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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지리산 노고단 지붕 밑 설경 장관'구름 위를 거닐다' 지리산 10경 노고운해기암절벽에 위태롭게 선 사성암, 섬진강부터 눈덮인 지리산까지 한눈에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이원규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일부)지리산 노고단 정상(구례=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전남 구례군 지리산 노고단 정상부의 설경 2017. 1. 21 [전남 구례군 제공=연합뉴스]지리산 노고단(해발 1천507m)은 마치 산이 섬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멋진 운해를 선사하는 곳이다.산을 사랑하는 이들은 지리 10경으로 꼽히는 노고단의 운해와 겨울 설경을 마주하기 위해 귀가 새빨개지는 추위 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는 고행을 마다치 않는다.지리산의 서쪽 끝인 노고단을 가기 위해서는 보통 자동차로 천은사에서 성삼재휴게소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이용한다. 도보로 2시간이나 걸리고 해발 1천m가 넘는 구간이지만 차량을 이용해 가뿐하게 도착할 수 있다.다만 겨울철에는 눈길 위험 때문에 승용차 운행이 어렵고 성삼재 휴게소까지 버스 운행도 중단되므로 RV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너른 들판과 섬진강 줄기가 어우러진 흐르는 구례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성삼재 휴게소 전망대를 떠나 설레는 마음을 안고 노고단을 향한다.노고단 정상 전에 해발 1천440m 높이의 노고단고개가 나타난다.고개까지 오르는 계단 길도 있지만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면 화엄사 계곡으로 물을 넘기는 고개라는 뜻의 무넹기(해발 1천277m) 전망대에서 섬진강과 구례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한 시간쯤 걸으면 노고단 대피소가 나타난다.노고단 정상 가는 길(구례=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전남 구례군 지리산 노고단고개에서 정상으로 가는 계단길. 2017. 1. 21 [전남 구례군 제공=연합뉴스]거기서 다시 계단을 올라 불과 몇백m 떨어진 노고단 정상을 향하다 보면 '구름도 쉬어 간다'는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구례의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운 노고단의 모습을 구례의 땅에서 볼 수 있는 곳도 있다.바로 구례군 문척면 오산(鰲山)에 있는 사성암(四聖庵)이다.자동차로 곧장 사성암 주차장까지 가는 방법도 있지만 죽연마을 주차장에 주차하고 등산로 표시를 따라 한 시간가량 등산해도 된다.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은 죽연마을에서 내려 20분 간격(성수기 기준)으로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10여 분간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면 사성암이 나타난다.절벽 중턱에 위태로이 선 사성암의 모습은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보니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와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저 멀리 눈 덮인 지리산 차일봉, 노고단, 반야봉의 모습까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하늘에서 바라본 구례 사성암과 눈덮인 지리산 (구례=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하늘에서 바라본 전남 구례의 오산 사성암과 저 멀리 눈 덮인 지리산 차일봉, 노고단, 반야봉의 겨울 풍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2017. 1. 21 [전남 구례군 제공=연합뉴스]오산은 최고 높이가 530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바위가 많아 소금강에 비유되기도 한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구례 지역 읍지에는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다"고 기록돼 있다.오산 정상부에 지은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 연기 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2014년 국가지정문화재(명승)로 지정됐다. 원래 명칭은 '오산암'이었으며 이의상, 원효, 도선, 진각 등 명망 있는 승려 4명이 이곳에서 수행해 '사성암'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벼랑 끝에 우뚝 선 사성암의 모습 때문일까.작은 암자인 사성암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와 참선을 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암자와 더불어 암벽에 음각된 고려 시대 불상인 마애여래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0호)도 유명하다.높이 3.9m의 이 불상은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구례는 예로부터 세 가지가 크고 세 가지가 아름다운 '삼대삼미'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삼대는 지리산과 섬진강, 들판을 가리키고 삼미는 수려한 경관과 넘치는 소출, 넉넉한 인심을 의미한다.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자연에서 나온 먹거리까지 맛본 후에야 '삼대삼미'를 오롯이 즐겼다고 할 수 있겠다.성삼재 휴게소 인근이나 구례 읍내, 사성암이 있는 문척면 바로 옆마을인 토지면사무소 주변에서도 지리산자락에서 캔 나물이 가득 담긴 산채비빔밥과 촌닭 백숙, 섬진강에서 채취한 다슬기 수제비 등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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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민과 함께하는 송년국악 ‘젊은 명인들의 가무악’ 용인포은아트홀 무대에 올라용인문화재단은12월 17일(토) 오후 5시 용인포은아트홀에서 용인민예총과 공동으로 ‘젊은 명인들의 가무악’ 공연을 개최한다. 이번 무대는 용인민예총과 용인문화재단이 우리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국악 대중화를 위해 마련한 세 번째 자리다. ‘젊은 명인들의 가무악’은 이두성(용인민예총 회장)의 기획·연출, 이병옥(용인대학교 명예교수) 해설로, 왕안숙(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정지윤(한영숙 학무보존회 회장)과 더불어 젊은 국악인 조선인(가야금), 김범수(대금산조), 오단해(소리), 이정호‧신재성‧김용환‧서광식(사물놀이) 등이 출연한다. 또한 사)한국전통민요협회 용인지부 회원 51명의 경기민요 떼창과 신세대 국악연주그룹 어쿠스틱앙상블 ‘재비’의 연주로 신명나는 공연을 선사한다. 신세대 국악 연주 그룹 어쿠스틱 앙상블 ‘재비’ 신세대 국악 연주 그룹 어쿠스틱 앙상블 ‘재비’는 9인의 남자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우리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어쿠스틱, 라이브 음악을 추구하는 단체로, ‘재비’란 우리 음악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전문 예술인을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이번 무대는 ‘금강산타령’을 시작으로 ‘학춤’, ‘판소리(춘향가 중 어사출두 대목)’, ‘사물놀이’, ‘경기민요’, ‘동부민요’로 흥을 돋울 예정이다. 특히 가야금의 멋을 살린 '아랑의 꿈(밀양아리랑의 변주곡)‘과 이생강류 대금산조 ‘바라밀다’는 젊은 명인들의 열정을 볼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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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지정 50년…'천년 플랜'으로 관리한다세계 유일 '국제 4대 보호지역' 명성…백록담 등 훼손 아픔 겪어연간 120만명 넘게 방문…생태계 보전ㆍ탐방객 조절 방안 마련 (제주=연합뉴스) 한라산이 국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 12일로 50주년을 맞았다.지난 1966년 10월 12일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반세기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라산은 국립공원 지정,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람사르습지 인증 등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찾고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이 됐다.