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길따라 멋따라> 분단과 대립의 현장 파주의 3대 명품길"임진강 속살을 들여다본다"…45년만에 개방된 생태탐방로 "문화와 삶이 소통한다"…평화누리길·DMZ 자전거길 (파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연초부터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 계속된 도발에 남북 관계가 다시 냉각기에 들어갔다. 북한의 이런 돌발행동이 있을 때마다 접경지인 경기도 파주에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파주는 분단의 현실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통일의 길목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 만큼 다양한 안보관광지와 여행지가 곳곳에 숨어있다. 여기에 더해 임진강과 한강 하류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시베리아 등지에서 남하한 천연기념물 재두루미(제203호)를 비롯해 두루미(제202호), 독수리(제243호) 등이 겨울을 보내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20일은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절기상 춘분(春分)이다. 모든 생명이 꿈틀거리며 봄맞이 채비를 하는 이때 '분단과 대립의 현장'이면서 전쟁 상흔이 남은 파주 비무장지대(DMZ) 인근을 여유롭게 거닐며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해 보는 건 어떨까?◇ 임진강 속살을 들여다본다…45년 만에 개방된 생태탐방로 민통선(민간인통제선) 안 군인들만 걷던 파주시 임진강변 철책 순찰로가 45년 만에 시민에게 개방됐다.경기관광공사는 지난 1월부터 시범 운영한 임진각∼통일대교∼초평도∼임진나루∼율곡 습지를 잇는 생태탐방로 트레킹 코스(9.1km)를 지난 16일부터 본격 운영했다.원래 철책선 인근 순찰로였던 것을 경기도와 파주시가 23억원을 들여 폭을 1.5∼3m로 넓히고 보도블록을 깔았다. 임진강 생태탐방로는 1971년부터 군사 보안 등의 문제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경기도는 육군 1사단과 협약을 맺고 2010년 임진각∼임진나루(7.9㎞), 지난해 임진나루∼율곡습지공원(1.2㎞) 생태탐방로를 조성했다.탐방로는 2013년 마을축제 때 처음 개방된 뒤 이벤트성으로 간헐적으로 행사가 열리다 지난 1월 20일부터 최근까지 시범 운영됐다. 그만큼 자연생태가 잘 보전돼 있다. 탐방로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는 고라니가 뛰노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하이라이트는 임진나루에서 하류 쪽으로 약 2㎞ 지점에 있는 초평도다. 물억새와 갯버들이 우거졌고 가을부터는 두루미·가창오리·쇠기러기·독수리 같은 철새들이 날아온다. 인근에는 검은 현무암 기둥들이 잇닿아 절벽을 이룬 '주상절리'가 있다. 높이 10여m의 주상절리 벽이 폭 400m에 걸쳐 펼쳐진다. 역사·문화 유적도 있다. 임진나루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란갈 때 거친 곳이다. 나루 근처에는 조선 영조 때 만든 성문인 진서문 터가 있다. 임진나루 동쪽 1㎞ 지점에 강을 굽어보는 벼랑 위에 지어진 화석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은 율곡 이이가 낙향해 학문을 연구한 곳이다.생태탐방로 트레킹은 매주 수∼일요일(월·화·법정공휴일 휴무) 운영되며, 위탁운영기관인 경기관광공사는 해설사를 배치, 50명씩 팀을 나눠 탐방 코스를 안내한다.겨울철에는 오전 9시 30분부터, 여름철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시작되며 하루 이용 인원은 150명 이내로 제한된다.탐방은 만 12세 이상, 10인 이상 단체만 참가할 수 있다. 만 12세 미만은 보호자가 함께 참가하면 된다.참가를 원하는 시민은 참가일 7일 전까지 생태탐방로 홈페이지(http://imjingang.walkyourdmz.com)로 신청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임진강 생태탐방로 안내소(☎ 070-4238-0114)로 문의하면 확인할 수 있다.◇ 문화와 삶이 소통하는 파주 평화누리길(6∼9코스)2010년 5월 개장한 평화누리길은 서부 DMZ 접경지역인 김포·고양·파주·연천 등 4개의 시·군을 잇는 대한민국 최북단의 걷는 길이다. 12개 코스 191㎞로 구성된 이 길은 경기도의 다양한 역사 유적은 물론 마을 안길·논길·제방길·해안 철책·한강 하류·임진강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각 코스는 15㎞ 내외로, 파주지역 평화누리길은 6∼9코스 구간으로 구성돼있다.총 10㎞인 6코스는 인쇄문화를 접할 수 있는 출판도시에서 시작해 생태 습지, 통일전망대 등을 지나는 길이다. 생태습지에는 겨울이면 멸종 위기의 재두루미, 저어새 등 희귀 철새들이 날아든다.21㎞인 7코스는 헤이리 예술마을이 있는 성동사거리에서 시작해 반구정을 연결하는 길이다. 파주의 대표 문화공간을 넘어 이름난 데이트 코스로 거듭난 헤이리, 프랑스의 소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프로방스 등 연인들이 즐길 거리가 특히 풍성하다. 8코스는 대표 안보관광지인 임진각과 평화누리, 황희 정승이 여생을 보낸 반구정, 생태 보고인 초평도를 조망할 수 있는 장산전망대 등 역사와 문화,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코스다. 13㎞ 구간에는 분단으로 멈춰선 철마가 있고, 실향민들에겐 마음의 고향인 임진각이 있다. 이어 율곡습지공원과 황포돛배를 타볼 수 있는 17㎞ 길이의 9코스가 나타난다.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 위에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선조들의 이야기와 임진강 황포돛배에 얽힌 한민족의 역사를 공유할 수 있는 탐방 길이다. 율곡 이이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가을이면 수만 송이의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특별한 DMZ 라이딩…'DMZ 자전거길' 평소에는 출입이 어려운 민통선 내 DMZ 일원을 자전거로 달려볼 수 있다. 2010년부터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진행하는 'DMZ 자전거투어'가 올해는 오는 27일을 시작으로 오는 10월까지(매월 넷째 주 일요일) 5차례 진행된다.임진각 아래 통문에서 출발해 임진강변 군 순찰로, 통일대교, 군내삼거리, 에코뮤지엄 등 철책로를 따라 초평도와 64통문을 돌아오는 17.2km의 코스로, 소요시간은 2시간이다. 특히 통일대교 아래에서 초평도 방향으로 약 2km에 걸쳐 조성된 'DMZ 에코뮤지엄' 거리엔 통일의 염원을 담은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과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다양한 예술작품이 전시돼 볼거리를 제공한다.라이딩 중 초평도 인근 휴식 장소에서는 수려한 임진강의 풍경을 감상하고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관람용 쌍안경이 준비돼 북녘땅을 바라볼 수도 있다.자전거투어를 원하는 희망자는 경기관광포털(ggtour.or.kr) DMZ 자전거 투어 코너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
