기를 타고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지겠다"고 결심한다. 1924년 중국 윈난성 윈난항공학교에 입학한 뒤 이듬해 2월 여성 비행사 자격을 얻었지만 항공 전투단을 구성할 여력이 없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신에 중국 공군에 들어가 일제와 싸웠다.해방 후 한국 공군 창설에 기여했고 6·25 당시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최초로 여성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이처럼 항일에 앞장선 이상화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최근 여러 예술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소설가 정혜주는 최근 권기옥 평전 '날개옷을 찾아서'(하늘자연)를 출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권기옥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섬세한 필치로 다룬 이 작품은 식민지 여성의 수동성을 뛰어넘어 진취적인 여성상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대구시립극단도 최근 권기옥·이상정 부부와 시인 이상화 일대기를 연극과 뮤지컬로 동시에 제작해 눈길을 끈다.대구 두류공원에 세워진 이상화 동상 지난 4∼6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른 연극 '비상'은 항일 독립운동가 권기옥을, 지난 11∼13일 무대에 오른 뮤지컬 '비 갠 하늘'은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을 중심으로 이상화 집안 사람들과 항일운동가들의 애환을 그려냈다.특히 뮤지컬 작품에서 이상화 역을 맡은 배우가 '빼앗긴 들의 봄을 찾아서'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이상화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상화 집안 사람들은 엄혹한 일제시대에 불같은 저항정신으로 나라 잃은 백성의 책무가 무엇이며 지조와 애국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 준 참된 애국지사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독립운동가 유자명 선생 친필 '회억록' 중국어본 최초 공개아나키즘계열 중국 내 활동 내용 상세…파금(巴金)서한 등 30점 (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한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 우근(友槿) 유자명(柳子明·1894∼1985) 선생의 친필 '회억록(回憶錄)' 중국어본 원고가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29일 오전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1920년 의열단에 가입해 임시정부 등 여러 단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유자명 선생이 300자 원고지에 108쪽 분량으로 쓴 회고록 전문과 자필 이력서, 중국 저명 문학가 가운데 한 명으로 친구이자 동지였던 바진(巴金)이 선생에게 보낸 편지 등을 공개했다. 선생이 중국인 부인 유칙충(劉則忠)에게 준 선물함과 논문 '상대성 온도와 식물생장의 관계' 등 각종 자료 30점도 포함됐다. 회억록은 지난해 9월 중국 쓰촨(四川)성 충칭(重慶)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선생의 딸 유득록(柳得櫓)씨와 아들 유전휘(柳展輝)씨가 기증했다. 1982년 중국인민방송국 조선어부 김형식(金亨植)씨는 유자명 선생에게서 얻어간 원고 일부를 소장하고 있다가 2005년 선생의 자녀에게 되돌려줬다. '회억록'(천안=연합뉴스) 중국내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 농학자였던 우근 유자명 선생의 육필원고 '회억록'. 2016.2.29. <<독립운동사연구소>>전체 14장으로 구성된 회억록은 출생에서부터 1935년 5월까지 독립운동을 상세히 서술한 것으로 1982년까지 붉은색 펜으로 직접 수정과 교열을 거듭했다.기존에 알려진 한국어본 '한 혁명자의 회억록'보다 내용이 상세해 선생은 물론 1920∼1930년대 재중 독립운동 연구에 귀중한 학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김도형 독립운동사연구소 국외사적지팀장은 "지난 1999년 선생의 '한 혁명자의 회억록' 한글 육필 원고를 ‘한국독립운동사자료총서’ 제14집으로 간행했지만 오늘 공개된 중국어본은 중국 내 한인독립운동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말했다.충주태생인 유자명 선생은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세운동을 계획했다가 발각돼 서울로 피신한 뒤 다시 6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가 임시의정원 의원, 신한청년당 당원으로 활약했다.1920년 가장 강력한 의열투쟁을 전개한 의열단에 가입, 투쟁하면서 아나키즘을 받아들여 중국 내 최초 아나키스트 독립운동단체인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에 참여했고,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남화한인청년연맹,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등에 가담했다.그는 독립운동가로서도 잘 알려졌지만, 뛰어난 아나키즘 이론가였고 중국 내에서는 유명한 농학자로 후난(湖南)농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
