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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은 부재중'…대학 지도부 공백 장기화직무 대행 체제로 구조조정 격변기 속 위기의식 고조경북대 총학은 교육부 상대 피해보상 소송 준비 (전국종합=연합뉴스) 교육부가 특별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대학 총장 임용 제청을 거부해 전국 국·공립대 곳곳에서 지도부 부재 사태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경북대 총장 임용 촉구 집회. [연합뉴스 자료사진]이 때문에 해당 대학은 선장 없는 배 신세가 돼 구조조정으로 격변기를 맞는 시점에 중장기 발전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총장 임용 후보자 당사자는 교육부를 상대로 임용 제청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내는 등 법정 다툼을 하고 학생들은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인다. 경북대는 2014년 8월로 함인석 전 총장 임기가 끝난 뒤 22개월째 총장 공석 상태다.2014년 10월 간선으로 뽑은 김사열 교수 등을 총장 임용 후보자로 교육부에 추천했지만, 교육부가 재선정을 요구해 총장 공백으로 이어졌다.1순위 후보자인 김 교수는 이듬해 총장 임용 제청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불복해 현재 총장직무대리 체제로 운영한다. 공주대에서도 교육부 임용 제청 거부가 소송전으로 비화해 총장 공백 사태가 2년 넘게 계속된다.2014년 3월 서만철 전 총장이 물러난 뒤 지금까지 김창호 총장직무대행이 학교를 이끈다.1순위 후보자 김현규 교수가 임용 제청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자 1·2심 법원은 모두 김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교육부는 지난해 2월 대법원에 상고했다.전주교대 역시 지난해 2월 유광찬 전 총장 임기가 끝난 뒤 1순위 후보자로 선출한 이용주 교수에 대해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거부해 총장 자리가 비어 있다.지난해 12월 전임 총장 임기가 끝난 경상대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총장 임용 후보자가 교육부 임명 제청을 받지 못했고 한국방송통신대도 총장 자리가 비어 있다. 직선제로 총장 선출하는 부산대. [연합뉴스 자료사진]부산대, 강원대 사례는 좀 다르다.고(故) 고현철 교수가 직선제를 요구하며 투신 사망한 뒤 직선제로 전호환 교수 등을 총장 후보자를 선출하자 교육부가 지난달 전 교수를 총장으로 임명했다.전임 총장이 교육부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에 책임지고 중도 사퇴한 강원대는 지난 4월 총장 임용 후보자를 새로 선출했는데, 최근 총장 임명 동의안이 국무회의에 상정돼 사실상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총장 공백 사태가 이어진 대학은 안정적인 대학 운영과 발전 방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경북대분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경북대는 3번째 총장 직무 대행 체제를 맞았다. 그동안 전임 교원 확보율은 거점대학 9곳 중 8위를 기록했고 취업률은 3년 연속 떨어지고 있다"며 교육부에 총장 임명을 촉구했다.전주교대 한 관계자는 "행정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기관장이 공석이다 보니 의사 결정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도내 거점국립대학인 강원대도 오랜 총장 공백으로 인해 구조개혁 대상으로 추락한 불명예를 씻을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이 때문에 교육부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교육부를 압박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정민걸 공주대교수회장은 "교육부가 권고하는 간선제 방식으로 정당하게 선출한 총장 임용 후보자에 대해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임용 제청을 거부하는 것은 대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전국국공립대학교교수회연합회 소속 교수들은 지난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가 대학 자율성과 공공성을 제한하는 현실이 한탄스럽다"고 비판했다.경북대 총학생회는 교육부를 상대로 총장 공석 사태로 인한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벌이기로 하고 최근 소송인단 3천여명을 모으고 있다. 총장 후보자 임용거부 항의 집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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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가 사라지고 없었다"…한인피폭자가 전하는 원폭 참상재일동포 2세 박남주 씨 수기…"피투성이 된 사람들 가스폭발인줄 알아""무사했던 이들, 코피 흘리더니 며칠 만에 사망…핵무기는 정말로 안돼"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B-29(미군 전략폭격기)가 날았다. '공습경보가 해제됐는데 왜 왔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희미하게 폭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번쩍'하는 굉장한 빛과 '꽝'하는 소리에 이어 거대한 불덩어리가 전차를 덮치듯 했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은 가스탱크 폭발로 생각했다. 누구도 핵폭탄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폭심(폭발의 중심 지점)에서 가까운 쪽으로부터 사람들은 '뜨거워. 도와줘'라고 외치며 다가왔다. 모두 화상을 입어 머리는 오글오글해져 있었고, 피부는 벗겨져 끔찍한 상태였다." 22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廣島) 방문이 닷새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원폭투하일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참상을 체험한 재일동포 2세 박남주(84·히로시마 거주) 씨는 연합뉴스에 제공한 자신의 피폭 증언 수기에 이렇게 적었다. 원폭 투하 당시 12살 여학생이었던 박 씨는 폭심에서 1.8km 떨어진 곳을 달리던 노면(路面) 전차 안에 있다 머리에 상처를 입었지만 함께 있던 두 동생과 함께 목숨을 건졌다. 이후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본 시내 모습에 대해 박 씨는 "히로시마가 사라진 것 같았다. 정말로, 이미 다 흩어져 있었다. 지금도 그 광경을 생각하면 무서워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무서움이었다"고 회고했다.박 씨는 원폭이 떨어진 뒤 내린 이른바 '검은비'(방사성 낙진비)에 대해 "새까만 색깔의 기름 같은 비였다"며 "그 비를 맞으며 사람들은 'B-29가 특수폭탄을 떨어뜨린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차분하게 생각하면 히로시마는 폐허가 된 채 아무것도 없었기에 (추가) 공습이 있을 리 없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도망갔다"고 그는 당시 상황을 전했다.