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20년> ① 문화 불모지 부산에 '영화'를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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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부산영화제 20년> ① 문화 불모지 부산에 '영화'를 심다

도쿄와 홍콩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성장
'풍찬노숙' 수영만에서 초호화 영화의전당까지

<※ 편집자주 = 올해로 스무살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1일 그 화려한 막을 올립니다.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없는 웅장하고 화려한 전용관, '영화의전당'에서는 국내외 영화인과 관객을 맞을 준비가 한창입니다. 연합뉴스는 아시아 최대 영화축제로 성장한 부산영화제의 성과와 위기, 재도약을 위한 과제 등을 세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부산=연합뉴스) 박창수 김재홍 기자 = 부산국제영화제는 문화 불모지나 다름이 없던 부산에 '영화의 도시'라는 수식어를 안겼다.


처음 영화제 막을 올릴 때만 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부산시민은 물론 영화계에서조차 '충무로'가 아닌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는 사실에 미심쩍어했다. 두 세번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수십년 역사를 훌쩍 넘긴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를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영화제를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1996년 제1회 부산영화제가 열리기 이전의 분위기였다.


◇ 출발은 늦었지만 가파른 성장 

아시아권에서 인도 국제영화제가 1952년, 대만 금마장영화제가 1962년, 홍콩영화제가 1977년, 도쿄영화제가 1985년에 각각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부산영화제는 출발이 한참 늦었다.  


영화제에 대한 첫 논의는 1994년 11월 21일 열린 '2002년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부산영상문화진흥방안 세미나'에서 시작됐다.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부산의 도시 브랜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자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영화제 준비가 속도를 냈다. 


1996년 2월 13일 드디어 부산시청 회의실에서 문정수 전 부산시장의 주재로 사단법인 부산국제영화제 창립 총회가 열렸다.  


첫 영화제는 기대와 우려 속에 그해 9월 13일부터 21일까지 9일간 열렸다. 관객은 18만4천71명, 조직위는 기록적인 숫자로 평가했다.


그 누구도 부산영화제의 성공을 낙관하지 못했지만 중구 남포동 일대는 관객들로 가득찼다.

 

관객들의 폭발적인 성원과 영화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부산국제영화제는 단기간에 아시권에서 주목받는 영화축제로 도약했다.


제4회 때 개막작으로 소개한 한국영화 '박하사탕'이 세계영화계에서 호평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이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는 등 세계영화계에 한국영화의 위상을 알리는 계기가 찾아왔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수는 늘었고, 자연스럽게 특급 배우와 감독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도쿄영화제와 홍콩영화제가 정치적, 상업적 이유로 힘을 잃고 때 부산영화제는 국내영화 성장세를 기반으로 독보적인 우위를 점유했다.


제1회 영화제 때 상영작 규모는 55개국의 207편이었지만 지난해 제19회 때는 79개국 312편으로 늘었다.

14427197402886.jpg2014 부산영화제 폐막

예산 역시 같은 기간 22억원에서 123억원으로 늘었고 영화제 관객도 지난해 22만6천473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간이 의자가 깔린 수영만요트경기장에서 임대한 스크린을 이용해야 했던 개·패막식도 이제는 영화의전당이라는 화려한 전용관에서 열린다. 영화의전당은 풍찬노숙하며 고군분투하던 영화제에 부산시와 중앙정부가 힘을 실어준 대표적인 사례다. 


◇ 전국에 영화제 붐…영화 촬영지로도 부상

외형적 성장 못지않게 부산영화제는 국내 곳곳에 영화제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부산영화제의 성공을 계기로 경기 부천, 전북 전주, 광주 등에 새로운 국제영화제가 만들어졌다.

 

영화제의 성공은 무엇보다 항구도시 부산에 '영화도시'라는 문패를 달게 했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영화제를 성공으로 이끈 영화인들의 주도로 1999년에는 국내 최초로 영화촬영을 지원하는 기구인 부산영상위원회가 설립됐다.


영상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누구나 쉽게 부산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면서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촬영팀이 몰려왔다. 지난해에는 장편 극영화 35편을 비롯해 무려 92편의 영화와 영상물이 부산에서 촬영됐다.


또 부산영화제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지역의 유망 감독을 발굴하고 세계 영화계와 교류를 확대하며 '문화외교'의 첨병 역할도 톡톡히 수행했다.


아시아의 젊은 영화인들을 교육하는 '아시아영화아케데미'는 지난 10년간 29개 국가 241명을 배출했다.  

영화제 출범 초창기부터 부산프로모션플랜, 영화산업박람회, 아시아프로젝트마켓 등을 통해 영화를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노력도 병행했다. 지난 17년간 모두 442편의 프로젝트를 발굴해 지원했는데 이 중 200여편이 영화로 완성됐다.


영화제의 성공으로 부산은 2014년 12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에 선정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 영화인의 열정과 부산시의 아낌없는 지원

부산영화제의 성공은 수많은 영화인의 열정과 부산시의 아낌없는 지원이 합쳐져 이뤄낸 성과다.  


영화제 설립의 결단을 내린 문정수 전 부산시장, 영화제를 아낌없이 지원한 허남식 전 부산시장, 첫해부터 15년간 부산영화제를 이끈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 영화제 설립에 실무적인 역할을 한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 박광수 전 부산영상위원장, 김지석 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등 수많은 사람의 끈기와 노력이 오늘의 영화제를 만들었다는 데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한다. 


또 영화제 초창기 스태프로 일했던 사람들은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거나 영상위원회, 영화의전당 등으로 자리를 옮겨 부산영화 발전을 위해 변함없는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영화제 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오석근 부산영상위원장은 "많은 사람이 영화제 성공에 열정을 쏟았지만 그 누구보다 온갖 불편을 감소하면서 영화제를 품어온 부산시민과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은 영화팬이 있어 부산영화제가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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