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뉴스목록
-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소속 26개 교단 및 각 장로교단들을 초청하여 진행된 제13회 장로교의 날 기념예배(국민문화신문) 지문일 기자 = (사)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김종준목사)는 제13회 한국장로교의 날을 기념하여 2021년 7월 8일 오후2시 꽃동산교회(서울특별시 노원구 노원로 420)에서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회원교단 총회장, 총무/사무총장, 임원, 평신도지도자, 교회학교 대표, 신학생 대표 등이 모여 장로 전통에 따른 기념 예배를 드렸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제13회 한국장로교의 날을 맞아 한국교회의 영적부흥과 코로나 이후 한국장로교회의 연합을 통한 성숙과 다음세대를 세우기위한 대안과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한국장로교의 날 기념예배를 드렸다. 특히 한국장로교의 날 예배를 통하여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활동해온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코로나19 감염증 팬데믹 이후 교회 회복과 개혁을 위한 교회연합운동의 대안과 실천과제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코로나19 감염증 확진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많은 수가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다음세대(신학대학 신대원 원우회 대표 등)와 평신도 지도력이 참여하는 장로교의 미래 지향적이고 교희의 다양한 지체가 함께 참여하는 예배를 시도하였다. 제13회 한국장로교의 날 기념예배는 상임대회장 한영훈 목사의 인도로 찬송가 570장을 부른 후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공동대회장 안성삼목사(개혁총회장)의 장로교의 날 예배를 위해 기도한 후 한장총 부회장 김순미장로가 구약성경 다니엘 8장1~2절을 봉독하고, 한장총 부회장 임인기목사가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12~13절을 봉독하였다. 코로나19 방역지침에 의거 꽃동산교회 연합찬양대의 “할렐루야 놀라운 구세주” 동영상을 시청하고, 한교총 대표회장 소강석목사가 제13회 한국장로교의 날 주제와 같이 “다음세대를 세우자”라는 제하에 말씀을 선포하였다. 특별기도 시간 순서와 제13회 한국장로교의 날 기념식을 진행 하였다. 공동대회장 박병화목사(합신 총회장)가 2021 꽃동산 선언문으로 제13회 한국장로교의 날 비전을 선언하고 기획위원장 김종명목사의 선창으로 실천강령을 낭독하고, 순서자와 한장총 소속의 총회장들이 등단하여 고영기목사가 평등에 관한 법률 제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니 박수로 받았다. 찬송가 220장을 부르고 공동대회장 이상재목사(대신 총회장)의 파송의 기도로 장로교의 날 기념식을 마쳤다. 순서자와 한장총 소속의 총회장들이 등단하여 고영기목사가 평등에 관한 법률 제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낭독
-
한장총 6.25 국가 안보기도회 및 한국장로교 역사탐방한장총 6.25 국가 안보기도회 및 한국장로교 역사탐방 (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 = (사)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김종준목사)는 제13회 한국장로교의 날을 기념하여 6.25 국가안보기도회를 6월 21~22일 대북 접경지역이며 구한말 복음의 통로가 되었던 백령도의 중화동교회에서 개최하였다. 6.25 국가 안보기도회는 제13회 한국장로교의 날을 기념하여 (사)한국장로교총연합회가 지속해온 평화와 통일과 나라를 사랑하는 한국교회의 기도운동의 전통을 이어가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제13회 한국장로교의 날을 기념하여 외국인 선교사들이 아닌 현지인들에 의해 설립된 125년 역사의 중화동교회(예장합동 소속)와 백령기독교역사관을 탐방하여 자생적 한국 장로교 초기 역사와 중화동교회 설립한 허득, 서경조 등 선조들의 신앙의 발자취를 찾아보았다. 백령도는 구한말 조선에 복음이 전해지는 통로의 위치에 있었다. 1816년 맥스웰(Murrey Maxwell)대령이 이끌던 선단에 클리포드(H.J.Clifford) 해군 대위가 자비로 승선하여 각 지역의 언어를 수집하고 선교 가능성을 탐사하기 위해 백령도에 정박하여 성경을 나누어 주었다고 하며, 1832년 칼 귀출라프(Karl F.A.Gutzlaff) 선교사가 영국 런던 선교회의 파송을 받고 동인도 회사 무역선에 통역 겸 선상 의사로 승선하여 개신교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첫 번째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는 1865년에 서북해안을 찾아와 백령도를 비롯한 황해도와 평안도를 순회하며 전도했고, 1886년 미국상선 제네럴 셔먼호를 타고 백령도를 거쳐 대동강 양각도에서 순교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장로교 역사탐방은 백령기독교역사관에서 공동회장 이남규목사(예장호헌 총회장)의 사회로 시작하여 대표회장 김종준목사의 인사말씀이 있은 후 공동회장 이원해 목사(예장한영 총회장)가 기도하고, 백령도 기독교 역사라는 제목으로 중화동교회 조정헌목사의 강의가 있은 후 직전대표회장 김수읍 목사의 마무리 기도로 제13회 한국장로교의 날 행사의 일환인 한국장로교 역사탐방을 은혜와 감동 중에 마쳤다. 