작사가 김이나 "나이 들어도 아이돌 가사 쓰고픈 욕심 있죠"노랫말로 가요계 독보적 입지…"조용필 '걷고 싶다' 훈장같은 곡" "작사의 출발은 가수의 캐릭터…선한 가사만 쓰려하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김이나(37)의 작업실은 스타 작사가의 공간치고는 단출했다. 강남구 역삼동에 아담한 작업실을 마련한 건 "프리랜서 같은 직업이다 보니 출퇴근하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 달에 적게는 2곡, 많게는 5~6곡씩 가사를 쓴다는 그는 일이 없어도 매일 작업실에 출근한다. "노력파이고 치열하게 사는 편"이라고 했다. 2000년대 말부터 업계에서 이름난 김이나는 현재 가수들의 앨범 재킷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작곡가 중에는 유명인이 많은 반면 스타 작사가는 드문 시장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박주연, 박창학, 양재선, 강은경 등 1990년대 정평이 난 작사가들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고, 미디어 노출이 적었던 '선배들'과 달리 지난해 '김이나의 작사법'이란 책을 낸 뒤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도 출연 중이다. 최근 작업실에서 만난 김이나는 "일에 지장을 받거나 들뜰까 봐 방송을 안 하다가 어느 순간 여유가 생기더라"며 "나름 사람들 웃기는데 일가견이 있는데 방송에서 다 편집된다"고 웃었다. 김이나의 작품 궤적은 광범위하다. 아이유의 '좋은 날'과 '잔소리', '너랑 나'를 비롯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 조용필의 '걷고 싶다', 엑소의 '러키'(LUCKY), 동방신기의 '데스티니'(DESTINY), 가인의 '피어나' 등 가수의 연령과 음악 장르를 아우른다. "그중 '걷고 싶다'는 훈장 같은 곡"이란다. 2003년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해 지금껏 만든 노랫말만 300여 곡. 지난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저작권대상' 시상식서 저작권료를 가장 많이 받은 작사가로 대상을 받았고 2012~2014에 이어 올해도 '가온차트 K팝 어워드'에서 '올해의 작사가'상을 차지했다. 저작권 수입을 묻자 그는 "어머니와 할머니 생활비를 드리는데 양껏 효도할 수 있을 만큼 번다"고 에둘러 답했다. 음악은 좋아했지만 그가 처음부터 작사가를 꿈꾼 건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후 고교 시절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주립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첫 직장도 계측기를 납품하는 회사의 마케팅팀으로 음악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음악 비즈니스 관련 일을 하고 싶었지만 창작자가 될 거라곤 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작사가의 길로 인도한 건 유명 작곡가 김형석이었다. "전 원하는 게 있으면 뻔뻔스러워져요. 우연히 한 음식점에서 김형석 씨를 만났는데 공연까지 갈 정도로 팬이던 터라 호기롭게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인사했죠. 한번 찾아오라며 작업실 주소를 주셨는데 데모곡도 없이 찾아갔어요. 제가 어설프게 피아노 치는 걸 보시더니 '화성악을 독학한 후 오라'며 돌려보내셨죠. 그런데 제가 홈페이지에 올린 일기와 글을 보시고는 작사를 해보라고 조언하셨어요." 작사가로의 성장에는 유명 프로듀서인 남편, 조영철 에이팝엔터테인먼트 대표도 힘이 됐다. 한때는 "남편 덕에"란 말에 자격지심이 있었다는 그는 "성공할 확률이 높은 음원을 작업할 기회가 남들보다 많았고 남편 덕에 기획 마인드도 갖게 됐다"며 '복'이라고 쿨하게 인정했다. 김이나는 작사란 시 같은 문학이 아니라 실용음악의 한 영역일 뿐이란 가치관이 확고했다.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이상, 가사는 주인공이 따로 있는 창작물이니 작사가의 자아 대신 가수의 캐릭터에 맞는 말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예쁜 여가수가 '너무 자신이 없다'고 하거나, 모범생 이미지의 남자 가수가 '난 거칠고 나쁜 남자'라고 하면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곡이 사람이라면 가사는 성격, 성질을 보태는 작업"이라며 "그래서 가수의 이미지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시작점은 가수이고 내가 아는 사실들에서 출발하지만 한 문장이 나오면 이후 감정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과정을 거친다. 20% 정도를 논픽션에서 시작해도 80%는 픽션으로 전개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펀치 라인'(핵심적인 한줄), '테마'를 고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중의 공감을 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그는 가수의 목소리와 궁합이 잘 맞으면 가사의 전달력은 증폭된다고 했다. "'그중에 그대를 만나'가 시적으로 들리는 건 이선희 선배님의 목소리 힘이죠. 목소리가 입혀지면 다른 글이 되거든요. 조용필 선배님이 '너와 걷고 싶다~'라고 노래하면 임팩트가 달라요. 제가 쓴 가사가 명문(名文)이라기 보다 가수와 합이 맞았기에 '좋다'고 해주시는 겁니다." 이제 대중의 마음이 좀 읽히는지 묻자 그는 "읽히다, 말다 한다"고 웃었다. "대중이 좋아하는 포인트까지 아는 건 확실히 아닙니다. 그러니 예상과 달리 저조한 성적을 거둔 곡도 있는 거죠. 그래도 특정 가수의 팬덤이 좋아하는 포인트는 조금 알겠어요. 최근 작사한 김재중의 '서랍'도 팬들이 좋아해 줬죠."김이나의 '글발'이 때론 도발적인 건 '선한 가사'만 쓰지 않아서다. "작사가로서 사회적 책임과 대의를 품고 긍정적인 메시지만 전파해야 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라며 "단, 10대 가수의 노래에서 성적인 코드는 가급적 피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래도 하나의 극이니까 비극일 때도 있는 것"이라며 "내가 쓴 가사 중 '아브라카다브라'는 자기 파멸적이다. 도발적인 건 터부시 되지만 매력적이지 않나. 하지만 터부 자체가 되면 위험한 콘텐츠가 된다. 나 역시 '네거티브'(부정적인 것)에 공을 들이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이유가 작사한 '제제'의 가사 논란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가사의 해석을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와 '예술에도 금기가 존재한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는 "아이유의 유명세가 컸겠지만 논란을 보며 한편으론 대중문화 콘텐츠가 담론을 만들어내는 위력에 놀랐다"며 "각자의 생각일 테니 어떤 판단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아이유는 자기 언어로 생각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가사를 정말 잘 쓰는 뮤지션이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꼭 작업해보고 싶은 가수로는 나훈아를 꼽았다. 