한라산천연보호구역 지정 50주년을 맞아 한라산의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도 천 년 넘게 빼어난 경관과 식생을 보존할 수 있도록 현 실태와 관리 대책을 세 차례의 기사를 통해 진단한다. 한라산 백록담의 웅대한 모습[연합뉴스 자료사진]◇ 50년간 명성·아픔 한꺼번에 겪어 우리나라 최남단 제주섬 한가운데 1천950m 높이로 우뚝 솟은 남한 최고봉 한라산(漢拏山).'능히 은하수를 잡아당길(雲漢可拏引也) 만큼 높은 산'이란 뜻에서 이름 붙여진 이 산은 금강산·지리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다.화산폭발로 형성된 한라산은 바다에서 바라보면 마치 방패를 엎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360여 개의 오름을 품은 채 동서로 길게 해안까지 뻗어있다.어머니가 자식을 품듯 마을과 중산간 초원지대를 감싸고 있어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에서 자애로운 모성애를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온 섬을 할퀴어 댈 듯 강력하게 몰아치는 폭풍우 속 한라산의 모습에서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을 엿보기도 한다.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곧 제주도요, 제주도가 한라산이다.한라산은 각종 희귀 생물의 종 다양성, 빼어난 경관 등 그 가치가 매우 높아 자연자원으로써나 학술적 측면에서 보전·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1960년대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학술조사를 통해 한라산은 1966년 10월 12일 비로소 천연기념물 제182호 한라산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 면적은 백록담을 중심으로 사면에 따라 해발 600m∼1천300m 이상 구역인 90.931㎢에 이른다. 한라산 고지대의 여름 야생화들[연합뉴스 자료사진]이어 3년 뒤 1970년 3월 24일부터 한라산천연보호구역을 중심으로 153.386㎢(제주도 전체면적의 12분의1)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한라산의 국립공원 지정은 수많은 자연자원을 간직한 자연생태계의 보고로서의 보존 가치뿐만 아니라 등산을 통해 국민이 여가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여가 선용의 대상으로도 그 필요성이 확대됐음을 의미했다. 한라산은 이후에도 200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201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으면서 명실상부 세계인의 유산으로 거듭나며 그 위상을 드높였다.또 2008년 물장오리습지, 2009년 1100고지 습지, 2015년 숨은물벵디 습지가 차례로 람사르습지로 인정받으면서 한라산국립공원은 유네스코 3관왕과 람사르습지를 동시에 보유한 세계 유일의 '국제 4대 보호지역'이 됐다.그러나 드높아진 위상 이면에는 국립공원 지정을 전후해 탐방객이 증가하면서 각종 논란과 심각한 환경훼손, 개발 등으로 아픔을 겪기도 했다. 40년 가까이 이어진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논란을 비롯해 구상나무와 눈향나무 등 많은 한라산 희귀식물이 관상용으로 몰래 뽑혀나갔다.또 1970년대 초반 백록담에서 등산객들이 야영하며 분화구에서 수영하다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하는가 하면 등산객들이 버린 각종 음식물 쓰레기와 오물 등으로 한라산이 몸살을 앓았다. 결국, 1976년 7월 백록담을 찾은 박만규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이 백록담 호수 면적이 등산객으로 인한 토사유실 등으로 50년 사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밝혀 충격을 주기도 했다.이로 인해 1978년 백록담 분화구 출입을 금지하는 한편 한라산 5개 코스 이외의 입산 행위를 단속했고 이후에도 백록담 주변 훼손이 계속되자 한라산 서북벽코스와 남벽코스 등이 폐쇄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 연간 120만명 넘게 한라산 방문 제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한라산, 그 정상에는 누가 가장 처음으로 올랐을까. 믿거나 말거나지만 제주 창조 신화에는 '설문대 할망(할머니)'이라는 거대한 여신(女神)이 한라산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설문대 할망이 삽으로 일곱 번 파서 던지니 한라산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제주 곳곳에 있는 오름들도 설문대 할망이 치마에 흙을 담아 옮기는 과정에서 흙덩어리가 떨어져 생긴 것이라 한다.한라산을 만들었으니 첫 번째로 오른 주인공 역시 설문대 할망이라는 이야기다.이외에도 중국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때 불로장생의 불로초를 캐 오라는 황제의 명을 받아 제주에 온 서복(徐福) 일행이라는 말도 나온다.중국 사기(史記)에 등장하는 서복이 진시황의 명을 받아 선남선녀 3천여 명과 함께 한라산의 불로초를 캐기 위해 제주에 왔다가 서귀포를 경유해 떠났다는 탐방설화가 전해지는데, 당시 서복이 백록담 주변에서 캐간 불로초가 한라산 고산식물인 시로미 열매라고도 한다.누가 가장 먼저 백록담에 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진 한라산은 누구나 한 번쯤 오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라산 등반 기록을 남겼다. 구한말 유학자이자 의병장으로 유명한 최익현은 제주로 유배를 왔다가 유배가 풀리자마자 한라산에 오르기도 했다. 한라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1974년부터 매일 탐방객 수가 조사되고 있다.지난해까지 한라산을 찾은 누적 탐방객은 2천62만2천321명, 올해 들어서도 8월 현재까지 67만775명이 다녀갔으니 총 누적 탐방객은 2천129만3천96명이다.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5천107만명)로 따지면 약 40%가 한라산을 오른 셈이다.한라산 탐방객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 2010년(114만명) 처음으로 한해 100만명을 넘어선 뒤 2013년에는 120만명, 2015년 125만명이 찾는 등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라산 등산로는 어리목코스(6.8㎞), 영실코스(5.8㎞), 성판악코스(9.6㎞), 관음사코스(8.7㎞), 돈내코코스(7.0㎞) 등 5개다.이 중 현재 정상 탐방이 가능한 탐방로는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코스 등 2개뿐으로, 나머지 3개 코스는 모두 남벽 분기점까지만 등산이 가능하다. 정상으로 가는 한라산 등산로인 남벽구간(0.7㎞)은 지난 1986년 5월 훼손이 심한 서북벽 코스에 대한 출입이 통제되면서 새로 개설됐으나 마찬가지로 훼손이 심하게 진행돼 개설 8년만인 1994년부터 출입이 전면 통제된 상태다.제주도는 한라산천연보호구역 지정 50주년을 맞아 지난 반세기를 반추하면서 한라산보호관리 등 품격 높은 발전방안 모색을 위한 '한라산 보호 천년 플랜' 용역을 시행, 통제된 남벽구간을 다시 개방할지를 검토하고 있다.남벽 구간이 개방되면 탐방객들이 한라산 5개 등산로를 따라 모두 정상까지 갈 수 있게 된다.한라산 보호 천년 플랜 용역에는 이 외에도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지정 배경 등 지나온 발자취와 한라산의 동·식물, 등산의 역사 등 자연과 사람의 공존 관계, 생태계 보전, 안전관리, 탐방객 조절 등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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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산과 바다가 주는 힐링…강화 석모도자연휴양림·갯벌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에 절로 탄성 석모도 민머루해변(인천=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 강화도 서편 바다 위에 길게 붙어있는 섬 석모도. 산과 바다, 갯마을과 섬이 조화를 이뤄 '서해 3대 낙조' 중 한 곳으로 꼽힌다.석모도는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10분가량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다.한번에 200∼300명의 승객과 30∼40대의 차를 실을 수 있는 카페리는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항해 왕래에 어려움이 없다. 섬 안 도로가 잘 정비돼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좋다. 휴일이면 석모도로 향하는 카페리는 승객들이 던지는 과자를 받아먹는 갈매기들로 온통 뒤덮여 장관을 연출한다.내년 하반기에는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다리가 놓일 예정이어서 뭍에서 온 여행자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카페리 승선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바다가 보이는 석모도 자연휴양림 석모도에는 해명산, 상봉산, 상주산의 3개 산이 있어 삼산면이라는 지명이 생겼다.