재한 조선족 '워킹맘'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도전(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오는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조선족 이주여성이 비례대표 의원직에 출사표를 냈다.주인공은 서울의 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는 '워킹맘' 이홍(45) 씨.한국인 남편과 고등학생 아들을 둔 그는 지난달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내고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이 씨는 17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비례대표인 이자스민 의원을 보며 나도 한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비례대표 공모가 시작되는 대로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이 씨의 도전은 중국 관영통신사인 신화통신과 공영방송 CCTV 등에 소개되면서 중국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다.중국 지린(吉林)성 지린시 출신인 이 씨는 20년 전인 1996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며 서울로 와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남편을 만나기 전 그는 중국 명문 베이징이공대학교에서 화공학을 전공한 인재였다. 대학원에 진학해 학자의 꿈을 키워가던 이 씨는 1993년 여름방학 때 교수의 소개로 학교를 방문한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됐다. 이후 2년간의 교제 끝에 꿈을 뒤로하고 한국행을 택했다.하지만 이주여성으로서의 삶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자신을 안 좋게 보는 시선에 상처받기도 하고, 기혼자에 외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마땅한 직장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는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결혼이민자에 대한 편견이 많았다"며 "지금 돌아보면 내가 중국에서 외국인을 봐도 그렇게 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13년 전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이 씨는 "'워킹맘'의 고충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라며 "일과 육아를 같이하다 보니 오히려 소통하는 법을 더 잘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그가 비례대표 의원직에 도전한 이유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기 때문. 가족의 든든한 지지도 큰 힘이 됐다.그의 남편은 바둑계에서 '중국통'으로 알려진 김경동 씨다. 한국기원에서 근무했던 그는 현재 IT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이 씨는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여당에 지원했지만 특별한 정치색은 없다"며 "이주민과 사회적 약자를 도우면서 한국과 중국의 관계 증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을 뿐"이라고 강조했다.이렇다 할 정치 경험은 없지만 한국의 '워킹맘'으로 살아온 지난 20년을 발판 삼아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이 점점 늘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에는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 존재합니다. 이주민에게는 금전적인 지원보다 따뜻한 시선과 말 한마디가 더욱 중요해요. 제 경험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됐으면 해요. 결과가 어떻든 한번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도전은 멋진 일이잖아요."
-
설날 고속도로 귀경전쟁 시작…부산→서울 8시간10분오후까지 양방향 정체 심화…귀경길은 자정 넘어도 혼잡 지속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설 당일인 8일 오전 차례를 마치고 일찌감치 서울로 출발하는 차량과 뒤늦게 귀성길에 오른 차량이 고속도로로 쏟아져 상·하행선 모두 혼잡 구간이 늘고 있다.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오전 10시30분 현재 경부고속도로 서울방향은 구서교차로→양산분기점, 회덕분기점→신탄진나들목, 동탄분기점→신갈분기점 등 45㎞ 구간에서 차량이 시속 80㎞ 미만으로 서행하고 있다. 부산방향 역시 서울요금소→안성나들목 등 61.5㎞ 구간에서 차량이 충분한 속도를 못 내고 있다.서해안고속도로도 서울방향 동군산나들목→해미나들목, 당진분기점→서평택분기점 등 72.4㎞, 목포방향 금천나들목→일직분기점, 비봉나들목→화성휴게소, 서평택분기점→행담도휴게소 등 52.7㎞ 구간이 막히는 상태다. 영동고속도로는 강릉방향 동군포나들목→마성나들목, 용인나들목→호법분기점 등 69.5㎞, 중부고속도로는 하남방향 남이분기점→대소분기점 등 44.2㎞ 구간에서 차량이 몰리고 있다.천안논산고속도로 역시 논산방향 산월분기점→광주요금소, 남공주나들목→정안휴게소, 풍세요금소→정안나들목 등 60㎞가 넘는 구간에서 상·하행선 모두 차량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거나 다소 느린 운행을 하고 있다. 귀경길 주요 도시 간 소요시간은 오전 11시 승용차 출발 기준으로 대전→서울 3시간30분, 대구→서울 5시간11분, 부산→서울 8시간10분, 울산→서울 7시간29분, 광주→서울 6시간40분, 목포→서서울 8시간40분, 강릉→서울 4시간이다.