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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는 일은 안 하고 허튼짓'…조직 먹칠하는 공무원 범죄술 취해 난동·예산 횡령·도박·후배 성희롱 등 가지가지처벌은 솜방망이…"조직 내 책임 묻는 풍토 조성해야" 좋은 직장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세 가지가 꼽힌다. 고용 안정성, 평균적인 월급, 비교적 적은 노동시간.이 조건을 두루두루 갖췄다고 평가받는 공직사회가 일부 공무원의 범죄로 얼룩지고 있다. 공무원 뇌물 CG [연합뉴스 자료]범죄 유형은 만취 난동, 도박, 몰래카메라 설치, 보조금·예산 횡령, 뇌물수수 등을 망라했다. ◇ "공복 맞나?"…술 취해 난동·도박에 후배 희롱까지 경남 창원중부경찰서는 지난달 술 취해 구급대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을 휘두른 혐의(공무집행방해)로 공무원 A(5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A씨는 지난 5월 8일 오후 10시 5분께 창원시 의창구 도로에서 자신을 구급차에 태우려던 구급대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술에 취해 길 위에 쓰러져 있다가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이었다.한 김해시 공무원은 지난달 3일 여성화장실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가 덜미를 잡혔다.전북경찰청은 귀농·귀촌 보조금으로 자신의 집을 수리한 혐의(사기)로 고창군청 B(58) 과장을 불구속 입건하고 이달 초 기소의견을 검찰에 송치했다. B 과장은 2014년 6월 귀농·귀촌 지원금 1천만원을 받아 아내 명의의 집을 수리하고 거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대전 둔산경찰서는 후배 여성 공무원에게 성적 수치심이 드는 시를 보내 성희롱한 혐의로 대전시 6급 공무원을 이달 초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전북 완주군청 6급 공무원은 회식비와 목욕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뇌물 2천100여만원을 받고 공문서를 조작했다가 징역 1년 6개월, 벌금 4천500만원을 선고받았다.지난 15일에는 인천시 서구 심곡동 한 식당에서 서구청 문화관광체육과 건설과 6급 공무원 2명 등 3명이 속칭 '고스톱' 도박을 하다가 행정자치부 암행감찰반에 적발되기도 했다. 공무원 증원 CG [연합뉴스 자료]◇ "그들에겐 법은 멀었고 돈은 가까워"비리 공무원들에겐 법은 멀었고 돈은 가까웠다.골재채취업체로부터 뒷돈을 챙긴 의혹을 받는 전북 익산시청 한 국장은 현재 불구속 입건 상태에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는 업체에 내려진 채석중지명령을 지난 1월 풀어주고 1천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지난달 말 가축분뇨 공동자원화시설 보조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뇌물수수 등)로 농림축산식품부 고위 공무원 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충남 아산지역 가축분뇨사업과 관련해 적정성 여부를 비롯해 인허가 과정에서 1억여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는 최근 도박 빚을 갚으려고 수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상 국고 등 손실 등)로 기소된 충남 모 자치단체 공무원 C(34)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추징금 3억5천400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회계업무자인 C씨는 지난해 40여차례에 걸쳐 납품업체에 예산을 허위·초과·이중 지급하거나 법인카드를 허위지출하는 수법으로 예산 3억5천400여만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지난 4월에는 청주시청 7급 공무원(49)이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등 돈과 관련한 공직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인사혁신처는 지난 4월 9급 공무원부터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전체 공무원의 세전 월 평균소득이 510만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공무원 박봉론'이 국민 일반의 대체적인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는 통계로 해석된다. 공무원 시험 열풍 CG [연합뉴스 자료]◇ "우리끼리 왜?" 솜방망이 처벌…"모범 보이고 책임 묻는 풍토 조성해야"이처럼 공무원 범죄가 근절되는 않는 이유로 경직된 공직사회의 풍토와 느슨한 징계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11∼2015년 지방공무원 1만2천376명이 각종 비위로 징계를 받았다.품위 손상(60.3%)이 가장 많았고, 직무태만, 복무규정 위반, 금품수수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도 공직사회에 만연한 제 식구 감싸기 풍토 탓에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로 그쳤다.파면·해임·강등·정직 등 중징계 처분을 받은 공무원은 2천59명(16.6%)에 불과했다.감사원이 지난 5년간 징계를 요구한 4건 가운데 1건은 소속 부처에서 감경됐다.감사원이 파면·해임·강등 등 중징계를 요구한 429건 중 110건이 한 단계 이상 낮은 수준의 징계로 처리된 것이다.