나훈아의 '홍시'란 노래를 듣고서 주옥같은 언어에 반했다고 한다. "가사를 무슨 생각으로 쓰실까 싶을 정도로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중 한 분"이라고 했다. 또 구창모의 '희나리'나 이문세의 '옛사랑'처럼 시간이 흘러도 새삼스럽게 감동을 주는 가사를 좋아한다고도 했다. 작사가로서 스스로 "성공했다"고 즉답한 그는 지금도 글을 닥치는 대로 읽는 건 게을리하지 않는다. 작사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주는 '팁'도 글을 다루는 직업이니 재료가 되는 글을 많이 읽으란 것이다. "수식어 없이 담백한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같은 책을 좋아해요. 가사가 안 풀릴 때면 정치·사회 기사와 판례문처럼 꾸밈없는 글을 읽고요. 심지어 치약통 뒤의 사용설명서까지요. 모든 글은 작사가에게 요리의 재료이거든요. 많은 분이 '어떻게 멋있게 꾸며 쓸까'로 빠지는데 담백체를 잘 쓰면 꾸밈글도 잘 쓰죠. 또 장르에 호불호 없이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하고요." 작사가는 좋은 직업이라는 그는 "여전히 욕심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아이돌 노래의 가사를 쓰고 싶다"며 "아이돌 가사 섭외가 계속 온다는 건 현역의 증명이기도 하다. 음반제작자들은 트렌드에 민감해 아이돌 가사를 쓰는 건 여전히 '감'이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스타 작사가 김이나 <<김이나 측 제공>>
-
'버스안내양과 전차' 1950∼1980년 서울사진 공개서울사진아카이브에 9만 8천900점 전시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한강부교의 복구를 알리는 1957년 개통식과 1988년 서울올림픽 전 국민을 하나로 모았던 서울시청 성화봉송까지.서울시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다양한 시정 현장 사진 9만 8천900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 서울사진아카이브(photoarchives.seoul.go.kr)를 운영한다고 4일 밝혔다.시는 1990년대 이후의 시정사진 기록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할 계획이다. 1966년 주택가를 달리는 전차 <<서울시 제공>>아카이브는 시기별, 주제별, 지역별로 검색 메뉴를 만들어 원하는 사진을 쉽게 검색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경제, 교통, 문화, 안전, 정치 등 주제별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컬렉션' 메뉴에선 서울살이, 서울시민, 서울시내버스, 서울 지하철 1호선, 숭례문, 세운상가, 대학로, 전통시장 등 시민의 삶이 담긴 20대 주제를 선정해 관련 사진별로 분류했다. 서울살이와 서울시민 코너에는 스토리텔링 영상도 넣었다.이밖에 1960년 서울시장 선거 투표소, 1963년 개관을 앞둔 장충체육관과 노면 전차, 1967년 세운상가 건설 모습, 1968년 '오라이'를 외치는 시내버스 안내양, 1970년 완공된 서울역 고가도로와 남대문 전경, 1986년 덕수궁 전경 등 사진이 눈길을 끈다. 서울 시내버스 안내양 <<서울시 제공>>아카이브의 모든 사진에는 각종 문헌기록과 당시 언론기사 등을 바탕으로 한 소개 글을 달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서울시에 있어 출처만 정확히 표기하면 상업적으로도 쓸 수 있다.시는 또 이번 아카이브 서비스를 발판으로 2017년 개장할 서울기록원의 시정기록정보 서비스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
"우리는 한 그루 나무일 뿐"…故신영복이 남긴 위안과 지혜(종합2보)'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 신영복 교수 별세(서울=연합뉴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으로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15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신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으며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끝내 숨졌다. 2016.1.15 << 도서출판 돌베개 제공 >> photo@yna.co.kr"20년 대학생활" 옥살이하며 고전과 인간에 관심…출소 후 지성 베풀어'감옥으로부터의…', '강의', '더불어숲' 등 명저로 감명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나는 인간을 어떤 기성(旣成)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개인이 이룩해 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너도 알고 있듯이 인간이란 부단히 성장하는 책임귀속적 존재이기 때문이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안양에서 동생에게 보낸 편지)15일 별세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온몸으로 감당한 시대의 고통을 사색과 진리로 승화시킨 시대의 지성인이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옥살이를 한 신 교수가 옥중서간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보여준 반듯한 모습은 동시대 아픔을 겪은 이들의 위안이자 심적인 지지대가 됐다. 27세부터 47세까지, 옥 안에서 살아야 했던 새파란 젊은 시절을 그저 흘려보내는 대신 끝없는 자기 성찰로 채워나간 고인은 '87년 체제'와 함께 사회로 나와 정권교체와 외환위기 등으로 이어진 숨 가쁜 30년을 지켜봤다. 고인은 특히 물질적 성공과 실용 학문만을 추구하는 세태에서 인문학과 고전의 가치를 꿋꿋하게 지키며 신구 세대를 막론한 지표 역할을 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고인은 옥살이를 하면서 동양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다.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유년 시절에서부터 내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에 대해서 반성하게 됩니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게 될 동양고전 강독은 사실 감옥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강의' 중에서)'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 신영복 교수 별세(서울=연합뉴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으로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15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신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으며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끝내 숨졌다. 2016.1.15 << 도서출판 돌베개 제공 >> photo@yna.co.kr고인은 "감옥은 수많은 비극의 주인공들이 있고, 성찰의 얼굴이 있고, 환상을 갖지 않은 냉정한 눈빛이 있다. 감옥은 '대학(大學)'이다"라고 말해 왔다. 