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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청년들의 뜨거운 열정, 고용한파를 녹이다최근 전북지역 실업률은 1.3%로 호조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청년 실업률은 4.8%로 여전히 청년층 고용한파가 매서운 가운데, 공개 오디션을 통해 지역인재를 채용하는 잡영챌린지(Job Young Challenge)가 큰 관심 속에 개최됐다. 전라북도, 전주고용노동지청,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전북지역 고용혁신추진단이 주최하고, (사)전주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발전협의회가 주관하여 청년고용 확산을 위해 공동 개최한 이번 행사는 한국전기안전공사, 전북은행, 이스타항공, 원광대학병원 등 지역인재 채용을 선도하는 대표 기업들이 참여했다. 25일(수) 전북도청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본선 무대는 412명의 참가자 중 3차례 예심을 통해 29: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14명의 청년인재들이 뛰어난 셀프 마케팅 경연을 펼쳐 많은 갈채를 받았다. 이번 잡영챌린지는 지역 노사민정 기관장과 400여명이 참관한 가운데 전국 최초의 스펙초월 청년인재 채용 오디션으로 개최되었다. 이번 스펙초월 공개오디션은 치열한 일자리 경쟁으로 서류심사 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청년들에게 스펙과 비주얼이 아닌 열정과 잠재역량 평가로 채용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직무능력 중심 채용과 함께 새로운 채용문화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행사에는 청년고용 확산을 위해 도내 행정기관, 노동계, 경제계 등 7개 노사민정 기관장이 직접 평가에 참여하여 순위에 따라 각급 기관장상을 수여하고 청년들을 격려했다. 순위 시상 이후, 전북은행, 원광대학교병원, 한국전기안전공사, 이스타항공의 인사임원들이 채용예정자를 현장에서 직접 발표할 때마다 환호가 쏟아지는 등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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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대박' 친 최민수 "새롭고 강렬한 숙종 보여주려했다"(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확실히 이런 숙종은 처음이다. 덥수룩한 구레나룻에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 이글대는 욕정과 승부사 기질….그가 캐릭터를 입으면 같은 역할도 이렇게 달라진다. 역시 대체불가다.최민수(54)가 SBS TV 월화극 '대박'의 1~2회에서 화면을 장악했다. 그가 새롭게 해석해 내놓은 카리스마 넘치는 숙종의 모습에 '대박'은 새판이 짜인 방송 3사 월화극 대결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인터넷에서도 단연 최민수의 연기가 화제다. 지난해 KBS 2TV '나를 돌아봐'에서 빚어진 폭행 사건으로 또다시 구설에 올랐던 그이지만, 그가 '광대'로서 보인 연기에는 잡음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타고난 끼와 가슴 속 불을 연기로 소화하고 해소해야 하는 천형을 타고난 듯한 최민수를 지난 1일 인터뷰했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그런가? 잘 모르겠다. 그냥 임팩트가 있으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숙종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했다. --왕 역할이 처음이다. 사극에서는 무사만 연기했다.▲그동안 왕 역할 제안은 많이 왔었는데 별로 하고싶지 않았다. 사극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번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내가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왜냐고 물으면 할말은 없다. 그냥 이번에는 왕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간 사극에서 그려진 왕의 전형적인 모습,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과 같은 근엄하고 위엄있는 모습에 더해 권력을 쥔 자의 삶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숙종을 새롭게 해석했다.▲숙종은 그간 사극에서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통해 그려진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 '대박'이 숙종 중심으로 돌아가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숙종을 통해 권력의 상징성을 그려내고 싶었다. '다른 게 뭐가 있을까' 문헌을 찾아보며 연구했다. 숙종에게는 여자가 9명 정도 됐던 것 같더라. 그런데 여자가 많았던 게 단순히 여성편력 때문이 아니라 건강상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아들 경종이 천식이 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게 유전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숙종이 천식을 앓는 것처럼 설정했다. 잔기침을 많이 하고 목소리고 약간 쉰듯, 갈라진듯 설정했다. 촬영장에서 일부러 잔기침을 많이 한다. 또 숙종이죽을 때 목 뒤에 혹이 나 있었다는 기록을 보고 혈액 순환이 안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숙종이 여자가 많았던 것이 사실은 폐가 약하고 몸이 찬 남자이기에 여자에게서 따뜻한 기운을 얻고자 그랬던 게 아닐까 상상했다. 또 숙종은 성격이 예민하고 괴팍했던 것 같은데 그게 다 몸에서, 건강의 문제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석했다.그간 숙종은 궁중 암투에 휘둘린 왕으로 주로 그려졌는데, 이번에는 숙종의 입체적인 모습, 숙종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나서고 싶었다. 3부에서는 숙종이 안경을 쓰고 나온다. 내 아이디어다. 찾아보니 숙종이 왕 중에서 안경을 가장 먼저 썼더라. 그래서 소품팀에 말했더니 안경박물관에서 구해왔더라. --왕의 구레나룻이 특이하다. 비주얼부터 차별화된다. ▲사극 속 왕의 모습은 단정하고 깔끔한 전형적인 모습이 있다. 이번에도 우리 분장팀과 연출팀은 내게 그런 모습을 요구했다. 