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미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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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선교지는 모든 면에서 출생하고 자란 조국과 다르다.  사람은 물론 문화, 언어 그리고 관습이 다르며 기후, 풍토, 기압과 기온도 다르다.  이 때문에 선교지에서 선교사 가족들은 갖가지 고통을 당하기 마련이다.


러시아 시베리아에 주재하기 시작하며 우리 가족 3인은 처음 일 개월 동안 좁은 아파트에 갇혀 지내야 했다.  러시아에 대한 험한 소문을 한국에 들었고 모든 것이 낯설어 밖에 나가기가 참으로 무서웠다.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다 보니 우리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이 때 한국에서라면 아무 것도 아닌 말에 우리들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만약 남편과 아버지인 선교사의 의식이 가부장적 권위와 목회자적 권위에 절어 있다면 선교지에서 부인 선교사와 자녀들은 더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스트레스는 일방적 희생으로 나타난다.  남편은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부인과 자녀들은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다.


한국에서라면 별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 일이 선교지에선 스트레스가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선교지에서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부인 선교사와 자녀들은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앓기 시작한다.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있다. 선교사는 한국 교회에서 배운 대로 선교지에서도 목회자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남편 선교사는 잠을 줄여가며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  자동적으로 부인과 자녀들도 이른 아침부터 움직여야 한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은근히 그리고 말 못할 고통을 당한다.  그 원인은 선교지의 기후와 풍토가 한국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데 있다.


시베리아는 한국보다 대기압이 보통 30-40 정도 낮다.  그 만큼 공기 중 산소 함유량이 한국보다 적다.  시베리아에서 사람들은 쉽게 피로를 느낀다.  이 이외 시베리아에서 겨울은 7개월 동안 계속되고 이 때 평균 기온은 영하 25도이다.  이곳에서 일년 중 절반 이상 선교사 가족들은 강추위에 늘 노출된다.  시베리아의 추위는 한기(寒氣) 즉 몸을 해롭게 하는 음기(喑氣)와 같다.  찬 기운에 오래 노출되면 혈액 순환장애가 일어난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한번 쌓인 피로는 시베리아에서 쉽게 그리고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  부지런함이 오히려 피로를 누적시킬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러시아 인들은 토요일과 주일 늘어지게 잠을 잔다.  선교 초기 이를 모른 남편 선교사는 여전히 소명감과 사명감에 불타 있다.  그럴수록 그 만큼 가족들은 더 괴로워진다.


상황과 여건이 조국의 그것과 다름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선 한국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경건 훈련 방법도 바꾸어야 한다.  금욕적 방법이 아닌 아주 자연스런 방법으로 훈련해야 한다. 


이렇게 선교사의 가족들은 이질적인 환경으로 인해 인식하지 못한 체 이중삼중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남편과 아버지의 가부장적 그리고 목회자적 권위 의식에 의해 스트레스는 더 가중된다.  시베리아에 주재한 후 3년째 되었다.  한국에서 비교적 건강했던 임 월조 선교사가 그만 탈진 상태(burn-out)에 이르렀다.  현지 병원에 즉시 입원했고 퇴원 후 거의 일년간 누워 살아야 했다.


이런 가정 위기를 맞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남편 목회자인 나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부인 선교사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회개 기도를 올렸다.  한번 무너진 임선교사의 건강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으로 귀국하면 거짓말처럼 임선교사는 회복되었다.  우선 기압이 높아 호흡량이 늘어나고 선교지 시베리아보다 날씨가 맑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교지보다 음식이 풍성하고 다양하여 쉽게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이렇게 선교사들은 따뜻한 어미 품과 같은 조국에서 회복된다.


2005년 두 번째 안식년을 맞아 귀국했다.  그러나 부인 선교사는 선교지에서처럼 호흡 장애로 고통을 당했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12년간 선교지에서 살면서 부인 선교사의 건강이 그 만큼 악화되었다.  큰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 검사를 받았다.  삼일 후 담당 의사는 육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판정하며 정신과 상담을 요구했다. 


상담 결과 마침내 병명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공항 장애증’(panic disorder)이었다.  12년 동안 병의 원인과 처방을 몰라 속으로 꿍꿍 앓았던 우리였다. 공항 장애증은 여러 가지 증세를 보이지만 부인 선교사에게는 한결같이 ‘과호흡’ 즉 호흡 장애를 수반한다.  이 증세는 처음 심리적 스트레스에서 출발되다.  감사하게도 남편 선교사의 회개와 부부 삶의 변화 덕분에 정신적 스트레스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동안 쌓인 영향 때문인가 몸이 힘들 때마다 공항 장애증은 호흡 장애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 사역으 위해 시베리아에 계속 주재했다.  임선교사의 몸이 점점 더 허약해져 갔다.  시베리아의 겨울 거리는 영하 20-30도이다.  그러나 아파트 안은 영상 23도를 유지한다.  부인 선교사는 따뜻한 방 안에서도 몸 안에 한기(寒氣)를 느끼며 벌벌 떨었다.  이젠 시베리아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깨달았다.


현지 러시아 침례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양해를 얻어 2008년 연말 러시아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에 속하는 흑해 지역에 위치한 ‘아나빠’ 시로 이사했다.  이곳의 기후와 날씨는 거의 한국과 비슷하다.  일년을 지내보니 부인 임선교사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시베리아에서 몸이 말라가며 힘을 잃어 걷기도 힘들어했던 붕ㄴ 선교사가 한국에서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인 선교사의 건강을 고려하여 좀 더 일찍 선교지를 바꾸어야 했었는데 라는  후회가 때 늦게 왔다.  이 때 교회 목회 못지 않게 가족 목회도 중요함을 깨달았다.  가정과 가족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영향은 목회 현장에도 미친다. 가까운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을 강대상에서 외칠 수 있는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교지에서 부인 선교사와 아들의 고생을 죽 지켜 본 남편 선교사는 그저 미안할 뿐이다.  이들은 주를 위해 기꺼이 동의하고 남편과 아버지를 따라 시베리아로 왔을 뿐이다.  그러나 남편 목회자의 미숙함으로 인해 부인 선교사가 지병(持病)을 얻었다.  “여보, 미안하오!  “그 동안 헌신에 정말 고마워 하고 있어!” 이 말 이외 달리 부인 선교사를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다.


글 / 장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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