자연휴양림이 위치한 상봉산 자락에 오르면 바다와 들녘이 탁 트인 멋진 광경이 펼쳐진다.특히 가을에는 단풍으로 형형색색 뒤덮인 산, 황금빛으로 물든 벌판을 볼 수 있는데 휴양림에서 느낄 수 있는 여행의 묘미다.석모도 자연휴양림은 산책로와 등산로를 고루 갖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등산로의 능선을 따라 거닐며 마주하는 석양은 휴양림 방문객이 반드시 감상해야 할 풍경이다.숙박시설은 4·10인실(휴양관)과 6·8·18·22인실(숲속의 집)이 있는데 매월 1일 0시부터 다음달 이용 예약을 선착순으로 받는다.석모도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묵으며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고 수목원의 숲 속을 거닐면 일상의 번민이 씻겨 내려간다. 석모도 상봉산과 해명산 사이에는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인 보문사가 있다.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금강산에서 내려온 회정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새벽 동틀 무렵에 듣는 절 앞바다의 파도소리와 눈썹바위의 마애관음 보살상은 예로부터 '강화 8경'에 드는 명승이다.해질 무렵에 마애석불에서 내려다 보면 서해의 경치와 석양이 빚어내는 장관을 볼 수 있다.석포리와 보문사 구간(8km)을 잇는 섬 안 버스는 배 시각에 맞춰 다녀 승용차가 없어도 가는 길이 수월하다. 보문사까지는 차로 15∼20분 정도 걸린다. 보문사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과 상점,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석모도 수목원생태체험관 연간 100만명 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석모도에는 보문사 말고도 가볼만 한 곳이 여러 곳 있다. 석포리항에서 보문사 방향으로 5km 가면 왼쪽으로 어류정항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쪽으로 가면 염전, 해수욕장, 갯벌, 포구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석모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민머루해수욕장은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나 아이들과 함께 갯벌탐사를 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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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에 사는 네 쌍둥이의 가족 방문“힘든 건 3배, 기쁨은 3제곱” 세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연예인 송일국 씨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한 말이다. 최근 몇 개월간 쌍둥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하며 화제가 되었다. 2016년 9월 11일 오후 3시, 국민문화신문에서는 이천시 호법면 단천리에 위치한 네 쌍둥이(송우리, 송강산, 송푸른, 송하늘)의 집을 방문했다. 100만 분의 1의 확률이라는 네 쌍둥이가 이천에서 송구일(父), 우보라(母)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네 명의 아이들은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이모와 이모의 친구가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천 네 쌍둥이는 남아 3명과 여아 1명으로, 곧 돌을 맞이하는 아이들은 현재 건강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났을 당시에는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가량 지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네 쌍둥이 가족들은 집안에서 아이들을 한 명씩 돌아가며 돌보면서 잠드는데, 가족들은 밤중에 깨어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힘들면서도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미소를 짓게 만든다고 한다. 네 쌍둥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행복은 크지만, 그에 따른 어려움도 상당하다고 한다. 가족들은 아이들을 돌보는데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많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서 식사하는 것은 물론, 외식은 생각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이어서 정부의 정책에 대한 아쉬움은 표현하며, 네 명의 아이들을 맡아줄 ‘아이돌봄서비스’를 지원받기도 힘들다며, 다자녀 세금 혜택은 있지만, 네 쌍둥이에 대한 혜택은 매우 열악하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경제적인 면에서 4배의 비용이 드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부에서 쌍둥이를 위한 관심을 가지고, 혜택을 더욱 늘려주길 희망한다고 했다. 단지, 네 쌍둥이의 가족들은 아이들이 힘들게 태어난 만큼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며 자라길 바란다고 한다.사진 : 현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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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여행> 한탄강·임진강이 품은 천혜 비경재인폭포. 사진/임귀주 기자(연천·포천=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재인폭포와 임진강 주상절리는 한탄강을 따라 흐르던 용암이 오랜 세월에 걸쳐 빚어낸 천혜의 걸작이다. 한탄강과 임진강 일대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비경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경기도 연천에는 약 19억 년 전 형성된 변성암부터 50만~12만 년 전에 용암이 흘러 형성된 현무암까지 30가지가 넘는 암석이 분포돼 있다. 그만큼 다양한 지질과 색다른 경관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한탄·임진강의 지질명소 중 으뜸은 재인폭포다. 바닥이 투명한 높이 27m의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움푹하게 팬 절벽 가운데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얗게 쏟아지는 폭포수가 약 18m 높이의 검은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과 대비되며 장관을 연출한다. 우리나라에 이런 풍광이 있을까 싶다. 재인폭포는 한탄강 본류에서 350m 정도 들어가 있는 곳에 있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의 주상절리가 조금씩 침식되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는 훨씬 더 계곡 안쪽에서 폭포가 떨어져 내릴 것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폭포의 웅장함을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절벽에 촘촘히 박힌 주상절리는 에메랄드빛 수면 위로 쏟아져 내릴 듯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전한다. ◇ 베개 모양 용암과 좌상바위 재인폭포 인근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주상절리 절벽 아래에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베개용암이 있다. 뜨거운 용암이 물을 만나 급격히 식으면서 굳어지고 밀려오는 용암이 다시 굳어진 표면을 통해 치약을 짜듯이 계속 뚫고 나오는데, 그 모양이 베개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탄강 건너편 나무 덱 전망대에서 보면 베개 수백 개를 쌓아 놓은 듯한 용암이 시야에 들어온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이용하면 베개용암의 모양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다시 한탕강 하류로 1㎞를 이동하면 궁신교에서 좌상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를 건너다볼 수 있다. 중생대 말인 백악기에 형성된 현무암으로 주변에는 동시대의 응회암층과 신생대 4기의 현무암이 있고, 하천 바닥에는 고생대 미산층도 함께 관찰된다. 이 바위는 궁평리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은대리 협곡. 사진/임귀주 기자◇ 지질 종합선물세트 은대리 협곡 연천읍 북쪽 은대리 협곡은 고생대부터 신생대까지의 지질구조와 암석, 광물 등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왕림교 아래 천변으로 내려서면 우선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 아래에 자갈이 쌓여 있는 퇴적층이 보인다. 