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공무원들에게 일반인 이상의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공직비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실망감은 더욱 크다"며 "비리, 횡령 등의 범죄는 목전의 이익과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 반복하는 만큼 내부 자정능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이창엽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공직비리를 근절하려면 공무원들의 자질과 소양에 대한 끊임없는 재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들이 국민과 주민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공직사회에 일탈을 묵인하고 일벌백계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하다"며 "징계를 받더라도 소송 등을 거치면 감경해주는 등의 분위기를 깨고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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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입문 32년만에 대통령상…'남도민요' 지킴이 손양희"경기민요는 양은냄비, 남도민요는 가마솥 같다"…恨 토해낸 7전8기, 창원서 국악예술단 이끌어 신동이라 불렸던 소녀는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야 그토록 갈망하던 상패를 가슴에 품었다. 남도민요를 열창 중인 손양희씨 [손양희씨 제공=연합뉴스] 경남도 판소리보존회 회장인 국악인 손양희(49)씨는 최근 '제28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인 종합대상을 받았다.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 후보이기도 한 그는 이날도 내륙도시 대구에서 수궁가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지성이면 감천일까. 7전 8기. 8번의 도전 끝에 찾아온 귀중한 결실이었다. 판소리 대통령상 수상은 경남 국악인으론 최초라 더 뜻깊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과 판소리에 대한 열정을 높이 평가받아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살았다. 그렇다고 평생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 손 씨가 국악 세계에 발을 딛게 된 것은 10살 무렵이었다. TV에서 나오는 국악방송을 보며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판소리 흉내를 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국무용을 따라 하기도 했다.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여자가 시집만 잘 가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여자도 자기 일을 하며 주도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피아노와 한국무용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더 마음이 쏠린 한국무용을 택했어요." '천부적 소질이 있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한국무용에 두각을 드러낸 그였다. 우리나라 최고 무용가가 꿈이었던 그에게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시련이 닥쳤다. 일찍 남편을 보낸 뒤 홀로 세 자녀를 부양하던 어머니가 사업이 어려워지며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무용은 커녕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이렇게 살 순 없다'는 생각에 수면제를 한 움큼 삼키기도 했다. 가난과 절망에서 손 씨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어머니의 등'이었다. 언젠가 무심코 바라본 어머니의 등에서 세 자녀를 부양하는 가장의 책임감과 외로움을 읽고 온종일 울었던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평생 우리 뒷바라지를 했으니 이제는 내 차례다'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이제는 놓았다고 생각한 국악인의 꿈도 다시 가슴에 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무료 강습소를 찾아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어디 하소연하지도 못한 채 응어리진 한을 판소리로 토해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주말엔 꾸준히 레슨을 받고 주중엔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던 손 씨는 1995년 인생의 반환점을 맞게 됐다. '제6회 대구 전국국악제' 판소리 부문에서 금상을 받은 것이다. 인터뷰하는 국악인 손양희(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국악인 손양희씨가 경남 창원시의 손양희 국악예술단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5.28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중요무형문화재 안비취 명창이 '키워줄 테니 같이 서울로 가자'고 청했다. 그런데 손 씨는 당돌하게도 '난 선생님과 달리 경기민요가 아닌 남도민요를 하고 싶다'며 거절했다. "비유하자면 경기민요는 양은냄비와 같아요. 금방 끓어오르는 양은냄비처럼 경쾌하고 신명 나죠. 반면 남도민요는 가마솥과 같아요. 