그가 이 '20년 대학생활' 동안 찬찬히 살핀 동양 고전 글귀와 해설을 담은 강독서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은 인문·고전분야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고인은 '나무가 나무에게', '나무야 나무야' 등 저서에서 사람을 나무에 즐겨 비유했다. "우리는 결코 떠날 수 없는 자리에서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땅에 뿌리박은 한 그루 나무일 뿐입니다. 삶이란 비록 그것이 감옥처럼 고인 세월이든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이든 지나간 세월은 어김없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 깊숙이 들어와 결코 떠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더불어숲' 중에서)1997년 세계 22개국에서 각국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사는 방식을 둘러본 그는 그곳에서 얻은 성찰을 모은 책 '더불어숲'(1998)을 펴내 또 한 번 울림을 줬다. "인간주의의 절정인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며 이제는 자기의 소산(所産)인 문화와 물질 속으로 함몰해가고 있는 오늘의 인간주의를 반성하게 됩니다. (중략) 새로운 인간주의는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궁핍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 쌓아놓은 자본으로부터, 그리고 무한한 허영의 욕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더불어숲' 중에서)고인은 이 외에 '변방을 찾아서', '청구회 추억' 등 주옥같은 문장으로 가득한 저서를 남겼다. 신 교수는 출소한 이듬해인 1989년부터 2014년까지 25년간 성공회대에서 강의했다. 그의 강의에는 학생은 물론 직장인과 나이 지긋한 청강생까지 줄을 이었다. 별세한 신영복 교수가 남긴 서화(서울=연합뉴스)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 명저를 남긴 고인은 옥살이 중에 교도소에서 서예를 배워 출소 후 탁월한 서화 작가로도 활동했다. 사진은 서화 '처음처럼'. 2016.1.16 << 도서출판 돌베개 제공 >> photo@yna.co.kr성공회대 강의를 녹취한 원고를 바탕으로 지난해 4월 펴낸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는 신 교수의 철학을 집대성한 책인 동시에 그의 유작이 됐다. 담론이 사라지고 성찰이 희미해진 시대에 고전에 대한 드넓은 공부와 따뜻한 인간애를 담은 신 교수의 마지막 책은 지혜에 목마른 독자들의 손에 들려 10만 부 이상 팔렸다. 강연장에서 그는 옥중에서는 사전 검열에 막혀 마음껏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내가 (교도소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 길어야 2시간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 겨울 독방의 햇볕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다."('담론' 중에서)신씨는 멋스러우면서도 정감 있는 글씨를 쓰는 서화 작가로도 유명하다.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어깨동무를 한 듯한 그의 독특한 글씨체는 교도소 서예반 활동을 하며 터득한 것이다. '처음처럼', '더불어숲' 등 단순하고 평범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 특유의 통찰과 지혜를 담아낸 그의 서화 작품은 많은 시민에게 평화와 생명, 공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의 서체(쇠귀체)로 쓴 '처음처럼'이라는 글귀는 소주 상표에 붙기도 했다. 이 글씨의 저작권료는 신 교수가 극구 사양해 당시 두산주류는 1억원을 성공회대에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
-
김장훈 첫 교도소 공연…"웃음과 눈물의 두 시간"청주교도소에서 처음 열려…"다음엔 화성교도소"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21일 오후, 가수 김장훈이 청주교도소 강당에 등장했다. 김장훈이 무대에 오르자, 교도소 수용자 500명이 모인 객석에선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김장훈의 사상 첫 교도소 콘서트는 '난 남자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오페라' 등 김장훈의 히트곡 행진으로 막을 올렸다. 김장훈은 '난 남자다'를 부를 때부터 객석으로 뛰어들어 수용자와 함께 춤을 추고 소리 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어 특별출연자로 함께 나온 대한민국스포츠합창단은 김장훈과 호흡을 맞춰 희망적인 가사의 곡 '깊은 밤을 날아서'와 '내일이 찾아오면'을 불렀다.수용자들로 구성된 밴드와 중창단이 무대에 오르자 공연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밴드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 '이 아들이 아파요'를 부르자 일부 관객은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랩 공연을 선보이고, 또 김장훈의 대표 리메이크곡 '사노라면'을 함께 부르며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무대를 만들었다. 마지막 곡으로는 '내사랑 내곁에'를, 앙코르곡으로는 '키다리 아저씨'를 부르면서 김장훈의 첫 교도소 콘서트는 두시간여 만에 막을 내렸다. 한 교정위원은 "이렇게까지 수용자들이 호응하고 즐거워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이곳에 찾아와서 큰 기쁨을 전해준 김장훈과 합창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장훈은 "10년 전부터 꿈꾼 계획을 실행에 옮기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생애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감회를 전했다. 그는 이어 "교도소 공연은 단순히 수용자를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 이들이 사회로 돌아왔을 때 포용할 수 있는 정서와 사회 시스템을 마련해 제2, 제3의 범죄와 피해를 막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공연의 궁극적인 목표는 범죄 예방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장훈은 내년에도 1월 화성교도소 콘서트를 시작으로 6차례 '교도소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
