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주목받는 한인 차세대> ①남수현 캐나다 이민변호사

기사입력 2014.11.06 11:35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14152412744780.jpg
    탈북자 200명 넘게 상담…첼리스트이자 번역가로도 활동
    "내 재능 전부를 탈북자들의 인권 보호에 쓰고 싶어"
     

    <※ 편집자주 =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제17회 세계한인차세대대회가 21개국 126명의 한인 차세대 리더가 참석한 가운데 4∼7일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새 시대 새 혁명 글로벌 창조 리더'란 대회 슬로건 아래 한인사회의 미래를 논의하고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자리입니다. 참석자 가운데 주목할 만한 인물을 인터뷰해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1984년생인 캐나다 한인 1.5세 여성과 탈북자. 누가 봐도 조합이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남수현 씨는 지금 탈북자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캐나다의 탈북자 2천여 명 가운데 10%인 200여 명을 만나 상담하고 도와줬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들의 편에 서서 일해야 한다.  

     

    4일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에서 재외동포재단 주최로 열리는 '2014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한 남 씨는 "탈북자들과 함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이라고 털어놓았다. 

     

    적어도 22살 때까지는 그도 세계적인 첼리스트를 꿈꿨다. 올해 환갑을 맞은 동갑내기 남영희·강미영 씨 사이의 외동딸인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첼로 공부를 위해 부모와 함께 여수에서 상경했다.

     

    어머니는 19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아라비아의 영가-오아시스'로 당선했고, 시집 '꽃이 죽어가는 이유'를 출간한 문인이다.

     

    예술계 특수학교인 예원학교에 들어가 첼로를 공부하던 그에게 가족의 캐나다 이민은 첼리스트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는 기회가 됐다. 토론토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에 수석 입학,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로 협연했고, 캐나다 오페라 컴퍼니가 상연하는 무대에 올라 독주회도 열었다. 2007년 캐나다 디지털 음악방송인 갤럭시가 기대되는 아티스트를 뽑아 시상하는 '갤러시 라이징 스타 어워드'도 차지했다.

     

    누가 봐도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외로움이었다.

     

    "외동딸인데도 첼로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았어요. 타향에서 혼자 외로웠죠.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서 일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즈음 클래식이 대중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외로움을 많이 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저 자신이 슬펐어요. 그래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어요. 부모님이 만류했지만 첼로를 계속한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아냈죠."

     

    토론토대 로스쿨에 입학하던 2007년 봄. 그는 운명처럼 탈북자들의 삶과 맞닥뜨린다. 어머니의 권유로 탈북자를 돕는 북한인권단체 '한보이스'가 상영하는 다큐멘터리 '서울 트레인'을 본 것이다. 이 영화는 재중국 탈북자들의 인권 실태와 제3국으로의 탈출 과정을 담았다.

     

    "영화를 보고 가슴이 아팠고, 감동했어요. 곧바로 단체 창립자를 찾아가 탈북자를 위한 기금 마련 콘서트를 열고 싶다고 건의했어요. 창립자는 뜻을 받아들이면서 단체 이사를 맡아달라고 제의했어요. 그래서 흔쾌히 수락했죠." 

     

    로스쿨 과정을 밟으면서도 단체 활동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탈북자의 이슈를 알리는 기금 마련 콘서트를 여는가 하면 오타와까지 달려가 연방의원을 상대로 도움을 호소했다. 2010년부터 1년여 동안 자유아시아방송 '캐나다는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의 담당기자로 활동하며 캐나다 탈북자들의 삶을 세계에 알렸다. 2011년에는 가장 큰 규모의 콘퍼런스인 '제10회 북한인권난민회의'를 개최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졸업 후 변호사가 된 그는 예술가로서 또 이민자의 딸로서 자연스럽게 인권 및 난민법에 관심을 뒀다. 지난 2012년부터 이민변호사로 활약한 그는 지난해 남수현 법률사무소를 차려 독립했다. 탈북자들을 본격적으로 돕고 싶은 마음에서다.

     

    남 씨는 온타리오주 법률구조공단 난민법률사무소에서 탈북난민 담당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동시에 캐나다에 온 탈북자들을 위한 통·번역 일도 맡고 있다.

     

    "첼리스트, 통·번역가, 변호사. 제가 가진 재능이 모두 탈북자를 돕는 데 활용되고 있어요. 앞으로 어느 정도가 될지 모르지만, 탈북자들의 인권 수호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

     

    그는 지난 10월 초 탈북여성 루시아 장(가명)이 펴낸 '하늘과 달 사이의 별'이라는 영문 수기의 번역을 맡았다. 이 책은 미국과 독일서도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캐나다 정부가 지금은 한국을 통해서 들어온 탈북자들에게는 난민 자격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어요. 다시 한국으로 추방되고 있죠. 그래서 늘 불안해합니다. 한국에서조차도 살 수 없어 제3의 국가로 떠나야만 하는 그들에 대한 마음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하루빨리 그들이 이 땅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보듬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들 한분 한분의 얘기는 영화 같고 소설 같아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상담하면서 함께 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북한에 가보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어렵게 국경을 넘고, 천신만고 끝에 자유를 찾은 탈북자들이 한결같이 북한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어 이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들을 더 이해하고픈 마음이 앞선다. 캐나다 시민권자이고, '한보이스' 회원도 방북했기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꼭 가보고 싶어요. 별로 두렵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북한 정부를 비판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부모님 환갑에 맞춰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는 그는 "온 김에 짬을 내 설악산을 꼭 오르고 싶었는데 갑자기 많은 난민을 심사하는 일이 생겨 응급닥터로 지명되었기에 행사가 끝나는 대로 캐나다에 돌아가야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ghwang@yna.co.kr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