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이주 1세대 고려인 부부, 모국 땅 처음 밟고 감격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제이주 1세대 고려인 부부, 모국 땅 처음 밟고 감격

14146344233702.jpg
김블라디미르·임크세니아 "고국의 발전상에 자부심 느껴"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늘 동경하던 한국을 방문해 감개무량합니다. 소수민족으로 살아온 고려인에게 모국은 늘 동경의 대상이고 자부심의 원천입니다."

 

구소련 시절 강제이주를 겪은 고려인 1세대 김블라디미르(77)와 임크세니아(79·여) 부부는 29일 연합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힘없는 민족이었기에 강제이주도 겪었지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모국 덕분에 어깨를 당당히 펴고 산다"며 밝게 웃었다.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사는 이 부부는 재외동포재단이 고려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이해 마련한 러시아·CIS 지역 동포 초청행사에 참가해 지난 27일 모국 땅을 처음 밟았다.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소련 연해주에 사는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할 때 김씨는 1살이었고 임씨는 3살이었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한 달 가까이 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 지역에 내던져졌다.  

 

당시 스탈린은 연해주 지역에 사는 고려인이 일본의 첩자 노릇을 할지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부부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이주를 당한 터여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해 늘 춥고 배고팠던 것이 기억난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열차가 시베리아를 통과하는데 화물열차라 무척 추웠죠. 중간에 설 때마다 어른들이 주변에서 나무를 모아와 열차 안에서 불을 피웠습니다. 도착했다며 내리라고 한 곳이 허허벌판이었죠. 날은 점점 추워지고 당장 묵을 곳이 없어 토굴을 파서 첫 겨울을 보냈습니다."

 

김 씨는 "이듬해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고 가져간 볍씨를 뿌려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며 "중앙아시아 지역에 벼농사를 보급한 것이 고려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강제이주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 8월까지가 가장 힘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남자 어른들은 부역 등에 동원돼 여자들이 농사를 지었죠. 추수를 해도 군량미로 대부분 가져가 논밭에서 이삭을 주워 풀죽을 쑤어 먹곤 했습니다. 그래도 고려인은 군소리 한마디 없이 묵묵히 견디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덕분에 어디를 가도 성실하고 근면한 민족이라며 인정을 받았습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고려인은 소련 영토 내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고 김 씨는 하바롭스크의 비행전문학교에 진학해 민간항공기 조종사가 됐다.

 

그는 크질오르다에서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 간호사가 된 임 씨와 결혼해 하바롭스크로 이주했고 지금은 둘 다 정년퇴직해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김 씨는 "러시아 정부는 과거 강제이주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해 당사자에게는 아파트 임대료를 비롯해 전기료 등 각종 공과금을 50% 감면해주고 있다"면서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이겨낸 덕분에 이렇게 초청을 받아 모국에도 와보게 됐다"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이야기만 듣던 모국 땅을 평생 그리워했다는 부부는 "이제 소원을 이뤘다"며 "경제 대국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모습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진다"고 기뻐했다.

 

이들은 방문 기간 경기도 용인의 한국민속촌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했고 서울 남산타워, 경복궁,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인사동에서 모국의 정취를 맛보았다.

 

30일에 천안 독립기념관과 망향의 동산을 찾고 나서 인천의 사할린 한인센터 방문을 끝으로 초청 일정을 마치고 31일 출국한다.  

 

부부는 "러시아 언론에서 종종 IT·자동차·조선·스포츠 강국으로 한국을 소개할 때마다 자긍심을 느꼈는데 직접 와보니 '과연'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당당하게 주류사회에서 위상을 떨치는 고려인이 많은데 모국이 이들을 양국 간의 가교로 활용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재외동포재단 초청으로 모국을 처음 방문한 러시아 고려인부부 김블라디미르(77)와 임크세니아(79·여) 씨는 구소련 시절 강제이주를 경험한 1세대로 "꿈에 그리던 모국 땅을 밟아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