또 한여름이었던 당시 살아있는 사람이나 시신이나 할 것 없어 모두 상처가 곪았고 그 상처에 파리가 알을 낳아 애벌레가 들끓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당시 워낙 황망한 상황에서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박 씨는 적었다. 아울러 박 씨는 지금은 매립된 당시의 후쿠시마가와(福島川·원폭투하 지점에서 1.6∼1.7km)에서 수영하던 아이들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도 적었다. 그는 당시 수영하던 아이들의 운명은 세 갈래로 엇갈렸다고 전했다.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아이들은 상반신 화상을, 물에서 모래사장으로 올라가고 있던 아이들은 전신 화상을 각각 입었고, 모래사장에 있던 아이들은 거의 다 죽었다는 것이다. 또한 박 씨는 일본의 패망 다음 달인 1945년 9월부터 주변 사람들에게서 피폭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건강했던 이웃 사람의 잇몸에서 갑자기 피가 나거나 코피가 흘렀고, 머리털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며 "그러더니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죽어 갔다"고 박 씨는 전했다. 당시에 코피가 나고 머리가 빠지는 것은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 박 씨는 "그렇게 부지런했던 아버지가 전쟁 후 갑자기 일을 하지 않았다"면서 "늘 몸이 나른하다고 말하길래 '왜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저렇게 게을러졌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박 씨의 아버지는 간암 판정을 받았고, 원폭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받았다고 박 씨는 전했다. 또 자신과 남동생, 여동생 등 삼 남매 역시 "혈변 같은 게 나오고 2∼3일씩 의식불명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박 씨는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에 거의 다 빠졌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도 했다. 박 씨는 훗날 유방암과 피부암 등 피폭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질환과 싸워야 했다. 박 씨는 "'전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하고 생각해보려 해도 정말로 원폭은 '도와달라'고 하는 말을 할 순간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만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정말로 핵은 안 된다. 무서운 폭탄이다"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한국의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의 모임 히로시마 지부' 등에서 활동 중인 박 씨는 10여 년 전부터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자신의 피폭 경험을 학생들에게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원폭 투하로 1945년 말까지 히로시마 주민 약 35만 명 중 약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중에는 당시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 출신자도 약 2만 명 포함된 것으로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추정하고 있다. 1945년 8월6일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의 폐허에 그해 9월8일 한 연합군 종군기자가 서 있는 모습.[AP=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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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지진때 사망 韓人명단 日공문서에서 발견…학살된 사람 포함일본인 대학교수, 도쿄 지진 희생자 위령시설 창고서 찾아내 정부 공식 확인 피해자·과거 증언 희생자 신원과 일치 '주목'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1923년 간토(關東·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사람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이 포함된 사망자 명부가 일본 공식문서에서 발견됐다. 이 71명의 명부에는 한국 정부가 지난해 말 공식 확인한 간토 조선인 대학살사건 피해자 중 일부와 당시 학살 증언 내용과 일치하는 조선인 이름이 포함돼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이는 다카노 히로야스(高野宏康) 홋카이도 오타루 상과대학 교수와 조선인 학살의 진상 규명에 반평생을 바친 일본인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씨, 오충공(吳充功) 다큐멘터리 감독 등에 의해 9일 공개됐다. 이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지진 이듬해인 1924년부터 일본 도쿄시 진재구호사무국이 신고를 받아 작성한 피해자 기록 카드인 '지진재앙 임시사망자명부'(震災假靈名簿 震災死亡者調査表·진재가령명부 진재사망자조사표)에 조선인 기록이 포함된 것을 2008년 다카노 교수가 도쿄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 공원 도쿄도위령당의 납골당 창고에서 발견했다. 다카노 교수는 당시 도쿄도위령협회가 보관하는 일본인 희생자 카드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조선인 카드가 섞여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니시자키씨가 조선인 명부를 꾸준히 정리했다.5만장에 달하는 사망자명부 조사표 가운데 니시자키씨가 현재까지 추려낸 조선인은 71명이다. 중국인 등 외국인까지 합치면 모두 100여 명이 된다. 조사가 더 이뤄지면 조선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사망자 명부는 일본 정부의 지시를 받은 도쿄시 진재구호사무국이 보상금을 주기 위해 피해자 신고를 받아 작성한 것이다. 사망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본적, 사망주소 등이 적혀 있다.특히,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발견된 1950년대 한국 정부가 작성한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피해자 명부 중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지원위원회)'가 공식 확인한 피해자도 일부 포함됐다. 한국과 일본의 기록에서 모두 확인된 학살 추정자는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의 박덕수, 박명수씨 등이다. 이외에도 간토 조선인 대학살 때 도쿄 고토(江東)구 가메이도(龜戶) 경찰서에서 자행된 학살을 기록한 증언에 나오는 희생자인 제주도 대정읍 인성리 출신의 조묘송(趙卯松·1891∼1923·당시 32세)씨 가족도 포함됐다.당시 증언과 이후 이뤄진 연합뉴스 추적조사(2014년 1월 21일자 '91년 전 관동조선인대학살 희생자 유족 찾았다' 제하 보도)를 통해 조씨 일가족 5명이 몰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자료에는 조묘송씨와 그의 아내 문무연(文戊連·1885∼1923·38세), 그의 동생 조정소(趙正昭·1900∼1923·23세) 3명의 이름만 포함됐다.