하행선은 서울→대전 3시간, 서울→대구 6시간28분, 서울→부산 8시간10분, 서울→울산 8시간29분, 서울→광주 4시간30분, 서서울→목포 4시간50분, 서울→강릉 2시간50분이다.도로공사는 오전 10시30분 기준으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13만대가 빠져나갔으며 자정까지 32만대가 더 진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진입한 차량은 8만대이며, 자정까지 37만대가 더 들어올 전망이다.공사 관계자는 "오전시간대 차량이 급격히 늘면서 상·하행선 모두 정체가 시작된 상태"라며 "오후까지 계속 정체가 심해지다가 귀성 방향은 오후 11시~자정께 해소되겠지만 귀경 방향은 이후에도 정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우리아들 대학 갈 나인데…" 세월호 유가족 합동차례명절 음식 차리는 유가족(안산=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세월호 참사 이후 맞이한 두 번째 설인 8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 내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유가족이 집에서 준비해 온 명절 음식을 차리고 있다. 2016.2.8 kyh@yna.co.kr아이들 좋아하던 음식 차리고 '눈물'…설에 생일 맞은 희생자도 있어유가족, 단원고 앞에서 기자회견 열고 "416 교실 보존하라" (안산=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번째 맞이하는 설인 8일, 경기도 안산시 합동분향소에는 유족의 발걸음이 이어졌다.합동분향은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었지만 유족은 이보다 앞서 한손에는 국화꽃을, 또다른 손에는 정성스레 싸온 명절 음식을 들고 속속 분향소를 찾았다.영정 앞 제단에는 평소 아이들이 좋아하던 피자와 치킨, 백설기와 곶감 등이 올려졌다. 헌화가 시작되자 유족들은 설이면 아이들에게 먹였던 불고기와 잡채 등 갖가지 음식을 차리며 명절 인사를 건넸다.그러나 아이들 없이 맞는 설이 여전히 익숙지 않은 듯 유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아이의 이름을 부르던 한 유가족은 연방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고, 영정을 어루만지던 또다른 유족은 끝내 오열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설에 맞이한 생일(안산=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세월호 참사 이후 맞이한 두 번째 설인 8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 내 합동분향소에 차례상이 마련됐다. 한 유가족이 생일케이크를 제단에 올려 놓고 생일을 맞은 아이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2016.2.8 kyh@yna.co.kr사고가 없었더라면 올해 대학에 입학할 아이들과 함께 고향에 내려갔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유족들의 아픔은 더했다.故 손찬우 학생의 어머니 김정희(58·여)씨는 "아이가 명절 때면 먹던 고기 반찬을 만들어 왔다. 아이가 맛있게 먹기를 바란다"며 "찬우 또래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사고가 없었다면 우리 아이도 올해 대학에 갔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설에 생일을 맞은 故 김수진 학생의 영정 앞에는 생일 케이크가 함께 놓였다. 유가족들은 케이크에 초를 꽂고 갓 대학생 나이가 된 아이의 생일을 축하했다.김종기(52)씨는 "생일을 맞은 아이를 위해 케이크를 준비하고, 좋아하던 초콜릿과 치즈를 가지고 왔다"며 "설에 생일까지 겹쳐 마음이 더 아프다"고 울먹였다.유가족들은 아직 미해결 상태인 416교실(기억교실)의 존치 문제를 놓고 경기도 교육청과 단원고등학교를 비판했다.이들은 분향을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께 안산 단원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교육청과 단원고는 부족한 교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고민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416교실 보존 요구하는 유가족들(안산=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번째 설을 맞이한 8일, 4·16가족협의회가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앞에서 416교실 보존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읽고 있다. 2016.2.8 kyh@yna.co.kr 4·16가족협의회는 성명서에서 "현재 비교실 공간을 재배치하면 모자란 교실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그런데도 단원고는 (부족한)8개 교실을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대대적인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단원고에서 새로운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며 "도교육청은 희생자와 재학생, 안산시민이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해야하고, 단원고는 그때까지 416교실의 보존을 약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한편 유가족들은 개별적으로 단원고 기억교실 및 희생자가 안치된 안산 하늘공원, 평택 서호추모공원, 화성 효원납골공원 등을 방문한 뒤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한다.광화문 광장에서는 오후 4시 16분부터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이 합동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나누는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유가족은 개별적으로 추모의 시간을 가진 뒤 합동분향소에 모여 서울로 이동한다"며 "설 연휴 내내 시민과 함께 행사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
