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여행> 예루살렘, 예수의 흔적을 따르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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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여행> 예루살렘, 예수의 흔적을 따르는 여정

(예루살렘=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다. 연중 세계 각국에서 온 성지순례객들로 북적이며 우리나라 관광객도 한 해 3만여 명이 예루살렘을 찾는다.

곳곳이 성지이다 보니 독실한 신자들에게는 예수의 흔적을 따라가는 감격스러운 여정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어려운 여행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불교 지식이 없는 외국인도 우리나라 사찰을 찾아 감동하듯 다른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만 있으면 이스라엘 여행은 쉽고 즐겁다.

14392892883551.jpg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이진욱 기자

예루살렘은 2천 년 동안 주인이 무려 20차례나 바뀌었기에 성지이자 거대한 역사 유적지다. 페르시아, 로마, 터키에서 온 정복자들이 이곳에 종교, 역사의 흔적을 켜켜이 남겨 놓았다.


올리브산 전망대, 통곡의 벽, 비아 돌로로사는 성지이자 고도(古都)인 예루살렘에서 꼭 둘러봐야 할 명소다.


올리브산은 예수가 ‘주의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곳으로 예루살렘 시내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 좋다. 전망대에 오르면 황금색 지붕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황금사원’(Dome of Rock)이 눈에 띈다. 황금사원은 구약시대에는 유대인의 성전이었지만 691년에 무슬림이 예루살렘을 지배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의 대표 사진으로 많이 소개된 ‘통곡의 벽’(Wailing Wall)의 사연은 애틋하다. 이곳은 기원전 20년경에 유대교 성전이었으나 로마군에 의해 파괴됐다. 유대인은 일 년에 한 번만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날 예루살렘에 들어온 유대인은 파괴된 성벽 앞에서 울면서 기도했다.


통곡의 벽 광장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 검정 중절모와 양복, 귀 옆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정통 유대인들이 벽에 바짝 붙어 기도하고 있다. 벽에 머리를 기대거나 입맞춤을 하기도 한다.

또 성경인 ‘토라’(Torah)를 펼쳐놓고 온몸을 전후좌우로 흔들어가며 읽고 있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보인다.


통곡의 벽에서 검문소를 통과하면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로 연결된다. '슬픔의 길, 십자가의 길'을 뜻하는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지나던 고통의 현장이다.

 

14392893145954.jpg예루살렘 성묘성당에서 기도하는 방문객들/이진욱 기자

모두 14곳에 예수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성묘성당’(Holy Sepulchre)이다. 이곳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마지막으로 처형을 당했던 곳으로 수많은 방문객이 성당 안을 가득 채운다. 예수를 염했다는 직사각형의 바위 앞에서는 사람들이 성경을 꺼내놓고 기도를 하고 있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바위를 만지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이곳 무덤에서 사흘 동안 깊은 잠을 자고 부활했다고 한다.


◇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추모관

이스라엘은 건국 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을 추모하고 기억할 목적으로 기념관 건립 계획을 세웠다. 1953년 예루살렘에 야드 바셈(Yad Vashem)이라고 부르는 추모관이 세워지고 증·개축을 거듭해 2005년 현재의 건물이 완공됐다.

14392892999851.jpg예루살렘 홀로코스트 추모관/이진욱 기자

'희생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곳'을 뜻하는 야드 바셈 추모관에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역사적 사료와 피해자 개인 자료 등이 있다.

14392893067215.jpg예루살렘 홀로코스트 추모관에 전시된 독가스와 유대인 사진/이진욱 기자

이곳에서는 유대인들이 나치 집권 이후 게토(ghetto·유대인 집단 거주지역)로 쫓겨나 대량 학살에 이르는 과정을 역사 순서대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가스실에서 수거된 머리카락, 신발 등의 유품이 당시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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