증언은 '일본 군인들이 일제히 칼을 빼 조선인 83명을 한꺼번에 죽였으며 이때 임신한 부인도 한 사람 있었는데 그 부인의 배를 가를 때 배에서 어린 아기가 나왔다. 그 어린 아기까지 찔러 죽였다'고 전하고 있다. 만삭의 상태에서 학살당한 부인은 바로 조묘송의 아내 문씨였다. 조묘송씨 가족 사망자명부 (제주=연합뉴스) 다카노 교수와 니시자키씨가 제공한 '진재사망자조사표'. 왼쪽부터 조묘송, 조정소, 문무연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다카노 히로야스·니시자키 마사오 제공]제주 대정읍 민적부와 일본 사망자 명부 ((제주=연합뉴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기록사랑마을 기록물 전시관에 소장된 대정읍 안성리 민적부에 당시 희생된 묘송, 정소, 정화(사진 위의 오른쪽부터 첫째·세번째·네번째)씨의 이름에 사망을 의미하는 두줄이 그어져 있다. 아래 사진은 다카노 교수와 니시자키씨가 제공한 '진재사망자조사표'. 조묘송의 이름이 적혀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카노 히로야스·니시자키 마사오 제공]정혜경 전 지원위원회 조사과장은 "당시 지진이 발생했던 곳은 도쿄 중심부였고 조선인은 주로 도쿄 외곽에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대량 학살됐기 때문에 조선인의 경우 순수 지진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정 과장은 "일본 정부에서 보상금을 주겠다고 신고를 받았으나 조선인의 경우 학살로 인한 두려움이 커 많은 사람이 신고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성주현 청암대학교 교수는 "자료를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이 명부에 지진으로 희생된 조선인과 학살된 조선인이 섞여 있을 수 있다"며 "자료에 대한 좀 더 면밀한 분석과 조사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기록이 발견된 요코아미초 공원의 도쿄도위령당은 1923년 간토 대지진과 1945년 연합군에 의한 도쿄 대공습 때 일본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납골당으로 일본인 희생자 수만명의 유골이 묻혀 있다.이곳은 1920년대 육군피복공장과 인근에 조선인 노동자 밀집지가 있던 지역으로, 간토대지진 당시 불길이 번지면서 일본 주민과 이 일대로 피난해 온 조선인 노동자 등 3만8천여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곳이다.요코아미초 공원 한쪽에는 간토대지진 때 자행된 조선인 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있다.다카노 교수와 니시자키씨는 "진재사망자조사 카드가 있다는 것은 조씨 가족의 유골 역시 이 일대에 묻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며 "한국의 유족들이 위령당 방문과 기록 열람을 원한다면 일본에서도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록이 2008년에 발견됐으나 한일 양국 간의 문제 등으로 인해 이전에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며 "중요한 것은 증언에 나오는 희생자의 이름과 본적이 일치하는 사망자 기록이 나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조선인 대학살을 주제로 세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재일동포 오 감독은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이 일대와 다른 지역에서 학살된 한국인 시신이 한꺼번에 이곳으로 옮겨져 묻혔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며 "위원회가 지난해 해산됐지만 본격적인 추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와 요코하마 등 관동지방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10만5천명 이상(행방불명자 포함)이 사망했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조작되고 일본 사회의 내부 불만이 조선인에게 향하면서 도쿄, 지바(千葉)현, 가나가와(神奈川) 등 관동 일대에서 재일동포가 일본군과 경찰, 자경단 등에 의해 대량 학살됐다. 당시 살해된 한국인은 6천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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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내 번호를?…9월부터 정체불명 광고전화 금지개인정보 수집 경위 안 알리면 과태료 전화 통화 장면(자료)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올해 9월부터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를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판촉하는 '막무가내'식 광고전화가 금지된다.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9월 23일 시행되는 개정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광고전화 사업자가 개인정보를 입수한 출처를 통화자에게 고지하고 나서야 구매 권유를 할 수 있게 된다고 5일 밝혔다. 이 규정을 위반한 사업자는 방통위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개인정보 입수 출처는 '어디서 어떻게 수집했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며 '합법적으로 모처에서 얻었다' 식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불법이다. 단 고객이 6개월 이내에 거래한 사업자가 동종 물품이나 서비스를 광고하려고 전화하는 경우에는 사전 고지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예컨대 지난달 이용했던 대리운전 업체가 이후 내 번호로 재이용 권유 전화를 걸 때는 개인정보 입수 출처를 안 밝혀도 되는 것이다.과거 광고전화는 '전화권유판매자'로 정부에 등록만 하면 어떻게 개인정보를 얻었는지를 밝힐 필요 없이 마구 전화할 수 있어 '정체불명의 판촉 전화가 많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컸다.특히 광고전화의 이런 불투명성을 악용한 보이스피싱 일당이 보험·금융사 등의 텔레마케팅을 가장해 소비자를 등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방통위 관계자는 "9월부터 도입되는 이번 규제에 따라 소비자가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투명하게 알 수 있게 되며, 무분별한 광고전화와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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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라 해도'…수업료 미납 고교생 늘었다가정형편·무관심 등 이유 다양…강제징수 못해 속수무책"고교 무상교육" vs "수업료 감면 확대" 해법 엇갈려 (전국종합=연합뉴스) 경기도 A고등학교 행정실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한 가지는 수업료 미납액을 관리하고 징수하는 일이다.A고의 수업료 미납자는 지난해 4분기 2명이었으나 올해 1분기는 38명에 달한다. 학년 말로 갈수록 수업료 징수율이 높아지는 점을 고려해도 눈에 띄는 수치다.