은근하면서도 묵직하게 달궈지는 게 여운이 오래 가죠. 저는 경기민요보다 남도민요를 배우고 싶었어요. 경기민요 명인인 안비취 선생님의 권유도 그래서 거절했고요." 그의 기억은 이어진다. "당시 안비취 선생님 옆에서 같은 심사위원 자격으로 앉아 있던, '제비 몰러 나간다'로 유명한 박동진 명창이 이 모습을 보고 껄껄 웃더라고요. 안비취 선생님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죠." 이후 창원에서 생활하며 남도민요를 갈고닦은 손 씨는 각종 전국 국악대회에서 연달아 수상하며 착실히 경력을 쌓아 나갔다. 2005년 '제16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는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1995년 수상을 계기로 다니던 공기업에 사표를 내고 창원에 문을 연 개인 교습소는 어느새 단원 30여명 규모의 '국악예술단'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계도 느꼈다. 경력이 쌓일수록 판소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었으나 지금까지 받은 상으로는 힘이 달릴 때가 많았다. 국악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인 '대통령상'을 받고 더 나아가 무형문화재가 되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도 이 무렵이다. 2004년부터 대통령상 대회를 준비한 그는 서울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 보성 소리축제 등에 총 7번 관련 대회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대통령상을 받은 대구 대회는 몸이 안 좋아 '무대에 오르는 것에 의의를 두자'는 마음으로 갔어요. 그런데 예지몽이었는지 대회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꿈에 나와 제 손을 잡고 다른 정치인들과 함께 제집에 들어오셨죠. 공연할 때는 모든 걸 내려두고 편한 마음으로 했는데 덕분에 더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손 씨의 다음 목표는 남도민요로 무형문화재가 된 뒤 경남에 시립·도립 국악단을 만들고 국립대학교에 국악학과를 설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다. "판소리는 몸으로 하는 연주라 할 수 있습니다. 몸에서 만물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죠. 흔히 말하는 '득음'의 경지도 극한의 고비를 수차례 넘기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인고의 세월을 버텨 득음해야 비로소 몸에서 만물의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한바탕 소리'를 다 해내는 그런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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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약자들> 한달간 밤새 124만원…50대 대리기사의 추운 연말경기 침체, 청탁금지법, 최순실 게이트 3중고에…손님 줄고 기사는 급증교사 시절 회계부정 따지다 쫓겨나, 그리고 이혼 "떠난 가족 항상 그리워" 세상 모두가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찾아 행복의 조각을 맞추는 연말. 추운 밤 기운을 이겨내며 콜 기다리는 김씨대리기사 김씨(사진 왼쪽)가 콜을 기다리며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대기하고 있다. 2016.12.24 (창원 = 박정헌 기자)창원에서 7년째 전업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57)씨는 그러나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둑어둑해진 오후 7∼8시쯤, 남들이 퇴근할 무렵 집을 나선다. '출근'하는 것이지만 갈 곳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집 인근 편의점까지 걸어간 뒤 야외테이블에 걸터앉아 '콜'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전부다. 보통 윗옷은 5겹, 하의는 3겹 정도 껴입지만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 날씨는 견뎌낼 재간이 없다.대기시간이 길어지면 편의점에 들어가 따뜻한 캔커피 한 잔을 사 마시며 기다린다. 편의점 직원이 눈치라도 주면 다시 밖으로 나와 쌀쌀한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하루평균 그가 소화하는 콜은 5건. 4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기 침체, 청탁금지법에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정국 혼란까지 겹쳐 '3중고'로 연말 술자리가 확 줄어든 탓이다.수요는 줄었는데, 공급은 되려 늘었다. 최근 대리기사가 부쩍 많아져 이 바닥은 이미 포화를 넘어선 상태다. 예전에는 창원 마산역 인근에 대리기사들이 모이는 장소가 2∼3곳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어림잡아 10곳은 된다.경쟁이 심하니 별수 없이 거리가 먼 콜이라도 잡아야 한다. 너무 멀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버스비는 1천250원, 택시비는 평균 4천원 정도 든다. 1만원짜리 콜일 경우 콜 업체 수수료로 3천원을 뗀다. 택시라도 잡아타면 실제 김씨 손에 떨어지는 수입은 3천원 남짓인 셈이다. 콜 기다리는 김씨의 휴대전화. 2016.12.24 (창원 = 박정헌 기자)일과는 다음 날 새벽 3시쯤 되면 얼추 끝난다. 김씨는 11월 한 달 간 133시간 30분 일하며 총 123건의 콜을 소화했다. 