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인간사가 다 코미디…사는게 얼마나 유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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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인간사가 다 코미디…사는게 얼마나 유치해요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서 배꼽 잡는 능청연기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일찍이 '사랑이 뭐길래' 때 코믹 연기에 대한 그의 감각은 확인한 바 있다.
 

웃기려 드는 게 아니었고, '대발이 아버지' 옆에서 기 못 펴고 살며 구시렁구시렁 생활연기를 할 뿐인데 그게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1991~1992년에 방송됐으니 벌써 20여년 전이다.

 

이후에도 '그대 그리고 나' '장미와 콩나물' '엄마가 뿔났다'를 거쳐 '청담동 살아요'까지 긴 호흡의 홈드라마를 할 때면 그의 생활밀착형 연기에서는 어김없이 코미디가 능청스럽게 배어 나왔다.

 

"인간사가 코미디 같아요. 사는 게 얼마나 유치해요. 우리가 사는 모습이 다 그렇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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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수목극 '착하지 않은 여자들'을 통해 또다시 허를 찌르는 코미디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배우 김혜자(74)를 지난 16일 인터뷰했다.

 

'안국동 선생님'이라 불리는 유명 요리선생인 강순옥. 30년 전 남편을 여의고(사실은 살아있지만) 홀로 두 딸을 키워온 그는 남편이 죽기 전까지 마음에 품은 여인 장모란(장미희 분)에게 평생 이를 갈아왔다.

 

강순옥은 사고뭉치 둘째 딸 때문에 우연히 재회한 장모란이 시한부라는 말을 듣고는 난데없이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 먹이고 재운다. 하지만 그의 호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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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옥은 장모란을 집에 데려오기 전 일단 고운 한복 차림에 버선발로 장모란의 가슴팍에 기습 하이킥을 날리는 것으로 1차 복수를 했고, 집에 데리고 와서는 보약을 해 먹이는 와중에 '불륜'이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를 "남편의 세컨드"라고 대놓고 소개하는 등 펀치를 계속 날리고 있다.

 

이런 강순옥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김혜자의 활약은 젊은층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으며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부드럽게 상승곡선을 그리게 하고 있다.

 

"우린 심각하게 연기해요. 코미디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강순옥이나 장모란이나 다 심각한데 상황이 웃긴거죠. 이러거나 저러거나 인간사는 다 거기서 거기예요. 똑같아요. 당사자들은 심각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면 코믹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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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가 펼친 코믹연기 중 최근 화제가 된 것은 강순옥이 다이아몬드 반지로 장모란에게 또다시 한방을 제대로 먹인 내용이었다.

 

남편이 강순옥과 장모란에게 똑같이 생긴 반지를 선물했는데, 알고보니 강순옥 것은 다이아몬드였고 장모란 것은 큐빅이라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밝혀지면서 강순옥은 천하를 다 얻은 듯 헤벌쭉 좋아하며 손가락에 낀 반지를 대놓고 자랑한다.

 

"강순옥이 '내 인생에 이런 순간이 올지 몰랐다'며 좋아하잖아요. 반지에 대한 사연은 이번주 방송에 나오는데 강순옥이 그럴만 했어요. 분명한 것은 강순옥이 남편을 엄청 사랑했다는 거예요. 남편이 장모란에게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차에 죽어버린 건데, 그전까지는 살면서 강순옥에게 신뢰를 준 남자였어요. 30년 이상이 지났지만 강순옥은 여전히 남편을 믿고 있어요. 현명한 여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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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의 연기는 그의 구박을 받아야하는 장미희(58)와의 앙상블에서 완성된다. 김혜자와 장미희는 2008년 '엄마가 뿔났다'에서 사돈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나랑 장미희 씨는 나이차가 많이 나요. 실제로는 연적이 될 수 없죠. 하지만 극중에서 강순옥과 장모란은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는 것으로 설정돼 있어요. 그럼에도 강순옥 눈에는 장모란이 영락없이 어린애 같은 거예요. 사업을 해서 사회 경험이 많을 줄 알았는데 하는 짓을 보면 '어머, 쟤 애 잖아' '얘 왜 이래' 하는 순간이 많은 거죠.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그래도 예쁘네' 싶기도 하고요. 강순옥은 장모란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예뻐하는 것도 아니에요. 묘한 감정이죠. 어느 순간은 여자로서 참 예쁘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은 아주 꼴보기 싫어하죠. 굉장히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되고 수시로 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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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옥과 장모란이 함께 하는 장면은 보는 사람이 재미있으니 촬영장에서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장에 집중해야해서 웃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어요. 대사가 길지는 않아도 장모란에 대한 강순옥의 마음이 복잡하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가 아니라 마음이 굉장히 분주해요.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다가도, 내 인생에 왜 끼어들었냐고 원망하는 마음도 있어서 그런 감정들을 오가느라 바빠요. 또 장모란과의 장면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촬영분량이 많아요. 엄청 찍어서 편집을 아주 섬세하게 해요. 촬영이 쉴 틈없이 돌아가니까 농담할 새도 없어요."

 

하지만 이 드라마가 연기자로서도 재미있는 것은 분명하다.

 

"재밌죠. 일단 늘어지지 않아서 좋아요. 슬프다고 늘어지지 않아요. 이제는 슬픔을 그렇게 표현하는 시대가 아닌 것 같아요. 여러 상황이 슬프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살고 있으니까 늘어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김인영 작가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도 작가가 참 신선하게 썼다는 느낌이 들었고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하는 드라마라 조심스러워서 선뜻 출연하겠다는 말을 안했죠. 확신이 없었어요. 그때 제작진이 만나자고 하더니 엄청 설명을 잘해주더라고요." 

 

강순옥의 코미디에 배꼽을 잡는다고 했더니, 우아하고 인자한 미소 뒤 '명랑 코미디'를 숨기고 있는 베테랑 김혜자는 이렇게 답을 했다.

 

"그러니까 날 캐스팅했겠죠.(웃음)"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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