용인문화재단, 12월 클래식·오페라 공연용인문화재단은 공연과 함께하는 따뜻한 겨울 나들이를 위해 12월에 다양한 클래식, 오페라 공연을 준비했다. 감미로운 연주와 해설이 있는 일동제약과 함께하는 ‘마티네 콘서트’12월 17일(목) 오전 11시, 감미로운 연주와 해설이 있는 일동제약과 함께하는 ‘마티네콘서트’가 용인포은아트홀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헨델의 ‘수상음악 모음곡 3번’으로 시작해,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교수이자 연세신포니에타와 KT챔버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택주의 협연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가을’과 ‘겨울’을 연주한다. 이어 독창적인 음악성으로 매 연주마다 신선한 무대를 선사하고 있는 소프라노 서희정(동덕여자대학교 교수)이 청량한 목소리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양치기 임금님’ 중 아리아 ‘나 그대를 사랑하며, 절대 변치않으리’와 로드리고의 ‘4개의 사랑 노래’로 로맨틱한 겨울을 표현할 예정이다.용인문화재단의 대표 문화예술 브랜드, 오전에 만나는 클래식 여유 ‘마티네콘서트’의 2015년 마지막 무대는 아름다운 음악 선율에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의 창시자인 김용배의 안정적인 목소리로 전하는 친근한 해설이 더해져 추운겨울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줄 것이다.HD영상으로 즐기는 뉴욕메트오페라,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씨네오페라의 2015년 마지막 상영작은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Evgeny Onegin)’이다. 12월 19일 오후 3시 용인포은아트홀에서 상영되는 ‘예브게니 오네긴’은 러시아 대표 작가 알렉산드르 푸슈킨(Aleksandr Pushkin)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안나 넵트렙코가 상사병에 걸린 타티아나 역으로, 마리우스 퀴베첸이 오만한 오네긴 역을 맡아 열연하며,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무대와 피날레를 장식하는 눈보라 등의 드라마틱한 연출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일 공연 티켓으로 음악 평론가 박제성의 해설로 진행되는 사전 강연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유쾌한 코믹 오페라 ‘돈 파스콸레’용인문화재단은 DKU오페라 뮤즈가 제작한 오페라 ‘돈 파스콸레’를 12월 26~27일 오후 5시 용인포은아트홀 무대에서 선보인다. 이번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두쇠 이야기라 표현되는 ‘돈 파스콸레’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오페라로, 인물들 간의 코믹한 스토리와 도니제티의 품격 넘치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현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해학과 풍자를 통해 숨겨진 인생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단국대학교의 DKU오페라 뮤즈와 용인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돈 파스콸레’는 최고의 기량을 갖춘 기성 성악가와 단국대학교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신인 성악인재들이 함께하는 무대로, 재단은 학생들에게 프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 제공과 함께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이번 무대를 기획했다. 주인공 돈 파스콸레 역을 맡은 베이스 한경석을 주축으로 에르네스토 역의 테너 박준석과 진성원, 말라테스타 역의 바리톤 장승식, 팜므파탈 노리나 역의 이은송이와 김지수 등 최고의 성악가와 단국대학교 대학원 재학생들이 무대에 오른다. 이밖에도 작년 단체 창단공연 오페라 ‘리골렛토’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DKU오페라 뮤즈의 손미선 단장과 전 서울대학교 오페라 연구소장 및 서울시 오페라 단장을 역임한 박세원 예술감독, 구모영(지휘), 이경재(연출), 무대 이학순(무대), 고희선(조명) 등 최고의 제작진들이 참여하여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 YS 서거> "물에 뛰어든 베드로의 기백"…국회 추모예배< YS 서거 >국회 추모예배(서울=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김영삼(YS) 전 대통령 영결식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가장으로 엄수된다. 이날 아침 故 김영삼 前대통령 국회추모예배준비위원회와 국회평신도5단체협의회 등이 마련한 추모예배에서 새에덴교회 성가대가 추모찬양을 하고 있다. swimer@yna.co.kr이종걸·홍문종 등 여야 의원, 시민 등 100여명 참석 장상 "YS, 민주주의 위해 물 위를 걷는 위험 무릅써"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여야 기독교도 의원들은 26일 오후 국회에서 거행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앞서 이날 오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 추모예배에 참석, 고인의 마지막 길을 기렸다.이날 추모예배는 김 전 대통령 국회추모예배준비위원회와 한국교계-국회평신도5단체협의회(한평협), 4·19혁명국가조찬기도회 등의 주관으로 열렸다. 예배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국회조찬기도회장인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 김영진 한평협 이 원내대표는 추모사에서 "어떤 수식어보다 김 전 대통령의 인생에 중심이 된 건 독실한 신앙과 용기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이었다"며 "군부종식의 신념과 의회민주주의 원칙 앞에서 그의 말은 단호했고 행동은 전격적이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정치입문의 길을 열어준 인연이기에 깊은 슬픔으로 명복을 기원하는 이 순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벌써 먹먹한 그림이 돼 가슴을 채운다"고 밝혔다. < YS 서거 >국회 추모예배(서울=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김영삼(YS) 전 대통령 영결식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가장으로 엄수된다. 이날 아침 故 김영삼 前대통령 국회추모예배준비위원회와 국회평신도5단체협의회 등이 마련한 추모예배에서 장상 전 국무총리가 추모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swimer@yna.co.kr장 전 총리서리는 "직설적이고 담대하며 기백 있는 대통령의 삶이 마치 성경의 베드로와 같다"며 김 전 대통령을 물 위를 걷는 예수를 따라 물 속으로 뛰어든 베드로에 비유했다.장 전 총리서리는 "대통령이 민주화라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투쟁할 때 '저거 정말 곤란한데'라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뛰어들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돌보는 데 물 위를 걷는 위험을 무릅쓰고 죽도록 충성했다"고 설명했다.한평협 소강석 지도목사는 추모 헌시에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치며 폭압과 불의의 밤과 맞서 싸우시던 님의 그 사자후의 목청은 여전히 우리 가슴을 울리고 있는데 이제 왜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으신가요"라며 애도했다.