총 주행거리는 1천327㎞, 운전시간은 1천654분이었다.휴일도 없이 30일을 꼬박 일한 그의 손에 떨어진 돈은 124만원에 불과했다.그나마 밤낮이 바뀐 고된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손님이다.평소 대화할 사람이 많지 않은 그에게 손님과 나누는 대화는 크나큰 위안이다. 그래도 일과를 마치고 냉기 가득한 자신의 방으로 들어올 때면 공허함을 떨치기 힘들다. 오후 늦게 잠에서 깬 뒤 문득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혼자라는 사실이 질릴 만큼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외로움마저 내쫓을 수는 없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운전하다가 화려하게 꾸며진 크리스마스트리나 불이 환하게 밝혀진 백화점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다. 구경할 여유가 없어 대부분 그냥 지나치지만 저에겐 그게 일종의 문화생활입니다. 그 순간 만큼은 부자와 빈자가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열린 공간에 전시된 예쁜 트리를 보면서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는 것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으니까요"그는 현재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33㎡(10평) 남짓한 쪽방에서 매월 17만원을 주고 산다. 방에는 TV가 없다. 집안 가전제품이라 해봐야 몇 년 간 써본 적 없는 세탁기와 냉장고가 전부다. 빨래는 손으로 해결하고 끼니는 대부분 컵라면 하나로 때우기 일쑤다. 방은 난방이 안 돼 잠을 잘 때도 두꺼운 옷을 껴입어야 한다. 바닥에 깔아놓은 전기방석이 그가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온기다. 따뜻한 커피 한모금에 몸을 녹이고…대리기사 김씨(사진 왼쪽)가 콜을 기다리며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대기하고 있다. 2016.12.24 (창원 = 박정헌 기자)생계가 처음부터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김씨는 과거 창원의 한 중소기업에서 이사까지 지낸 뒤 한 사립고등학교에 교사로 들어가 정치·경제를 가르쳤다.아내와 슬하에 아들, 딸을 두고 건실한 가장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1998년 즈음 이 학교의 회계부정에 올곧은 목소리를 내다가 쫓겨나고 말았다. 이때 아내와 이혼까지 겹치며 그의 가정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한번 깨진 행복은 다시 쉽게 맞춰지지 않았다.이후 한 기업체의 관리부장직을 얻어 근무했으나 이곳마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만두게 됐다.그 사이 아내는 물론 아들, 딸과도 관계가 소원해졌다.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아들, 딸에게 전화를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이 큰 까닭인지 받지 않을 때가 많다. 5년 전까진 간간이 왕래도 했으나 지금은 얼굴을 보기는커녕 어디 사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김씨는 그렇게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홀로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손안의 모래처럼 흘러나간 이 세월은 대출잔액 200만원만 남겼다.작년 일하던 중 넘어지면서 무릎과 복숭아뼈가 부러져 금융권으로부터 생활비 대출을 받아 생긴 빚 잔금이다. 추운 밤 기운을 이겨내며 콜 기다리는 김씨대리기사 김씨가 콜을 기다리며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대기하고 있다. 2016.12.24 (창원 = 박정헌 기자)그런 김씨의 새해 소망은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한번이라도 보내는 것이다.하루하루 근근이 먹고사느라 연말·연초 기분을 내기 힘들지만 가족을 향한 그리움만은 한순간도 놓아지지 않는다.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가족끼리 모여 화목하게 지내고 싶어요. 가족이 떠나면서 행복도 같이 떠나버린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혼자라는 사실을 견디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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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봄 찾아 떠나는 창원 '저도 순례길'(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힐링' 열풍과 함께 국내에서 우후죽순 생겨난 각종 둘레길의 원형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찾을 수 있다.프랑스의 생 장 피드포르에서 출발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총 800㎞에 달하는 이 길은 매년 10만여명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관광명소다.그러나 '힐링'의 대명사로 꼽히는 오늘날 둘레길과 다르게 이 순례길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한 이유는 영적·정서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이 순례길을 성지로 선포하면서 이곳을 걷는 사람에게 죄를 없애준다는 칙령도 함께 발표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사람들은 길을 가도, 산을 찾아도 소원이 이뤄진다거나 무엇엔가 영험이 있다고 하면 어딘가 의지하고 싶은 여린 마음에, 유명 장소에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앞다퉈 찾게 된다. 