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비바, 프란체스코 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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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

<공연리뷰> 비바, 프란체스코 멜리!

수지오페라단 '가면무도회'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리카르도 역의 테너 프란체스코 멜리가 등장하는 순간 무대는 빛으로 가득 찼다. 그가 입을 열어 "내 친구들이여!(Amici miei, soldati!)"라는 첫 마디를 외칠 때 그 명징한 발음과 찬란한 음색은 이미 이날 저녁 공연이 아주 특별하리라는 예감을 품게 했다.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수지오페라단(단장 박수지)의 '가면무도회'가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최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최고의 리카르도'라는 극찬을 받은 멜리 뿐 아니라 역시 리카르도로 유명한 테너 마시밀리아노 피사피아, 소프라노 임세경, 바리톤 김동원까지 출연진에 포함됐으니 당연히 기대할 만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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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오페라단 제공]

멜리는 첫 아리아 '다시 그녀를 만나'(La rivedra nell'estasi)에서부터 관객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확신에 찬 발성과 자연스러운 호흡도 훌륭했지만, 충신의 아내 아멜리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애정을 드러내는 섬세한 표현력에 기쁨으로 빛나는 표정까지, 모든 면에서 리카르도의 현신(現身)이었다.


극 중 상황에 따른 심경 변화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데도 단연 탁월했다.


뱃사람으로 가장하고 점쟁이 울리카를 찾아가 뱃노래 '파도가 나를 기다리는지'(Di' tu se fedele)를 부르는 멜리는 사랑으로 들뜬 젊은 주인공 리카르도의 경쾌함과 힘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또 3막에서는 아멜리아에 대한 격정을 다스리고 그녀를 남편과 함께 떠나보내기로 결심하는 아리아 '그대를 영원히 잃어야 한다면'(Ma se m'e forza perderti)'에서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고뇌와 성숙한 기품을 보여주며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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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오페라단 제공]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는 179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제로 일어난 스웨덴 왕 구스타프 3세의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오페라다. 배경을 17세기 말 미국 보스턴으로 옮겨 보스턴의 총독 리카르도와 친구 레나토, 레나토의 아내인 아멜리아의 삼각관계를 그린다.


레나토 역을 노래한 이탈리아 바리톤 데비드 체코니의 중후한 외모와 음색은 이 신중한 역할에 잘 어울렸다. 연기의 유연성 면에서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체코니는 관객 모두가 가장 기대하는 아리아 '그 영혼을 더럽힌 너'(Eri tu che macchiavi quell'anima)를 풍부한 감성을 담아 들려줬다.


사랑을 피할 수 없어 고뇌하는 아멜리아 역의 아르헨티나 소프라노 비르지니아 톨라는 힘 있는 고음으로 드라마틱한 가창을 무리 없이 소화했으나 배역으로 완전히 들어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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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오페라단 제공]

2막에서 리카르도와 사랑의 이중창을 노래할 때 격정을 힘겹게 억제하는 내면의 고통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진정한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 특히 3막에서 죽기 전에 아들을 한 번만 안아보게 해달라고 남편에게 애원하는 아리아 '죽을게요. 하지만 마지막으로'(Morro, ma prima in grazia)에서도 감성의 깊이가 부족해 아쉬웠다.


오스카 역의 소프라노 파올라 산투치는 가벼운 음색과 배역에 어울리는 연기력으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울리카 역의 산야 아나스타샤 역시 음색과 연기 면에서 적역이었고, 그 밖의 조역 가수들도 만족스러운 가창을 들려줬다. 위너 오페라 합창단 역시 극의 밝고 쾌활한 부분을 잘 살리며 집중력 있는 합창을 선사했다.

 

카를로 골드스타인이 지휘한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는 '가면무도회' 음악의 긴장감을 명료하게 살리며 극에 박진감을 더했다. 다만 3막처럼 서정적인 비극을 표현해야 할 부분에서 어둡고 절박한 감성 대신 화려한 색채감으로 일관한 것은 다소 안타까웠다. 슬퍼야 할 때 그리 슬프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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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오페라단 제공]

프란체스코 벨로토의 연출은 전형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액자를 이용해 영혼의 소통을 보여주거나, 노예제도 폐지 이전의 미국임을 보여주기 위해 흑인 하인들을 등장시키거나, 리카르도의 죽음에 가면무도회 손님 모두가 일시에 가면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등의 소소한 아이디어 외에는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연출 방식을 택했다.


오윤균의 무대디자인 역시 사실주의적인 연출에 합당하게 건축학적인 안정감을 살려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줬고, 회전무대를 적절히 활용해 장면마다 새로움과 역동성을 더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의상 전문 제작소에서 만든 의상은 무대를 화려하게 채우는 데는 적절했지만, 가면무도회 장면의 의상 재질은 조명과 조응하지 못해 효과가 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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