그런데 왕도 사람 아닌가. 개성이 있고 흐트러진 모습도 있을텐데 너무 고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고종도 사진을 보면 용포를 기워 입은 흔적이 있더라.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내 구레나룻이고 내 머리로 상투를 틀었다. 분장용 털을 붙인 게 아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수염도, 머리도 길렀다. 사람으로서 흐트러진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왕이라고 정좌한 자세로만 앉아있지 않았을 것 아닌가. --왕이 여자를 탐해 투전판에까지 끼었다. ▲남자의 본능이랄까. 13살에 왕이 돼 하늘 꼭대기에서 살던 자에게 삶의 재미가 뭐가 있을까 싶다. 그런 왕에게 오랜만에 가슴을 뛰게하는 여자와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실제로 숙종이 변복을 하고 많이 다녔다고 하니 상상의 에피소드지만 아주 황당하지는 않아보였다. --극중 숙종은 궁 밖의 자식과 궁 안의 자식을 거느리게 된다.▲노론과 소론 당파싸움 속 왕도 정보전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숙종이 극중 대길(장근석 분)을 살려둔 것은 아마도 궁밖 소식을 얻기 위한 안테나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해석한다. 대본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뒤의 이야기는 모르지만 그런 포석이 아닐까 싶다. 실제 영조한테는 어려서 죽은 형이 있었다고 하더라. 대길이는 그 아이를 모델로 살을 붙인 인물인 것 같다.--연기란 최민수에게 무엇인가.▲공기 같은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난 문제다. 내가 찾아가게 하고, 도전하는 즐거움을 주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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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 어남택에 18.6%…"응답하라 시리즈 최대반전"15일 덕선 남편 밝혀지며 6년만에 케이블 시청률 경신누리꾼들은 밤새 뜨거운 설전…가족이야기도 그대로 살아 있어 감동 또 감동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덕선의 남편은 택이었다. 그리고 케이블 시청률은 새 역사를 썼다. tvN '응답하라 1988'이 15일 방송된 19화에서 시청자가 목 빠지게 기다렸던 '답'을 마침내 공개하면서 역대 케이블 프로그램 시청률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16일 tvN에 따르면 '응답하라 1988'의 19화는 평균 시청률 18.6%, 순간 최고 시청률 21.7%를 기록하며 6년 만에 케이블 시청률 기록을 경신했다. 역대 케이블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은 2010년 10월22일 방송된 '슈퍼스타K2' 마지막회로, 평균 18.1%를 기록했다. 엠넷과 KMTV과 동시 중계했던 '슈퍼스타K2'는 엠넷 18.0%, KMTV 0.1%를 기록해 합계 시청률 18.1%로 집계됐다.(순간 최고 시청률은 21.2%) '응답하라 1988'의 이같은 성과는 케이블업계의 쾌거인 것은 물론이고, 지상파의 프리미엄이 붕괴돼가고 있는 현실에서 방송업계 지각변동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덕선의 남편은 천재 바둑기사 최택 이날 방송에서는 1화부터 '응답하라 1988' 시리즈를 관통해왔던 덕선(혜리 분)의 미래 남편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드디어 해소됐다. 답은 '상등신'이자 '천재 바둑기사' 최택(박보검)이었다.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 파와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 파로 나뉘어 극렬하게 언쟁을 벌였던 팬들은 답이 공개되고 나서도 밤새 갑론을박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 덕선의 남편이 최택으로 드러나자 '어남택' 파는 팡파르를 울렸고, '어남류' 파들은 실망감을 토로하며 "응답하라 시리즈 최대 반전"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도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냐를 놓고 끝까지 시청자를 궁금하게 했지만, 사실은 극중 서인국과 정우가 보여준 무게감과 비중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컸기에 그들이 결국 남편으로 귀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은 앞선 작품들과 같은 공식을 대입하자면 류준열이 연기한 정환이, 박보검이 연기한 택보다 덕선의 남편으로서 가능성이 커 보였던 게 사실이다. 초중반까지 정환의 비중에 비해 택은 약했고 뭔가 겉도는 느낌을 줬던 데다, 무엇보다 덕선의 미래 남편으로 출연한 김주혁의 비주얼과 그가 연기한 까칠한 캐릭터에서 시청자들은 택이 아닌 정환을 덕선의 남편으로 '확신'했다. 중반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후반부 덕선을 향한 택의 마음과 역할이 치고 나오면서 '어남류'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17~18화를 거치면서 '어남택'으로 확연히 대세가 기우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이렇게 되자 팬들은 내 남편을 고르는 일도 아닌데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으로, 또 신나게 덕선의 남편이 누구인지를 놓고 침 튀기는 설전을 벌였고, 온갖 루머와 '팬심으로 만들어진 가짜 이야기'까지 가세하면서 지난 일주일 인터넷 세상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19화에서는 그동안 택이 꿈속에서 덕선과 키스한 것으로 믿어왔던 일이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었음이 드러났고, 친구 정환을 의식해 자신의 마음을 애써 눌러왔던 택이 덕선에게 다시 한번 승부를 걸어 사랑을 쟁취하는 내용이 펼쳐졌다. ◇꽃잎이 진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더라 종영을 앞둔 '응답하라 1988' 최대의 관심사가 덕선이 남편의 정체였지만, 드라마는 지금까지 걸어왔던대로 19화에서도 로맨스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19화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에서는 26년 성실하게 다닌 은행에서 본의 아니게 명예퇴직을 당한 동일과 보험여왕을 내리 하다 일을 그만둔 동룡의 엄마, 52세에 폐경기를 맞은 미란 등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조명되며 가족의 이야기가 여전히 중심에 있음을 보여줬다. 