또한 백령도는 남북한이 대치중인 지역으로 대한민국 서해 최북단의 땅으로 남한 본토보다 북한 내륙에 가까운 접경지역으로 서울과의 직선거리는 시청 기준 201km지만, 북한 평양과의 거리는 146km이며 장산곶에서는 14km도 채 되지 않는 대북 인접지역이다. 국가 안보기도회에 앞서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방문하여 나라사랑의 뜻을 되새겼다. 천안함 사건은 2010년 3월 25일 21시 22분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대한민국 포항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훈련 도중 북한 해군 잠수정의 어뢰에 공격을 당해 선체가 반파되면서 침몰하여 46명이 전사하였다. 21일 저녁7시, 백령도 중화동교회에서 개최된 6.25국가안보기도회는 상임회장의 예배인도로 시작하여 예장개혁 총무 김순귀목사가 기도하고, 예배 인도자가 시편 127편 1~2절을 봉독하고 대표회장 김종준목사가 신앙과 애국이라는 제하의 설교가 있은 후 특별 기도로 이어졌다. 한반도의 복음통일을 위하여 부회장 임인기목사가 기도했고,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예장합동복구 총무 소병기목사가 기도했으며,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하여 예장개혁선교 총무 강동규 목사가 기도하고, 다음세대를 위하여 예장합동중앙 총무 이승진목사가 기도하였고, 한국교회 부흥을 위하여 기도위원장 강창훈 목사가 기도했다. 특별기도 이후에 증경대표회장 김선규 목사의 기도로 마쳤다.
-
배우 임동진 목사, 25일 칼빈대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 수여 받아칼빈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사진제공: 칼빈대학교 (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 칼빈대학교(총장 김근수 박사)는 25일 임동진 목사에게 명예 인문학 박사를 수여했다. 이날 명예인문학박사를 받은 임동진 목사는 “부족하고 한없이 작은 자인 제게 큰 영광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더욱 더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명 연기자인 임동진 목사는 중학생 때부터 연극에 입문했다.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1964년에 동랑극단 '생명'으로 연극 배우 생활을 했고 67년 TBC 공채 8기로 데뷔해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2년엔 문화관광부 옥관 문화 훈장을 받은 적 있으며 교계에서 97년 기독교문화대상 연극부문 대상, 2003년 제2회 한국기독교문화예술 대상을 받았다. 60대에 루터대 신학대학원을 졸업, 목사 안수를 받고 경기 용인 열린문교회를 개척했다. 목회에서 은퇴한 뒤 임목사는 기독교 문화선교 발전을 위해 힘을 쏟았다. TV 방송 연기자 기독신우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극단 ‘예맥’ 대표를 맡고 있으며, 국제기아대책기구 홍보대사이다. 그는 현재 한국기독문화예술인총연합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학위수여식은 황건영 박사(부총장)의 축사 및 서승환·이아네스 교수는 의 축가 후 김진웅 박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칼빈대학교 김근수 총장은 축사를 통해 “임동진 목사에게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수여할 기회와 영광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다”며 “화려하고 넓은길을 가다가 복음을 전하는 좁고 힘든 길을 선택한 임 목사의 삶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명예 이사장인 김진웅 박사는 ‘존귀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 임동진 박사가 많은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이가 되길 기원했다. 김 박사는 “칼빈대 이사회가 임목사께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수여함으로서 더욱 더 주의 복음을 전하고 기독교문화선교를 위해 크게 쓰임받는 존귀한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고 축하했다.
