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단속도 안 무섭다" 연평어장 점령한 中 어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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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단속도 안 무섭다" 연평어장 점령한 中 어선들

꽃게 등 치어까지 저인망으로 싹쓸이…어장 황폐화


우리 어민은 북한과 인접한 해역이라 조업 못해


 

(연평도=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저기가 연평어장의 젖줄이야. 저기서 중국어선들이 치어까지 싹쓸이하는데 눈 뜨고 지켜볼 수 밖에 없으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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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인근서 불법조업하는 중국어선.

8일 인천 연평도 북쪽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에는 30여척의 중국어선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붉은색 중국 국기를 단 이들 어선은 연평도 북쪽 끝 해안에서 3㎞ 이내 해역까지 오가며 4∼5척씩 선단(船團)을 이뤘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설치한 그물을 끌어올렸다.


일부 어선은 우리 해군·해경의 단속에 대비한 듯 외부에 철판을 덧대거나 쇠파이프를 꽂아뒀다.


사흘 전인 5일 새벽 이곳에서 불법조업하던 중국어선 2척이 우리 어민에게 나포돼 선장 2명이 영해 및 접속수역법 위반 혐의로 해경에 구속되고 선원 9명이 퇴거 조치됐지만 이들 어선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인천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기준 연평도 해역에 출몰한 중국어선들은 모두 156척이다.


이곳은 북한과 불과 13㎞밖에 떨어지지 않아 남북 군사충돌 우려가 끊이지 않는 해역. 이런 까닭에 우리 어민들은 이 해역에서 조업이 금지돼 있다.


연평도 어민들은 연일 그물을 끌어올리는 중국어선들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어민 김모(52)씨는 "저 해역은 남북 어민들이 접근할 수 없어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꽃게와 치어 등 어류가 산란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며 "저곳에서 성장한 고기가 연평도와 근해로 퍼져 이곳 일대 어장을 이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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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망향전망대에서 관측되는 중국어선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연평도 인근 해역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탓에 모래톱이 많아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어류의 기초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은 이 해역에 새우를 부른다. 꽃게와 치어 등 어류는 새우를 먹고 성장해 '물 반, 고기 반'의 황금어장을 형성한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관계자는 "연평어장은 바다 저층의 어족자원을 수확하는 저인망·형망 어업방식이 금지된 데다 성어기(4∼6월, 9∼11월)에만 조업이 허가돼 황금어장이 유지된다"며 "그러나 저인망·형망 방식으로 어린 꽃게와 치어까지 싹쓸이하고 있는 중국어선들의 행태가 계속된다면 연평어장은 황폐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곳에서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어선 대부분은 서해5도에서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중국 랴오닝성 동북3항(다롄·둥강·단둥) 선적의 10∼60t급 중소형 목선이다.


동북3항에서 서해5도까지는 직선거리 210∼370㎞로 서울에서 대구·부산까지 거리에 달하지만 이들 중국어선은 바닷길을 건너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중국어선들이 서해5도 인근 NLL까지 오는 까닭은 자국 해역의 어족자원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일정 크기의 어류 포획을 금지하거나 그물코 크기를 제한하는 등 어장을 보호하는 규제가 미치지 못하다 보니 연평어장의 어린 물고기까지 씨가 말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허선규 인천해양도서연구소 대표는 "중국어선들은 자국 수요는 증가하는 데 수확되는 어류가 없자 서해5도 해역까지 침범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더욱이 이들 중국어선은 등록되지 않은 사실상 '해적선'이라서 중국 당국의 통제도 미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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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인근 해역 점령한 중국어선들.

더욱이 중국어선들은 해경과 해군의 단속에 대응해 진화한 불법조업을 이어간다.


이날 중국어선 선원들은 연평도 근해에서 남북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 사이로 유유히 그물을 끌어올렸다.


연평도를 처음 찾은 관광객들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어선들이 중국 것이 맞느냐며 어민들에게 되물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8년전 서해5도 NLL 해역에 모습을 드러낸 중국어선들은 우리 어선이나 해경에 발견되면 곧바로 도주하기 바빴다.


남북 대치 상황으로 NLL 인근에 우리 해경과 해군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파악한 중국어선들은 도주하다가 나포되면 유리병을 던지거나 쇠파이프·삽 등을 해경을 향해 휘두르며 격렬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2011년 12월에는 소청도 남서쪽 87㎞ 해상에서 불법조업 중국어선을 단속하던 인천해경 소속 이청호 경사가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순직했다.


현재 중국어선들은 4∼8척씩 선단을 이루며 단속에 나서는 해경에 집단으로 맞선다.


해경들이 중국어선에 진입하면 연결된 다른 선박으로 도주하면서 단속을 피하는 식이다.


해경 관계자는 "단속·보호 장비를 강화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중국어선들은 LP 가스통에 불을 붙여 위협하거나 조타실을 폐쇄하면서 해경의 접근을 막는 등 갈수록 저항방법이 진화하고 있다"며 "우리 해역을 침범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만큼 단속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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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인근 해역서 그물 끌어올리는 중국선원들.

어민들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추진되는 '인공어초'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서해5도에서는 처음으로 2013년 10억원을 들여 대청도 동쪽 해역에 불법조업 방지용 인공어초 10기를 설치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소청도 동쪽 해역에 인공어초 8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소청도에 설치된 인공어초는 가로·세로 13.2m, 높이 8.2m, 무게 53.5t 규모로 상단부와 옆면에 어망걸림장치인 갈고리를 달아 중국어선 접근을 막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태원(56) 연평면 어촌계장은 "현재 해양수산부, 군 당국 등과 함께 인공어초의 규모와 개수 등을 논의하고 있다"며 "서해5도 어장의 존폐가 걸린 문제이니만큼 정부와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속히 어민들의 피해를 막아줬으면 한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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