창원시로 통합된 옛 마산 외곽에 있는 저도 연륙교가 그런 장소 중의 하나다. ◇ 사랑이 맺어지는 다리, 저도연륙교'콰이강의 다리'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저도연륙교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렇듯 소원을 이뤄주는 다리로도 유명하다.저도 입구에 있는 이 다리는 마산합포구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길이 170m, 너비 3m, 높이 13.5m이다. '남녀가 손을 잡고 끝까지 건너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다리 난간에는 연인들의 사랑 확인용 자물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저도 연륙교는 2개의 다리로 이뤄졌다. 하얀색 다리는 자동차 전용이며 빨간색 철골 다리는 보행자 전용이다.이 중 빨간 다리는 태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온 다리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 이런 별명이 붙었다.아치형의 곡선미를 강조하고자 광케이블 조명을 설치해 밤이 되면 시간별, 계절별로 여러 가지 색이 어우러진 야경을 뽐내기도 한다. 이 모습이 특히 아름다워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호수처럼 잔잔한 저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드라이브를 하거나 물씬 풍기는 갯내음을 만끽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 쪽빛 바다에서 밀려오는 봄기운…저도 비치로드 저도 연륙교를 건너며 사랑을 성취했다면 이어진 저도 비치로드(Beach Road)를 거닐며 쪽빛 바다에서 밀려오는 봄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다.저도 연륙교를 지나 섬으로 약 1㎞를 따라가면 찻길이 끝나는데 이 지점부터 비치로드다.비치로드는 구산면 일대의 수려한 경관과 어우러져 완만하게 걷는 하이킹 코스로 해안선을 따라 기다랗게 펼쳐진 남해안의 빼어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전국의 이름난 둘레길에 비하면 특별한 명소나 이야깃거리랄 게 없어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그러나 모든 잡념을 내려놓고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내민 분홍빛 진달래와 붉은 동백꽃이 반겨준다.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높낮이가 심하지 않지만 중간에 제법 땀 흘려 올라야 하는 코스도 있으니 물을 넉넉하게 준비하는 게 좋다.걷는 게 지치면 바다에 맞닿아 있는 전망대에 털썩 주저앉아 바닷바람이 몸에 흠뻑 벨만큼 쉬어도 좋다.총 거리는 6.6㎞로 긴 거리가 부담된다면 3.7㎞짜리 단거리 코스를 밟을 수도 있다.3.7㎞ 코스는 주차장에서 출발해(1.5㎞, 25분) 제1전망대(0.8㎞, 15분), 제2전망대(0.3㎞, 10분), 사각정자(0.3㎞, 10분), 코스 분기점(0.2㎞, 5분), 코스 합류점(0.6㎞, 15분), 하포길로 이어진다.완주 코스 6.6㎞는 주차장에서 출발해 코스 분기점까지 가는 것은 단거리 코스와 같으나 이후 갈라져 바다 구경길(0.35㎞, 30분), 정상 가는 길(1.25㎞, 25분), 코스 합류점(0.6㎞, 15분), 하포길로 마무리된다.마산역에서 약 30km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 가야시대로 시간여행을…'해양드라마세트장'돌아오는 길에 인근 해양드라마세트장을 들르면 '저도 순례'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저도에서 9.9㎞ 거리에 있는 마산합포구 구산면 일대 4만3천500여㎡ 부지에 조성됐으며 6개 구역으로 나뉘어 건축물 25채, 선박 3척이 들어서 있다. 또 영화·드라마 촬영에 사용된 가야시대 야철장과 선착장, 저잣거리, 각종 무기류, 생활용품 등 다양한 소품도 관람할 수 있다.2011년 개장 이후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모두 34편의 작품이 촬영됐다.원래 드라마 '김수로'의 세트장으로 지어졌으나 드라마 인기가 높아지자 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들자는 계획이 나와 지금의 모습이 됐다.최근에는 '화랑 더 비기닝'이란 드라마가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을 하기도 했다.들어가는 입구에는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나 드라마의 포스터가 가지런히 전시돼 있어 친숙한 느낌을 준다.이곳 건축물과 선박 등은 가야시대 풍으로 이곳에서 촬영된 작품들도 대부분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세트장을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면 해양드라마세트장이라는 특색을 살린 선착장과 나루터가 눈에 밟힌다.탁 트인 바다 위에 떠 있는 가야 범선 세 척을 나루터에 서서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이처럼 저도 인근을 한번 둘러보는 '저도 순례길'에서 바다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산티아고 순례길의 키워드가 '땅'이라면, 저도 여행의 키워드는 '바다'인 셈이다.푸른 바다를 굽어보며 걷다 보면 싱그러운 봄날과 한담이라도 나누듯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