-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 ‘코로나 블루를 환희로 바꾸다’용인 동백호수 공원 삼거리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를 진행하고 있는 연합회 임원진 부활절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 소망을 가져다주는 굉장히 중요한 절기이다. 그것은 죽음의 문제로 고민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소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는 해마다 부활절을 기념하며 온 땅에 선포하는 부활절 축제를 개최한다. 모든 축제가 그러하듯 축제에는 많이 사람들이 (모여서) 그 기쁨을 누릴 때, 그 의미가 더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구성동백기독교연합회 주관으로 지난 24일(토) 오후 6시부터 동백호수 공원 삼거리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는 참으로 의미 있는 축제라고 할 수 있다. ‘부활, 생명, 빛’이 포함된 그 이름에서 보듯이 이 축제는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코로나 블루에 빠진 사람들의 삶을 환희로 바꾸는 축제요, 모든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이날 축제는 1부 예배, 2부 점등식 순서로 진행되었다. 1부에는 최성균 목사(동백지구촌교회 담임, 구성동백연합회 공동회장)는 설교를 통해 “참 빛이신 예수님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유일한 구세주임을 선포하면서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가 문화선교, 생태계 선교로 정착되기를 소망한다”라고 전했다. 용인 동백호수 공원 삼거리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 2부에는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 점등식을 가졌다. 점등식이 거행되자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어두움이 점점 짙어지면서 이곳에 설치된 조형물의 빛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다가와서 환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볼 수 있는 환희의 모습이었다. 용인시의 상징적인 중심지인 동백호수 공원 삼거리 광장에서 코로나 블루를 환희로 바꾸기에 충분한 축제의 장이 열리게 된 것은 참으로 보람된 일이라 하겠다. (‘corona’는 라틴어로 ‘왕관’이라는 뜻이다. 지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왕관을 쓰고 온 세상을 공포와 죽음으로 몰아넣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는 5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용인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곳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의 장으로 와서 즐길 수 있다. 아무쪼록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가 용인시를 넘어서 우리나라와 세계에 소망을 주는 아름다운 축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용인 동백호수 공원 삼거리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 용인 동백호수 공원 삼거리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생명의 빛> 축제 자료제공 : 장영승 목사( 구성동백기독교연합회 총무)
-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한국기독교 역사와 문화를 한 공간에 담다숭실대학교 한국 기독교 박물관. (서울=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 숭실대학교 부속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학교 정문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한 약 1만 600여 점의 한민족 및 한국 기독교 관계 자료와 유물을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대 중국과 로마 시대의 유물을 다량 소장하고 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1층 한국기독교역사실과 2층 숭실역사실, 3층 근대화와 민족운동사실, 고고미술실 등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시민과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 한국기독교문화를 보다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한국기독교박물관’ 숭실대학 출신의 장로교 목사이자 고고학자인 김양선 교수의 일생에 걸친 열정과 그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장로교 목사이자 고고학자인 고(故)김양선 교수가 미군정청으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아 1948년 4월 20일 서울 남산에 있는 옛 조선신궁 터에 ‘기독교박물관’과 ‘매산고고미술관’을 개관·운영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인하여 많은 자료가 분실되고 박물관 자리가 국회의사당 부지로 결정됨에 따라 1958년 2월 28일 폐관됐었지만, 그 후 김양선 선생의 민족문화와 기독교 문화 창달을 위한 숭고한 뜻에 의해, 1967년 10월 10일 숭실 개교 70주년을 맞아 숭실대학교 부속 박물관으로 새롭게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실. 