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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꽃 '진달래'…한민족 정한(情恨)의 상징영취산 이어 비슬산, 고려산 등에서 축제 열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언제 불러도 뭉클한 동요, 언제 들어도 아련한 우리 민족의 노래다. 길 가는 남녀노소, 갑남을녀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모르는 이가 없다. 특히 진달래꽃은 떠나온 고향과 어린 시절을 눈물로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의 대명사다. 동요 '고향의 봄'뿐이던가. 진달래꽃은 노래와 시에서 민족적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화였다. 척박한 땅에서도 따스한 정감의 꽃잎을 화려하고 강인하게 펼쳐내서일까. 특히 일제 때는 망국의 설움과 슬픔, 그리고 저항의식을 상징했다. "바위 고개 핀 꽃 진달래꽃은/ 우리 님이 즐겨즐겨 꺾어 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나라 잃은 민족의 심사는 처절하기 마련이다. 남의 머슴살이하며 온갖 설움을 당하면서도 이를 겉으로 나타내지도 못하는 통한의 신세. 그 고초와 아픔을 진달래꽃에 비유하고 의지해 이겨내고자 했다. 작곡가 이흥렬이 애환의 노래 '바위고개'를 내놓은 때는 식민통치가 극성을 부리던 1933년이었다. 여수 영취산 진달래꽃 시인 박팔양은 진달래꽃을 봄의 선구자라며 예찬한다. 하지만 그 모습에선 시의 제목 '너무도 슬픈 사실'처럼 불운 속에서도 이를 이겨내려는 비장함이 느껴진다. 해방 후 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진달래가 거론됐던 것은 지극히 당연했겠다 싶다. 그만큼 친숙하고 화려하고 애잔해서다. "진달래 꽃은 봄의 선구자외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그 엷은 꽃잎은/ 봄의 불행한 수난이외다"앞서 얘기한 바처럼 진달래꽃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진분홍의 꽃무리는 금방이라도 산언덕을 태울 듯 붉게 물들인다. 진달래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고 '산에 불이 붙은 것 같다(萬山紅如火)'고 한 것은 '언즉시야'다 싶어 무릎이 절로 쳐진다.그 아름다운 자태에 대한 찬양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진달래를 소재로 한 가장 오래된 시가로 꼽히는 '동동(動動)'. 이 고려가사에서도 "삼월 나면서 활짝 핀/ 아! 늦봄의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자태를/ 지니고 나셨도다/ 아으 동동다리"라며 예찬한다.진달래 하면 얼른 떠오르는 대표적 명소가 평북 영변이 아니던가. 관서팔경의 하나라는 이곳 약산의 동대(東臺)에서 바라보는 진달래꽃밭은 가히 절경이었다. 김소월이 시 '진달래꽃'에서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 오리다'고 노래한 게 그렇고, 저 먼 남녘의 섬 진도에서마저 '약산동대 진달래꽃은/ 한 송이만 피어도/ 모두 따라 핀다'며 '진도아리랑' 가락에 언급된 것 또한 그렇다. 꽃의 계절인 봄을 맞아 온갖 생물이 앞다퉈 약동한다. 특히 4월 들어서더니 전국 곳곳에서 겨레의 꽃인 진달래가 곱게곱게 꽃잎을 터뜨리고 있다. 민족은 비록 남과 북으로 양단됐으나 진달래꽃은 남북을 구분하지 않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그렇다고 볼 때 민족의 애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깊은 정한을 간직한 민족의 꽃이 피는 이때에 진달래 축제가 곳곳에서 열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일부 지역에서는 '참꽃'이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열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먹을 수 없는 철쭉꽃을 '개꽃'이라 부르며 먹을 수 있는 진달래꽃, 즉 참꽃과 구별했다고 한다.진달래 축제는 국내 최대 진달래 군락지로 꼽히는 여수 영취산에서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열리며 꽃의 축포를 터뜨렸다. 여수 영취산진달래축제는 23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어 5일에는 밀양 종남산에서 축제가 개최됐고, 12일에는 창원 천주산에서 분홍의 축제세계가 펼쳐졌다. 진달래 축제는 개화시기를 따라 빠르게 북상한다. 경기도 부천에서 11일과 12일 원미산 진달래 축제가 열린 데 이어 인천 강화에서 18일부터 30일까지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진분홍의 진수를 선보인다. 경북 달성에서도 18일부터 26일까지 제18회 비슬산참꽃문화제가 개최될 예정이다.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겁다! 진달래 만발하는 계절을 맞아 그 속내를 알고 꽃잎에 눈길을 준다면 더욱 가슴 뭉클하지 않을까 싶다. 축제란 말 그대로 일탈과 어울림 아니던가. 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이 하나돼 생명을 찬양하는 감격의 마당인 것! 