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쥬렉션' 이주영 "패션은 가전제품 아닌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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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레쥬렉션' 이주영 "패션은 가전제품 아닌 콘텐츠"

"남성 고객 취향 과감해져…외국선 '센' 옷이 인기"
17일 개막 헤라서울패션위크 참여…"확 다른 스타일 선보이겠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국내에서는 아직 조심스러워 하죠. 그런데 외국에서의 반응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이렇게 강해도 가능할까 싶은 옷들이 제일 먼저 팔려나가 깜짝 놀랐습니다."


남성 의류 브랜드 '레쥬렉션'(RESURRECTION)을 이끄는 이주영 디자이너는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작업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자신의 브랜드 콘셉트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눈에 봐도 '센' 옷이 레쥬렉션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매장과 작업실에 걸린 옷들은 여기저기 과감하게 찢겨 있거나 끈이나 수술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무채색이 주를 이루고 때때로 강렬한 색을 더해 배색 효과를 극대화했다.


록밴드 멤버나 아이돌 그룹이나 소화하지 않을까 싶은 그의 의상은 실제로 연예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옷을 찾는 고객 가운데는 해외 유명 연예인도 있다.


미국 '쇼크록의 제왕' 마릴린 맨슨이 패션잡지 보그 이탈리아판 촬영을 하면서 다른 유명 디자이너의 의상을 제치고 이 씨의 의상을 고집하고, 힙합그룹 블랙아이드피스는 그의 옷에 매료돼 동업을 제안한 것은 업계에 널리 알려진 일화다.   

14765038404000.jpg 지난 시즌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레쥬렉션의 의상 [레쥬렉션 제공]

 

이렇게 과감한 스타일의 옷을, 그것도 남성복을 디자인하는 것은 그가 본격적인 디자이너로 활동하기에 앞서 오랜 기간 스타일리스트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다.


이 씨는 "원래는 첼로를 전공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쪽 일을 하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처음에는 어머니 밑에서 일을 배웠는데 그때 스타일리스트도 겸업했다. 일하면서 보니 남성 옷이 너무 한정적이고 선택의 폭이 작아 남성복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어머니 밑에서 나와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의 어머니가 바로 우리나라 패션업계에서 1세대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설윤형 디자이너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엄청난 패션 철학이나 복잡한 논리는 없다. 그냥 입었을 때 멋진 옷이 중요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여성 디자이너가 남성복을 만들 때 장점이 크다고 덧붙였다. '여성이 봤을 때 멋있는' 포인트를 잡아내기가 수월하다는 것이다.


"옷은 결국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입는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여자가 봤을 때 조금 더 멋있는 남자의 포인트가 무엇인지 제가 좀 더 잘 보지 않겠어요? 제가 디자인할 때 중시하는 것도 그 지점입니다."


그는 사업을 처음 시작한 2004년에 비해 현재 고객들의 취향이 상당히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전보다 과감한 의상을 선택하는 고객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 씨는 "그래도 우리나라 분들은 아직 좀 조심스러워 하는데 외국에 나가보면 오히려 더 과감한 스타일을 원하더라"라며 "가끔은 이렇게 강해도 될까 싶은 그런 옷들이 가장 먼저 팔려나간다"고 전했다.

14765038371941.jpg '레쥬렉션'의 이주영 디자이너 [레쥬렉션 제공]

 

그는 외국 고객들의 이런 호응에 힘입어 수년 전부터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가수 김준수와 손잡고 중국 상하이에서 '넘버텐세븐'(no.10/7)'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한 그는 이번 베이징 패션위크에 참여한다


블랙아이드피스의 멤버 윌 아이 엠과도 브랜드 출시를 논의 중이다.


이처럼 전방위로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그에게 최근 날개를 달아준 일이 있었다. 서울디자인재단이 주최하는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전도유망한 디자이너 1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된 것이다.


'텐소울'(10soul)이라고 이름 붙인 이 디자이너 10인방에 포함되면 해외 패션 중심지에서 해당 국가의 바이어에게 컬렉션을 선보일 기회가 주어진다.


재단 지원을 받아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밀라노를 방문하고 돌아온 이 씨는 "자체적으로도 해외 진출을 꾸준히 추진하지만 이번은 또 다른 기회였다"고 말했다. 진입장벽이 높은 해외 패션업계의 '이너서클'을 뚫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에서다.


"어디나 끼리끼리 어울리거든요.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언어 문제가 없는 데도 한계를 느낍니다. 또 잠깐 가서 어울린다고 바로 성과로 연결되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네트워크 쪽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한두 번 만났다고 바로 수주로 이어지지 않는 해외 업계의 특성을 잘 안다며 "이 기회를 계기로 계속 인연을 쌓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외국 바이어들은 관심 있는 디자이너를 오랜 기간 지켜본 뒤 구매를 결정합니다. 패션은 가전제품이 아니라 콘텐츠니까요. 이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를 확인하는 거죠."

14765038437488.jpg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텐소울' 디자이너들과 함께 이주영 디자이너(왼쪽에서 5번째)[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이 씨는 17일 서울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하는 '2017 S/S 헤라서울패션위크'에도 참여한다. 그는 이번에 기존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무채색을 사용하다 보니 컬러와 패턴이 있는 디자인이 항상 숙제 같았다"고 밝힌 그는 "이번에 그 숙제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그는 "할머니 옷장 콘셉트"라며 "재미있게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록그룹 '시나위'의 이름을 내건 티셔츠도 눈길을 끈다.


그는 "해외 록그룹 이름이 적힌 티셔츠는 많이들 입는데 정작 우리나라 밴드 이름 내건 옷은 하나도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나 만들었어요"라며 "제가 가장 신경 쓰는 아이템"이라고도 했다. 그의 남편이 바로 시나위의 5대 보컬인 가수 김바다다.


이 씨는 "세계에서 케이팝이 난리라는데 록밴드 티셔츠도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패션위크 준비로 바쁜데 한편으로는 또 재미있다. 패션은 우리 집 가업 아니냐. 외국처럼 대를 이어 계속되는 패션 하우스가 됐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14765038464664.jpg 지난 시즌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레쥬렉션의 의상 [레쥬렉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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