구도심에 있는 이 학교의 전교생 820여명 가운데 교육비(수업료·급식비·학교운영지원비) 감면 대상 학생 150여명을 빼고 나면 수업료 징수 대상은 670여명인데 그중에서 6%가 수업료를 내지 않은 것이다. 교육비 감면 학생 수가 30%가 넘는 도시외곽의 B고등학교는 지난해 징수 대상 630여명 가운데 수업료 미납 학생이 19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2월 졸업생 가운데 7명도 수업료를 내지 않고 졸업했다. 올해 1분기 수업료는 징수 중이지만 지난해보다 미납액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강원도 C고등학교는 한 달에 두 번씩 납부 독려 고지서를 보내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버티는 경우도 적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이 학교 관계자는 "선생님이 학생을 불러 납부하도록 독촉할 수도 없고 학교 나오지 말라고 하면 인권침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 때문에 정말 일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D고등학교 관계자도 "수업료 납부를 학생들 모르게 하라고 하는데다 전화를 해도 학부모가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소연한다.고등학교는 초·중학교처럼 의무교육대상이 아니어서 1만∼1만6천원대인 입학금과 한 달에 대략 10만∼15만원대인 수업료를 내야 한다.그러나 일부 시·도에서는 고등학교의 수업료 미납이 꾸준히 증가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구도심·농어촌 지역 미납 증가 지난해 9월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2∼2014년 3년간 전국 고교 수업료 미납액(미납자 수)은 167억원(2만3천805명)에 이른다.광역 대도시 미납액은 정체된 반면 경기, 강원, 전남, 경남 등의 농어촌지역에서는 미납액이 조금씩이나마 증가하고 있다.경기도 고교 수업료 미납액(미납률)은 2011년 10억9천572만원(0.30%)에서 2012년 12억506만원(0.34%), 2013년 15억6천739만원(0.44%), 2014년 15억8천964만원(0.47%)으로 늘어나 미납률이 지난해 0.5%대에 들어섰다.지난해에는 회계상 33억4천440만원을 징수하지 못했으나 올해 1∼2월 추가 징수된 16억9천만원을 제외하면 실제 미징수액은 16억5천만원 정도로 추산된다.지방재정법의 개정으로 출납폐쇄 기간이 다음연도 2월에서 당해연도 12월로 변경됨에 따라 수납기간이 줄어 미징수액이 일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인천시의 경우도 해마다 400∼600명의 고등학생이 수업료를 내지 않고 있다.연도별 미납액은 2011년 3억4천200만원, 2012년 4억800만원, 2013년 2억7천600만원, 2014년 3억7천600만원 등이다.강원도 역시 2011년 1억9천133만원, 2012년 4천509만원, 2013년 4천552만원, 2014년 5천387만원, 2015년 1억8천90만원 등으로 증가세다.반면 부산시에서는 2011년 6천279만원에서 2015년 3천668만원으로 줄었다.◇ "안 내는지, 못 내는지"…"경기악화에 공짜 의식도"학교 측이 파악한 미납 사유는 가정 형편 곤란, 학부모 무관심이나 납부의지 부족, 거주지 불명, 기업체 학비지원 누락 또는 지연 등 다양하다.이런 가운데 매년 경제 사정이 악화하면서 수업료 미납액도 증가하는 추세다.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교육비 감면 대상 저소득층을 제외하고도 부모의 실직이나 폐업, 영업 부진 등으로 가계 사정이 나빠진 영세 중산층이 늘고 있다는 것이 경기도 한 고교 측의 설명이다.인천의 한 고등학교 관계자는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실제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납부 의지가 부족한 경우는 소수여서 독촉이나 강제 징수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지역과 학교에 따라 다른 분석도 있다.강원도 한 고등학교 관계자는 "가정형편 때문에 못내는 학생은 예전만큼 많지 않을 것"이라며 "요즘 사회적으로 공짜 의식이 팽배하다 보니 졸업할 때까지 수업료를 안 내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또 다른 학교 관계자는 "수업료를 내지 않고 다니는 걸 알게 되면 낸 사람은 상대적으로 박탈감마저 느낄 것"이라고 개탄했다.전북도교육청과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경제적 형편보다는 가정불화나 부모의 의지 부족이 미납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제징수 수단 없어 속수무책 고교 수업료를 미납해도 현실적으로 제재할 장치가 없다. 민법 제164조에 따라 학생 및 수업자의 교육 채권은 1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수업료 채권은 학생의 교육에 대해 학교(교사)가 받는 대가이다. 납세의무자는 학생이나 민법상 미성년자이므로 보호자의 부양의무(민법 974조)와 법적 대리인 지위를 고려해 부모가 수업료 납부 의무를 진다.그러나 수업료를 내지 않았다고 실제로 졸업이 유예되거나 강제로 집행한 사례는 없다.교육부는 10년 전인 2006년 '국립 유치원·고등학교 수업료 및 입학금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면서 2개월 이상 수업료 체납 학생에 대해 출석을 정지할 수 있다는 규정을 폐지했다. 수업료 체납 징벌 조항이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해 비교육적이라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비슷한 무렵 시·도교육청도 수업료 및 입학금 조례에서 미납자 제재 조항을 삭제했다.이후 학교에 따라 미납 학생 명단을 공지하거나 담임교사를 통해 독촉해왔으나 학생인권 문화가 확산하면서 미납액 징수 업무는 행정실로 넘어갔다.그나마 학교 행정실에서도 독촉 전화나 문자메시지, 독촉장을 보내는 방법밖에 없다. 미납자와 미납액이 늘어나도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무작정 독촉할 수도 없게 된 셈이다.◇ "이참에 무상교육으로"…"대체 재원 없다"한양대 교육복지정책중점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전국 고교생(192만명) 가운데 60.7%(117만명)가 특성화고 장학금(20만명), 저소득층 감면(39만명), 기업체 학비 지원(27만명) 등 총 1조6천76억원의 교육비를 지원받고 있다. 거꾸로 보면 실제 수업료를 부담하는 고교생이 30∼40% 정도라는 것이다.현행 학비감면 지침을 보면 학교장 추천 감면은 지원대상자 범위 안에서 10% 이내로 제한돼 있다.이 때문에 고교 무상 교육 이전에 수업료 지원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 윤태길(새누리당) 의원은 "경기도의 경우 수업료를 내야 하는 학생이 35% 정도로 추산된다"며 "미납자에 대한 강제징수 수단이 없고 교육재정 사정상 당장 무상교육이 어렵다면 수업료 지원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제도적으로 수업료를 지원받지 못하는, 학비 감면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경기도 한 고교 교장은 "부모 별거나 가계 부도 등으로 학기 중에 수업료 부담 능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학교장 재량 감면 범위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아예 고교 무상교육을 촉구하고 있다.이 교육감은 지난 6일 기자 간담회에서 "매년 등록금을 안 내는 학생이 많은데 강제 징수할 방법이 없다. 