'치인트' 지윤호 "영곤의 설에 대한 마음은 진심""다영·민수 조종하는 영곤은 '작은 유정'""웹툰 애독자…캐스팅될 거라 상상도 못해"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훤칠하게 큰 키에 작고 곱상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아이돌 가수인가"라며 수군댔다. 지난 5일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배우 지윤호(25)에게서 처음에는 tvN '치즈인더트랩'(치인트)의 스토커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여주인공 홍설(김고은 분)에게 찰거머리처럼 붙어 괴롭히는 오영곤을 연기 중인 지윤호는 '치인트'가 배출한 스타 중 한 명이다. 웹툰 '치인트' 애독자였다는 그는 "제가 리메이크 드라마에 캐스팅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치인트' 오영곤은 저 혼자밖에 없다는 생각에 자부심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 "영곤의 지질함에 주목…주변 실제 경험 접목"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지분거리는 영곤은 누리꾼들로부터 '발암' 캐릭터로 불릴 정도로 지지리도 못났다. "모든 독자와 시청자가 영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교집합을 확실히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영곤을 봤을 때 바로 느껴지는 그 지질함에 주목했어요." 지윤호는 다른 작품의 캐릭터를 참고하는 대신, 웹툰 원작을 토대로 주변 사람들의 실제 경험을 참고했다. 여자들이 진저리치는 남자의 행동들을 알아보기도 하고, 혹은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발견하는 크고 작은 지질함들을 연구해 살을 붙였다. 그는 설을 괴롭히는 데 분노한 백인호(서강준)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치는 장면이나 권은택(남주혁)을 도발했다가 맞는 장면 등 깝죽거리던 오영곤의 '수난사'를 보여주는 데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 지윤호는 "영곤이 어떻게 하면 더 지질한 모습으로 백인호에게서 도망갈 수 있을지, 권은택에게 맞으면서도 재수 없게 느껴지게 할 수 있을지 신경을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스타일도 웹툰 속 붉은색 머리를 그대로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양아치 느낌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부스스한 '호일펌'을 응용하는 식으로 손보았다. ◇ "설에 대한 마음은 진심…영곤은 '작은 유정'"영곤은 예쁘장한 과대표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설을 끈질기게 쫓아다닌다. 자신을 농락했던 유정에 대한 복수심이 작용했겠지만, 영곤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지윤호는 이에 대해 "영곤은 진심으로 설을 좋아한다"라고 설명했다. "영곤의 설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라고 생각해요. 유정에게 느끼는 동경심과 복수심도 있겠지만요. 설을 좋아하기에 그렇게 스토커처럼 구는 것 같아요. 물론 영곤의 표현 방식이 잘못됐죠." 지윤호는 여자친구 이다영(김혜지)의 존재에 대해서는 "영곤이 다영을 이용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면서 "과대표인 다영을 사귀면 친구들과도 다시 어울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윤호는 이어 '짝설'(짝퉁 홍설)로 불리는 손민수나 다영과의 관계를 지적하면서 "영곤은 민수와 다영을 조종하면서 자기 손에 흙은 묻히지 않은 채 자기 목표를 이뤄내는 모습을 보면 '작은 유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극 중 영곤과 다영의 뽀뽀 장면은 "둘이서 그냥 지나가면 심심할 텐데"라는 이윤정 PD의 한 마디에 즉석에서 만들어졌다고. "그 장면은 2차례 정도 촬영했는데 처음에는 김혜지 씨가 몰랐던 터라 (뽀뽀하자마자)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을 짓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웃음)" ◇ "데뷔 6년차…무명으로 지내며 내적으로 단련"지윤호는 실제 오영곤과 비슷한 면이 있느냐는 물음에 "여자에게 다짜고짜 들이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먼저 사귀자고 말하는 편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술도 잘 마시지 못한다고. 어릴 적 축구 선수를 꿈꿨다가 "초등학교 축구부 선수들이 죄다 박지성이어서" 포기했다는 지윤호는 연기자의 꿈을 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하숙 생활을 하며 부지런히 준비한 끝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중앙대 연극과에도 합격했다. 원하는 기획사에도 들어갔고 다비치 뮤직비디오를 통해 성공적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이후 오랫동안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데뷔작까지는 승승장구했기에 인생과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 같아요. 그 이후부터 많은 고난과 시련이 찾아왔어요. 힘든 시간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적으로 많이 단련된 것 같아요."지윤호는 "단역도 엑스트라도 거치다 보니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서글픔도 알게 되고 많이 배우게 됐다"면서 "올해로 데뷔 6년째인데 '치인트'로 이렇게 작은 관심이라도 받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