저마다의 인생에서 크나큰 전환점을 맞은 엄마, 아빠들이 상실감과 허무함에 속절없이 가슴을 치다가 끝내는 이겨내고 다시 새로운 오늘을 맞는 이야기는 '어남택'의 짜릿함 못지않게 진한 감동을 전해줬다. 특히 덕선이 정작 퇴직한 직장에서는 챙겨주지 않은 아버지의 감사패를 형제들과 함께 따로 제작해 아버지에게 바치는 대목은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동일은 "꽃잎이 지면 다 끝나는 줄 알았어. 근데 그 꽃잎이 지고나면 또 열매가 맺히더라고"라는 말로 부모의 시간은 저물지만 자식들의 시간은 솟아오르는 인간사의 순리를 곱씹으며 인생의 한 페이지가 저무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 6년만에 드라마가 갈아치운 케이블 최고 시청률'응답하라 1988'가 6년 만에 케이블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운 것은 갈수록 미디어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여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무엇보다 드라마가 20%에 육박하는 성적을 냈다는 점이 눈에 띈다.그간 최고 기록을 보유해온 '슈퍼스타K2'는 시청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휴대전화 문자 등을 통해 시청자가 방송에 참여하는 쌍방향 프로그램이자,SNS에 적극적인 10~20대가 주 타깃층이라는 점에서 시청자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프로그램이다. 반면 '응답하라 1988'은 '본방사수'의 의미가 퇴색된 시대에 드라마 장르이고, 10대를 겨냥한 것도 아닌 폭넓은 세대를 겨냥한 복고풍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유해온 기록을 깨고 새 역사를 썼다는 점에 크게 방점이 찍힌다. '응답하라 1988'은 16일 마지막 20화를 남겨두고 있어 케이블 꿈의 시청률인 20% 돌파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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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EU 2015 이은결의 MAGIC&ILLUSION 제야 콘서트(재)용인문화재단은 201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19시와 22시 30분 용인포은아트홀에서 ‘ADIEU 2015 이은결의 MAGIC&ILLUSION 제야 콘서트’를 선보인다. ‘ADIEU 2015 이은결의 MAGIC&ILLUSION 제야 콘서트’는 마술사 이은결이 다년간의 콘서트 경험을 바탕으로 선정한 베스트 퍼포먼스만으로 구성한 옴니버스 형식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무대다.이은결은 스피디하고 다이내믹한 무대로 단순한 보여주기식 마술 공연이 아닌 증강현실, 마임, 드로잉 등 새롭게 시도되는 다양한 표현방식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일루션 퍼포먼스’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새로운 비주얼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은결은 1996년 마술을 시작해 한국인 최초로 국제마술대회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쥐며 두각을 드러냈다.이후 계속되는 대규모 국제 마술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을 거듭하며 세계가 인정하는 마술사로 급성장했다.강력한 카리스마와 깔끔한 무대 매너, 현란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한국에 마술 붐을 일으켰으며, 기존의 보여주기 형식의 ‘마술쇼’에서 벗어나 ‘매직콘서트’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국내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또한 스토리텔링을 가미하여 극화시킨 스토리매직과 다른 장르와의 코워크(co-work)를 통한 새로운 시도로 마술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5년의 마지막과 2016년의 첫 시작을 함께 하게 될 ‘ADIEU 2015 이은결의 MAGIC&ILLUSION 제야 콘서트’는 ‘마술(MAGIC)’이 ‘환상(ILLUSION)’의 절묘한 만남을 직접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화려한 무대와 친숙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가미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번 제야 콘서트는 모든 연령대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키며, 이제껏 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으로 관객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 공연명 : ADIEU 2015 이은결의 MAGIC&ILLUSION 제야 콘서트○ 일시: 2015.12.31.(목) 19:00, 22:30○ 장소: 용인포은아트홀○ 관람등급 :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 관람료 : VIP석 7만원 / R석 5만원 / S석 3만원○ 예 매 : 031-260-3355, 58 / www.yicf.or.kr / 인터파크 티켓○ 할인 내역:용인문화재단 유료 회원 40%, 3인이상 가족 20%, 2015년도 용인문화재단 12월 공연 구매자 (티켓 소지시) 3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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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준 "연기는 '공부', 예능은 '힐링'이죠"'쿡방' 예능 프로그램 이어 영화 '쓰리 썸머 나잇' 주연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최근 몇 년간 배우 손호준(31)의 주 활동 무대는 TV 방송이었다. 화제작이었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로 떠오른 데 이어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집밥 백선생' 등 여행 또는 요리 방송이 잇따라 터졌다.