-
<인터뷰> 이선희 "노래는 비우는 작업…'J에게'는 지금 들어도 뭉클""음악은 저를 기억하는 사람과의 소통…젊은 팬들 감사해" "목소리는 나만의 악기…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이선희는 누구나 자신 있게 '국민가수'라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요계 거장 중 하나다.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차지하며 데뷔한 그는 이듬해 1집 타이틀곡 '아! 옛날이여'를 시작으로 '갈바람', '알고 싶어요', '나 항상 그대를', '한바탕 웃음으로' 등을 히트시키며 1980년대 대표 디바로 자리 잡았다. 그는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팬들을 사로잡으며 최초의 언니부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1990년대에도 꾸준히 신곡을 발표했던 이선희는 2011년 미국 카네기홀의 아이작스턴 오디토리움에서 단독 콘서트도 열었다. 작년에는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정규 15집 '세런디피티'(Serendipity)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이선희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속사 건물에서 만났다. TV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에 기자가 놀라자 그는 "제가 TV에 잘 안 나오죠"라고 농담을 건넸다. 우선 최근 근황을 물었다. 이선희는 작년 3월 앨범을 발매하자마자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열어 1년여를 팬들 옆에서 보냈다. 올해에는 광복 70년 기념 프로그램 KBS '나는 대한민국'에 출연해 '1945 합창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제 겨우 스케줄이 뜸해졌네요. 작년에는 1년 내내 공연하느라, 올해에는 '나는 대한민국'을 준비하느라 긴장을 풀 수 없었어요. 프로그램이 끝나고 한 2주를 앓았죠. 그러고 나니 좀 일상을 즐기겠더라고요. 쉴 때 하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로 적어놨거든요. 지금은 그것들을 하러 돌아다니느라 바쁘네요. (웃음)" 그는 가수로서 31년을 살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노래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이선희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진 터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음악은 일종의 소통이죠.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자신을 표현해요. 제가 지난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결국 노래로 말하는거죠. 결국 저를 기억하는 사람과 계속 소통하는 거죠." 수없이 무대에 서고, 팬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았을 텐데. 질문을 던지니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어서 무엇을 담으면 계속해서 쏟아내요. 노래도 그렇죠. 감정을 계속해서 쏟아내죠. 그래서 기쁘든 슬프든 감정은 그 순간에만 남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굳이 지나온 시간 동안 뭐가 남았는지 연연하지 않는 편이에요." 이런 답을 들으니 선뜻 다른 질문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질문을 멈출 순 없었다. 발표했던 곡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물으니 자연스럽게 'J에게'라는 답이 나왔다. "저는 이 질문을 받으면 항상 'J에게'라고 대답해요. 이렇게 무덤덤하게 말하고 있지만 막상 'J에게'는 지금 들어도 뭉클해요. 제 스스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노래거든요." 이 외에도 최근 그의 입속에 맴도는 노래가 있다. 작년 발표한 15집 수록곡 '이제야'다. '그땐 몰랐었던 거죠/ 다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어리석게도/ 느낌표, 쉼표도, 거기에 담겨 있음을'이라는 가사가 왠지 모르게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 제가 원래 가던 방향에서 좀 다르게 방향을 틀었거든요. 그렇게 결정하다 보니 갈등이 많아졌어요. 그랬더니 저도 모르게 이 노래를 입으로 읊조리고 있더라고요. 이 노래를 자꾸 부르는 걸 보면서 제 시선이 바뀐 걸 느껴요." 이선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안경, 바지정장이 그것이다. 항상 바지만 입는 그를 보며 팬들은 '이선희 다리에 큰 흉터가 있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는 데뷔 후 7~8년 동안 민 낯으로 방송에 나가기도 했다.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한 이유를 물으니 "그때는 그냥 그게 좋았다"라는 싱거운 반응이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 그 당시 순간순간 부딪치는 게 많았어요. 화장도 하고, 안경도 벗으라고 하는데 그냥 싫었어요. '노래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가야 하는데 내가 왜 저 사람들을 따라가야 하나?'라는 물음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고집 반 반항심 반으로 계속 밀고 나가니 그냥 제 스타일로 굳어지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되니 그 스타일이 싫어지더라고요. (웃음)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자연스럽게 따른 것 같아요." 이선희의 공연장에 중장년층 관객만 찾을 것으로 생각하면 상당한 오산이다. 그의 콘서트장에는 늘 20~30대 관객들이 북적인다. 특히 영화 '왕의 남자'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에 수록된 '인연'이란 노래가 큰 히트를 치면서 그는 젊은 세대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선희가 손 편지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쓴 팬레터를 보내는 소녀팬들도 수두룩하다. "공연장에서 관객석을 보면 깜짝 놀라요. 예전보다 관객들이 젊어져서 확연하게 드러나거든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요즘 젊은 팬들의 의사 표현은 정말 통통 튀어요. 공연 후기 게시판도 꼼꼼히 살펴보는 편인데 반응을 보면 너무 재밌어요. (웃음) 저를 언니라고 부르는 중학생 팬이 하나 있는데 자기 엄마도 저를 언니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저희 엄마도 언니 팬인데 족보가 어떻게 돼요?'라고 물어온 적도 있어요." 이선희는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2'에서 멘토를 맡는 등 후배들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그러나 요즘 가요계를 보면 아쉬움도 크다고 했다. 강변가요제 출신인 그는 요즘 우후죽순 생겨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특히 그런 느낌을 받는다. "당시 강변가요제나 대학가요제는 우리끼리의 축제 같은 느낌이었어요. 물론 결승, 준결승을 가며 경쟁하긴 했지만 다들 노래를 좋아했고,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했죠. 그런데 요즘은 정말 경쟁만 해요. 모두가 다 다른 건데 나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1,2위 하는 순간으로 가수가 되는 건 아닌데 말이죠." 그는 말을 이어갔다. "목소리는 나만의 악기에요. 다른 사람이 나보다 노래를 더 잘한다고 해서 내 자리를 가지는 건 아니에요. 모두 다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거든요.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져야 더 풍성하게 살 수 있어요. 먹자골목을 생각해보세요. 한 음식점이 아니라 다양한 음식점이 모여 있으니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모두 다 잘할 수 있어요." 이선희는 후배들이 존경하고, 닮고 싶어 하는 거장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요즘 TV를 틀면 이선희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거나 모창하는 가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정작 본인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했다. "요즘 후배들은 정말 음악을 잘해요. 예전에는 좋은 걸 표현할 줄도 몰랐어요. 또 음악 하시는 분 상당수가 쫓아가는 음악을 했죠. 그런데 요즘은 음악으로 잘 표현하는 세대가 됐어요. 제 노래를 후배들이 불러주면 너무 좋죠. 그걸 듣고 '저런 방향으로도 노래를 부를 수 있겠구나' 느끼기도 해요. 그러나 제가 부른 방식 그대로 노래하는 후배를 보면 잘하고를 떠나서 좀 아쉬워요." . 그런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은 없을까. "어쨌든 겪는 거예요. 겪어낸다는 건 쌓이는 거고, 쌓이면 뱉어낼 줄 알아야 하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음악으로 뱉어내야 해요. 물론 경쟁이 다는 아니지만 그런 과정을 이겨내는 것도 필요해요.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남 때문에 내가 안 되는 게 아니에요. 남도 되고 나도 되는 거죠." 인터뷰를 진행하며 31년의 내공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조목조목 밝히는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되는 순간도 많았다. 한 시간여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작은 거인' 이선희의 답은 역시 특별했다. "예전에는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동시에 가진 소년 같은 목소리였다면 지금은 여성스런 목소리가 됐어요. 그러다 보니 거기에 맞는 노래를 부르게 됐고 목소리도 맑아졌어요. 이제 저는 50대 이후에 어떤 노래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다음 앨범이요? 앨범을 낸다는 건 비우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뭔가 가득 채워져야지만 열매가 맺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채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계획이 없답니다."
