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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둥이보다 무서운 침묵의 힘

기사입력 2014.07.1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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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사역에 평생을 바쳐온 김양원 목사(가운데)가 회장으로 활동하는 신망애복지재단 생활인들과 담소하고 있다.
    섬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아버지는 딸만 여섯을 낳고 일곱 번째 장남으로 나를 낳으셨다. 부모님에겐 세상에서 비할 수 없는 큰 기쁨이 되었지만 그 기쁨도 잠시 2살때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어머니께서 나에게만 신경을 쓰신 탓에 여동생은 정신지체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딸 일곱에 아들 하나, 그리고 장애인이 두 명씩이나 되는 우환이 겹치자 마을에서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벌 받은 집안’ 이라고 무시하며 왕따를 시켰다. 그 소외와 왕따 속에서도 나는 제법 공부도 잘했고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효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언제나 사랑하시며 늘 자랑거리로 삼으셨다.

    그런 아버지께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 드렸다. 방과 후 소꼴을 먹이러 다니면서 선배들로부터 담배를 배우게 되었고, 아버지 담배를 몰래 훔쳐 친구들과 나눠 피는 재미에 푹 빠졌다.

    초등학교 2학년, 당시 최고 좋은 담배가 25원짜리 아리랑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교실에 옷을 벗어놓고 나간 사이 친구들과 함께 세개피를 훔쳐 몰래 피워버렸다. 이것이 발각되어 저녁 늦게까지 엄청나게 많은 매를 맞고 벌을 서다가 다시는 안 피우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깜깜한 밤에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인데도 담배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담배가 없을 때는 마른 들깨 잎을 말아 피우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께서 종이에 말아 피우시던 풍년초라는 담배쌈지가 보였다. 순간 정신없이 종이에 말아 성냥불을 그어대고 길게 빨아 들였다. 몇 모금을 빨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본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아버지께서 멍하니 서서 빤히 쳐다보고 계신 것이 아닌가? 너무나 큰 충격에 아버지께서는 땅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셨다. 순간 나는 잽싸게 도망을 쳤고 헛간에 숨어 있다 밤늦게 죽을 각오를 하고 식구들 앞으로 나오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가족들은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느냐?” “얼마나 지쳤으면 헛간에서 잠이 들었느냐?” 뜻밖의 말로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는 한 말씀도 안하시고 끝까지 앉아만 계셨다. 사실 아버지가 어머니께 이야기하고 나를 묶어놓고 두 분이서 번갈아 가며 때릴 줄 알았다. 그러나 전혀 달랐다. 아버지는 내가 담배피우다 들켰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벽장에서 쌈지담배를 꺼내 오셨다. 식구들이 보는데서 모두 버리신 후 그 날 이후 내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다. 나도 그 날 이후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담배를 입에 문 적이 없다. 돌이켜 보건데 이보다 더 큰 벌은 없다. 아니 이보다 더 무서운 채찍이 어디 있겠는가? 그 무서운 침묵의 위력이 아들에 대한 위대한 아버지의 사랑이고 오늘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에너지가 되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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