그가 이번에는 스크린으로 찾아온다. 15일 개봉하는 '쓰리 썸머 나잇'에서다. 임원희, 김동욱을 비롯한 남자배우 셋이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손호준에게는 첫 주연작이다. 개봉을 앞두고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와 예능 출연의 차이에 대한 질문에 "연기로는 공부가, 예능으로는 힐링이 된다"고 답했다. "작품과 예능은 다른 매력이 있어요. 영화나 드라마는 연기가 일이니 대본 분석하면서 공부를 많이 해요. 예능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힐링이 돼요. '꽃청춘' 찍을 때는 효정 누나(신효정 PD)한테 '저한테 출연료 왜 주시는 거예요?' 그랬어요. 여행 보내주셔서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는데요. 하나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았어요." 고향인 광주의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한 손호준은 서울로 올라와 드라마와 영화 속 작은 역할들부터 맡아 차근차근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응사'를 통해 대중에 얼굴을 각인시킨 것이 서른 살에 가까워진 때였으니 무명 시절이 짧지는 않았다. "극단에 들어가고 싶어 서울에 올라온 다음에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죠. 방송에서 작은 일이라도 시작하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 했으니 오히려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그러다 만난 '응사'는 "소중한 작품, 좋은 추억을 넘어 서울에서 새로운 가족을 선물해 준 작품"이라고 그는 돌아봤다. '응사'에서 만난 유연석, 바로와의 인연은 '꽃청춘'으로 넘어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석이와 바로는 항상 만나고 감독님이나 스태프들도 연락하고 지냅니다. 저한테는 가족이 생긴 거라고 생각해요. 윤호(같은 고향 출신으로 친하게 지내는 가수 유노윤호)를 연석이한테 소개해서 같이 만나는데 윤호가 연석이한테 '형님 고맙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손호준은 최근에는 배우 차승원을 '차줌마'로 만든 '삼시세끼'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스타로 만든 '집밥 백선생' 등 '쿡방'으로 활약했다. 그는 톡톡 튀는 입담을 자랑하는 쪽도, 능숙한 요리 솜씨를 뽐내는 쪽도 아니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도 착한 이미지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저는 선배들이 이야기할 때 말 자르고 끼어들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요리 실력이요? 처음에는 제 실력이 그렇게 엉망이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방송에서 보니 제가 봐도 '비주얼'이 좀 그렇긴 하더라고요. (웃음)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어제도 연석이랑 저희 집에서 술 한잔하면서 닭볶음탕과 꽁치조림을 해줬는데 맛있다면서 놀라더라고요" 이번 영화는 '주유소 습격사건'의 김상진 감독이 만든 신작이다. 현실에 치인 세 친구가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해운대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그린 범죄 코미디물로, 그는 갑에게 지친 제약회사 영업사원 왕해구 역을 맡았다. "바다에 들어가는 부분은 10월에 촬영해서 무척 추웠어요. 몸에 뜨거운 물을 붓고 촬영했죠. 뛰기도 참 많이 뛰었어요. 찍은 분량의 3분의 1밖에 안 나온 것 같아요. 그래도 배우도, 스태프도 재미있게 지냈어요. 그렇게 즐겁게 노는 모습들이 화면에도 보이는 것 같아 좋습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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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곡 발표한 솔비 "솔비같지 않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신곡 '우리에겐'…"저만의 색깔 찾을 때까지 계속 도전할 것"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저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가수 솔비(본명 권지안·31)가 지난 26일 신곡 '우리에겐'을 발표했다. 옛 연인을 추억하면서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사랑과 추억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하는 발라드곡이다. 솔비는 이 곡에서 마치 편지를 읽어내려가듯 덤덤하게 곡을 소화한다. 화려한 고음이나 반주도 없다. 예전 댄스가수 시절이나 예능프로그램에서의 그녀를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다소 어색할 법하다. 그녀는 지난 2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솔비 같지 않다"고 말을 꺼내자 "솔비답지 않고 싶다"는 답을 내놨다. "대중이 기억하는 솔비와 진짜 솔비의 접점이 어디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아직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다소 거부감을 느끼겠지만 전 이제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보려고 합니다." 솔비의 이런 변화가 처음은 아니다. 그녀는 지난해 말에도 발라드곡 '사랑 하나면 되는데'를 냈다. 앞서 지난해 3월 선보인 '상큼한 아이스크림 같은 나는 31'도 어쿠스틱 팝 장르였다. 시원한 각선미를 내세워 신나는 댄스곡을 주로 선보이던 그녀가 의외의 행보를 보여서인지 이 음반들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녀는 연달은 실패에 다소 위축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재도전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상큼한 아이스크림 같은 나는 31'은 엄청난 용기를 내서 만든 앨범이었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기가 죽었어요. 