연천 청산면 백의리에서 발견돼 ‘백의리층’이라 불리는 이 퇴적층은 옛 한탄강의 바닥이었던 곳으로, 용암이 흘러와 덮으면서 자갈 퇴적층 위로 현무암 절벽이 서 있는, 위태로워 보이는 지금의 모습이 됐다. 기왓장 모양의 판상절리와 습곡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바위, 녹색 암석에 박혀 있는 분홍색 광물 결정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왕림교에서는 은대리 협곡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은 하천을 따라 이어지며 신비로운 풍광을 선사한다. 은대리 협곡 인근에는 다양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차탄천 협곡도 있다. 은대리 협곡. 사진/임귀주 기자◇ 겸재의 화폭에 담긴 화적연과 교동 가마소 한탄강 상류 포천 지역에서는 화적연(禾積淵)과 교동 가마소를 꼭 봐야 한다. 강물이 휘도는 곳에 육식공룡이 누워있는 듯한 화강암괴가 자리하고 있는데, 짙푸른 숲과 초록빛 강물, 눈부시게 하얀 모래톱이 함께 어우러지며 극도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화적연은 바위가 볏단을 쌓아 놓은 것 같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화적연은 예부터 금강산 가는 길목으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은 금강산 초행길에 이곳을 화폭에 담았으며, 많은 시인과 묵객이 지나며 글로 표현했다.교동 가마소는 한탄강의 지천인 건지천 하류에 있는 조그만 계곡이다. 계곡을 이루는 바위들의 모양이 마치 솥을 엎어놓은 것 같이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주상절리의 틈을 따라 물에 의한 차별침식이 일어나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다고 한다. 포천 화적연. 사진/임귀주 기자◇ 여행 정보 = 우리나라에는 무등산권, 한탄·임진강, 청송 이외에 강원평화지역(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울릉도·독도, 부산, 제주도가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뛰어난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후보지로는 설악산, 단양, 진안·무주 등 9곳이 있다.▲ 강원평화지역 =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내륙으로 갈수록 점차 경사가 완만해지고 동해안 쪽으로는 경사가 급하다. 이는 신생대 제3기에 동해의 해저 지각이 확장하면서 한반도가 수평으로 압력을 받아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지반이 융기된 탓이다. 강원평화지역은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을 포함한다.철원의 지질명소로는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불리는 직탕폭포, 용암이 한탄강을 따라 흘러가면서 계곡과 저지대를 메우며 편평한 용암대지를 형성한 철원용암대지, 고석정(孤石亭) 아래 한탄강 협곡에 15m 높이로 우뚝 선 화강암인 고석, 약 2㎞에 걸쳐 주상절리가 이어지는 대교천 현무암 협곡, 명성산 중턱의 높이 20m 삼단폭포인 삼부연 폭포 등이 있다. 화천에는 지촌천을 따라 7㎞ 남짓 구불구불 물길이 흐르는 곡운구곡(谷雲九曲), 만산동 계곡 정상부에 높이 약 100m, 폭 500m로 솟은 비래암이 있고, 양구에는 조선왕실의 백자 생산을 위한 백토 공급지였던 방산 지역, 차별침식으로 형성된 해안분지, 사태천이 감입곡류하며 생긴 폭호(瀑壺)인 두타연이 있다. 또 인제에는 해발 1천200m 일원에 발달한 산지습지로 1997년 우리나라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대왕산 용늪, 내린천 포트홀이 있으며, 고성에는 남한에서 가장 넓은 석호인 화진포를 비롯해 송지호, 능파대가 있다.▲ 제주도 = 201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됐다. 약 180만 년 전부터 역사시대까지 일어난 화산활동 때문에 형성됐다. 묽은 용암이 흘러 방패처럼 평탄한 모양을 한 순상화산 지형이다. 한라산과 단성화산 360개를 포함한 다양한 화산지형이 분포하고 현무암질과 조면암질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지질명소로는 한라산, 만장굴, 천지연폭포, 중문-대포 주상절리대, 서귀포 패류화석산지, 용머리, 성산 일출봉, 산방산, 수월봉, 선흘 곶자왈이 있다.▲ 부산 = 부산지질공원이 위치한 부산은 태백산맥의 남쪽 말단부에 해당하며, 해발 400~800m 구릉성 산지와 작은 반도, 섬, 만이 발달한 리아스식 해안이다. 남한에서 가장 큰 퇴적분지인 경상분지의 남동부에 포함되며, 경상분지는 백악기(1억3천600만~6천500만 년 전)에 형성됐다. 부산을 대표하는 해안 경관지인 태종대를 비롯해 이기대, 횡령산 서편의 구상반려암, 낙동강 하구, 다대포항 동쪽 해안의 두송반도, 암남동 일대 송도반도, 몰운대, 오륙도 등이 지질명소에 포함된다.▲ 울릉도 ·독도 = 울릉도와 독도는 섬 전체가 화산작용으로 형성된 화산체이다. 평지는 거의 없고 지형 대부분이 절벽이며 현무암, 조면암, 응회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울릉도에는 봉래폭포, 거북바위, 국수바위, 버섯바위, 학포해안, 태하해안 산책로와 대풍감, 노인봉, 송곳봉, 용출소, 죽암 몽돌해안, 삼선암, 관음도, 죽도, 성인봉 원시림, 코끼리바위, 황토굴, 도동과 저동 해안산책로, 알봉이 있다. 또 독도에는 숫돌바위, 독립문바위, 삼형제굴바위, 천장굴 등의 지질명소가 있다. 포천 교동 가마소. 사진/임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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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매씨 가족'이 렌즈에 담은 근현대 한국의 풍경부산 일신기독병원 설립자 유품사진 9천장 발견…경기대박물관 7일부터 전시 '돌계단을 베개삼아'…포대기에 싼 네 쌍둥이. [경기대박물관 제공=연합뉴스]4월 화재가 난 부산 동구 증산마을 풍경. 화재민 연락소라고 적힌 드럼통 뒤로 사람들이 몰려 있다. [경기대박물관 제공=연합뉴스]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2대에 걸쳐 국내에서 헌신적인 의술을 펼친 호주인 선교사 가족이 카메라에 담은 방대한 양의 우리나라 근현대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돼 눈길을 끈다.이들은 부산을 포함해 평양, 금강산, 서울, 수원, 속초, 양양, 영천, 여수, 보은, 공주, 울릉도, 경남 등 전국 25개 도시에 의료봉사를 다니며 사진 9천여장을 남겼다. 아이 업은 엄마. [경기대박물관 제공=연합뉴스]이번에 공개되는 2천여장은 수원 경기대 박물관에서 7일부터 10개월간 '호주 매씨 가족의 한국 소풍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전시된다.전시 사진 중 500여점에는 한센인 환자촌, 동구 매축지, 광안리, 옛 수영비행장, 금정산성 동문, 남항과 북항 등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당시 부산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동생 안은 누이. [경기대박물관 제공=연합뉴스]특히 영도 봉래산, 부산 중심인 황령산, 해운대 장산, 금정산, 지금은 사라진 백산 등 산 정상에서 사방을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이 많아 과거, 현재의 모습을 대조하기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수상가옥이 즐비했던 자갈치 시장, 시장에서 담배 피우는 아낙네 등 당시 생활상도 엿볼 수 있어 지역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1950년대 부산 장산에서 바라본 수영비행장 일대. [경기대박물관 제공=연합뉴스]전시작 중 부산 사진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호주인 '매씨 가족'이 주로 부산에서 생활했기 때문이었다.사진 대부분을 찍은 이는 부산 일신기독병원 설립자인 호주인 매혜란(2009년 사망), 매혜영(2005년 사망) 자매다. 아이와 엄마. [경기대박물관 제공=연합뉴스]자매의 아버지는 1910년 부산에 선교사로 와서 한센병 환자 병원인 '상애원'을 운영한 매켄지(1956년 사망)씨다.한국식 이름인 '매견시'로 개명한 매켄지 씨는 부산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던 부인 '매리 켈리'를 만나 결혼해 두 딸을 낳고 호주 이름과 함께 한국식 이름을 지었다.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매 자매는 평양에서 고등학교를,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각각 의사와 간호사가 돼 6·25전쟁통에 피란민으로 가득 찬 부산으로 되돌아왔다.30여년간 한센병 환자를 돌본 아버지와 한센병 환자 자녀와 고아를 가르친 어머니를 보고 자란 자매는 가장 먼저 부산 동구 좌천동에 일신기독병원을 세웠다. 1950년대 부산자갈치시장의 수상가옥. [경기대박물관 제공=연합뉴스]자매는 전쟁에서 여성과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며 이들을 무상으로 치료해주며 의료봉사활동을 다녔다.