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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원 여름 발굴캠프 진행2022 실습 현장(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경주 쪽샘) (국민문화신문) 유한나 기자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원장 김연수)은 6월 21일부터 7월 7일까지 3주간 전국 23개 대학의 참가자 50명을 대상으로 여름 발굴캠프를 운영하기로 하고, 6월 21일 오후 2시 KT대전인재개발원(대전시 서구)에서 입교식을 개최한다. 여름 발굴캠프는 문화재청 「매장문화재 제도개선」의 하나로 현행 대학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고고학 현장실습 기회가 부족한 점을 고려하여 202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원이 한국고고학회(회장 김길식)와 공동으로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올해 세 번째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는 전국 고고학 관련학과 대학생 3·4학년 97명이 지원하였으며 한국고고학회의 심사를 거쳐 참가자 50명을 선발하였다. 첫째 주는 공통 교육 과정으로 ▲ 매장문화재 제도의 이해, ▲ 발굴보고서 작성의 이해, ▲ 수중고고학의 이해, ▲ 발굴현장 출토 인골·미라 등 연구·조사, ▲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이해와 활용, ▲ 고고자료 분석을 위한 GIS 활용, ▲ 동물 및 목제유물 관련 고환경 분석, ▲ 발굴현장 안전 관리, ▲ 명사 특강, ▲ 진로 교육 등의 이론 교육을 진행한다. 둘째 주와 셋째 주는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지역별 중요 유적 발굴현장에서 실습 교육을 진행한다. 지역별 중요 유적은 ▲ 경주 월성과 쪽샘 유적, ▲ 부여 왕릉원과 부소산성, 관북리 유적, ▲ 김해 봉황동 유적과 함안 가야리 유적, ▲ 나주 복암리 유적과 함평 마산리 표산고분군, ▲ 충주 칠금동 제철 유적, ▲ 서울 풍납토성, ▲ 완주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 등 총 12곳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앞으로도 한국고고학회와 긴밀하게 협력하여 전문성을 갖춘 문화유산 조사연구 인력을 배출할 수 있도록 여름 발굴캠프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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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 새긴 기념메달‧신라 금관 새긴 카드형 금 4일 출시(국민문화신문) 김유경 기자 =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천마총 발굴 50년을 맞아 한국조폐공사(사장 반장식)와 협업하여 천마총을 주제로 한 2종의 기념 상품을 제작하고, 5월 4일부터 한국조폐공사쇼핑몰에서 공개 ‧ 판매한다. 신라 문화의 상징인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하고, 신라문화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작됐으며, 출시일인 4일은 문화유산 발굴현장에서의 성과와 발전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다짐하는 ‘1973, 천마를 깨우다’ 비전선포식(경주 대릉원) 행사날과 맞췄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를 주제로 한 지폐형 기념메달의 경우 앞면에는 천마도, 뒷면에는 금제관모를 선화(선으로 그린 그림)로 그렸으며, 고도화된 금형기술로 천마의 역동적인 모습과 관모의 섬세함을 표현하였다. 금메달 200장(20g), 은메달 2,000장(10g)으로 총 2,200장 선착순 한정 판매하며, 하반기에는 금제관모를 주제로 2차 기념메달도 출시할 예정이다. 지폐형 기념메달 외에 카드형 금도 출시됐다. 천마총 출토 신라 금관을 주제로, 위변조 방지를 위한 특허기술이 적용되었으며 3가지 크기(3.75g, 11.25g, 37.5g)로 한정수량 없이 상시 판매한다. 기념 메달 구매와 자세한 정보 확인은 5월 4일부터 한국조폐공사쇼핑몰(www.koreamint.com)에서 가능하다. 문화재청은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천마총 발굴 50년 기념사업이 대한민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K-관광’과 연계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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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나성의 축조방식 파악 가능한 중요자료 확보부여 북나성 조사구역 전경(남→북). 사진 : 문화재청 (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 =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부여군(군수 박정현)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부여 나성(북나성) 발굴조사에서 나성 성벽의 축성공법을 확인하고 1월 4일 오후 2시에 발굴현장을 공개한다. 발굴현장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432-3번지 일원 / 조사기관 : (재)백제역사문화연구원 부여 나성은 사비도성 북쪽과 동쪽의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부여 시가지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길이 6.6㎞의 성곽이다. 