그래서 내가 갈 길은 음악이 아닌가 보다고 생각하고 한동안 음악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평생 가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살아야 하는 데 저만의 노래 하나는 남기고 싶더라고요. 마음을 다잡고 저만의 색깔을 찾을 때까지 계속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솔비는 뒤늦게 음악에 새롭게 눈떴다고 고백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가수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활동한 것이 아쉽다고도 말했다. "예전에는 진짜 몰랐어요. 그냥 멜로디 외우고, 가사나 좀 보고 그렇게 노래했어요. 지금은 곡 하나 하나하나가 다 작품이구나. 내가 그동안 가수가 아니었구나 새삼 깨닫고 반성했습니다. 이제야 진짜 가수가 된 기분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이런 내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고, 그림 작업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가랑비에 옷 젖는 듯'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특히 모창 가수들 사이에서 원조가수를 찾아내는 방송 프로그램 '히든싱어'에 패널로 출연하면서 "가수가 왜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저도 가수 솔비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어요. 가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면서 저만의 색깔이 없는 게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그렇다고 비주얼 가수도 아니잖아요." 솔비는 한 때 인생의 방향을 잃고 헤매던 순간에 다른 가수들의 노래에 힘을 얻었다면서 자신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목표가 단순히 욕심으로 끝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워낙 댄스곡을 많이 부르다 보니 노래 부를 때 댄스곡 특유의 버릇이 나옵니다. 이런 버릇을 없애려고 노력 중입니다. 고민도 많이 하고, 녹음할 때 이것저것 시도도 많이 합니다. 솔비답지 않은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그녀는 다른 뮤지션과 교류하며 음악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신곡 '우리에겐'을 작사·작곡한 록밴드 피터팬 컴플렉스의 드러머 김경인과도 음악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해진 사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한동안 몰두한 미술 작업도 당분간은 뒤로 미룰 계획이라고 말했다. 음악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국내외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는 등 미술 쪽에서도 '화가 권지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솔비는 그렇다고 자신이 한순간에 진지한 캐릭터가 됐다고 오해하지는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진짜 솔비' 안에는 여전히 예전의 명랑하고 유쾌한 솔비도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댄스곡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아니라고 부연했다. 늦어도 5월 안에 선보일 또다른 신곡은 댄스곡이다.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 밝고 유쾌한 솔비의 면모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저를 진지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것도 불편합니다. 음악에 있어서만큼 진지해지는 게 맞겠지만 또 저는 대중이 기억하는 그 모습도 그대로 갖고 있거든요. 다만, 지금은 음악으로 조금 더 인정받고 싶을 뿐입니다." 그녀는 예전 이미지를 떨치고 음악으로 인정받으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도 안다고 말했다. "제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방향성을 제시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결국 제가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자고 결심했습니다. 누군가는 절 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할지 몰라요. 하지만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한 발짝씩 가다 보면 언젠가 저만의 음악을 보여 드릴 날이 오지 않을까요."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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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타협없는 앨범…집밥같은 노래로 위로하고파정규 8집 '힘'(HIM) 21일 발표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최근 몇년 사이 '얼굴없는 가수'에서 '비주얼 가수'로 변화를 경험한 김범수가 3년만에 내놓는 정규 앨범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타협 없는 진짜 자신의 모습'이었다. 오는 21일 정규 8집 '힘'(HIM)을 발표하는 가수 김범수는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일말의 타협도 없이 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만든 앨범"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사실 지난 앨범에서의 저는 다듬어지고 깎인 김범수였다. 물론 그런 모습도 저의 일부지만 깎여나간 부분들에 대해 그동안 갈증과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 한을 풀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집밥을 포함해 모두 12트랙이 수록됐다. 장르적으로는 힙합, 알앤비, 솔 등 흑인 음악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 눈에 띄고, 구성의 차원에서는 스윙스, 로꼬, 아이언 등 래퍼들의 참여가 도드라진다. 특히 타이틀곡 '집밥'에는 그의 어머니 목소리가 담겨 눈길을 끈다. 