교육감들이 공론화해서 무상교육으로 가는 것이 옳다. 3∼5세 영유아 무상보육(누리과정)을 하는데 고교도 무상으로 하지 않으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대체 재원 조달이 문제다.2008년 이후 9년째 동결된 고교 수업료는 시·도교육청 예산(교육비특별회계) 세입 가운데 사실상 유일한 자체 수입이다.경기도만 해도 3천억원이 넘는 고교 수업료 세입을 메우려면 교부금 등으로 대체 재원을 지원받아야 하지만 지금의 교육재정 여건을 보면 쉽지 않다.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먼저 미납 원인부터 자세히 파악해 정부와 교육청 차원의 지원대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이를 빌미로 재정 조달 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무상교육을 전면 시행하는 것은 표퓰리즘 복지정책의 확대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교육부 한 관계자는 "무상교육을 하려면 기업체 학비 지원분까지 국고로 대체 지원하게 되는데 현재의 국가 재정능력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고교 무상교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비 등 4가지를 지원해 초·중학교와 마찬가지로 고교 과정도 무상으로 다니게 하는 내용으로, 2014년부터 수혜 대상을 늘려 2017년에 전면 시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김경태 김근주 김동철 신민재 이해용 전창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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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개막 연속골·연패·무패…쏟아지는 기록들(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2016 시즌 개막 한 달을 맞은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이 시즌 초반 갖가지 기록들을 양산하며 흥미를 더하고 있다. 13일 수원월드컵경기장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을 비롯해 전국 6개 경기장에서 일제히 5라운드가 열리는 가운데 새로운 기록에도 관심이 쏠린다. 가장 주목을 끄는 기록은 성남 티아고의 5경기 연속골. 티아고는 지난달 12일 수원 삼성과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지난 9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4라운드까지 매 경기 득점에 성공했다.이는 1983년 당시 대우 이춘석과 2012년 FC서울 몰리나가 세운 개막 후 4경기 연속골과 타이기록이다. 티아고가 전남 드래곤즈와의 5라운드에서 또다시 골을 넣으면 개막 5경기 연속골이라는 클래식의 새 역사를 쓰게 된다. 성남이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지난해 K리그 '절대 1강'을 구축했던 전북 현대와 시즌 초반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성남은 현재 3승1무로 단독 선두에 올라와 있는데, 전남을 물리치면 4승1무(승점 13)가 돼 지난해 전북의 개막 5경기와 승점이 같아진다. 이는 2003년(성남 5연승) 이후로는 개막 5경기 최다 승점 타이에 해당한다. 이번 시즌 클래식 무대를 처음 밟은 '새내기' 수원FC 역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한다. 수원FC는 현재 1승3무(승점 6)으로 4경기 무패를 달리고 있다. 2013년 승강제가 본격 도입된 이후 승격팀이 개막 무패를 이어간 것은 2014년 상주 상무의 4경기였다. 상주는 당시 개막 후 4경기에서 연속 무승부를 기록했다. 울산 현대와 일전을 앞둔 수원FC가 지지 않으면 승격팀으로는 처음 5경기 연속 무패라는 기록을 쓰게 된다. 수원 삼성의 수비수 곽희주(35)는 300경기 출장을 앞두고 있다. 현재 299경기를 뛴 곽희주는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 경기에 나오면 300경기 출전이 된다. 이는 프로축구 통산으로는 38번째이다. 그러나 곽희주는 2014년에 잠시 카타르와 일본 J리그에서 뛰었던 것을 제외하면 2003년 수원에 입단해 줄곧 수원에서만 활약했다. 한 팀에서 300경기를 출장한 것으로는 과거 신태용, 김현석, 최진철, 김진우, 윤산철에 이어 6번에 해당한다. 전북 현대를 상대로 원정 경기에 나서는 인천 유나이티드 개막 5연패라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현재 인천은 4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승점 1도 얻지 못했다. 전북전에서도 패한다면 2012년 대전 시티즌에 이어 4년만에 개막 5연패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티아고 활약 모습.[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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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서 관청 추정 통일신라 건물지군 확인2천585㎡ 부지 안팎에 건물지 14개…토제벼루 50여점 출토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의 천년왕성인 경주 월성(月城, 사적 제16호)에서 관청으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건물지군이 확인됐다.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3월부터 월성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해 중앙의 C지구에서 담으로 둘러싸인 동서 51m, 남북 50.7m, 면적 2천585㎡인 정사각형 부지 안팎에 있는 건물지 14개를 찾아냈다고 30일 밝혔다. 월성 C지구에서 나온 건물지군. [문화재청 제공]이곳에는 본래 정면 16칸, 측면 2칸 규모의 대형 건물을 포함해 건물 6동만 있었으나, 후대에 동쪽과 서쪽 담을 허물고 건물 8동을 증축한 것으로 드러났다.건물과 담의 건축 시기는 인화문(도장무늬) 토기와 국화형 연화문 수막새 등 출토 유물을 통해 8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됐다.이번 조사에서 특히 관심을 끈 유물은 흙으로 만든 토제벼루 50여점이다.연구소는 월성 주변에 있는 동궁과 월지, 분황사에서 나온 토제벼루보다 양이 훨씬 많다는 점으로 미뤄 이번에 발굴된 건물지군이 문서를 작성하는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월성 C지구 출토 C지구 출토 벼루 다리편. [문화재청 제공]월성 C지구에서는 '정도'(井桃), '전인'(典人), '본'(本), '동궁'(東宮) 등의 글자가 새겨진 명문 기와와 암막새 등 기와류, 다량의 토기도 출토됐다.전인은 궁궐 부속 관청인 와기전(기와나 그릇을 굽던 관아)에 속한 실무자, 본은 신라 정치체제인 육부 중 하나인 '본피부'(本彼部), 동궁은 태자가 머무는 궁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또 연구소는 탐색조사를 통해 월성 C지구에 통일신라시대 문화층(특정 시대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 2개와 신라시대 문화층 5개가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보된 유물 분석자료를 보면 월성은 4∼9세기에 왕궁 또는 관련 시설이 있었으며, 신라가 멸망한 뒤에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월성 C지구 출토 명문기와와 막새. [문화재청 제공]한편 지난해 하반기 조사를 시작한 월성 서쪽 A지구에서는 8세기 전후에 성벽이 보수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문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구간에 조선시대 이후 작은 자갈을 깔아 조성한 폭 3m의 통행시설도 발견됐다.