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년 맞은 김광규 시인 "뚜벅뚜벅 걸어가듯이 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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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년 맞은 김광규 시인 "뚜벅뚜벅 걸어가듯이 시 썼어요"

열한번째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 펴내…문학과지성사서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밤새도록 오른손이 아파서/ 엄지손가락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서/ 설 상 차리는 데 오래 걸렸어요/ 섣달그믐날 시작해서/ 설날 오후에 떡국을 올리게 되었으니/ 한 해가 걸렸네요/ 엄마 그래도 괜찮지?" ('오른손이 아픈 날' 중)


서정적 시어로 우리네 일상을 그려온 김광규(75) 시인이 등단 40주년을 맞아 열한 번째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지난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그는 자신의 모든 시집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이번 40주년 기념 시집 역시 출판사는 문학과지성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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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시인은 15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작가가 한 출판사에서 시집 열한 권을 계속해서 내놨다는 것도 기록"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가는 식으로 시를 썼다. 그러다 보니 대략 4년에 한 번씩 시집이 나왔다"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제 열두 번째 시집을 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2011년 종심(從心·일흔)을 맞이한 시인은 지난 4년간 바라본 세상을 담담하게 그린다. 일상을 소박한 시어로 읊은 시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우러나온다. 시집에 실린 66편의 시가 모두 그렇다.


김 시인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소재를 찾아 거기로부터 시를 풀어간다"며 "독자들이 제 시를 읽고 나서 '이렇게 시를 쉽게 쓸 수 있구나' 감탄하면서 그 안의 숨은 의미를 알고 놀랐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김광규 시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예전과 다른 현재를 묘사할 때 드러나는 위트는 그의 시를 읽게 하는 동력 중 하나다.


그는 '가을 소녀'란 시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회화 속 소녀의 모습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묘사한다. 또 '건널목 우회전'에서 갑자기 뛰어든 아이 때문에 급정거한 경험을 풀어놓으며 스키니 바지에 야구 모자를 쓴 아이 엄마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언급한다.


김 시인은 "지적 아이러니는 제 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며 "비평가들도 시에 유머가 있다며 양파껍질 같이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운 게 나온다고 하더라"고 웃으며 설명했다.


"스마트폰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현상 중 하나죠.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고,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봐요. 그런 현상을 제 나름대로 아이러니로 표현한 거죠."


언뜻 보면 쉽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한 그의 시는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그의 시는 시인이 유학한 독일을 비롯해 10여 개국에서 번역됐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교과서에 수록됐고, 영국 BBC방송의 시 프로그램에도 소개됐다. 일본에서는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올 정도로 많이 읽힌다.


"해외 독자들이 제 시를 읽고 '시를 이렇게 쓰는 방법이 있구나'라고 한다고 해요. 시가 베스트셀러가 될 순 없지만 삶의 의미를 전달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제 시가 번역돼 그런 의미를 전달한다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김 시인은 서울대 졸업 후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서야 시를 쓰기 시작했다. 등단 당시 35살 '애 아빠'였던 그는 '늦깎이 시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문학과지성사를 만든 김치수, 김주연, 김병익, 김현과도 문우(文友)로서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재작년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김치수를 기리는 조시(弔詩)도 이번 시집에 실었다.


"저도 조시를 써도 적나라하게 그분을 찬양만 하진 않아요. 조시도 시로서 작품가치가 있어야 하죠. 김치수나 전숙희 선생은 우리 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신 분들이에요. 제가 저 세상에 가면 그 친구들이 먼저 가 기다리고 있다가 환영해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썼어요."


그렇다면 늙은 노모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에게 제사를 올리는 모습을 그린 '오른손이 아픈 날'을 표제작으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리나라는 여성의 힘으로 유지해오고, 발전해왔어요. 한국 남자들은 참 못 났죠. 가정을 지키지 못해 여성을 곤혹에 빠뜨리잖아요. 위안부 문제도 그런 것이죠. 시집와 자식들 기르고, 남편 뒷바라지하다 자기를 낳아준 친정 엄마 부양하기도 어려웠던 여성 입장에서 쓴 시에요. 제가 좀 여성주의자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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