혼자 사는 외로움이 크다는 그는 "팬들과 저 스스로에게 집밥같은 노래로 따스한 위로를 주고 싶었다"는 바람을 밝혔다. 김범수는 "어머니께 설명 없이 평소처럼 전화를 드렸다. 내가 '보고싶다'고 하고 어머니가 답한 자연스러운 대화 내용이 담겼다"면서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평소 안하던 얘기를 해서 부모님이 걱정하셨다더라. 어머니 허락을 받지 않고 앨범을 넣어서 걱정된다(웃음)"고 말했다. "집밥은 처음에는 수록곡으로 겨냥하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만들면서 보니까 노래가 너무 따뜻한 거예요. 그래서 비중 있게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던 중에 어머니께 전화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죠. 그동안 엄마에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이번 기회에 해서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는 젊은 래퍼들과의 작업에 대해서는 "아주 트렌디한 문화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이더라. 그래서 젊은 피 수혈을 많이 했다. 요즘 친구들이 당차고 자기표현에 거침없는 모습에 놀랐다"면서 "스윙스는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는데 막상 전화하니 너무 예의 있게 받는 거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 앨범 대부분 수록곡의 작사, 작곡에 그가 참여했다. 프로듀싱도 그가 맡았다. 그는 "이번 앨범만큼은 '내가 만든 내 앨범'이라는 자부심이 생기는 앨범이다"라고 애정을 보였다. 그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 진하게 묻은 앨범이라서일까. 깊은 감성의 발라드 음악으로만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그의 유머러스함과 30대 중반에 들어선 그가 느끼는 '외로움'이 고스란히 음악에 담겼다. "30대의 외로움에서 앨범이 출발했죠. 20대에 굴곡없는 삶을 살다가 30대에 방황을 겪었는데 그 시기조차 끝난, 결혼이 유일하게 남은 완성인 남자의 감성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짝은 없으니 당연히 외로울 수밖에 없죠. 좋은 배필을 만나는 것이 저에게 중요한 이슈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또 윤종신, 유희열 등 진지한 음악을 하면서도 방송에서는 장난스러운 모습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뮤지션들이 롤모델이라며 "음악을 할 때는 진중하다가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자연스럽게 웃음을 주는 캐릭터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마지막 승부를 향해 치닫는 '슈퍼스타K6'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는 그는 최근 탈락한 임도혁에게 애정을 보이며 "재능도 핸디캡도 있으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뜨거운 모습이 10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친구가 '바보같은 내게'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내 무대보다 더 뿌듯하고 감동적이었다"고 돌아봤다. 김범수에 대해 많은 사람은 '보컬의 신'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노래만큼은 이제 바둑으로 치면 9단에 해당하는 '입신'의 경지가 아니냐 물으니 손사래를 치며 "주변 분들이 말씀해주시는 것보다 나는 스스로 훨씬 부족하다고 본다. 잘 봐도 '아마 5단' 정도가 아닐까 한다"며 겸손해했다. hapy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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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인생> 김범수 "난 상향평가돼…소리꾼 한길 가겠다"고 3때 친구 덕에 노래 재능 발견…빌보드 한국가수 첫 진입·국민 히트곡도 내데뷔 15년, 가장 빛난 무대는 '나는 가수다'…자작곡 채운 8집 계획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김범수(35)의 꿈은 복음성가(CCM)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인기와 부를 얻은 지금의 자리는 엄두도 내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여겼다. 올해로 데뷔 15주년을 맞은 김범수는 최근 강남구 신사동에서 한 인터뷰에서 "가수로서 지금의 위치가 내 나이와 경력에 비해 조금 더 상향 평가됐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종교 음악을 하고 싶었고 TV 출연하는 엔터테이너보다 대학로 어딘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그렸으니 꿈이나 목표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셈이다. "달려와 보니 너무 과분한 자리에 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 지금 출연 중인 엠넷 '슈퍼스타K 6' 심사위원도 누군가를 평가할 위치가 아니란 생각에 계속 고사했어요. 이승철, 윤종신 등의 선배들은 그 자리가 어울리지만 전 아니거든요. 그래서 심사도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조언을 해주자는 생각으로 임해요." 노래하는 재능을 발견한 게 고3 때였다. "음악은 카세트테이프가 닳도록 들었지만 이전까지 노래를 안 했다. 목소리를 발견하기 전까지 내 인생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강서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는 부모에게 반항적이었다. 공부를 못하는 '아웃사이더'였고, 친구들과 싸우기 일쑤였다. 또래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없었다. 고교 3학년 때 정보통신과에서 만난 친구인 허석(기타리스트)이 교회에 나가 찬양팀을 해보자고 한 게 음악에 발을 디디는 계기가 됐다. "허석은 신앙이 두텁고 착실한 친구였어요. 음악을 좋아하던 그 친구가 기타 치는 모습, 연주 소리가 너무 좋아서 교회로 따라나섰죠.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건 피아노를 둘러싸고 성가대 중창단이 연습하는 모습이었어요. 눈이 새롭게 떠지듯 신세계였어요." 이때부터 그는 성가대에서 활동했다. 