나아가 서쪽 성벽 안쪽의 평탄한 땅에서는 지금까지 출토된 적이 없는 용도 불명의 특이한 기와가 나왔다.이 기와는 신라가 처음 기와를 사용한 6세기 전후에 제작된 무문(無文·민무늬) 암막새와 비슷하나, 제작 기법이 달라 주목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월성은 제5대 파사왕 22년(101) 축성을 시작했으며, 신라가 망한 935년까지 궁성으로 쓰였다.문화재청은 지난 2014년 12월 개토제를 시작으로 3개월간 시굴을 한 뒤 지난해 3월 본격적인 발굴에 돌입했고, 20만7천㎡ 면적의 월성을 A∼D지구로 나눠 발굴하고 있다. 현재는 C지구와 A지구의 성벽, 문지를 조사하고 있다. 경주 월성.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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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브뤼셀 테러 IS 잔당, 유럽 추가공격 여러건 계획 중"브뤼셀 테러범 아파트에서 추가 공격지점 표시한 지도 발견서방 정보당국 "런던·베를린 등 5곳 공격할 60명 유럽 잠입"브뤼셀 관련 6명 체포…프랑스서도 테러기도 1명 검거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파리 테러와 브뤼셀 테러를 일으킨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잔당이 유럽에서 복수의 추가 테러 공격을 계획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브뤼셀 공항 자폭테러 직전 CCTV에 찍힌 용의자들 [AP=연합뉴스]미국의 대테러 담당 관료들이 인터넷 감청, 인적 정보(휴민트), 데이터베이스 추적 등으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IS 조직원들은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후 최근 몇 달 동안 다수의 공격 목표를 선정했다고 CNN 방송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최근 브뤼셀 테러를 저지른 범인들의 아파트에서도 브뤼셀 외에 다른 잠재적 타깃을 표시한 지도가 발견됐다고 한 소식통이 전했다. CNN은 IS의 대외작전 담당조직이 파리, 런던, 베를린, 벨기에의 주요 도시, 그 밖의 도시 등 모두 5곳의 유럽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모두 60명의 조직원을 파견했다는 첩보를 서방의 정보당국이 입수했다고도 전했다.이는 파리 테러의 총책 압델하미드 아바우드가 "이미 90명의 IS 조직원이 유럽에 들어와 있다"며 자랑했다고 알려진 것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정보당국은 유럽에 잠입한 수십 명의 IS 조직원 상당수가 파리 테러, 브뤼셀 테러의 범인들과 겹친다고 보고 있다.지난 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펼쳐진 파리 테러의 주범 살라 압데슬람 검거작전 장면 [AP=연합뉴스]살라 압데슬람 [AP=연합뉴스]특히 유럽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의 온상으로 떠오른 브뤼셀 내 IS 조직은 2개 팀으로 나눠 이번 브뤼셀 테러는 물론 벨기에 내에서 더 큰 규모의 추가 공격 또는 연쇄 공격을 준비했다고 벨기에 정보당국은 추정했다.파리 테러의 마지막 주범 살라 압데슬람과 그와 함께 체포된 신원불명의 공범, 압데슬람 체포 작전 중 사망한 모하메드 벨카이드 등으로 구성된 '제1팀'의 은신처에서는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기폭장치, 탄약이 다수 발견됐다.이에 따라 이들이 파리 테러와 마찬가지로 총기와 폭발물을 동시에 사용한 공격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압데슬람 등이 사전에 검거되자 폭탄 제조범 나짐 라크라위와 이브라힘·칼리드 엘바크라위 형제 등으로 이뤄진 '제2팀'이 정보 누설을 우려해 일정을 앞당겨 급히 브뤼셀의 공항과 지하철역을 공격했다는 게 벨기에 경찰의 추정이다.미국과 유럽의 정보당국은 현재까지 입수한 IS의 추가 공격 관련 정보가 워낙 단편적이고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 등이 확인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전해졌다.또 IS 조직원들이 이번 브뤼셀 테러처럼 상황에 따라 시일과 장소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수립한 이들의 공격 계획은 유동적인 단계라고 보고 있다.프랑스와 벨기에 당국은 테러 연루 용의자들을 잇따라 체포하며 추가 테러를 막기 위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베르나르 카즈뇌브 프랑스 내무장관은 이날 파리 북부 아르장퇴유에서 '진전된 단계'의 테러 계획을 추진하던 프랑스인 한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카즈뇌브 장관은 체포한 용의자를 가리켜 "테러 계획에서 매우 높은 수준으로 연루된 인물"이라며 "현 단계로서는 이 용의자의 테러 계획과 작년 파리 테러, 최근 브뤼셀 테러 사이에 연관관계는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브뤼셀 테러 용의자 수색작전 중인 벨기에 경찰 [EPA=연합뉴스]벨기에 경찰도 이날 브뤼셀에서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벌여 브뤼셀 테러에 연루된 6명을 붙잡았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지난 22일 브뤼셀 공항과 지하철역에서 폭탄 공격을 펼친 용의자 중 최소 2명이 살아서 달아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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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생일·목소리 기억하는 스마트 토이 보안 허점해커 개인정보 유출 위험…국내도 스마트 토이 판매 급증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인터넷에 연결돼 스마트폰으로 조정할 수 있는 미국 유명 업체의 '스마트 토이'에서 최근 어린이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되는 보안상 허점이 드러났다. 피해 사례는 없었지만, 스마트 토이의 인기가 커지는 만큼 부모의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산하의 보안 사이트 CERT는 이번 달 2일자 '보안 취약성 공지'에서 피셔 프라이스가 판매하는 스마트 토이 곰(Smart Toy Bear)이 적절한 사용자 확인 조처를 하지 않아 정보 유출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보안 문제가 지적된 피셔 프라이스 스마트 토이 곰 이 곰 인형은 집안 와이파이와 스마트폰 앱에 연결돼 어린이의 이름과 생일을 기억하고 가족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이 상품의 인터넷 플랫폼(전용 사이트)은 사용자 확인 절차가 허술해 해커가 쉽게 이에 침투, 아이의 이름·생년월일·성(性) 등 민감한 정보를 빼돌릴 수 있다고 CERT는 진단했다. 또 이 상품은 이미 구식으로 보안 우려가 큰 안드로이드 4.4(킷캣) 운영체제를 토대로 제작돼 정기적인 보안 업데이트가 되는지도 불명확한 것으로 파악됐다.실제 이 문제로 소비자가 피해를 본 사례는 알려진 게 없다. 피셔 프라이스의 모회사 마텔은 이번 지적과 관련해 "잠재적 취약점을 빠르게 대처하겠다"고 전해왔고, 이 문제가 현재는 해결된 상태라고 CERT는 밝혔다. 스마트 토이의 보안 허점 논란은 예전에도 있었다. 