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아버지가 절 보고 '기적'이라 말씀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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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아버지가 절 보고 '기적'이라 말씀하셨죠"

 

"연기도 연출도 다 과정…하루하루 감사하는 태도로 작업"

'군도: 민란의 시대'서 도치 역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봉두난발에 땟물이 자르르 흐르는 얼굴. 영락없는 거지의 모습을 한 그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도치 역을 맡은 하정우다.

그는 영화 초반 먹고사는 데 여념이 없는 백정 돌무치에서 의적단의 선봉 '쌍칼' 도치로 변신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힘은 항우장사지만 아둔하기 짝이 없다. 틱 장애가 조금 있고 툭하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말아 배배 꼬곤 한다. 가끔 텅 빈 시선으로 상대를 쳐다봐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도치는 유연하고 코믹한 인물이에요. 그가 처한 환경을 무겁지 않게 그리는 게 필요했어요. '군도'에서 제가 맡은 부분이었죠."

하정우는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영화는 제목처럼 조선 후기 학정에 시달리던 민초들의 반란을 소재로 했다. 꽤 묵직한 소재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비교적 가볍다. 그런 분위기의 중심에는 하정우가 있다.

거지도 냄새가 나 도망갈 듯한, 마흔이 넘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하정우가 맡은 도치는 극 중에서 18~20세에 불과하다. 민머리에 구성진 사투리를 마구 뿜어내는 그는 극에 자주 웃음을 실어나르는 마동석, 조진웅보다도 오히려 순도 높은 웃음을 전한다.

"윤 감독으로부터 '형이 맡을 역이 18살이에요'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빵 터졌어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사실 도치는 지능이 모자라기도 한데, '12 몽키스'에 출연했던 브래드 피트가 표현한 걸 약간 참조했어요."

지난해 '롤러코스터'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하정우는 '군도'가 연출 데뷔 후 배우로서 영화에 출연하는 첫 작품이다. 연출하기 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

"영화에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됐어요. 배우로서 어떤 한 특정한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감독에게 협조를 잘해야 한다는 거죠. (웃음) 군소리하기보다는 내가 참고 (다른 동료 배우들을) 좀 이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영화를 찍으면서 더 커졌어요."

'군도: 민란의 시대'는 액션 활극을 바탕으로 했다. 광활한 벌판에서 말을 타고 달리고, 칼과 창이 난무한다. 그런 액션 장면은 베테랑 연기자인 그로서도 쉽지 않았다.

"도치가 사용하는 칼은 나무로 만든 칼, 고무 칼, 진짜 칼 등 종류만 세 가지나 돼요. 진짜 칼은 매우 무거워 클로즈업 촬영 때 사용했고, 그보다 가벼운 나무 칼과 고무 칼로 액션 장면을 소화했습니다."

험한 촬영 장면이 이어지다보니 상처도 입었다.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천하의 고수 조윤(강동원)과의 칼싸움 장면에선 조윤이 휘두른 칼에 팔을 베이면서 파상풍 주사를 맞기도 했다. 말 타는 것도 고역이었다. 14시간 동안 연이어 촬영하다 보니 나중에는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그는 "촬영 후 2주간 걸어 다니기조차 어려웠다"고 했다.

하정우는 현재 두 번째 장편 영화를 찍고 있다. 위화(余華)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허삼관 매혈기'다. 70억 원이 들어간 꽤 규모가 큰 작품이다. 그는 영화에서 연출과 주인공을 맡았다. 상대 배역은 하지원. 전체 60회차 가운데 현재 19회차까지 찍었다.

"하지원 씨와는 호흡이 잘 맞아요. 제가 불쌍해 보였는지 잘 대해주는 것 같아요. 매일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촬영하고 있습니다."

'베를린'(2013) '더 테러 라이브'(2013) 등 각종 히트작에 출연한 하정우는 충무로 섭외 1순위다. '대세'라는 말마저 충무로에 회자됐다. 그러나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그런 시절과 비교하면 현재의 성공을 "기적"이라 말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정도.

"아버지가 가끔 저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기적'이라고 말씀하세요.(웃음) 감사할 따름이죠."

그러나 무턱대고 기적이 일어나진 않는다. 과정에 충실할 때, 하정우가 경험한 '기적'도 일어날 수 있는 법.

"연기도 연출도 다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언뜻 제가 정상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물론 그런 결과가 전부는 아니죠. 과실을 따먹기보다는 과정 안에 있을 때 저는 더 행복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를 넘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우나 감독이 될 수도 있어요. 칸영화제뿐 아니라 아카데미에서도 상을 받을 수도 있죠.(웃음). 어떤 건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오늘 하루하루 즐겁게 재밌게 살아가야겠다는 태도인 것 같아요. 하루하루를 감사해 하는 게 최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태도로 작업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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