지난 2003년부터 올해까지 체계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성벽, 치, 문지, 건물지 등이 확인되어, 백제 사비도성의 경계와 방어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조사는 부여 나성의 북쪽(북나성)에서 부소산성과 이어지는 구간의 성벽 현황과 축조양상을 규명하기 위해 2021년부터 진행하였다. 조사결과 북쪽 출입시설(북문지)과 상태가 양호한 약 60m의 성벽이 확인되었는데, 특히 부여 나성에서는 처음으로 성벽 안쪽(토축부)의 평면조사를 실시하여, 10개의 구역으로 구분된 성토의 흔적(규모 약 3.5~18.3m)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벽 안쪽은 자연지형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성토방법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청산성과 맞닿은 산 사면의 말단부는 기존의 기반층을 깎아내어 면석과 뒤채움석을 쌓아 올렸으며, 땅이 낮아 습한 평지는 석축부 단면이 사다리꼴이 되도록 조성한 후 석축부에서 안쪽을 향하여 성토하였다. 각 성토 공정 구간을 이어 맞닿게 한 방식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서로 교차하여 흙을 쌓고 중간에 돌을 이용하여 토류석으로 사용하거나 흙을 볼록하게 쌓아 토제 역할을 한 모습도 확인되었다. 또한 성벽 안쪽(토축부)에서 암반 및 점토 덩어리, 목탄(숯), 목주(나무기둥)가 확인되어 그 당시 성벽을 견고히 하기 위한 기술과 재료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사는 사비도성 북동쪽의 방어를 담당하는 북나성의 축조방식, 특히 가증천 제방(둑)에 연접한 성벽의 축조방법을 확인하여 백제의 우수한 토목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은 부여군과 함께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유적의 진정성 있는 정비와 관리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며, 부여 나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지원하여 백제 사비도성의 본모습을 밝히고, 나아가 백제왕도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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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비도성의 외곽성인 나성의 축조기술 확인백제 사비도성의 외곽성인 나성의 축조기술 확인 조사지역 원경. 사진: 문화재단 (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부여군(군수 박정현)에서 추진하고 있는 ‘부여 나성(북나성) 발굴조사’에서 북쪽 출입시설(북문지, 北門址)의 존재와 함께 나성의 축조 기술을 밝힐 수 있는 단서가 확인되어 6일 오후 2시 30분에 발굴현장을 공개한다. 부여나성은 백제 사비도성을 감싸는 외곽 시설물로서 도성을 보호하고 도성의 내‧외부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쌓았다. 사비 천도(538년) 전후한 시점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어 사비도성이 계획도시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핵심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조사는 부여 나성 중 도성의 북동쪽 방비를 담당하는 북나성에 대한 10차 발굴조사로 북나성에서 부소산성으로 이어지는 성벽의 진행 방향과 축조 양상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조사해 7월에는 북나성에서 처음으로 문지(門址, 문이 있던 자리)가 확인되면서 주목받은 바 있다. 조사는 가증천의 제방에 접하여 존재하는 북쪽 성벽의 축조 방법을 확인하기 위해 나성 발굴조사 이래 처음으로 평면 조사를 시행하였고, 그 결과 북문지의 존재와 함께 남아있는 상태가 양호한 약 60m의 성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확인된 북나성 성벽 축조기술을 살펴보면, 먼저 성을 쌓기 위해 자연 퇴적된 원지형을 기반으로 새롭게 흙을 깔아 평탄화하는 기초공사가 진행된 흔적을 확인하였다.기초공사는 성벽 주변의 넓은 범위에 걸쳐 진행되었고, 하천변의 저습하고 연약한 지반을 단단하게 하려고 판판한 돌을 넓게 깔거나 혹은 산사토 덩어리들을 섞어 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벽은 잘 다져진 대지 위에 돌을 가공하여 외벽면을 쌓고 안쪽은 흙을 산처럼 쌓으면서 조성되는데, 이중 돌로 쌓은 석축부는 저습한 연약 지반에서 성벽의 무게를견디도록 하려고 석축 단면이 사다리꼴이 되게 쌓아 안정감을 줬다. 또한, 석축부에 덧붙여서 안쪽에 흙으로 쌓은 토축부는 5~10㎝ 두께로 흙을 다져가면서쌓은 양상인데, 성벽의 진행방향에 따라 3.2~5.1m 규모로 흙을 쌓은 공정의 단위가확인되어 주목된다. 특히, 토축부 공정이 구분되는 지점에 따라 석축부의 축조 형태가 달라지는 양상이 확인되어 성벽의 유기적인 축조 공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조사를 통해 확인한 성벽의 남은 높이는 최대 2m, 성벽 폭은 최대 14.2m인데, 성벽 폭의 경우엔 조사지역 밖으로 연장되고 있어서 더 넓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성벽의 내측 토축부에서 개배(蓋杯), 직구소호(直口小壺)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성벽의 조성이6세기 중엽 경에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조사가 진행된 북나성 일대는 가증천이 백마강과 합류되는 지점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포구인 북포(北浦)로 비정되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북문(北門)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육상과 수로를 연결하는 백제 사비기 교통체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 성과가 매우 크다. 