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최치원의 발자취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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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최치원의 발자취 따라 걷는다

14423162805452.jpg창원시 '최치원의 길' 조성<<연합뉴스 자료사진>>
8개 지자체 '최치원 인문관광 협의회' 준비…관광상품화 논의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누군가의 발자취를 좇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을 감으면 과거 속으로 사라진 한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해 한 걸음 떼기가 쉽지 않다.


무덤 앞 비석처럼 외따로 떨어진 채 홀로 선 고운 최치원의 경남 창원시 유적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고운(孤雲) 최치원은 신라 말기 문장가이자 사상가였다.


당나라에서 유학 중이던 879년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벌대장 고병(高騈)의 종사관이 되어 서기를 했다.


이때 유명한 ‘토황소격(討黃巢檄)’을 지어 명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당나라에서의 정치적, 학문적 경험을 바탕으로 신라 사회를 개혁하려 노력했다.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등인 아찬에 올랐으나 그가 내놓은 정치 개혁안은 진골 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진골 중심의 사회체제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수도 경주를 떠나 유랑하고 은거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의 모습이다.


1천1백여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이 비운의 천재를 재조명하고, 문학적 업적과 흔적을 보존해 관광지로 활용하자는 열기가 뜨겁다.

 

경남 창원시와 합천군을 비롯해 경북 경주시, 부산 해운대구 등 전국 8개 최치원 유적 보유 자치단체가 '최치원 인문관광 도시연합협의회’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14423162701014.jpg월영대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월영대 전경 모습. 최치원은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전경

지난 7월 경주시에서 협의체 결정을 협의해놓고 진전이 없었는데, 오는 22일 합천에서 다시 만나 실무협의회를 진행한다.


충남 보령시와 홍성군도 가입을 희망하고 있어 모두 모이면 '최치원 도시연합'은 10개 지자체협의회로 확대될 전망이다.


유적지 가운데 창원에만 7곳이 있다. 모두 돌아보는데는 거리가 200km를 넘는다.


모두 최치원이 유랑하던 시절 자취를 한 자락씩 남기고 훌쩍 떠난 곳이다.


그 중 대표적이라 생각되는 장소 4군데를 찾았다. 셈하기도 어려운 긴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최치원이 머물렀던 풍경을 거닐었다.


◇월영대

마산합포구 밤밭고개로 442를 따라 월영광장 육거리 쪽으로 향하면 도로 한 편에 소박한 전각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달이 비치는 대(臺)란 뜻에서 이름 붙은 월영대(月影臺)다. 20평 남짓한 크기의 이 공간에서 최치원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칩거했다.


경남의 대표적인 최치원 유적지라고 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을 만큼 눈에 띄지 않는다.


예전엔 아래에 백사장이 있어 합포만의 절경을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각종 상가와 건물 틈바구니에서 특유의 운치를 잃은 듯 보였다. 무심한 행인은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전각 앞에 ‘월영대’라고 쓰인 높이 2.1m의 비석이 하나 있다. 최치원이 직접 각석했다고 한다.

14423162753948.jpg돝섬의 모습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돝섬의 모습. 이곳에 최치원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뒷면에 글씨가 있었다고 하나 심하게 마모된 탓에 알아볼 수 없다.


◇두곡영당

월영대를 뒤로 하고 남해고속도로 제1지선을 따라가면 마재고개 삼거리를 조금 못 미쳐 최치원선생 영당으로 빠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두곡마을에 있다고 해 두곡영당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차 한 대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한 좁은 골목을 지나면 바로 영당 앞 계단에 도착한다.


1968년 기존 영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 영당을 들였다.


그래서일까. 언뜻 보면 영당이 아니라 평범한 현대식 한옥처럼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정면으로 여닫이문이 달린 방 3칸이 보인다. 이곳에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최치원 영정 한 점이 봉안됐다. 영당이라 하여 산수화 같은 절경에 둥지를 틀라는 법은 없다. 그래도 한 상 푸짐한 잔칫상을 기대했다가 어쩐지 입맛이 심심한 백반을 한술 뜬 듯 허전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돝섬

마산합포구 해안대로를 타고 월영광장 육거리로 향하면 이정표 하나를 볼 수 있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얼마 안 가 지평선을 그리며 넓게 펼쳐진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앞으로 봄에서 뽑아낸 청록산수 한 점을 너울이 품은 것 같은 섬이 하나 보인다.