성가대 친구들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칭찬했다. "가정 형편도 좋지 않아 옷도 못 입고 다녔는데 소리를 내니까 애들이 놀랐어요. 크리스마스 때도 솔리스트로 '오 해피 데이'를 불렀는데 음악적으로는 저의 첫 도전이었죠. 이때부터 동네에서 '노래 해봐라', '복음성가 앨범을 내보라'란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사실 중·고교 시절의 방황은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하며 시작된 도시 생활이 녹록하지 않은 탓이 컸다. 마산에서 그는 "장군동의 황태자였다"고 웃었다. "친척들이 동네에서 군락을 이루며 살았어요. 먹고 싶은 건 슈퍼를 하는 할머니 집에서, 갖고 싶은 건 장사를 하는 이모 집에서 다 가질 수 있었어요. 이모와 여자 사촌들 사이에서 크며 사랑도 많이 받았죠. 그땐 생긴 것도 좀 귀여워 어딜가나 '예쁘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하하." 아버지가 먼 친척이 운영하는 공장 관리를 맡으면서 상경한 그는 양천구 신월동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 일은 순탄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인형 눈을 붙이거나 미싱을 돌렸다. 금실 좋던 부모님의 싸움도 잦아졌다. "겨울이면 연탄가스가 새어나와 어머니가 잠을 깨워 김칫국물을 먹이곤 했어요. 여름엔 침수로 물을 퍼냈죠. 마산 생활이 꿈만 같았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반항적으로 변해갔죠. 학교와 사회에 앙심을 품은 거죠. 하하. 이때 부모님이 정말 힘들어하셨어요." 교회에 나가고 음악을 통해 심적인 안정을 찾아간 그는 허석과 함께 숭실대학교 사회교육원 실용음악과에 정원 미달로 들어갔다. 이때 스승으로 만난 사람이 가수 박선주였다. 박선주도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기획사 오디션 제의를 했다. 그가 "복음성가 가수가 되고 싶으니 대중음악 할 생각이 없다"고 하자 박선주는 "가수로 잘 된 뒤 더 큰 영향력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1997년 처음 오디션을 본 곳이 1990년대 인기그룹 알이에프(R.ef)가 있던 팀엔터테인먼트였다. "오디션을 보고서 합격했는데 댄스 가수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것 같아서 '저랑 안 맞는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네가 원하는 알앤비(R&B), 솔(Soul) 음악을 시켜주겠다', '멀리 보고 키워주겠다'고 약속하셔서 도장을 찍었죠." 그러나 기획사와 음악 방향에 대한 마찰도 있었고 주위로부터 외모 지적도 받는 등 대중 가수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그땐 그런 게 서러웠는데 당시 회사 대표님이 아니면 난 데뷔를 못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데뷔는 '늪'으로 한창 인기를 끌던 '얼굴 없는 가수' 조관우를 벤치 마킹해 '제2의 조관우'로 콘셉트를 잡았다. 조관우의 앨범을 작업한 작곡가 하광훈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그래서 나온 게 1집(1999) 타이틀곡 '약속'이다. 그러나 '약속'은 그가 소화하기에 조숙한 노래였고 10만장도 나가지 않았다. '얼굴 없는 가수'로 데뷔했지만 앨범 반응이 없자 TV 출연을 감행했다. "그때는 앨범 판매량이 매일 집계되던 시절인데 제가 TV에 출연하자 시청자의 반감이 생겼는지 판매량이 뚝 떨어졌어요. '넌 앞으로 TV 출연할 생각 말라'는 말도 들었죠. 마치 제 얼굴 때문에 앨범이 망한 것 같아서 스스로 하찮은 인간 같았어요." 1집을 내고서 '투자 가치가 없으니 그만 접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기획사는 되레 송혜교, 송승헌 등의 스타가 출연하고 호주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2집(2000) 타이틀곡 '하루'다. 앨범 시장 침체가 시작된 상황에서 판매량 20만장을 기록했으니 '중박'이라고 여겼다. 이때 교민이 운영하는 미국 국도음반에서 연락이 왔다. '하루'를 영어곡으로 녹음해 김범수를 미국에 진출시키자는 제안이었다. "한국에서도 안 유명한데 사실 허황된 도전이었죠. 미국에서 제임스 잉그램과 함께 했던 프로듀서가 날아와 편곡했고 '하루'를 '헬로 굿바이 헬로'란 영어곡으로 녹음했죠. 그때로선 나름 치밀하게 준비했어요. 하하." 이 곡은 2001년 빌보드의 부문별 차트인 '핫 100 싱글즈 세일즈' 차트 51위로 진입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 가수의 빌보드 진입은 처음이었다. 이때의 에피소드도 있다. 당시는 지금처럼 빌보드 차트를 인터넷에서 바로 확인할 수 없는 시대여서 빌보드 잡지를 미국에서 받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이 소식이 기사화되자 사람들은 '사기가 아닌가'라고 수군댔다. 결국 김범수는 '9시 뉴스'에 출연해 이를 확인시키며 논란을 잠재웠다. "지금은 싸이 형이 빌보드 메인차트에서 2위를 하며 엄청난 역사를 썼지만 당시로선 빌보드의 벽을 송곳, 숟가락으로 살짝 파본 거죠. 돌이켜보면 가수 인생의 의미 있는 도전이고 흔적이에요. 그땐 두려움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가수로서의 절정은 3집(2002) 타이틀곡 '보고싶다'가 히트하면서다. 처음에 이 곡은 '국민송'으로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드라마 '천국의 계단'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로 쓰이면서 국민 히트곡이 됐다. 이 드라마가 일본에 수출돼 그는 일본 진출 기회를 얻었고 2천~3천석 규모의 공연도 했다. "나에겐 어마어마한 노래"라고 했다. 팀엔터테인먼트에서 5집(2006)까지 낸 그는 기획사와 계약을 마무리하고 군 복무를 시작했다. 7년 동안 달려오며 정신적인 피로가 쌓인 터라 군대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됐다. 2007년 어느 날, 작곡가 황찬희의 소개로 지금의 기획사인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 이종명 대표가 군대로 면회를 왔다. 황찬희는 1999년 삼수를 해서 입학한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동기다. "신생 기획사였지만 대표님의 마인드가 좋았어요. 신앙도 같았고요. 제대 6개월 전부터는 매주 면회를 오셨는데 가수로서의 비전만 제시할 뿐 계약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그 시간이 기다려지더군요." 