발굴현장은 조사기간 중 상시 개방하여 국민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백제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은 앞으로도 부여군과 함께 백제왕도 핵심유적인 부여 나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지원하여 백제 사비기의 도성제를 규명하고, 백제 왕도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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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문화재 산업전 9.9.~11. 경주에서 개최2021 국제문화재산업전. 사진제공 : 문화재단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 경주시(시장 주낙영)와 함께 ‘2021 국제문화재산업전’을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경주 화백컨벤션센터(경주 보문단지 소재)에서 개최한다. 올해로 5회차인 ‘국제문화재산업전’은 국내 유일의 최대 문화재 전문 박람회로 문화재 관련 기업의 경제활동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70여 개 기관이 참가하여 문화재 관련 신기술 소개, 온라인 수출 상담 같은 기업 자문 등을 통해 문화재 산업의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였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전시규모를 확대하여 280개 전시관을 운영하고, 전시 분야 또한 문화재 보존, 안전과 방재, 수리와 복원, 활용, 매장문화재, 디지털 문화유산, 박물관 등으로 다양화 하였다. 나아가, 동남아 4개국(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10개 단체가 온라인 수출상담회에 참여하는 만큼 국내 우수 문화재 기술을 해외에도 적극 홍보하여 판로를 확대하고자 한다. 문화재청은 올해 국제문화재산업전 주제인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강조하고 문화재행정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종합 부스를 설치, 문화재 행정과 산업발전의 흐름을 국민에게 알리고 문화유산 향유 기회를 높일 예정이다. 문화재 산업 활성화와 전문가 참여 확대 먼저, 문화재 산업 생태계 조성과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과 기업 행사를 다양하게 마련한다. 문화재 산업 활성화를 돕고자 문화재 관련 일자리 박람회인 ▲ ‘문화재 잡페어’, 새싹기업을 적극 홍보하는 ▲ ‘스타트업 IR(Investor Relations) 피칭대회’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특히 올해는 참여업체들이 전통재료와 기법으로 만든 천연향료, 나전칠기 공예품, 전통문양 디자인 상품과 같은 다양한 문화재 활용상품을 ‘네이버 쇼핑 라이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개하고 판매하는 ‘문화재 활용상품 라이브 커머스’를 9일과 10일에 걸쳐 총 3차례 운영할 계획이다. 또한, 올해 처음 시작하는 HERI-TECH(헤리테크, Heritage Technology & Trend Conference) 프로그램으로, 지속가능한 문화유산의 가치 창출을 논하는 ▲ ‘2021 디지털 헤리티지’와 한국과 유럽 문화유산의 가상융합과 북한 문화유산 콘텐츠 등을 살펴보는 ▲ ‘한‧영 문화유산 가상융합 포럼’을 개최한다. 향후 문화재 산업계를 선도할 수 있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행사로 꾸려 올해 국제문화재산업전은 문화재 산업 관련자들 뿐만 아니라 행사에 참여하는 관심 있는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구성하였다. 행사장 내 유튜브 스튜디오를 조성해 일반 참관객들이 개별 사용자 생성 콘텐츠인 손수제작물(UCC)을 제작하고 일상생활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 K-Heritage Studio(케이-헤리티지 스튜디오)를 운영할 예정이며, ▲ 문화유산 인사이트 포럼에서는 문화재 전문가 뿐 아니라 광고기획자 박웅현, 뇌과학자로 유명한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등 인문학자들의 초청 강연도 펼쳐져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 인식 저변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대중화 확대를 위해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 홍보 활동인 ▲ 문화재 플로깅 챌린지를 새롭게 추진하여 대중 참여의 폭을 넓힐 계획이다. 방문객들에게 9일부터 11일까지 마스크, 손수건 등이 담긴 꾸러미인 ‘플로깅 키트’를 제공하는데, 꾸러미를 받은 방문객들이 약 한 달간 문화재 주변을 청소하고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인스타그램)을 통해 인증하면 32명을 추첨하여 경품을 지급할 계획이다. 그리고 10일과 11일 양일간 사전신청자에 한해 경주지역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문화유산 관람행사도 펼쳐진다. ▲ ‘감성경주 인생샷 투어’는 전문 사진작가와 문화재해설사가 함께 무열왕릉, 월정교, 첨성대, 동궁과 월지 등 경주 지역 문화재 현장을 주간과 야간에 나누어 관람하며, ▲ ‘학예연구사와 함께 떠나는 경주 역사기행‘은 경주지역 학예연구사와 함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진행 중인 쪽샘, 월성 발굴현장 등을 살펴볼 계획이다. 올해 행사는 작년에 이어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온라인 전시관과 유튜브 생중계 등 온라인과 현장 행사를 병행할 예정이다. 