<최강한파> "춥다 추워" 기록적 한파에 드라마는 실내 촬영 중'무림학교' 세트장 난방 동파·'돌아와요 아저씨' 촬영 취소도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살을 엘 듯한 기록적 한파에 방송가에도 비상이 걸렸다.특히 일분일초가 아깝게 돌아가는 드라마 촬영장은 매서운 추위에도 촬영을 멈출 수 없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KBS 2TV 월화드라마 '무림학교'는 25일로 예정됐던 현장 기자간담회를 한파로 취소했다. '무림학교' 관계자는 "원래 촬영이 없는 날이지만 기자간담회를 위해 촬영을 짧게라도 진행하려고 했는데 세트장 내 난방장치가 동파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간담회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오는 2월 24일 첫 방송하는 정지훈·이민정 주연의 '돌아와요 아저씨'는 19일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추위 때문에 촬영을 취소했다.그나마도 첫 방송이 내달 24일로 아직 방송일이 많이 남아있는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이번 추위로 인한 어려움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대부분 드라마 제작진은 미리 예고된 추위에 스케줄을 조정했다.촬영분에 여유가 있는 경우 이번 주 초까지 주로 실내 촬영을 하고 추위가 풀리면 실외 촬영을 한다는 계획이다.25일 SBS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육룡이 나르샤' '리멤버' '돌아와요 아저씨' 등 드라마 대부분이 세트·실내 촬영 중이다. 이 관계자는 "오늘은 아침드라마 '내 사위의 여자'만 야외 촬영 중"이라며 "대부분 추위를 피해 가능한 실내 촬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드라마 전개상 실외 촬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극 촬영장의 어려움이 크다. '장사의 신-객주 2015' '장영실' 등 사극이 많은 KBS 관계자는 "춥고 해가 빨리지는 겨울은 사극을 찍기에 특히 힘든 계절이지만 사극 제작진에게 이건 어느 정도 일상이어서 촬영이 중단되거나 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아무래도 야외 장면이 많고 한복이 얇아서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고생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MBC 관계자는 "춥다고 해서 결방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인지 취소된 촬영은 없다. 5년 만에 가장 추웠다는 24일에도 외부 촬영까지 정상적으로 다 진행된 것으로 안다"면서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스케줄을 맞춰 촬영을 하는 것이 제작진의 몫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KBS 해피FM(106.1㎒) '임백천의 라디오7080'의 진행자 임백천이 지난주 제주를 찾았다가 폭설로 서울로 오지 못해 25일 '임백천의 라디오7080'는 2원 생방송으로 진행됐다.임백천은 KBS 제주방송총국 스튜디오에, 게스트는 서울 KBS 본사 스튜디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제주도민인 허수경이 진행하는 '허수경의 해피타임 4시'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
장근석 "양화대교는 내 얘기…가난했고 미친듯이 살았다"①가난했던 어린시절 연예계 활동 시작해 한류스타로 우뚝지난해 탈세논란으로 해외활동 주력…"2016년 국내에서 가열차게 뛸 것"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올해는 국내에서 정말 가열차게 활동할 겁니다. 한류스타도 국내의 기반이 없으면 공허하죠. 배우로서 다시 국내에서 인정받고 싶어요." 장근석이 돌아온다. 우리나이로 올해 서른이 된 그는 상반기 중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에게 인사할 예정이다. 그의 드라마 출연은 2013년 '예쁜 남자' 이후 3년 만이다. 아울러 국내 활동 역시 3년 만에 재개하게 된다. 애초 그는 지난해 1월 tvN '삼시세끼 어촌편'을 통해 자연인 장근석의 매력을 보여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촬영까지 다 해놓고 방송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터진 '탈세논란'으로 그는 2015년 국내 활동을 접어야했다. 할 말은 많아보였지만 입을 닫은 채 자신을 향해 쏟아진 손가락질과 비난을 견뎌낸 그는 서른을 앞두고 혹독하게 통과의례를 거친 듯 했다. 2016년을 맞아 새롭게 각오를 다진, 30대로 접어든 장근석을 최근 만났다. 너무 가난했고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달려야했던 꽃미남 소년은 한류스타가 됐지만, 이후 방황도 했고 이런저런 뭇매도 맞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다. 다음은 장근석과의 일문일답. --지난 1년 어떻게 지냈나. ▲학교 열심히 다녔다.