자매는 전국 곳곳을 다니며 어려운 환경에서 가족을 돌보는 억센 한국 여성과 삶의 희망인 아이들을 낮고 따뜻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았다.1976년과 1978년 각각 호주로 돌아가기 전까지 자매는 항상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어려운 이웃을 먼저 치료해달라며 돈을 모아 일신기독병원에 전달한 '부산 사람'이었다. 우리 정부는 이런 공로를 인정해 작고한 매혜란 여사에게 201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2010년께 호주에서 유족이 매 자매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9천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발견했다. 이 필름은 일신기독병원을 통해 경기대 박물관에 전달됐다. 1952년 2월 부산 중구 보수동책방골목 모습. [경기대박물관 제공=연합뉴스]경기대 박물관은 지난 5년간 필름 수천 장을 하나씩 스캔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이번에 전시회를 마련하게 됐다.애초 부산에서 전시회를 열려고 했지만, 장소 섭외가 여의치 않아 이뤄지지 못했다.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매씨 가족의 사진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시기의 생활상과 지리를 알 수 있을 만큼 학술 가치가 뛰어나다"며 "사진과 별개로 매씨 가족의 헌신적인 삶은 평생 인술을 펼친 장기려 박사에 버금갈 만하다"고 평가했다.경기대 박물관은 내년에 부산에서 전시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장에서 담배 피우는 아낙네 행상. [경기대박물관 제공=연합뉴스]1952년 9월 17일 부산일신기독병원 임시병동 개원 당시 첫 직원. 좌측부터 유경순, 매혜영, 매혜란, 방필수씨 모습. [경기대박물관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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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20년> ① 10대 전유물에서 한류 수출 첨병으로H.O.T가 시작점…육성 시스템 정착·산업화 거쳐 2·3세대 활약 아이돌 봇물에 음악시장 작년 4조8천억 규모로 성장 <※ 편집자 주 = 1996년 9월 그룹 H.O.T의 등장은 지금의 K팝 한류를 이끄는 아이돌 문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는 7일 H.O.T가 데뷔 20주년을 맞으며 아이돌사(史)도 어느덧 20년 성년으로 접어듭니다. 청소년 팬 문화에서 시작된 아이돌 문화는 그 사이 한류 수출의 첨병이자 국가 브랜드의 격을 높이는 동력으로 위상이 바뀌었습니다. 연합뉴스는 아이돌 산업의 발전과 경제적인 파급 효과, 사회적인 영향, 세대별 주역들의 소회를 네 꼭지로 나눠 살펴봅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H.O.T(에이치오티)? 이름이 그게 뭐야."1996년 8월 그룹 H.O.T의 첫 무대는 한국이동통신 주최 '삐삐 012' 콘서트의 오프닝 공연이었다. 그해 1월 서태지와아이들의 은퇴에 충격받은 청소년들은 머리에 고글을 끼고, 헐렁한 바지 차림으로 군무를 추는 이들에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해 9월 7일 MBC TV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이들이 '전사의 후예'로 정식 데뷔 무대를 선보이자 대반전이 일어났다. 한 달 만에 소속사로 팬레터가 세포대씩 배달됐고, 멤버들의 집까지 팬들이 몰려들었다. 1999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는 흰색 풍선을 흔드는 소녀들의 모습에 빗대 '백색당 전당대회'로 불렸다. H.O.T란 이름처럼 10대의 승리(High-five Of Teenagers)였고, 열광적인 팬덤을 이끈 1세대 아이돌의 탄생이었다. '아이돌 시조새'로 불리는 H.O.T가 오는 7일로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아이돌 문화가 대중과 함께한지도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지만 아이돌의 기세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빅뱅이 지난달 펼친 데뷔 10주년 콘서트에는 국내외 6만5천 관객이 몰렸다. 올해 16년 만에 재결성된 1세대 그룹 젝스키스가 이달 펼칠 공연 티켓 2만장도 진작 동났다. 아이돌 가수의 위상도 바뀌었다. 과거 10대 팬들의 전유물로 치부됐지만 2000년대 가수 육성 시스템 정착과 연예기획사의 산업화를 거치며 한류를 이끄는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로 발돋움했다. 아이돌이 주름잡은 국내 음악 산업 규모는 2005년 매출액 약 1조8천억원에서 2015년 4조8천억원(한국콘텐츠진흥원 통계)으로 10년 사이 3조원이 증가했다. 아이돌 20년사(史)의 시작점인 그룹 H.O.T [연합뉴스 자료사진] ◇ 1세대 아이돌 등장…3대 기획사 구도 H.O.T는 1989년 SM기획으로 출발해 1995년 사명을 SM엔터테인먼트로 바꾼 이수만의 첫 성공작이다. 이수만은 국내외에서 역량 있는 인재를 뽑아 춤과 노래를 트레이닝시켰고 철저한 기획 아래 팀을 꾸려 데뷔시켰다. 일본의 아이돌 그룹 문화가 먼저였지만 10대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기획 상품처럼 데뷔시키는 방식은 유례없는 시스템이었다. H.O.T의 등장은 아이돌 그룹 시대의 서막이었다. SM이 1997년 걸그룹 S.E.S를 잇달아 성공시켰고 여러 기획사가 젝스키스, 핑클, 지오디, 베이비복스, NRG 등의 그룹을 선보이며 1세대 아이돌 시장을 형성했다. H.O.T-젝스키스, S.E.S-핑클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열광적인 10대 팬덤 문화를 만들어냈고 지오디는 밀리언셀러 앨범을 내놓으며 국민 그룹으로 떠올랐다. 1996년 서태지와아이들 출신 양현석이 YG엔터테인먼트를, 박진영이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면서 SM과 함께 3대 기획사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2001년 H.O.T 마지막 공연에 모여든 팬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가수 육성 시스템 확산…신한류 이끈 2세대 아이돌 이러한 구도 아래 2003년 SM의 동방신기를 시작으로 2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했다. SM은 이후 슈퍼주니어(2005), 소녀시대(2007), 샤이니(2008), 에프엑스(2009)를, YG는 빅뱅(2006)과 투애니원(2009)을, JYP는 원더걸스(2007)와 2PM(2008)을 각각 데뷔시키며 시장을 형성했다. 특히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등장은 주류 가요계가 아이돌 시장으로 완전히 돌아서는 분기점이 됐다. 대부분의 기획사가 SM이 처음 도입한 아이돌 그룹 육성 시스템을 벤치 마킹했고 비슷한 스타일의 아이돌 그룹이 봇물처럼 쏟아졌다.그 가운데 원더걸스의 '텔 미'(2007)가 국민적인 히트를 했고, 인터넷 환경의 발전과 함께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가 'K팝'이란 이름으로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앞서 K팝이 해외로 뻗어 나가는 초석을 다진 건 SM이었다. 2000년 한국 가수 최초로 H.O.T가 중국 베이징 궁런(工人)체육관에서 1만 명 규모의 콘서트를 열었고, 중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며 한류라는 단어를 보급시켰다. 2001년 H.O.T가 해체됐으나 그해 일본에 데뷔한 보아가 2002년 현지 오리콘차트 1위에 오르며 해외 진출 성공의 아이콘이 됐다. SM은 이어 2005년 동방신기를 일본에 진출시켜 현지 해외 아티스트 중 각종 기록을 갈아엎는 성공을 거뒀다. 비는 2006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한류의 핵은 '겨울연가' 등의 드라마였다. K팝은 2000년대 후반 2세대 아이돌의 활약과 함께 한류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먼저 아시아를 아우른 K팝은 미주와 유럽, 남미, 중동 지역까지 번지며 한류 2라운드를 열었다. 2011년 SM 가수들이 파리에서 연 공연은 유럽까지 번진 K팝 열풍을 확인시켜준 계기였다. 한국어 음반으로 현지 프로모션 없이 성과를 거둔 건 유튜브, 페이스북 등 디지털 미디어의 힘과 해외 팬들의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였다. 해외 '영 제너레이션'을 흡수한 K팝 붐은 '한류=드라마', '한류팬=중장년층'이란 고정관념도 깼다. 데뷔 10주년 맞은 2세대 대표 그룹 빅뱅 [연합뉴스 자료사진] ◇ 3세대는 중국 시장 집중…인큐베이팅 시스템 수출까지 이제 K팝 가수가 일본의 오리콘, 미국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유튜브에서 1억 뷰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새롭지 않을 정도로 K팝은 세계 음악 시장에서 마니아 장르로 자리잡았다. 기획사들이 해외 시장 경쟁력을 위해 그룹에 외국인 용병 멤버를 영입하는 것도 흔한 풍경이 됐다. 중국인 멤버가 있는 엑소, 대만·일본인 멤버가 있는 트와이스 등 3세대 아이돌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3세대 아이돌이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는 시장은 중국이다. 