온라인 전시관은 국제문화재산업전 행사 누리집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국제문화재산업전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 시청할 수 있다. 또한, 안전한 행사 개최를 위해 자체 방역 지침 작성‧배포, 참관인원 제한, 출입자 통제, 행사장 동선 유도, 행사장 소독‧환기 등 철저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행사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전시회 기간 중 현장 등록도 가능하지만 사전에 박람회 누리집(http://www.heritage-korea.com)에 미리 등록하면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박람회 사무국(경주화백컨벤션센터, ☎054-702-1062)으로 문의하면 된다. 문화재청은 정부혁신 중점 과제인 국제문화재산업전이 문화재 산업 분야의 창업과 제품 생산, 기술 개발과 투자 확대 등 문화재 관련 산업의 활발한 경제 활동의 계기가 되어 민간 일자리 확대로도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문화재 산업 진흥과 선순환 문화재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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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동 땅속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 발굴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재)수도문물연구원(원장 오경택)이 발굴조사 중인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 점과 ▲세종~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의 주전(籌箭)을 비롯해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1점, ▲중종~선조 때 만들어진 총통(銃筒)류 8점, 동종(銅鐘) 1점 등의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같이 묻혀있는 형태로 발굴되었다. (* 발굴현장: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79번지) 이번에 공개되는 금속활자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다. 일괄로 출토된 금속활자들은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첫 발굴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점,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 등은 최초의 사례이다. (* 동국정운: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운서(韻書), 중국의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사용된 ㅭ, ㆆ, ㅸ 등 기록 * 한글 금속활자를 이루는 대자(大字), 중자(中字), 주석(註釋) 등에 사용된 소자(小字), 특소자 모두 확인) 그 외에도 전해지는 예가 극히 드문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하여 연결하는 어조사의 역할을 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 출토되었다.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을해자(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된 점은 유례없는 성과다. 또한, 현재 금속활자들의 종류가 다양하여 조선전기 인쇄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활자들의 실물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글 창제의 실제 여파와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당시의 인쇄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 연주활자: 한문 사이에 자주 쓰는 한글토씨(‘이며’,‘이고’ 등)를 인쇄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활자) 도기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동제품은 동판(銅板)과 구슬방출기구로 구분된다. 동판에는 여러 개의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의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하여 자동물시계의 시보(時報)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되며,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 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으로 의미가 크다. (* 자동 물시계: 조선 시대의 자동 물시계는 보루각 자격루와 흠경각 옥루가 있음)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출토되었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하여 시간을 가늠한 용도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세종 19년) 세종은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은 일성정시의 중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현존하는 자료 없이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세종대의 과학기술의 그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소형화기인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으로 총 8점이다. 