-
김원준 "방송은 '트루먼쇼' 하는 기분…밴드가 탈출구죠"밴드 베일, 7년 만에 정규 앨범…사랑 이야기 담아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가수 김원준의 밴드 '베일'이 7년 만에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다. 2006년 김원준, 김구, 정한종, 이창현, 강선우 등 5인조로 1집 '베일'(VEIL)을 선보인 베일은 2007년 '레슨 01'(Lesson 01), 2008년 '1.5 레슨 컴플리트'(1.5 Lesson Complete)를 끝으로 휴식기를 가졌다. 마지막 앨범 이후 7년 만에 원년 멤버인 김원준, 정한종에 새 멤버 엄주혁을 영입해 3인조로 새 앨범 '커밍 홈'(Coming Home)을 내놓은 이들을 최근 서울 강남에서 만났다. 그간 김원준과 정한종은 사실상 밴드 활동을 포기하고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밴드 시나위, 나비효과 등에서 연주하고 가요 프로듀서와 작사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한 정한종은 공연제작사 사업을 하며 '비즈니스맨'으로 살았다. 김원준은 가수보다는 방송인으로 활동했다. 이들의 억눌려 있던 음악 본능을 일깨운 것은 김원준이었다. "한종 형에게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라고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사업은 안했으면 좋겠다고요. 형은 뮤지션인데, 뮤지션이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너무 이상했죠. 그래서 곡부터 쓰자고 했어요."(김원준) "7년 동안 완전히 떠나 있다가도 돌아올 수 있는 밴드가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고, 이제 사는 것 같아요. 이런 친구들이 없었으면 저 같은 노장을 어디서 받아주겠어요.(웃음)"(정한종)정한종은 시베리안 허스키, 펑키브라운 등에서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엄주혁을 끌어들였다. "기타 개인지도를 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꼭 내가 기타를 이렇게 열심히 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친 거죠. 기타를 모두 처분하고 '작곡만 하자' 생각했는데 한종 형이 어느 날 같이 다시 밴드를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원래 형을 흠모하고 있었기에 바로 받아들였죠."(엄주혁)다시 만난 이들은 밴드 이름부터 고쳤다. 원래 '삶의 다양한 요소'(Various Elements in Life)라는 의미였던 '베일'(VEIL)의 끝 글자 'L'을 '삶'(Life)에서 '사랑'(Love)으로 바꾼 것이다. "처음 밴드를 시작할 때도 사실은 '사랑'의 'L'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랑보다 더 큰 주제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삶'으로 확장했죠. 10년 전에는 '우리의 삶은? 우리 인생은?' 이런 거창한 얘기를 하고 음악에 힘이 많이 들어갔는데, 지금은 사람에 주목하게 된 것 같아요."(김원준) "10년 전 저희 공연은 조금 어두웠어요. 그땐 자연스러운 것보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죠. 음악으로 인정받고 싶고, 인정 못 받으면 날이 서 있고요. 이제는 그때의 거품을 뺐죠."(정한종) 지난해 말 작업을 시작해 1년 만에 완성한 이번 앨범은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한 남자의 사랑을 주제로 한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을 노래한 캐주얼한 록 '왜 이럴까', 로맨틱한 발라드 '별', 탱고 풍의 편곡을 한 '슬로 댄스'(Slow Dance), 얼터너티브 록을 가미한 '내버려둬' 등 10곡이 수록됐다. 다양한 장르를 도입한 데 대해 정한종은 "장르를 한정하기보다 가사와 화자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 뭘까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10곡의 상황이 다 다른데, '이 남자가 이런 환경, 이런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표현될까' 라는 고민이 다양성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래는 모두 3명이 함께 작사·작곡·편곡을 했다. 멤버들은 "노래는 정확히 삼등분해서 같이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원준은 "어떨 때는 주혁이가 먼저 얘기를 꺼내서 나머지 두 명이 이야기를 얹어 가고, 언제는 한종 형이 가사를 다 써오면 나머지가 멜로디를 입히면서, 그렇게 우리 셋의 교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 제4의 인물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엄주혁은 "각기 음악을 해온 경험이 길다 보니 이제는 다른 사람이 의견을 냈을 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게 됐다"며 "예전에는 내 생각만 옳다고 여기니 대립이 됐는데, 이제는 서로 다 아니까 싸움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 차례나 '가상 결혼'을 한 김원준에게 결혼 체험이 사랑 노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는지 물었다. 그는 반대로 가상현실에 지친 자신에게 음악이 탈출구가 됐다고 털어놨다.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대중이 제 행동을 다 보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저는 분명 뭔가를 서비스하는 거거든요. 각본 없는 드라마인 것도 사실이에요. 이런 일상에 빠지다 보니까 베일을 안 하면 진짜 제 삶이 없어지겠더라고요. 제 마음을 그대로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베일인 것 같아요."김원준은 이어 "40대가 되니 뭔가에 급급하지 않게 된다"며 "이전 앨범에서는 누군가 우리 음악을 지적하면 '왜?' 하고 반문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어'라고 넘어갈 수 있게 됐다"고 여유를 보였다. 어느새 '40대 밴드'로 돌아온 이들에게 포부를 물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음악으로 관객과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공연 욕심이 크다고 했다. "앞으로 저희는 공연을 정말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대화랑 똑같으니까, 현장에서 대화하는 게 가장 진솔하겠죠. 앞으로 베일의 공연을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