코스닥 상장사가 된 3대 기획사와 FNC엔터테인먼트 등은 모두 중국 자본을 유치하거나 중국 인터넷 기업들과 손잡았다. 아이돌 가수 육성 시스템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로 수출하는 시대도 왔다. 중국, 베트남, 태국 등지 기획사들은 한국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도입해 자국 가수를 데뷔시켰다. 코트라(KOTRA) 콘텐츠융합팀의 이상윤 전문위원은 "보컬과 안무 등 트레이닝 시스템과 작곡, 프로듀싱 등 K팝 제작 시스템 자체까지 수출된다"며 "미국 빌보드에 K팝 차트 신설과 구글에 K팝 허브 페이지가 구축되는 등 글로벌 음악의 한 장르로 포진할 만큼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3세대 대표 그룹 엑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3세대 대표 걸그룹 트와이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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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야기> “돈·권력 아닌 ‘인간 되는 삶’이 목표 돼야”이기동 성균관대 교수가 제시하는 삶의 목표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이기동(64)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는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 역경 등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인물이다. 사서삼경 원문을 번역하고 해설을 다는 작업은 머리카락이 새까맣던 1987년에 시작해 하얗게 센 2007년에야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20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이 교수는 이후 노자와 장자, 주역 등을 연구하며 30년 이상 동양의 고전에 천착했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 철학사를 정리하는 작업에 골몰해 있다. 이 교수는 이렇듯 오랜 시간 동양 고전을 연구하며 찾아낸 삶의 본질과 진리, 참된 삶을 통한 행복의 길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기업체와 각종 단체의 강단에 서고 방송에 등장하고 있다. 그는 현대인의 불행의 원인을 물질과 자본을 향한 경쟁과 욕심에 있다고 진단한다. 또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진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년이면 교정을 떠나는 철학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봤다.-- 사서삼경 완역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되셨습니까.▲ 일본 쓰쿠바(筑波) 대학 유학 시절에 보니까 우리의 동양학에 대한 이해 수준이 일본보다 앞서는데 외국에서는 우리를 알아주지 않았어요. 외국인들은 일본 학자들이 펴낸 저서를 많이 접했지만 우리가 낸 저술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죠. 당시 우리의 저작은 외국 서적을 번역한 수준이어서 우리가 동양학의 중심이라는 것을 외국에 보여줄 수 없었죠. 우리의 정서와 사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저술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며 시작했죠. -- 우리의 정서와 사상은 어떤 것입니까.▲ 흔히 “인간 좀 돼라”는 말은 “네가 인간의 마음을 가졌느냐, 인간의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넌 짐승이야, 인간이 돼라”는 뜻이죠. 예를 들어 곰이 쑥과 마늘을 들고 동굴에 들어가서 인간의 마음을 회복해서 나온다는 신화가 있죠. 실제 곰이 인간이 된 것은 아니죠. 곰은 바로 인간의 마음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이죠. 우리의 문화는 그렇게 마음과 정신을 중요시했어요.지금 세상 사람들은 짐승이 돼 있어요. 인간미가 넘치는 우리 본래의 정서와 사상은 짐승이 돼 버린 이 세상을 구제하는 철학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 우리 영화와 드라마, 노래가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죠. 바로 인간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냄새가 나는 거죠. 한국인에게는 세상 사람을 인간으로 만드는 저력이 있습니다.예를 들어 TV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보면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눈먼 여자를 위해 눈을 주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습니다. 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아니면 그런 발상이 있을 수 없어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바로 인간적인 정서가 우리에게 내재해 있어서 그런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이기동 교수는 "지금은 마음이 차가워져 있는 겨울"이라고 말했다. 사진/임귀주 기자-- 세상 사람들이 왜 짐승이 돼 있다고 진단하십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서양의 근세 사상이죠. 자유민주주의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바탕에서 출발한 개념이에요. 잘못된 거죠. 나와 네가 남남이면 서로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경쟁 관계가 됩니다. 사랑도 그렇죠. 사랑을 소유로 인식하고 있다고 합시다. 다른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뺏기지 않기 위해 싸워야겠죠. 하지만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가 되는 거죠.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겁니다. 지금 이 세상은 약육강식에서 출발한 서구의 사상이 지배하기 때문에 경쟁하고 투쟁하는 짐승의 세상인 거죠.-- 이런 세상에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짐승이 인간이 되어야 하니까요. 지금 사람들은 자기가 짐승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어요. 논어와 맹자, 노자와 장자 등을 읽으면 “내가 잘못 살았구나, 우리가 서로를 남으로 생각했구나”를 깨닫게 되죠.공자가 살던 시대는 오늘날과 비슷합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고 첨예하게 갈등하던 시대죠. 그런 위기 상황에서라야 공자처럼 위대한 사람이 나오는 겁니다. 공자와 같은 명의(名醫)는 환자가 많을 때 나오죠. 온 세상 사람이 환자인 오늘날도 명의가 나와야겠죠. 고전은 바로 명의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고전은 어떻게 현대인을 치유하나요.▲ 흔히 말하는 소인(小人)은 짐승이에요. 목표를 달성하거나 성공해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죠. 진실하지 않으니까 착각일 뿐이죠. 인간의 목표는 인간 되는 것 이외에는 없어야 해요. 공자는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인간이 돼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거예요. 새들은 민둥산이 아니라 숲이 우거져 있는 곳으로 날아가요. 자기의 목표를 아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목표를 모르고 있거나 잘못된 목표로 나아가고 있어요. 인간이 되는 것은 진실해지는 것이고, 인간이 되기 위해 참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죠. 많은 사람이 행복이 돈이나 권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죠.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 흔히 생각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착각 속에서 잘못된 행복을 향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돈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해봅시다. 1억원을 모으면 행복할까요? 목표가 10억원으로 바뀝니다. 또 10억원에 도달하면 행복할까요? 욕심이 계속 커져서 배가 끊임없이 고파요. 욕심이 커진 만큼 불만도 커집니다. 국회의원 중 의원이 목표인 사람은 별로 없어요.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장관이나 대통령이 되려고 하죠. 국회의원이 된 사람은 일반 사람보다 행복할까요? 채워야 할 욕심이 더 커져 있으니까 불만이 더 많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제는 행복할까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더 쌓이고 불만이 많아집니다.