조사 결과, 최상부에서 확인되었고, 완형의 총통을 고의적으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보인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cm 크기이다. 총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계미(癸未)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萬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되었다. 장인 희손(希孫), 말동(末叱同) 제작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장인 희손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차승자총통>의 명문에서도 확인되는 이름이다. 만력 무자년이 새겨진 승자총통들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 총통: 총구에 화약과 철환(총알)을 장전하고 손으로 불씨를 점화해 발사하는 무기)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누어 출토되었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의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용뉴(龍鈕)도 있다, 귀꽃 무늬와 연꽃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하였다. 종신의 상단에‘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왕실발원의 동종에는 주로 해서체가 사용되므로, 왕실발원의 동종과는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1469년 추정 <전 유점사 동종(국립춘천박물관 소장)>, 1491년 <해인사 동종(보물)> 등의 유물과도 비슷한 양식이다. (* 용뉴(龍鈕): 용 모양의 손잡이 * 예서(隸書): 중국 한나라 때부터 쓰인 옛 서체, 자형이 반듯하고 각이 진 것이 특징 * 해서(楷書): 서예사의 전개에 있어 전서(篆書), 예서(隸書) 다음으로 나타난 서체로, 흘려 쓰지 않고 정자로 바르게 쓴 한문서체 조사 지역은 현재의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조선 한양도성의 중심부이다.) 조선 전기까지는 한성부 중부(中部) 견평방에 속하며, 주변에 관청인 의금부(義禁府)와 전의감(典醫監)을 비롯하여 왕실의 궁가인 순화궁(順和宮), 죽동궁(竹洞宮) 등이 위치, 남쪽으로는 상업시설인 시전행랑이 있었던 운종가(雲從街)가 위치했던 곳이다. (* 견평방: 조선 전기 한성부 중부 8방의 하나로 궁궐 관련 시설과 상업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있는 도성 내 경제문화중심지 * 전의감(典醫監): 조선 개국년인 1392년 설치된 의료행정과 의학교육을 관장하던 관청 * 순화궁(順和宮): 조선 중종의 순화공주를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 궁 * 죽동궁(竹洞宮): 조선 순조의 명온공주를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 궁) 조사 결과,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의 총 6개의 문화층(2~7층)이 확인되었다. 금속활자 등이 출토된 층위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16세기 중심)에 해당되며, 각종 건물지 유구를 비롯하여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도 같이 확인되었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들은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활자들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것들도 일부 확인되었다. 이들의 사용, 폐기 시점은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만력(萬曆) 무자(戊子)년에 제작된 소승자총이 있어 1588년 이후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안전하게 보관 중이다. 앞으로 보존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 각 분야별 연구가 진행된다면,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전기, 더 나아가 세종 연간의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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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읍성(邑城) 성벽 최초 확인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에서 발굴조사하고 있는 “상주시 인봉동 35-5번지 유적(면적 233㎡)”에서 상주읍성의 성벽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 문화재보호기금(복권기금)을 활용하여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진행 중인 「매장문화재 소규모 발굴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다. 발굴현장 공개는 30일(화) 오후 2시에 현장에서 개최한다.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되어 문헌 속에만 존재하던 상주읍성 상주읍성은 문헌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1385년(고려 우왕 11년)에 축조되어 일제(日帝)의 읍성 훼철령(1910년)에 따라 헐리게 되는 1912년까지 약 520년 이상 유지되었다. 