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이고 이제 2학기 남았다. 쉬지 않고 올해까지 해서 마치려고 한다. 학교를 다닐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단편영화 4편을 찍었고 동료 학생들과 많이 어울렸다. 또 일본 등 해외에서도 부지런히 활동했다. --지난해 1월 탈세논란이 있었다.▲기사가 터졌을 때 일본에 있었다. 믿지 않겠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하고 싶은데 탈세를 했다는 게 아니라 '논란'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에 너무 당황했고 속상했다. 순식간에 나는 '탈세범'이 되더라. 3주 동안 휴대전화도 끄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만 다녔다. 일본에서도 산에 들어가 있었다. (지난해 장근석은 논란이 불거진 나흘 뒤 자신의 팬카페에 "이유가 어찌됐건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지고 그 논란의 중심에 제 이름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사과 드리고 싶다. 불과 며칠 전에 2015년은 정말 열심히 달려보자라고 글을 올렸는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 돼 난감하기도 하고 그저 미안하기만 하다"는 글을 올렸다.)지금껏 주식을 하지도 않았고 투기를 하지도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었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논란이 벌어져 많이 속상했다. --돈을 많이 벌었나.▲많이 벌었다. 그런데 내 수중에는 없다. 다 어머니가 관리하신다. 열심히 벌었고 많이 벌었다. 그래서 이제는 돈을 좇지는 않는다. 그런 욕심은 없다. 좀 더 큰 욕심을 내려고 한다. 우선 내 이름을 딴 재단을 올해 만들거다. 5년전부터 준비해왔다. 좀더 체계적으로, 좀 더 폭넓게 나눔을 실천할 거다. 연기 트레이닝센터를 만들어 후배도 양성할 거고, 에이전트도 세워서 신예들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선배들도 다 챙기고 싶다. 생활이 어려운 배우들이 많다.--기부는 쭉 많이 해왔지만 후배 양성이나 에이전트는 장근석에게 좀 낯설어 보인다. ▲고깝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어깨 위의 책임감이 무척 크다. 지금껏 받은 사랑을 돌려 드리는 방법 중에는 내가 아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선후배 동료를 챙기는 일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회사 운영에 관심을 안 가졌지만, 이제 30대도 됐고 돈을 좇지 않아도 되니 한류스타로서 큰 사랑을 받은 내가 지금껏 익힌 노하우로 연예계에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20대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움직였다면 30대부터는 다르게 살고 싶다. --다시 돈 얘기다. 그동안은 돈을 좇았나. ▲가난했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들으면서 '참 좋은 노래다', 그리고 '내 얘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택시를 운전하셨고 어머니가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셨다. 제천에서 살던 우리 세 식구는 외동아들 교육은 서울에서 시켜야겠다는 어머니의 뜻으로 내가 12세 때 서울로 올라왔다. 20만원 들고 상경했기 때문에 외가에서 더부살이를 해야했다. 아버지는 양화대교가 아니라 천호대교를 주로 타셨고, 나는 그때 속옷 광고를 찍었다. 세 식구 모두 돈을 벌기 위해 미친듯이 최선을 다해 살았다. 함께 저녁을 먹는 게 소원이었고 그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삼겹살 들어간 김치찌개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저녁을 함께 먹는 날이면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벌어 2년 만에 외가를 벗어나 월세 20만원짜리 우리 집으로 나갔다. 우리 식구는 다시 50만 원을 바라보고, 또 100만 원을 바라보고, 또 200만 원을 바라보며 살았다. 조금씩 돈을 벌어가는 게 행복했다. 하지만 돈은 아무리 벌어도 사람의 욕심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8개월 살다 돌아왔다. 중학교 3학년 마치고 갔다. 내가 계속 영어 배우고 싶다고, 유학 가고 싶다고 졸랐다. 미국 갈 돈은 없으니 삼촌이 식당을 하시던 뉴질랜드로 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거기서 영어는 안 배우고 일본 친구들하고 어울렸다. 8개월 동안 일본어를 배우고 왔다. 그때부터 일본에 관심을 가졌고 일본으로 진출할 꿈을 키웠다. 금세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MBC '논스톱4' 캐스팅 제안이 와서였다. 역시 돈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 형편에 출연료를 무시할 수 없었다. --진짜로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는 한류스타가 됐다. ▲일본 진출 꿈을 키운 지 9년 만에 (꿈의 상징인) 도쿄돔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감개무량했고 목표를 달성해 벅찼다. 그런데 그 이후 생각지도 못한 상실감이 밀려들더라. 그토록 달성하고 싶어 앞만 보고 뛰어왔던 목표를 마침내 달성하고 나니 갑자기 뭘 해야할지 방향을 상실한 느낌이었다. 인생 최고의 희열을 맛본 직후 곧바로 인생 최고의 시련을 경험한 셈이다. 많이 힘들었다.