돼지가 누운 모습과 비슷하다 해 돝섬이라 불린다. 돝은 돼지의 옛말이다.


해양공원으로 꾸며진 이곳엔 최치원과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최치원이 월영대에 향학을 설치해 살고 있을 때다.

14423162728004.jpg돝섬의 모습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돝섬의 모습. 이곳에 최치원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돝섬에서 밤마다 돼지 우는소리와 함께 이상한 광채가 일었다. 최치원이 한밤에 그 괴이한 현상을 보고 화살을 쏘자 광채가 두 갈래로 갈라지며 사라졌다.


이튿날 최치원이 섬으로 가 화살이 꽂힌 곳에 재를 올렸다. 그러자 다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최치원처럼 영험할 순 없지만 돝섬을 바라보며 빨간 가을빛으로 물든 바다에서 봄이 남긴 발자취를 더듬을 순 있었다.


면적은 11만2천㎡로 마산항에서 1.5㎞ 해상에 위치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여객선을 타고 섬에 들어가 직접 그 속살을 들춰볼 수 있다.


◇고운대

돝섬에서 감천리 방향으로 10㎞가량 달리면 매끈하게 뻗은 능선을 따라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가 눈에 밟힌다.


해발 760m의 무학산(舞鶴山)이다. 산의 생김새가 마치 학이 춤추듯 날개를 펴고 나는 형세와 같다며 최치원이 이름 붙였다 한다.


서원곡유원지에서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따라 백운사로 터벅터벅 걸었다. 흐르는 땀에 차가운 계곡물로 풍덩 뛰어들어 서늘한 가을을 느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렇게 1㎞가량 산을 오르면 양 갈래 길이 보인다. 그곳에서 왼쪽 오솔길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산 중턱에 자리한 해발 397m의 고운대가 고개를 빠끔히 내민다.

 

대패로 다듬은 듯 깎아지른 바위 하나가 산에 혹이라도 생긴 것처럼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 바위 꼭대기로 다시 한 번 더 오르면 마산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그 너머로 곧게 뻗은 마창대교도 보인다. 최치원이 유람하며 수양도 함께한 곳이라 한다.


14423162780665.jpg두곡영당경남 두곡마을에 있는 두곡영당의 모습. 이곳에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최치원 영정 한 점이 봉안됐다.

괜히 고운(孤雲)이란 자가 이름 앞에 붙은 게 아니구나 싶다. 길섶을 지나는 이름 없는 나그네마저 마음이 동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이다.


하긴, 모든 여행이 그렇다. 장소가 주는 의미보다 풍기는 정취, 시선을 잡아당기는 인상에 마음을 내준다.


시간을 한 다리 건너뛰고도 여전히 가슴 벅찬 풍경에 함께 머무를 수 있어 애틋하다. 그렇게 희망하고, 그렇게 실망하며 정처없이 떠도는 게 우리네 삶이라 믿는다.


운명의 세찬 바람에 날려 외로운 구름 하나로 남아 한 시대를 표류한 최치원처럼 말이다.


이 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최치원의 흔적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남 최치원 유적지를 트레일 형태의 관광지로 꾸미자는 취지로 기획된 '고운 트레일'(가칭)만 하더라도 총 8개 시·군 18개 유적지가 있다.


경주시(상서장·독서당·서악서원)→문경시(야유암·지증대사적조탑비)→서산시(부성사·서광사)→군산시(문창서원·자천대)→함양군(학사루·상림)→합천군(농산정·홍류동)→창원시(월영대·고운대·두곡영당)→해운대구(해운정·최치원 동상)로 이어지는 코스다.


이렇게 전국에 흩어져 있는 관련 유적지만 300여곳에 달한다.


대부분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고 한다.


경남 함양을 흐르는 위천의 홍수로부터 백성과 재산을 보호하려고 최치원 선생이 조성했다는 상림(上林). 그 상림에 담긴, 백성을 사랑하는 선생의 마음이 1천여년의 세월을 지나 관광산업 활성화 움직임으로 다시 되살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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