고려말 왜구 침임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만들어진 읍성은 조선 초기에 경상감영(慶尙監營)을 둠으로써 당시 경상도의 행정·문화·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주읍성은 지표조사와 연구를 통해 성벽의 위치에 대해 추정만 있었고, 그 실체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2019년 조사대상지의 북서쪽 40m 지점인 인봉동 73-7번지 유적에서 상주읍성의 해자(垓子)*가 처음으로 조사된 성과가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성벽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조사대상지가 일제강점기(1913년)에 제작된 지적도에 성도(城道)로 표시된 부분에 해당함을 현재 지적도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하였고, 바로 이 자리가 상주읍성의 북동쪽 성벽임을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밝혔다. 성벽 위치 최초 확인, 조선 전기에 축조한 성벽 기저부 잔존 성벽은 체성부* 아래의 기저부**만 확인되었다. 이는 1912년 일제의 읍성 훼철 당시 지상의 육안으로 보이는 성벽이 철거되고, 성벽 기저부 위쪽이 임시 도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당시 지적도 상에 ‘성도(城道)’로 표기한 연유로 볼 수 있겠다. 또한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벽 위에 건물들이 건축되면서 기저부도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기저부의 규모는 길이가 760㎝ 정도로 조사대상지의 북쪽과 남쪽 조사 경계 밖으로 계속 연장되고 있다. 너비는 성벽 외벽 쪽인 동쪽 지대석에서 내벽 쪽인 서쪽으로 470㎝ 정도만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유실되었다. 높이는 40㎝ 정도만 확인되었으나 성벽 기저부를 견고하게 축조한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대석은 가운데 부분이 유실되고 5매만 확인되었으며, 이 역시 조사 경계 밖으로 계속 연결되는 양상이다. 이와 별도로 성벽 동쪽의 일제강점기 건물지 지반 보강을 위하여 훼철된 성벽의 큰 성돌이 다수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축조시기는 성벽 기저부의 다짐층과 보강층에서 조선시대 전기 백자종지편이 출토되어 조선시대 전기로 판단된다. 향후 상주읍성 정비·복원을 위한 실마리 지금까지 상주읍성 성벽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9년 해자 조사에 이어 이번 성벽 기저부 조사가 두 번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한국문화재재단의 조사는 소규모 면적에 대한 성벽의 기저부 조사이지만, 문헌 기록으로만 확인되던 상주읍성 성벽의 실체와 위치를 정확히 찾았다는데 의의가 매우 크며, 이를 통해 향후 상주읍성 전체의 위치와 흔적을 찾고, 정비·복원을 위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본다. 30일 개최하는 발굴현장 공개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생활 속 거리두기를 준수하기 위하여 발굴현장 공개 참석자들은 발열 확인과 손 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여 방역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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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별주' 발굴현장 시민에게 선보였다-화성행궁 별주 발굴현장 시민에게 선보였다 수원시는 28일 ‘화성행궁 별주(別廚)’ 발굴 현장을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별주(別廚)는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1795년) 때 특별히 정조와 혜경궁 홍씨에게 올릴 음식을 마련하는 공간이었다. 회갑잔치 이듬해부터는 현륭원 행차를 위해 정조가 화성행궁에 머물 때 대접할 음식의 예법을 기록한 문서를 별주에 보관했다.정조 승하 후 분봉상시(分奉常寺)로 이름이 바뀐 별주는 현륭원과 건릉, 화령전에 올릴 제물을 마련하고, 이와 관련된 문서를 정리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다.이날 시민들은 화성행궁 왼쪽에 소재한 별주 발굴 현장에서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조사원의 설명을 들으며 부엌, 온돌방 등 별주 건물터를 둘러봤다. 도자기 조각, 벽돌 등 건물터에서 출토된 유물도 살펴봤다.현장에 참여한 한 시민은 “실제로 문화재 발굴 현장을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하다”며 “별주가 잘 복원돼 화성행궁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2016년부터 경기문화재연구원과 함께 ‘화성행궁 우화관·별주 일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준공일은 6월 14일이다.발굴조사 결과, 가로 26m·세로 20m 규모 별주 건물터가 확인됐다. 네모난 단 위에 건물 2동이 있었고, 그 주변에 담장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별주 앞에는 연못 흔적이 발견됐다. 