2008년 제대한 그는 폴라리스와 3년 전속 계약을 맺은 뒤 최근 두 번째 재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곳에서 처음 낸 6집(2008) 타이틀곡 '슬픔활용법'은 황찬희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이후 '지나간다'(2010), '끝사랑'(2011) 등의 히트곡을 냈다. 그는 "이 회사에서 '보고싶다' 만큼 대박 난 앨범은 없지만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의 갈증이 해소됐다"며 "내 나이의 감성에 맞는 음악을 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카네기홀(2012), 호주 오페라하우스(2014)에서도 단독 공연을 열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쌓은 내공을 해외 무대에서도 펼쳐보였다. "카네기홀 공연이 '솔드 아웃' 됐는데 너무 감격스런 일이었어요. 제가 생각한 가수의 방향이 소박했기에 이런 권위있는 홀에서 공연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시 무대에 압도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그는 가수로서 가장 빛난 무대로 2011년 MBC TV '나는 가수다'를 꼽았다. 이때 남진의 '님과 함께'로 경연했는데 "지금껏 살면서 가장 김범수다운 만족스러운 무대"라고 말했다. 이 방송에서 파격적인 패션과 무대 연출을 선보이며 '비주얼 가수'란 수식어도 생겨났다. 그는 "이 무대는 내 음악 인생을 통째로 뒤집는 사건이었다"며 "객석에선 기립 박수를 보냈고 이 곡으로 음원차트 1위도 했는데 내 인생에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후 내가 가진 루저로서의 상처, 외모 열등감, 피해의식이 한꺼번에 치유됐다. 더는 '누가 못생겼다'고 해도 상처가 안 될 정도로 자존감이 높아진 계기였다.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고 웃었다. 그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인복이 많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히트곡을 만들어준 윤일상을 비롯해 하광훈, 황찬희 등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가 마음속에 꼽는 여러 조력자 중 하나로 남동생도 꼽았다. 남동생은 현재 자신의 기획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동생은 처음에 이 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왔죠. 애물단지가 될까 걱정했어요. 일부러 모른 척했는데 기특하게도 운전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지금은 매니지먼트 장이 됐어요. 이젠 동생 없이 일이 안될 정도로 제가 도움을 받는 위치가 됐죠." 아버지에 대한 뭉클함도 있다. 그는 "내가 말썽을 피우자 아버지에게 한밤중 팬티만 입고 왕복 4차선 도로로 쫓겨난 적도 있다"며 "가수의 길까지 반대하셔서 아버지와 불협화음이 있었다. 솔직히 싫어했다"고 고백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데뷔 때부터 제 기사를 스크랩해놓은 걸 서랍에서 발견했어요. 아버지가 절 지지해준다는 걸 처음 느꼈죠. 눈물이 나더라고요. 지금은 연세가 든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요. 가끔 사우나도 같이 가는데 이런 사이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15년을 보낸 지금 그는 이승철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인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간간이 자작곡을 앨범에 실었지만 신승훈, 김동률 같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이미지는 빈약하다. 그는 "난 소리꾼이니 '소리로 끝까지 가자'는 생각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 작업 중인 8집에서는 전곡을 공동 작곡하는 도전을 했다.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아서다. "8집이 지금껏 들려준 음악과 변화가 커서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흥행에 성공 못 할 수도 있고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으려고요. 대중이 제 얘기를 담은 앨범을 신선하게 받아들여 준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아요." 마침 인터뷰한 날은 같은 소속사 걸그룹으로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레이디스코드의 멤버 고(故) 은비의 49재였다. 사실 그의 8집은 이 사고로 발매가 미뤄졌다. 그는 갑작스러운 아픔을 겪으며 가수로서 해야 할 목적이 하나 더 생겼다고 말했다. "이 친구들이 데뷔를 준비하며 고생한 걸 다 봤어요. 이제 시작인데 꿈이 꺾이니 혼란스럽더라고요. 이 친구들 몫까지 열심히 하는 게, 이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게 선배로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인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음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슈퍼스타K 6' 심사 때 재벌 2세로 태어나는 건 안 부럽지만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럽단 얘길 한 적이 있다"며 "그 어떤 부와 유산보다 음악적인 재능은 바꾸고 싶지 않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가수의 길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주위에서는 가수도 한때라며 '투잡' 하라는데 전 돈을 벌어도 어디에 투자한 것 없이 차곡 차고 모으는 스타일이죠. 다른 일로 스트레스받으면 노래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반감될 것 같아요. 노래만 할 수 있다면 조금 어려운 상황이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이다. 주위 친구들도 하나 둘 가정을 꾸렸다. 그는 그간 스캔들 한번 없이 사생활도 밋밋했다. "아직은 저를 확 줄이고 아내와 자녀로 제 생활을 채울 자신이 없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정을 꾸리면 그 소중함을 잘 아니까요. 나이에 쫓기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