박물관 1층 한국기독교역사실은 한국기독교 역사의 전사에 해당하는 경교 관련 유물들을 비롯하여 초기 천주교 교리서와 신앙서적, 박해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하여 천주교의 수용과 자생적 천주교회 설립 성장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한국개신교의 수용과정과 선교사 활동, 기독교의 발전상을 살펴볼 수 있는 한글 성경을 비롯한 다량의 자료가 전시되어있어 개신교의 발전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기독교는 한국기독교의 역사의 전사에 해당하는 경교로부터 시작한다. 경교는 기독교의 한 종류로 페르시아 지방에서 7~8세기 중국에 전래 되어 유행했던 기독교의 일파이다. 당시 당과 밀접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던 통일신라에도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교돌십자가. 전시실을 들어가자마자 바로 만나볼 수 있는 유물은 ‘경교 돌십자가’이다. 1956년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된 십자가 형태의 석물로, 8~9세기 무렵 경교가 우리나라게 들어온 것을 보여주는 대표 유물이다. 한글 성경. 찬송가. 한국개신교는 세계 기독교 선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것은 외국 선교사가 비기독교국가인 한국 땅에 공식 입국하기 전에 한국인들 스스로 신앙공동체를 형성했고, 한 발 더 나아가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 출판하여 읽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기독교가 외국선교사들의 일방적인 선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기독교인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 속에 형성 발전하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에서의 개신교 유입은 1832년 내한한 독일 출신인 선교사 귀츨라프와 1866년 이 땅에서 첫 순교자가 된 영국 선교사 토마스의 선교 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외국 선교사들은 의료와 교육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벌여 외래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켰고, 성경 번역과 문서선교를 통하여 신앙 확산에 노력하였다. 전도문서 출간. 조선성교서회는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 및 정기간행물과 잡지류를 간행하여 전국에 보급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설립된 이래 1890년 ‘성교촬리’를 시작으로 ‘훈진언(1891년)’,‘쟝원량우샹론(1892년)’ 등 전도교리문서를 출간했다. 선교사들의 성서번역을 비롯한 초기 문서선교 사업은 기독교와 일반 문화발전에 지대한 공을 남겼다. 초기 선교사들은 의료와 교육사업에 주력하는 한편 선교체제가 정착되어 가면서 점차 한글 성경 보급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1887년 서울지역 선교사들이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하여 성경 번역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1890년에 ‘누가복음전’을, 1892년 ‘마태복음전’을 발간했다. 그 후 성서 번역사업은 급진전되어 1900년 마침내 ‘신약전서’ 출판하게 된다. 번역위원으로 언더우드, 아펜젤러, 레이놀즈, 게일, 스크랜톤, 최병헌 등이 활약하였다. 광범위하게 보급된 한글 번역 성경은 기독교계의 한글 교육과 계몽운동을 촉진하였고 한글의 민중문자화에 공헌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가 유화적인 문화정치로 통치방식을 전환하면서 외견상 문화활동의 폭은 넓어졌다. 기독교계 역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문화 활동이 기독교 신문 잡지의 발간과 교육사업이다. 그리스도신문. 기독교 관련 서적의 발간으로 서구 신한과 문화를 국내에 소개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적 기독교문화 창출에 기여하였다. 1897년 2월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죠선크리스도인회보’를 창간하였고,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가가 ‘그리스도신문’을 주간으로 창간했다. 1915년에는 양교파 연합으로 기독교 주간신문인 ‘기독신보’를 발행하였다. 식민 통치를 받으면서도 한국교회는 기독교 문서운동, 주일학교 운동, 농촌운동 들을 통해 민족사회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1930년대 들면서 황국신민화정책을 추진하며 신사참배를 강요함에 따라 기독교계는 크게 동요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교회와 교인들은 집단적 저항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자발적 수용과 전파라는 역사적 경험 위에서 한국개신교는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하며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최대 교단이던 장로교는 조선예수장로회 총회를 조직하여 한국교회조직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러한 교회조직은 정규 신학교육 및 주일학교 운동 등의 발전으로 더욱 그 토대가 강화되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송만영 관장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앞으로 각종 학술활동 및 사회교육활동 등을 통해 한국의 문화유산과 기독교 문화를 보다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한국기독교문화를 보다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감상하기에 충분하다. 기독교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한국기독교박물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전반적인 기독교역사와 배경, 문화적 가치에 대해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다.