분봉상시로 쓰였던 모습을 보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화성전도」 그림과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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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산 봉수터’문화재 지정 가치 충분석성산봉수터 발굴현장에서 조사단과 자문위원들이 출토된 자기와 기와를 살펴보고 있다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산77-33 일대 ‘석성산 봉수터’가 문화재로 지정될 가치가 충분하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 문헌으로 확인된 조선시대 중요 봉수대의 의미를 넘어서 제례지로 이용됐을 가능성과 삼국시대부터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관방유적으로서의 의미까지 부여할 수 있는 유물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용인시는 26일 지난 해 11월부터 실시한 ‘석성산 봉수터’ 일원 400㎡에 대한 1차 발굴조사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지난 25~26일 개최한 학술자문회의에서 이 같은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성산봉수터 3번연조 발굴현장 이번 발굴에선 밤에 봉화를 올리거나 낯에 연기를 피워 신호를 보내는 아궁이와 굴뚝시설인 연조 5기와 봉수대 방어를 하는 방호벽, 건물지 등의 규모와 형태 등이 확인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전문위원인 김길식 용인대 교수는 “백제기와로 추정되는 유물부터 조선시대 유물까지 출토된 것으로 보아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관방유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현재까지 조사 성과로도 경기도지정 문화재로 지정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석성산 봉수터 발굴 전경 봉수 전문가인 김주홍 한국토지주택공사 차장(박사)은 “가장 큰 성과는 연조 5기를 모두 확인했다는 것인데, 특히 1번 연조는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암반을 굴착하고 할석으로 축조한 형식으로 그 동안 내지봉수에서 확인되지 않은 형태로서 최초로 확인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4번 연조 내부에서 백자 제기가 출토되었는데, 봉수대에서 제기가 출토된 사례도 매우 특이한 사례로 석성산 봉수대가 제례적 기능도 같이 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재)한양문화재연구원은 이번 1차 발굴을 통해 전체길이 31m, 최대너비 15m의 봉수대를 확인했다. 이 가운데 5기의 연조는 봉수대의 장축방향과 같은 남북방향으로 조성됐으며, 각각의 연조는 길이 2~3.2m, 너비 1.6~2.6m, 깊이 0.55~1.2m로 나타났다. 또 각 연조는 인접한 세 번째, 네 번째를 제외하면 약 4~5m의 간격을 유지했다. 방호벽은 전체 둘레가 85.5m, 잔존높이는 약1.5~4m로 확인됐다. 방호벽 전체 형태는 드러났으나 상당부분 훼손됐으며, 일부 잔존상태가 양호한 부분이 있어 축조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건물지에선 온돌이나 화덕 같은 난방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연료를 보관하던 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발굴에선 또 봉수대 내부로 진입하는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계단시설도 드러났는데, 잔존하는 계단은 5단으로 나타났다. 석성산 봉수터는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나 화성성역의궤 등에 기록이 남아있어 이미 조선시대 봉수체제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나온 성과로 미뤄볼 때 기존에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성남 천림산 봉수대나 고양 독산봉수대 이상으로 차별화된 가치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시는 이번 자문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추가 발굴조사와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본격적인 복원에 앞서 이 일대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관리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이번 1차 발굴로 용인에 아주 중요한 유적이 있는 게 구체적으로 확인됐다”며 “석성산 봉수대를 역사유적으로 보존할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조사와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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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정부 발굴현장서 듣는 생생한 조선 역사 이야기(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서울시는 다음 달 종로구 세종로 76-14 일대 옛 의정부터 발굴현장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현장 탐방과 강연회를 연다.의정부는 조선 시대 최고의 관청으로, 그 터는 세종로에 있던 조선 시대 관청 가운데 유일하게 유적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시는 이에 따라 8월부터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하고 있다.현장 탐방은 2일, 9일, 23일 등 세 차례 이뤄진다.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다시 찾은 조선 신권의 상징, 의정부'(2일), 전우용 역사학자가 '의정부터, 최고 관부에서 공원으로 재탄생되기까지'(9일)·'왕의 길 육조대로 대한민국의 중심이 되다'(23일)를 주제로 각각 강연한다.30일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이경미 역사건축기술연구소 소장이 조선 시대 의정부와 육조 각 관청의 건축 양식과 변천 과정을 전한다.참가비는 없으며,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홈페이지(http://yeyak.seoul.go.kr/main.web)에서 신청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