-- 삶의 목표가 잘못돼 있다는 말씀인가요.▲ 목표가 완전히 잘못돼 있죠. 목표는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인간이 되는 참된 삶이어야 해요. 목표를 수정해야죠. 인간이 되고 나서야 정치도, 교육도, 경영도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 속에는 “이렇게 사는 것은 뭔가 아닌데”, “내가 짐승으로 살 수는 없잖아”라는 게 깔려 있어요. 저는 이런 의문과 불만에서 나오는 우리의 정서가 바로 ‘한’(恨)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태어났을 때는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혼돈의 상태이자 모두가 하나였죠. 그런데 감각 대상을 인식하면서 나와 남을 구별하게 돼요. 경쟁적이 되죠. 지금 우리는 본래 하나였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경쟁하지 않은 본래의 하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있죠. 나와 네가 하나이고 바로 인간은 하늘 같은 존재라는 뜻이죠. 모두가 하늘 같은 존재인데 현실에서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잖아요. ‘한’은 하늘 같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정서에요.부부 관계도 그렇습니다. 남편은 왕자고, 부인은 공주여야 하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거죠. 예전에는 부부가 서로에게 존댓말을 썼어요. 그러다가 남편이 하대하고 이제는 서로 하대를 하고 있죠. 서로 무시하는 관계가 된 거죠. 대접을 받지 못하니까 불만이 커지고 쉽게 싸우게 되고, 결국 헤어지는 거죠.본래 하나였던 하늘 같은 인간의 모습을 회복해야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바로 요즘 인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표출되는 거예요. 인문학을 접하고 공부하면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고 행복으로 이끄는 거죠. 행복의 길은 고전 속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기동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본래 모습을 회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래요. 서양적인 사고와 체계에서 살면서 기회가 없어져 버린 거죠. 지금 학교 교육도 서양식이죠. 옛날 퇴계 이황 선생님이 했던 것처럼 인간 만드는 공장을 만들어야죠. 사람을 모아서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거죠. 몸이 까맣게 됐으면 닦아서 하얗게 만드는 실질적인 과정을 거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야죠.지금까지 사람들은 마라톤 선수처럼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있어요. 과연 이렇게 살아도 좋은지 자기를 돌아볼 때가 된 거죠. 인생을 행복하게 마치기 위해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크게 후회하고, 돌이킬 수도 없죠. 사람들은 열심히 경쟁하며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판에 박힌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게 행복하면 상관없는데, 그건 행복이 아니거든요. -- 행복의 길을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사서삼경 같은 고전을 공부해야죠. 그동안은 서양을 따라가느라 너무 바빠서 먹히지 않았어요. 서양인도 서양의 방식으로 가보니까 그게 아니고,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요즘 서양인들이 동양철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입니다. 내년에 대학을 은퇴하고 나면 미국에 가서 서양인이 동양학적인 삶을 살 수 있게 고전을 우리식으로 영어로 번역하고 또 가르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행복한 사람이라야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행복 경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자로는 한국인을 당할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오천 년간 우리의 유전자는 인간이 되는 길을 꾸준히 걸어왔고, 그것은 우리에게 면면히 남아 있습니다. 곰이 인간이 되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어요. 인간이 되면 인간의 경영을 할 수 있는 거죠. 경주 최부잣집의 사례를 보면 최부자는 “흉년에 땅을 사지 말라”고 해요. 땅을 파는 사람의 억울한 원한이 있으니까 헐값에 사지 말라는 거죠. 자본주의 경제학의 시각으로 보면 말이 되지 않는 거죠. 최대한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죠. 행복경영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하나가 되는 마음 상태로 경영을 하는 거예요. 돈이 목표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게 장사하면 돈은 따라오는 거죠. 그런 마음이 우리나라 대기업에도 있었으면 해요. 이윤 추구만을 목표로 하면 결국 망하게 됩니다. -- 현대사회에서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바뀌어야 하는데 너무 안타깝죠. 인간을 만드는 교육은 효과가 늦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인성교육도 단기간에 하려고 하죠. TV 프로그램은 시청률 경쟁을 하고, 정치인은 지지율에 목을 매요. 모두가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거죠. 작물에 농약을 치는 것보다 뿌리를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 더 길게 갈 수 있는데 그런 인식이 없는 거죠. 행복경영 철학에 바탕을 두고 기업을 운영하면 변질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어요.예를 들어 ‘안토니 제화’라는 국내 신발 3대 메이커가 있어요. 사장은 집도 없이 전세로 사는데 사원들이 여자 친구 만날 때 이용하라고 벤츠를 샀어요. 또 말이나 요트를 사서 사원들이 여가에 사용하도록 해요. 거길 보면 사원들의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여요. 그 마음이 계속 유지된다면 엄청나게 성공할 거예요. -- 수많은 갈등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면.▲ 우리가 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죠. 내가 소유한 것을 움켜쥘 것이 아니라 공유해야죠. 어떤 부자가 있는데 별장을 지어서 누구나 와서 휴가를 즐기게 해요. 그러면 그 사람이 돈을 벌면 박수를 치고, 오히려 돈을 벌지 못할까 봐 걱정하겠죠. 부유함과 가난함이라는 것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요. 지금과 같은 경쟁 체제 속에서는 해결책이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돈에 얽매이지 않을 텐데요.-- 정치는 바로 잡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였다는 것을 망각하면 서로 투쟁하고 경쟁을 하게 되죠. 정치는 바로 그 망각을 바로잡는 거예요. 서구적인 시각에서 보면 정치인이 분열돼 경쟁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에요. 하지만 동양적인 시각에서는 비정상이죠. 지금 우리는 서양의 것을 배워서 서양적으로 사고를 해요. 정치는 잘못된 것을 제대로 돌려놓는 것인데 정치가 역할을 못 하고 있죠.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소인이 아닌 바른 사람, 바로 군자(君子)가 출마해야 하죠. 서구적인 정치 제도와 방식은 옳지 않아요. 사람들이 지금의 정치를 쉽게 따를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죠. 서구적인 것이 한계에 도달한 겁니다.--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가 가능할까요.▲ 잘못된 삶의 방식이 벽에 부딪히고 한계가 오면 그때 정신을 차리겠죠. 가을에는 날마다 기온이 내려간다고 생각하는데 한없이 내려가진 않죠. 언젠가는 봄이 와요. 사계절의 변화처럼 잘못된 방식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은 차가운 겨울입니다. 물질과 자본을 위한 무한경쟁으로 마음이 얼어붙어 있죠. 로마시대 초기를 보면 격투장에서 검투사들이 검투사끼리, 또는 사자하고 싸우며 피를 흘립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열광하죠. 오늘날도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보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녹이고 바꿔놓았듯이 우리 세상도 그렇게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선출된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명심해야 할 말이 있다면요.