-
4월 4일 부활절 맞아 한국교회연합회에서 부활절 메시지를 전했다2020년 부활절 행사 사진. 사진 제공: 한국 교회 연합 (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 한국교회연합 송태섭 대표 회장은 4월 4일 다가오는 부활절을 맞이하여 2021년 부활절 메시지를 남겼다. 송태섭 대표 회장은 사망 권세 깨뜨리고 부활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온누리에 충만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송태섭 대표 회장은 부활절 메시지를 전했다. “주님이 십자가의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날이다. 주님의 부활은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 분쟁, 갈등, 고통, 탄식이 사라지고 친히 ‘샬롬’이 되심으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신 인간 구속의 위대한 사건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드리워진 휘장이 찢어지고,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이 허물어졌다. 이처럼 주님의 부활은 인종과 종교, 정치와 이념, 사상을 초월하여 온 인류에 참된 평화와 생명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세상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불의와 불법, 불공정은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고 타락의 깊은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의 부활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 뒤에는 칠흑 같은 어둠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코로나19 감염증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오늘, 우리는 주님의 고난이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닌 오늘의 실존임을 매일 매 순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질고와 고난까지 몸소 견디시고, 친히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찬란한 빛으로 우리에게 다시 오셨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질고는 주님의 고난과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8:17)는 말씀처럼 찬란한 부활의 새벽을 맞기 위한 연단일 뿐입니다. 고난 뒤에 찬란한 부활의 새벽이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 모두는 압니다. 한국교회는 주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의 공의와 자유, 평화가 강같이 흐르는 나라, 보수와 진보, 갈등과 분열, 편 가르기가 없는 나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동성애, 차별금지법에서 떠나 천부인권이 존중되는 나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깊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이 부활하신 기쁜 소식이 인간의 존엄성마저 짓밟힌 채 최악의 인권 탄압에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에게 전해져서 주님이 주신 자유와 평화가 실현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들이 핵을 포기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날, 하나님이 진정한 화해와 용서로 남과 북을 하나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하는 약한 자, 작은 자를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겸손한 자세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이 피 값으로 주신 생명의 위대한 능력을 매일 매일 삶의 현장 속에서 증거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이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진 것처럼 한국교회가 오늘 당하는 고난이 당장 입에는 쓸지언정 믿음의 길에 유익이 될 것입니다. 장차 큰 은혜로 돌아올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감사함으로 인내하고 이겨냄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세상에 선포하는 한국교회, 주님의 부활의 산증인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다가오는 부활절을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이겨낼 것을 전했다. 매년 기독교 연합회나 단체 또한, 지역 연합회에서 부활절이 되면 교회들이 연합하여 새벽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아름다운 모습이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역사이자 사실이며 기념 해야 될 날이다. 코로나 19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어 부활절 연합예배의 전통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
