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이 주춤하자…드라마에서 터지는 웃음폭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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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이 주춤하자…드라마에서 터지는 웃음폭탄들

'풍문으로…' 유준상·장현성, '착하지않은…' 김혜자·장미희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개그콘서트'가 주춤해도 상관없다. 여기, 개그맨보다 훨씬 더 웃긴 배우들이 나타났다.


SBS TV 월화극 '풍문으로 들었소'의 유준상(46)과 장현성(45), KBS 2TV 수목극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김혜자(74)와 장미희(58)가 매회 커다란 웃음폭탄을 터뜨리며 안방극장을 초토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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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개그콘서트'의 웃음에 기대 한주를 살아가다 최근 '개콘'의 경쟁력이 눈에 띄게 저하되면서 위로를 얻을 곳을 찾지 못했던 시청자들은 평일 밤 10시 난데없이 큰 웃음을 주는 배우들의 출현에 반가워하고 있다.


유준상과 장현성, 김혜자와 장미희가 펼치는 코미디의 앙상블은 방송과 동시에 인터넷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들이 전하는 허를 찌르는 웃음으로 봄을 맞은 안방극장이 유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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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가 빨리 자란다는데…"


'풍문으로 들었소'의 유준상과 장현성은 대한민국의 슈퍼 갑과 궁상맞은 을을 상징적으로 희화화하며 극과 극의 재미를 안겨준다.


법무법인의 대표이자 대대손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재벌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한정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치고, 동서고전에 통달한 매력적인 신사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위선이다.


고생 한줌 해보지 않고 태어날 때부터 최고로 대접받으며 살아온 한정호는 자신이 누리고 살아온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들끼리'만 앞으로도 쭉 영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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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은 그런 한정호를 맡아 '과장된 절제미'를 보여주며 매 장면 키득키득 웃게 만든다. 남들의 눈이 무서워 당황함과 분노, 수치스러움과 초조함을 애써 숨기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지으며 사는 한정호가 혼자 있을 때, 혹은 '자기 사람들'하고 있을 때 드러내는 본모습은 겉과 속이 다른 이의 전형성을 꼬집으며 희화화의 백미를 보여준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정수리 탈모만은 어찌할 수 없는 한정호가 머리카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럼에도 작은 통증도 참지 못해 모발 이식 시술 앞에서 주저하는 모습은 '쌤통'이 따로 없다.


유준상은 진지하고도 심각한 표정으로 "혹시 내가 너무 절제된 생활을 하는 건 아닌가요?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가 빨리 자란다는데…"라며 고민하는 한정호의 모습을 능청스럽게 실어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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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성은 그런 한정호의 대척점에 있는 서형식을 연기한다. 되는 일 하나 없고, 하루하루 근심만 쌓여가는 답답한 서민층인 서형식은 '강금실이 될 거라 굳게 믿었던' 둘째 딸 봄이 난데없이 여고생 미혼모가 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그랬던 그에게 한순간 서광이 비치니 바로 그 딸 봄이가 알고보니 한정호의 아들과 눈이 맞아 사고를 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순간부터 서형식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간다. 납작 엎드려야 할지, 아니면 세게 나가야 좋을지,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것인가 매순간 고민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순박하다가도 금세 뻔뻔해지고 자존심을 내세우다가도 돌연 비굴해지는 서형식은 서글픈 코미디 그 자체다.


앞서 '아내의 자격'에서 방송 기자의 '알량한' 갑질을 희화화하며 큰 호응을 얻었던 장현성은 이번에는 손에 쥔 것 하나 없는 궁상맞은 을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 연기하고 있다.


잘사는 사돈이 한몫을 떼어주지 않을까, 취직 못하는 큰딸을 구제해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면서도 겉으로는 짐짓 '쥐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콘셉트를 밀고 나가다 제풀에 지쳐버리는 장현성의 연기는 디테일이 세밀하게 살아있다.


한정호의 갑질에 열이 받아 '한정호는 반성하라, 사돈갑질 웬말이냐'라고 쓴 피켓을 들고 호기롭게 집을 나서지만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사돈갑질'이라는 말을 슬쩍 지우고, 한정호의 굳건한 위세에 "쫄린다"며 소심하게 이불을 뒤집어쓰는 서형식의 '을질'을 장현성은 살아있는 웃음으로 승화한다.


◇ "아니에요. BB크림만 바른 거예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김혜자와 장미희는 한술 더 뜬다. 이들이 이렇게 웃길 줄 몰랐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두 여배우는 매회 기대를 넘어서는 더한 웃음을 전해주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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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와 장미희는 극중 연적이다. 30년 전 죽은(사실은 기억을 상실한 채 살아있는) 김철희(이순재 분)의 부인 강순옥과 애인 장모란역을 각각 맡은 둘은 희한한 인연으로 어느날 갑자기 한집에 살게 되면서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강순옥은 무슨 심보인지 장모란이 시한부라는 소리를 듣자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먹이고 재우며 보살핀다. 하지만 순간순간 구박하고 창피를 주는 것을 통해 평생 가슴에 품어왔던 한을 조금씩 푼다.


김혜자는 곱고 환한 미소, 조근조근하고 얌전한 말투와 달리 입속에 칼을 품은 강순옥이 장모란에게 펼치는 솔직하고도 소심한 복수극을 인절미를 씹듯 쫀득쫀득하게 연기하고 있다.


장모란을 사람들에게 자기 남편의 '세컨드'라고 소개하고, 반지 하나로 장모란을 보란듯이 KO패 시킨 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강순옥을 다른 배우가 하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김혜자는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다.


청순미와 섹시미로 1970~80년대 스크린을 주름잡았던 장미희의 코믹 연기도 압권이다.


자신을 골려먹는 재미에 에너지를 얻는 강순옥에 맞서 나름 유치한 방어전을 펼치면서도 열에 아홉은 강순옥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장모란을 연기하는 장미희는 재발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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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아이 같이 토라지고 속상해하면서도 강순옥이 달래주면 금세 마음을 풀고, 우아하게 성장을 하고 나가서는 난데없이 얄미운 인간의 머리채를 잡고 행패를 부리는 장모란의 모습을 보고 웃지않기란 힘들다.


강순옥의 구박에 "언니 못됐어요. 감싸주는 듯하다 뒤로 욕하고"라며 훌쩍훌쩍 우는 장모란과 "내가 언제 뒤로 욕해. 면전에서 하잖아"라며 어이없어하는 강순옥의 앙상블은 '백문이불여일견'이다.   


강순옥이 "에이, 사진 찍으려고 집에서부터 화장하고 나왔네"라고 놀려먹자 "아니에요. BB크림만 바른 거예요"라며 소심하게 오리발을 내민 장모란이 다음 순간 강순옥과 나란히 앉아 셀카봉을 들고 웃으며 사진 찍는 장면은 전성기의 '개콘' 저리가라다.

 

이러한 김혜자와 장미희의 예상하지 못했던 코미디 호흡은 화면 가득 귀엽고 사랑스러운 웃음을 채우며 드라마에서 이들의 듀엣만 떼어내 2인극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 기대마저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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