<갑질 논란> ① 공포가 돼 버린 갑질 '횡포'…"사람 냄새도 싫다"의료·금융·도소매업종 여성 감정노동자 45%, 스트레스 '위험수준' <※ 편집자주 = 상류층의 천박한 특권의식을 조롱하는 '갑질'이란 말은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상이 됐습니다. 병원, 은행, 대형마트, 백화점에서는 고객이라는 '왕'이 된 '노동자'들이 또 다른 노동자들을 절망하게 하는 일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는 우리와, 남모를 고통을 겪다 일터를 떠나는 또다른 우리의 모습을 진단하고, '한국식 갑을관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는 기획기사 4꼭지를 일괄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김은경 기자 = 서울의 한 대학병원 채혈실에서 일하는 A(여)씨는 매달 '진상' 환자를 2∼3명 겪는다.채혈이 끝나면 5분간 주사를 놓은 곳을 누르라고 안내하지만 지혈하지 않고 멍이 들었다며 난리 치는 환자, 의사만 알 만한 내용을 물어보고는 답을 듣지 못하자 자기를 무시한다고 따지는 환자도 있다. 아기를 데려온 부모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가 무서워 몸부림칠 때 부모가 붙잡아주면 좋으련만 실패해 다시 바늘을 꽂으면 '당신이 제대로 못 해 우리 아이를 아프게 한다'며 역정을 내는 일이 왕왕 있다.A씨는 "화가 나고 억울해도 우리는 늘 죄송하다고 말한다"며 "욕설뿐만 아니라 '잘라버리겠다', '병원에 불을 지르겠다' 등 별별 소리를 다 듣는데 그럴 때마다 그만두고 싶다"고 씁쓸해했다.은행 영업점 창구 직원 B(여)씨는 고객에게 말을 건넬 때마다 미소를 띠고 있지만 속으로는 늘 불안에 떤다.필요한 사항을 안내할 때 고객이 절차가 복잡하다며 화를 내거나 대답하지 않고 억지를 부릴까 걱정돼서다. 언제부턴가 고객의 표정을 살피는 버릇마저 생겼다.B씨는 "점잖아 보이는 중년 남성이 신분증 없이 주민번호를 불러주며 계좌의 돈을 확인하고 싶다고 해서 금융실명제 때문에 안 된다고 했더니 '내가 내 돈 보겠다는데 너희가 뭘 아느냐,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소리를 질렀다"며 "배운 사람인 듯 보였는데 '갑질'에는 그런 것이 상관없더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C씨는 대형마트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면서 삶이 망가지기까지 했다.싫은 표정 한 번 짓지 못하고 하루에도 고객 여러 명에게 폭언에 가까운 말을 들어야 했던 그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통증을 느끼다가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C씨는 "이제 사람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난다"며 "대인기피증으로 집에서 보낸 세월이 벌써 1년이 넘었다"고 전했다.얼굴을 마주해야만 '갑질'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항상 상냥한 목소리로 고객 전화에 응대해야 하는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의 한 직원은 "시민이 폭언이나 욕설, 협박 등을 할 때 겉으로는 태연한 척 웃지만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린다"며 "이런 일들이 반복되니 목이 조여오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지옥이다"고 고통을 호소했다.최근 발생한 백화점 스와로브스키 매장 갑질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던 갑질 횡포는 일부 특권층만의 빗나간 행동이 아니었다.고객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에 종사하다 보면 누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당하는 현실이다. 이른바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이들은 전국적으로 560만∼740만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 10명 중 3∼4명꼴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시민단체인 '감정 노동자 보호입법을 위한 전국네트워크'가 올해 6월 의료·금융·도소매업종 노동자 2천244명을 대상으로 감정 노동자의 의식·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심각한 갑질 횡포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상대하기 어려운 고객을 응대하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부하와 갈등의 정도가 '위험' 수준에 도달한 비율이 여성은 45.1%, 남성은 15.9%에 달했다.위험 수준에 있다는 것은 이런 문제로 심리적인 손상을 입거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는 의미다. '공격적이거나 까다로운 고객을 상대해야 한다', '나의 능력이나 권한 밖의 일을 요구하는 고객을 상대해야 한다'는 등의 관련 항목에 응답자가 매긴 점수를 계산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위험' 수준으로 판단한다.노동자의 실제 감정과 직장에서 요구하는 감정표현의 충돌로 발생하는 감정 부조화, 고객 응대에서 발생한 심리적 손상 정도는 여성의 60.6%가 위험 수준에 있었다. 남성 역시 25.4%로 적지 않았다.서비스업 종사자들은 고객뿐 아니라 회사 눈치도 봐야 했다. 감정노동 수행에 대한 회사 내 감시의 정도와 고객응대에 대한 평가가 승진이나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정도가 위험 수준인 비율이 여성은 52.2%, 남성은 23.0%였다.실제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들도 14.8%에 달했다. 이들의 41.4%는 남들 앞에서 모욕을 받았고 28.8%는 임금, 성과금 등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감정 노동자들이 느끼기에 고객의 갑질 횡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 한해 폭언, 폭력, 성희롱 등 악성고객이 줄었나'라는 물음에 74.8%가 '별로 그렇지 않다'(48.7%)거나 '전혀 그렇지 않다'(26.1%)고 답했다. '고객이 전반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적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역시 75.7%가 '별로 그렇지 않다'(48.1%)거나 '전혀 그렇지 않다'(27.6%)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이와 함께 금융경제연구소가 작년 은행·카드회사의 콜센터와 영업창구 종사자 3천8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한 달에 19.4회 무리한 사과 요구, 인격 무시, 욕설 및 폭언, 성희롱·성추행 등 악성민원에 시달렸다.악성 민원인에게 시달린 직원의 52.2%는 회사에서 오히려 '업무에 집중하라'고 요구받았다.심지어 '악성 민원인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도록 했다'는 경우가 24.4%,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는 사례도 15.1%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