미국 보안 기업 래피드7(Rapid 7)에 따르면 영국 업체 히어로(HereO)의 스마트 토이 시계가 작년 10월 해킹 위험이 지적된 바 있다.3∼12세용으로 제작된 이 시계는 GPS(위치정보추적장치)가 탑재돼 가족이 스마트폰으로 서로 어디서 뭘 하는지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장난감으로 변신한 스마트폰(자료) 그러나 기기를 쓰는 그룹(가족)에 새 구성원을 추가하는 절차에 문제가 있어 해커가 쉽게 가족처럼 잠입해 아이의 위치·활동 정보를 훔치고 악용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작사는 작년 12월 해당 취약점을 해결했다.스마트 토이는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어린이들이 스마트폰 등 ICT 기술에 익숙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스마트 토이를 살 때는 아이의 개인 정보가 입력돼 유출될 위험성이 있는지, 보안 조처는 있는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마켓 옥션에 따르면 작년 3월17일∼4월16일 한달 동안 국내 스마트 토이의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배로 급증(1천100%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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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왕훈의 데자뷔> 정치인 DNA, 기업인 DNA(서울=연합뉴스) 추왕훈 논설위원 =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에 도전한 도널드 트럼프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이미 선거 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세를 나타내기는 했지만, 정치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고 별다른 세력기반도 없는 그였기에 반짝인기를 끌다 초반에 나가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웬걸, 첫 경선이 열린 아이오와에서만 2위에 그쳤을 뿐 뉴햄프셔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네바다주에서 1위를 차지해 확고한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이제는 그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이 '반(反) 트럼프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는 누구인가. 2000년대 초반 '너는 잘렸어(You're fired)'라는 대사로 유명한 NBC TV의 리얼리티 쇼 '견습사원(Apprentice)'을 통해서 이름과 얼굴을 널리 알리게 됐지만, 그는 이미 그 이전에도 남부러울 것이 없는 '금수저'이자 수완 좋은 사업가였다. 트럼프는 1946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부터 부동산업자였던 아버지의 주택개량 및 임대사업에 참여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뉴욕 일원의 부동산 개발사업을 잇달아 성공시키면서 사업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성공적으로 확장한 비상장기업 '트럼프 오거나이제이션(The Trump Organization)'은 미국 주요 도시는 물론 세계 곳곳의 업무용ㆍ주거용 빌딩과 호텔, 카지노, 리조트 등을 개발ㆍ운영하고 있다. 현재 그의 재산은 최소 33억 달러에서 많게는 1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연합뉴스 자료사진>>그는 '검은돈'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재산 가운데 1억 달러를 선거에 쓰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미국 대선에서 후보들의 영향력과 인기, 당선 가능성은 선거자금의 모금 규모와 비례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트럼프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2월 초까지 트럼프가 모은 선거자금은 2천100만 달러로 공화ㆍ민주 후보를 통틀어 10위에 그치고 있다. 1위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1억6천300만 달러를 모금한 것과 비교하면 트럼프의 선거자금 규모가 얼마나 초라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선거자금 모금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대선 후보들의 주된 돈줄인 슈퍼 팩(Super PAC·미국 연방선거법의 규제를 받지 않고 무제한으로 선거 자금을 지원하는 조직)의 자금을 거절하고 있다. 트럼프가 경선 초기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이처럼 기업인으로서 검증된 역량, 기존 정치인들처럼 정치자금에 휘둘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본인이나 그 지지자들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업인 출신 정치가로서 성공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제31대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 <<백악관 홈페이지>>미국의 경우 건국 초기에는 당시 기준으로 '대기업'이라고 할 만한 대농장주 출신의 대통령이 꽤 많았지만, 20세기 이후 '기업인 출신'이라고 칭할 수 있는 대통령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제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1874~1964)가 '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오와주 시골 마을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후버는 1891년 막 개교한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해 지질학을 전공했다. 이후 호주와 중국 등의 광물업체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거나 직접 회사를 차려 많은 돈을 모았다. 40세 때 재산이 당시로써는 거금인 400만 달러나 됐다고 한다. 기업인으로서는 성공적이었지만 대통령으로서는 '경제 전문가'답지 않게 대공황을 예견하지도, 올바로 대처하지도 못해 국민을 도탄에 몰아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미국의 제41대 부통령 넬슨 록펠러와 부인 해피 록펠러 <<연합뉴스 자료사진>>미국 최고의 재벌 가문 가운데 하나인 록펠러가(家) 출신의 넬슨 록펠러(1908~1979)는 체이스 내셔널 은행, 록펠러센터, 크레올 석유 등 가문 소유 기업에서 근무하다 1960년, 1964년, 1968년 공화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모조리 낙선했다. 리처드 닉슨의 사퇴로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포드에 의해 부통령에 지명됐으나 의회 청문회 과정에서부터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 등 고위관료에 대한 금품지급, 정치적 라이벌 아서 골드버그 의원에 대한 음해공작, 편법 세금공제 등으로 난타를 당했다. 