-
'보니하니' 이수민 "진행 천재라뇨, 아직 너무 부족해요"EBS '보니하니' MC 이수민(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EBS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 MC로 화제를 모은 아역배우 이수민이 1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EBS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완숙한 진행으로 화제…"전지현 같은 배우 되고파"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요즘 어른들이 넋을 놓고 보는 영상이 있다. 가슴 애절한 드라마도 배꼽 빠지는 예능도 아닌, EBS 1TV 어린이 프로그램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영상이다. "우리 친구들이 일주일을 기다린 금요일만의 시간, 게임톡톡 해보쇼~ 먹니와 함께 하는 먹어보니 맛잇쇼~ 오늘은 먹니가 왕거미 머핀을 만든다고요? 아이 무셔! 아이 무셔!"사람들을 잡아끄는 것은 일품인 진행 실력이다. 보니와 하니는 랩 배틀을 벌이는 것처럼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더니, 곧바로 깜찍한 표정과 몸짓으로 사람들을 홀린다. 어린이 방송이 거기서 거기일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불꽃튀는 MC전쟁이 벌어지는 MBC TV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박진경 PD는 최근 "미친 재능…이들(보니·하니)보다 진행을 잘할 자신이 없다"는 한 트위터리안의 글을 리트윗했다. "'진행 천재'라뇨, 아직 너무 부족해요. 배울 것도 많아요. 방송할 때마다 보니 오빠(신동우)로부터 손짓이나 몸짓이라든가 새로운 걸 배워요."15일 오후 강남구 도곡동 EBS본사에서 만난 '하니' 이수민(14)은 누리꾼들의 칭찬에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매주 평일 오후 6시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보니하니'는 EBS 장수 프로다. 이수민은 지난해 9월 배우 신동우와 함께 '보니하니'의 새 얼굴이 됐다. EBS '보니하니' MC 이수민2013년 엠넷 '보이스 키즈'로 데뷔해 이듬해 투니버스 '김구라 김동현의 김부자쇼'에 출연한 것이 전부인 이수민에게 방송 진행은 처음이었다. 이수민은 보니·하니의 '케미'(화학작용) 비결에 대해 "제가 진행을 못 했는데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보니 오빠와 1년 넘게 같이 하다 보니 많이 발전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미친 진행'이라는 과격한 별명도 얻은 이수민에게도 아찔한 실수의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 달을 준비한 첫 방송에서 드라이아이스가 들어 있던 솥을 엎은 것이다. "첫 방송이잖아요, 솥이 엎어졌을 때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또 한 번은 '마법식당'에서 인절미 토스트가 떨어졌는데 제가 그때 '정말 맛있는 인절미 토스트에요'라고 말해야 했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보니 오빠에게 토스트를 주워서 줬어요. (웃음)"처음에는 자신을 비추는 여러 대 카메라 앞에서 우왕좌왕하던 이수민은 이제 "이쯤 되면 3번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겠다"고 짐작할 만큼 노련해졌다. 울산 출신인 이수민은 '보니하니' 진행을 맡으면서 서울로 아예 전학을 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와 방송국을 오간다. '보니하니' 생방송이 끝나면 오후 7시30분이 된다. 요즘에는 주말마다 투니버스의 어린이 드라마 '내일은 실헝왕' 촬영을 진행한다.EBS '보니하니' MC 이수민"학교생활도 즐겁게 하고 있어요. 종종 친구들과 저희 집에서 같이 놀아요. 친구들이 '너 같은 애가 왜 자꾸 페이스북에 올라오냐'고 놀리기도 해요."딸기 주스를 쭉 빨아들이며 "제가 다양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친구들이 얼굴 좀 막 쓰지 말라고 한다"고 말하는 이수민의 표정에서는 그 나이 또래 천진함이 느껴졌다. 음악방송 MC도 욕심난다는 이수민의 궁극적인 꿈은 연기다. 꿈을 이루고자 수년간 틈 닿는 대로 연기 수업을 받았다. '보니하니'에서 개그맨들과 종종 콩트 연기를 소화한 것도 도움이 됐다.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방법, 엔지(NG)에 대처하는 법, 카메라 돌아가는 흐름을 읽는 법, 그리고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됐어요."이수민은 닮고 싶은 배우로 전지현을 꼽았다. 전지현 출연작을 대부분 봤다는 그는 특히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 같은 캐릭터가 특히 탐난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야무진 답이 돌아왔다. "아직 연기로 보여드린 게 없지만 5년 뒤, 10년 뒤에는 연기로 평가받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인성이 바른 배우가 싶어요. 성품에 대해 논란이 일지 않는 배우요. 그런 제 모습을 잘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요."