▲ 목표를 당선에 두지 말고, 표만 생각하지 말고, 어떤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어떤 것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했으면 합니다. 목표를 옳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두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정치인을 보면 그런 정신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각성해야죠. 표는 바람직한 길을 가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지향해야 할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성공의 비결은 서구화였죠. 하지만 이제 성공의 비결은 우리나라에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전통 속에서,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미래를 찾아야죠. 정치는 세종대왕처럼 하고, 경영은 경주 최부자처럼 하고, 교육은 퇴계 선생처럼 해야죠. 앞으로는 서양화가 덜 된, 오염이 덜된 한국인이 일을 만들어 낼 겁니다. 이기동 교수는 "서로를 존중하고 내가 소유한 것을 움켜질 것이 아니라 남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임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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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뒤에는 언제나 송혜교"…'태후'로 또다시 존재감 과시특급 한류스타지만 조용한 행보…"아무 광고나 하지 않는다"'방부제 미모'에 코미디와 멜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매력 독보적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송혜교가 있었기에 송중기도 있었다."방송 관계자들이 이견 없이 하는 말이다. 송중기가 새롭게 떠오른 태양이라면, 송혜교는 16년째 지지 않는 태양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KBS 2TV '태양의 후예'가 원조 한류스타 송혜교(34)의 위상과 영향력을 새삼 확인시키며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14일 종영하는 이 드라마는 남은 2회에서 '멜로의 여왕' 송혜교의 저력을 집중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이를 통해 지금의 '송중기 신드롬' 뒤에 자리한 강력한 배후세력이 바로 송혜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게 된다. ◇ "한류 뒤에는 언제나 송혜교"송혜교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6년 전인 지난 2000년 '가을동화'를 통해 일찌감치 한류스타가 됐다. 당시 열여덟 살의 송혜교는 꽃보다 예뻤고, 그의 청순하고 순정한 매력은 '겨울연가' 보다 2년 먼저 '가을동화'를 한류 드라마로 만들었다. 그는 송승헌, 원빈과의 삼각관계에서 매 장면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시작된 이 한류스타의 행보는 2003년 '올인'을 통해 또다시 아시아를 뒤흔든다. 이병헌과 그린 멜로에 한국은 물론, 일본 팬들이 쓰러졌다. '올인'은 50%에 살짝 못 미치는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송혜교는 다시 1년 뒤인 2004년 비와 호흡을 맞춘 '풀하우스'로 '가을동화'를 가볍게 뛰어넘는 인기를 누렸다. '풀하우스'는 지금도 중화권에서 송혜교를 설명하는 대명사다. 상당수의 한류스타가 한개 이상의 대표작을 만들지 못하는 것과 달리, 송혜교는 이미 스물두 살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작품 세 개를 거느렸고 이를 바탕으로 왕자웨이(王家衛·왕가위) 감독, 우위썬(吳宇森·오우삼) 감독 등과 작업하며 중국 주류 영화계에 진입했다. 이후 선보인 '그들이 사는 세상'(2008),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도 송혜교의 이름값으로 해외에 수출됐고, 이어 2016년 '태양의 후예'로 그는 또다시 '왜 송혜교이어야 하는지'를 세상에 알렸다.실제로 '태양의 후예' 제작진은 남자 주인공을 캐스팅하기 전에 여주인공으로 송혜교를 먼저 잡기 위해 공을 들였다. 한중 동시 방송을 준비하던 '태양의 후예'로서는 중화권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송혜교를 잡는 게 급선무 중의 급선무였다. 2014년 세금 누락 스캔들에 휩싸여 홍역을 치렀던 송혜교는 국내 작품 출연을 좀더 뒤로 미룰 생각이었으나 제작진은 "송혜교가 아니면 안된다"고 적극적으로 매달렸고 결국 그를 잡는 데 성공했다. ◇ 상대역이 누구든 최상의 하모니 연출…'송중기 신드롬' 견인'태양의 후예'의 최대 수혜자는 물론 송중기이지만,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는 특급 스타로서의 존재감과 생명력을 연장시키고 과시한 송혜교야말로 진정한 승자라고 해석한다.만약 송중기의 상대역이 다른 여배우였다면 '태양의 후예'는 지금과 같은 폭풍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실제로 송중기가 지금까지 호흡을 맞춘 모든 여배우와 환상의 케미를 보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송혜교는 백전백승이다. 데뷔 이래 지난 20년 어떤 남자 배우와도 최상의 케미를 연출해냈고, 이번에도 역시나 '유시진'으로 분한 송중기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유시진이 한눈에 반하고, 계속해서 '사랑하자'고 달려드는 강모연은 송혜교가 연기했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송혜교는 코미디와 멜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이제는 사랑을 알고도 남는 서른넷 '방부제 미모' 여배우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총알을 몸으로 막아서는 사람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맞나…하는 생각"이라며 눈시울을 붉힐 때,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죽어요", "당신을 감당해 보겠다고요"라며 강단있게 나설 때 송혜교는 수심이 깊은 호수였다. 그러다가 "당신의 이상형? 미인형? 인형?"이라며 애교를 떨거나, "치맥? 좋아요!"라며 방방 뛰거나, "열이 좀 있나봐요. 앗 뜨거! 걱정하시겠다", "윤기 오빠 목소리나 들어봐야겠다"며 여우짓을 할 때 송혜교는 걸스데이 뺨치게 깜찍했다. 세살 연하 송중기와의 애교어린 투샷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분명 '가을동화'나 '올인'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송혜교가 강산이 한번 변하는 동안 외모는 그대로 붙들어둔 채, 연기력에서는 한껏 원숙해진 면모를 과시하며 '태양의 후예'를 빛나게 한 것이다. ◇ 특급 한류스타다운 중량감 있는 행보 그런 송혜교가 지난 11일 특급 한류스타다운 중량감을 과시해 새삼 화제가 됐다. 그가 '전범기업'이라는 이유로 일본 미쓰비씨자동차의 중국 광고모델을 얼마전 거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멋지다"며 일제히 칭찬했다. 특히 '태양의 후예' 속 대사를 이용해 "마음도 이쁜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류스타들과 달리 해외 광고 활동에 대해서는 일체 홍보를 하지 않아 해외에서 송혜교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어려웠지만, 송혜교는 10여년 전부터 특급 한류스타 대우를 받았고 지금까지 그 위상은 변하지 않았다. 광고 모델료가 이미 최상급이라는 얘기다.또 이미 품목별로 대부분 광고를 다 하고 있어 '태양의 후예'가 대박이 났다고 송혜교의 해외 광고 물량이 별반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광고업계의 설명이다. 송혜교는 특히 광고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미쓰비씨자동차에 앞서 일본 메이저 대부업체도 그에게 거액의 개런티를 제시하며 광고모델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또 과거 스타들의 아파트 광고 모델료가 너무 높은 데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바로 재계약을 거부하고 이후 아파트는 물론이고 건설 광고 자체를 찍지 않고 있다. 반면, 그는 소리소문없이 각종 기부 활동을 통해 한류스타의 몫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특히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와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 열의를 보이고 있다. 송혜교의 소속사 UAA는 "앞으로도 받은 사랑에 보답하며 배우로서 성실하게 활동하고 싶은 게 우리의 바람"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