강화 고려산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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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충무공'과 '진해'…그 절묘한 만남제53회 진해군항제…해군 창설 70주년 맞아 의미 더해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화려함! 우아함! 일제히 피어난 벚꽃들이 봄을 맘껏 노래한다. 벚꽃 중 으뜸은 역시 이름처럼 멋지고 품격있는 왕벚나무. 다섯 개의 연분홍 꽃잎이 하나의 개체를 이루고 그 개체들은 다시 화사한 군집을 이뤄 기다란 꽃터널을 연출해낸다.해마다 4월 초가 되면 진해는 벚꽃 세상으로 탈바꿈한다. 소리 없는 봄의 찬가! 100여 년 묵은 벚나무 36만여 그루가 펼쳐내는 지상의 파노라마다. 이 벚꽃들의 잔치를 보기 위해 해마다 300만 명가량의 상춘객이 방방곡곡에서 몰려든다. 참고로, 진해의 인구는 18만명 정도다. 벚꽃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 그리고 진해가 연출해내는 벚꽃의 대향연 '진해군항제'. 제53회 진해군항제가 지난 1일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군항제는 열흘 동안 여좌천, 경화역, 안민고갯길, 장복산, 제황산 등 벚꽃 명소에서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환희의 꽃세상!벚꽃과 충무공 이순신, 진해는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인연을 맺게 됐을까? 군항제를 계기로 그 절묘한 '삼각관계'를 곰곰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듯이 보이는 만큼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남녘의 진해는 항구로서 천혜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해군군수사령부를 비롯한 주요 부대가 이곳에 있고, 해군 양성의 요람인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교육사령부가 여기에 터를 잡고 있음은 당연하다 싶다. 일제는 이곳의 강점을 십분 이용했다. 현재의 해군기지사령부인 진해요항부 등을 설치하고 해양의 군사 요충지로 삼았던 것이다.지금 진해에 꽃이 만발한 벚나무는 바로 일제시기에 심어진 것들.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뒤 진해에 군항을 설치하면서 도시 미화를 위해 일본의 상징화인 벚꽃을 심었다. 하지만 광복 후에는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 속에 한때 마구 베어지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현재의 벚나무들이 제거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난 것은 이곳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였음이 알려지면서였다. 식물학자 박만규·부종유 씨는 1962년 진해의 벚나무가 제주 토종의 왕벚나무라고 밝힘에 따라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지금의 축제 주인공이 되고 있는 것. 충무공 이순신과 진해의 인연도 각별하다. 그 직접적 계기는 임진왜란 발발 직후인 1592년 8월 16일의 안골포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진해 안골포에서 왜선을 격멸해 반전의 큰 계기를 마련한다. 여기서 군함 42척이 모두 격침된 왜군으로선 호남 진출의 길이 막혔고, 평양에 진출했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도 보급 문제로 진퇴양난에 빠졌다. 광복 후 진해는 한국 해군의 요람으로 거듭난다. 1945년에 창설된 해군은 이듬해 1월 진해에 지금의 군수사령부 안에 '해군병학교'를 설립하고 다시 2년 뒤인 1948년 10월에는 진해 옥포만의 현 해군사관학교 부지로 이전한다. 명칭이 지금처럼 바뀐 것은 이듬해 1월이었다.진해에 한국 최초의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건립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한국전쟁 시기인 1952년 4월 진해구 북원로터리에 높이 5미터의 동상이 세워진 것. 이로써 역사 속의 충무공은 현재적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참고로, 서울 세종로의 이순신 장군 동상은 높이 6.5미터로 한참 뒤인 1968년 4월 충무공 탄신일에 맞춰 건립됐다. 진해군항제가 개최된 배경에는 바로 이 충무공 동상도 한몫하고 있다. 건립 첫해부터 10여년 동안 추모제 형식으로 열렸으나 1963년부터는 진해군항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 이로써 벚꽃과 충무공과 진해가 한데 어울리는 축제의 장이 펼쳐지게 됐다. 올해 군항제는 해군 창설 70주년과 겹쳐 의미가 더하다. 해군은 진해군악의장페스티벌과 한·미 군악대 합동연주회를 열어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더욱 즐겁게 했다. 벚꽃 가로수 화려한 진해 시내도로를 따라 3일 펼쳐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 승전행차는 시공을 초월한 만남의 자리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알고 벚꽃길을 걷는다면 감흥이 한층 크고 새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