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 "분노를 긍정에너지로 승화…당황할 정도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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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 "분노를 긍정에너지로 승화…당황할 정도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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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8집 '신발장' 국내외 음원 차트 1위 석권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당황스러울 정도로 행복해요. 11년 동안 수많은 앨범을 내면서 '이게 뭐지' 되물을 정도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해요. 살짝 '멘붕'이에요."(타블로) 

 

역시나 긍정적인 자세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분노가 있던 자리에 행복을 대신 채워넣은 에픽하이의 음악이 좋은 성적으로 그룹 곁의 모두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복수'가 아니라 '삶'이 좋은 것이라는 깨달음이 묻어나는 더욱 성숙한 음악이어서인지도 모른다.

 

2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정도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에픽하이가 지난 21일 2년 만에 선보인 정규 앨범 '신발장'은 발매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음원 차트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타이틀곡 '헤픈엔딩'이 1위를 고수하는 것은 물론 '본 헤이터', '스포일러', '또 싸워' 등 다른 수록곡도 여전히 최상위권이다.

 

특히 거물급 싱어송라이터들의 치열한 승부가 벌어진 10월에 거둔 성과여서 더욱 뜻깊다.

 

타블로는 "타이틀곡 하나가 아니라 다른 노래들까지 사랑받는 것이 요즘은 쉽게 허락되는 일이 아니지 않나.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서 너무 감사하다"라고 기뻐했다.

 

앨범에는 모두 열 두곡이 수록됐다. 언뜻 들으면 이별의 슬픔이나 누군가를 향한 분노의 정서가 가득한 듯하지만 곱씹어볼수록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진다. 타블로는 앨범에는 '분노'는 없다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몇년전 억울하게 겪은 학력 논란 등을 이제 완연히 극복한 모습이다.  

 

"몇년간 느낀 오만가지 감정을 앨범에 담은 것은 맞아요. 하지만 분노는 없어요. 유일하게 앨범에 없는 감정이 분노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분노를 표출하는 듯한 노래들도 들어보면 이해나 초탈의 감성이 담겨 있죠." 

 

그는 "앨범 끝부분에 '라이프 이즈 굿'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표기된 제목을 보면 '복수'에 엑스(X)표를 하고 '라이프'를 써넣었다. 노래에서 '행복이 복수'라고 얘기하는데 이 문구가 앨범 전체를 포괄해준다"면서 "복수심을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해서 주변 사람을 챙기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선공개곡인 '본 헤이터'에는 빈지노, 버벌진트 등 여러 래퍼들이 참여했다. 특히 비아이, 바비, 송민호처럼 YG엔터테인먼트의 후배 래퍼들이 참여해 화제가 됐다.

 

"비아이, 바비, 송민호는 어리니까 나올 수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세분 다 재능을 빼앗고 싶을 정도였어요.(웃음) 특히 비아이의 재능은 부러울 정도였어요. 와서 후다닥 끝내고 가버리는데 멋있다고 생각했죠."(미쓰라) 

 

타블로도 "비아이나 바비는 앞서 '쇼미더머니'에 출연했어서 센 가사를 해도 충격받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송민호 군은 위너 이미지가 고급스러워서 세게 해도 될지 오히려 우리가 걱정스러웠다"면서 "그런데 '제대로 하고 싶다'며 자기가 더 열심히 하더라"고 칭찬했다.

 

그는 이어 "사실 민호는 회사에 묻지도 않고 노래에 넣었다. 나중에 민호가 랩을 너무 잘해서 양 사장님도 퀄리티가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 '야 걔 랩 잘하더라'며 칭찬하셨다"면서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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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가사와 래핑이 앨범 곳곳에서 도드라지는 것에 비하면 '신발장'이라는 앨범 제목은 조금 부드러운 느낌이다. 

 

"집에서 나갈 때 가족과 인사하는 공간이 신발장이잖아요. 작은 이별을 하는 곳이죠. 또 일이 끝나고 마치고 돌아왔을 때 맞이하는 곳도 신발장이고요.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곳이 신발장이라서 그런 모든 감정을 담고 싶었죠."(투컷) 

 

최근 YG 양현석 대표가 에픽하이의 회사 스튜디오 사용을 금지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룹의 색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한다. 멤버들은 "작업할 때 사장님을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타블로는 "사장님이 처음에는 녹음실 스케줄이 많아서 불편할 수 있으니 원래 하던데서 하라고 했다"면서 "밖에서 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제작비가 올라간다. 의도를 알 것 같아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앨범이 거의 완성된 단계까지 사장님도 못들었어요. 심지어 화도 내셨죠. 올해초 들려달라고 하셨는데 제가 안된다고 했거든요. 굉장히 당황하셨어요. 미완성이어서 들려드릴 단계가 아니라고 했죠. 한곡씩 듣는 게 싫었어요. 대중이 들을 때처럼 첫곡부터 마지막곡까지 짜임새를 있을 때 들으시기를 바랐던 거죠."(타블로) 

 

어느새 데뷔로부터 11년이 지나면서 타블로와 투컷은 아버지가 됐다. 타블로는 딸 하루와 함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중이고, 투컷도 아들이 곧 두돌이 된다고 한다. 육아가 음악에 영향을 줄까.  

 

"일단 하루가 어렸을 때는 집에서 음악을 크게 못 들어요. 그래서 음악 자체가 더 잔잔해졌던 것 같아요. 이제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도 하루가 같이 춤추고 랩하고 하죠. 하루가 사실 랩을 잘합니다. 헤픈엔딩은 원래 하루가 초안을 5초 듣고 '시끄러워'했어요. 그래서 덜 시끄럽게 만들었더니 이제는 좋아해요. 딸이 디스(dis·깎아내림)해서 노래를 완성시켜준거죠.(웃음)"(타블로) 

 

"육아가 정말 힘들잖아요. 그래서인지 작업실에 가면 미친 듯이 집중이 잘 돼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그것만 붙잡을 수 있어요.(웃음)"(투컷) 

 

에픽하이는 내달 14~16일 총 4회에 걸쳐 공연을 연다. 원래 2회를 마련했는데 반응이 좋아 무대를 늘렸다. 어떤 무대를 기대하면 될까. 

 

"'설마 콘서트에서 그런 짓까지 할까'라고 생각하실 정도의 모습을 보여드릴 계획입니다. 기대하시는 것 이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쓰러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웃음)"(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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