-
'마을' 최재웅 "문근영이 일관성 있게 극 끌어줬다"미소짓는 최재웅(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배우 최재웅이 9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12.10 scape@yna.co.kr복장도착증·연쇄살인범 '아가씨'역…연이어 뮤지컬 공연 "힘들지만 즐거워요"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사실 제 분량이 많지는 않았는데 많이 나온 걸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여장도 몇 번 안했는데…. 배우로서 이렇게 시청자들에게 좋은 평가도 받고 화제도 되는 작품을 하게 된 게 감사하죠."배우 최재웅(36)은 SBS TV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을 끝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그는 극중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쥔 복장도착증 환자이자 연쇄살인범 강필성 역을 맡았다. 핏빛 드레스에 짙은 화장을 하고 첫 등장을 한 탓에 주로 극중 별명인 '아가씨'로 불렸다.백골로 발견된 김혜진(장희진 분)의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쳐 가는 이 드라마에서 '아가씨'는 김혜진의 동생 한소윤(문근영)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마다 힌트를 하나씩 주며 극을 풀어간다.어릴 적 집을 나간 엄마로 인해 복장도착증에 걸렸고, 결국 그 삐뚤어진 마음은 여성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이유로 연쇄살인까지 저지르는 '나쁜 놈'이지만 이 아가씨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사진=SBS 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최재웅은 "'아가씨'는 그냥 이상한 놈"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다만, 좋게 보면 순수한 면이 있기 때문에 다른 영화나 드라마 속의 무자비한 연쇄살인범처럼 그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다"고 말했다.중저음이지만 크지는 않은 목소리,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모습의 최재웅은 "'대풍수'에서 인연을 맺은 이용석 감독이 '와라'해서 갔고 '여장해라'해서 했다"고 캐스팅 비화를 털어놨다. 이미 뮤지컬 '헤드윅'에서 여장 경험이 있던 터라 여장 연기는 대수롭지 않은 듯 했다.모든 것을 알고 있던 '아가씨'와 달리 최재웅은 자신이 연쇄살인범인 사실도 촬영을 시작하고 한참 뒤에야 알았고, 김혜진을 죽인 범인은 촬영 당일에야 알았다. "배우들끼리 범인을 추리하고 시청자분들의 추리를 지켜보면서 재미있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을'이 '범인 찾기'로 끝나지 않아서 좋았어요. '누가' 김혜진을 죽였느냐가 아니라 그 죽음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결말이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었죠."밝은 미소의 최재웅(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배우 최재웅이 9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12.10 scape@yna.co.kr최재웅은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의심, 의혹을 덮으려고만 하던 마을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가영(이열음)이 죽고 가영의 엄마가 경찰서로 가서 20년 전의 성폭행을 신고하는 장면을 꼽기도 했다.또 "여러 인물들이 워낙 임팩트 있게 그려져서 조금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주인공인 문근영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있게, 기둥같은 느낌으로 잘 중심을 잡아줬다"며 "그 덕에 15회, 16회에서 이 작품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설득력을 발휘한 것 같다"고 주인공 문근영을 치켜세우기도 했다.계원예고-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쭉 배우의 길을 향해 걸어온 최재웅은 2003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다.이후 '그리스' '쓰릴 미' '주유소습격사건' '날 보러 와요' '헤드윅' '그날들' 등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오갔고 2009년 '불꽃처럼 나비처럼' 2012년 '페이스 메이커'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췄다. '마을'은 '대풍수' '왕가네 식구들' '리셋'에 이은 4번째 TV드라마 작품이다.18일엔 뮤지컬 '오케피' 개막을 앞두고 있다. '마을' 촬영과 뮤지컬 연습이 겹쳐 전북 완주에서 드라마를 찍은 뒤 뮤지컬 연습을 위해 서울로 왔다가 다시 완주로 내려가기도 했다. 그야말로 쉼 없이 달리는 셈이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해요. 하지만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다행히 저한테 계속 기회가 주어지고, 가끔 좋은 영화나 드라마도 할 수 있는 지금이 정말 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