재직 중에도 포드 대통령이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전혀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고 당시 비서실장이던 도널드 럼즈펠드까지 견제에 나서는 바람에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의 재직 중 건설된 부통령 관저에 수백만 달러어치의 가구를 기증한 것이 부통령으로서 유일한 업적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을 정도다.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 총리 <<연합뉴스 자료사진>>일본의 대표적인 기업가 출신 정치인으로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ㆍ1918~1993) 전 총리를 들 수 있다. 아버지의 파산으로 건설회사 사환으로 고학하며 비인가 실업계 고교를 다닌 것이 최종학력이었던 그는 군 제대 후 결혼하면서 처가가 운영하던 건설회사를 물려받아 시공실적 전국 50위 이내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현대판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 명문가 출신들이 득세하는 일본 정계에서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의 다나카는 독특한 존재였다. '서민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으나 동시에 비리와 정경유착의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건설업자와 의원, 관료집단 간 커넥션을 의미하는 '토건족(土建族)'이라는 용어도 사실은 다나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진 정치인들에게 자금과 조직을 지원하면서 일본 자민당 내 최대 계파를 이끌게 된 다나카는 1972년 총리가 됐고 취임 초기 역대 총리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월간지의 폭로로 개발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부동산투기 사건에 다나카가 연루된 의혹이 제기되고 의회가 조사에 나서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그리고 1974년 '록히드 사건'이 불거지면서 일본 역사상 전직 총리로서는 최초로 검찰에 구속되는 오명을 안게 됐다.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연합뉴스 자료사진>>현대 유럽의 기업가 출신 정치인으로는 이탈리아 총리를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1936~ )가 있다. 밀라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베를루스코니는 1960년대 말 아파트 건설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을 종잣돈으로 미디어 사업에 진출한 뒤 탁월한 수완으로 확장을 거듭해 이탈리아를 좌지우지하는 '미디어 제국'을 건설했다. 베를루스코니 일가가 지배하는 지주회사 피닌베스트는 이탈리아 최대의 방송ㆍ엔터테인먼트 업체 메디아셋과 금융업체 메디올라눔, 신문ㆍ출판업체 몬다도리, 축구단 AC밀란 등을 거느리고 있으며 2014년 매출액이 약 47억 유로에 달했다. 미국의 경영잡지 포브스는 2013년 베를루스코니의 재산이 9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탈세, 뇌물 등의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58세이던 지난 1994년 정계 진출을 결심한 이유가 "감옥에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베를루스코니는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우파 세력들을 구워삶아 초선의원으로서 일약 총리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총리에 올랐다 물러나기를 반복했지만 '부패'의 꼬리표는 늘 그를 따라다녔다. 뇌물수수, 불법 정치자금 운용, 횡령, 탈세, 회계부정에서 마피아 지원, 심지어 미성년자 성매매에 이르기까지 연루된 사건을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며 일부 사건은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하원의원 54명, 상원의원 42명이 소속된 정당 '포르자 이탈리아'를 이끄는 등 아직도 이탈리아 정계의 실력자로 행세하고 있다.고대에도 '돈을 지배하는 자'의 정치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로마 공화정 말기 '삼두 체제'의 한 축이었던 마르쿠스 리시니우스 크라수스는 요즘으로 치면 '재벌급'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부호였다. 그러나 정치력도, 군사적 재능도 평범했던 그는 '업적'을 쌓기 위해 출정한 파르티아(현대의 이란ㆍ이라크)의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막상 권력을 잡은 것은 항상 돈이 없어 쩔쩔맸고 크라수스에게도 손을 벌리기 일쑤였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고대 중국에서는 금력을 바탕으로 권력까지 추구했던 대표적 인물로 전국시대의 대상인이었던 여불위(呂不韋)를 꼽을 수 있다. '투자'에 안목이 있었던 그는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와 있던 진나라의 왕자 자초(子楚)의 '미래가치'를 알아보고 애첩까지 갖다 바치는 정성을 들인 끝에 자초가 후일 왕위를 이어받자 진나라 승상에 올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여불위는 이제는 왕후가 된 옛 애첩과 불륜 관계를 이어가다 왕위를 계승한 진시황에게 발각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로마나 중국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이래 어느 시대, 어느 국가든 부유한 소수의 재산가가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금권정치(Plutocracy)'는 타락한 정치 형태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기업인 출신으로 성공한 정치가가 많지 않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기업경영과 정치는 그 목적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과정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기업인은 행동방식과 사고방식도 다르다.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기업은 '최대의 이익 실현'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의 역량을 집중하면 된다. 그러나 정치가는 여러 상충하는 목표 가운데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많은 이해관계자를 설득해 타협을 끌어내야 하며 이를 위해 비능률도 감수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성공한 기업인이 나라를 이끌게 되면 최소한 경제에서만큼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기업인의 '성공 DNA'가 전혀 다른 생태계인 정치에서는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세계에서 모두 성공하려면 월등한 유연성과 적응력이 있어야겠지만, 이런 사람은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트럼프가 현재의 기세를 몰아 대통령이 된다면 앞서 거론한 '선배들'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 대통령의 실패는 전 세계에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