118년의 역사가 깃들인 숭의 여자 대학교, 그 역사적 발자취를 찾아서숭의 여자 대학교 전경. (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 118년의 역사를 가진 숭의여자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사립 여자 전문대학교이다. 일제에 항거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조국을 지킨 독립유공자들을 이곳, 숭의여대에서 만날 수 있다. 김경희, 최형록, 이효덕, 안정석, 구순화, 김온순 등의 독립유공자를 다수 배출한 숭의여자대학교는 1903년 평양에 개교한 조선 최초의 여학교이다. 과거 우리나라 여성들은 가부장권이 철저히 확립된 채 순종과 인내를 강요당하며 살아왔다. 여성들은 가사 노동이 중심이었고 사회활동, 경제활동 등에서는 배제되었다. 그러나 조선 말 쇄국 정치가 무너지고 서양 여러 나라와 통상이 이루어지며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여성들의 자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1884년 7월에 맥클레이에게 허락한 고종의 선교 윤허는 학교와 병원 사업에 국한되었다. 의료선교는 1885년 알렌에 의해 광혜원이란 병원이 세워졌고, 학교 선교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튼 등에 의해 서울에서 남녀 학교가 세워지고 지방에도 선교부 또는 지방 교인들이 세운 기독교 학교가 늘어났다. 기독교의 의료, 교육 선교 정책이 뿌리를 뻗어 사회에 새로운 풍조를 일으키자 여성 교육의 필요성이 고조되었다. 그러던 1903년 한국 역사의 여명기에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마포 삼열 목사가 교육과 선교를 목적으로 근대 서구식 교육을 시작함으로써 숭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숭의의 설립자인 마포 삼열 목사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무수한 위기와 수난을 겪으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한국인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치밀한 계획과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일을 추진했으며, 신도들과 함께 기도하며 말씀으로 어린 양들을 양육하는 겸손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었다. 1897년 여성 교육의 깃발을 들고 평양에 하나님의 진리와 신문학을 가르치는 새 교육기관인 ‘예수교소학교’가 설립되었다. 학제는 6년 과정으로, 1903년제 1회 졸업생 3명 김애희, 김유선, 김경희가 배출되었다. 예수교소학교를 나온 세 명 졸업생들의 진학을 위해 중등교육을 실시하자는 마포삼열목사의 계획을 선교부에서 받아들여, 1903년 10월 31일 조선 최초의 여학교, 숭의여학교가 탄생되었다. 1908년 5월, 숭의여학교 제 1회 졸업생인 김보원, 김유선, 김경희, 김애희, 김신보는 3·1 만세운동과 함께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숭의는 ‘의를 높이고 숭상한다’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지식을 가르치는 일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 봉사 실현에 더욱 힘썼으며 그리스도의 정신에 입각하여 완숙한 인간성을 형성하도록 노력했다. 김보원은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하고 1919년 ‘애국부인회’를 조직한다. 애국부인회는 뜻을 함께할 이들을 모으고 회비를 걷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했다. 김유선은 3·1운동 후 전도대를 조직해 독립정신 함양에 힘을 기울였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후 일제가 식민지 정책을 본격적으로 펴나가자 1913년 숭의여학교 졸업생으로 숭의여학교 교사를 거쳐 숭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김경희는 숭의여학교 교사였던 황애덕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는 여성 비밀 결사대인 송죽회를 조직했다. 숭의의 교사들은 수업 과정에서 애국, 애족사상을 은밀히 주입시켰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1919년 고종의 붕어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불타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송죽회 대원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가 하면 모금 활동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상하이 임시정부로 송금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다. 또한, 3·1운동 전 몰래 200여 개의 태극기를 만들어 3·1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1930년대 들어 일제의 식민정책이 ‘민족말살정책’으로 한층 노골적으로 변하면서 탄압의 강도가 더욱 세졌다. 이 당시 일제가 신사참배를 더욱 강요하면서 기독교계 학교와의 대립은 더욱 심화됐다.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가 계속됐으나 당시 숭의여학교 교장이었던 선우리 교장은 요구를 거부하며 1936년 1월 18일 답변서를 제출하였지만, 이에 조선총독부는 숭의여학교를 폐교하고, 선우 교장을 직위 해제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 땅의 여명기에 많은 여성 인재를 길러 새 역사 창조에 크게 기여한 명문 여학교 숭의여학교는 신사참배라는 부당한 강요에 맞서 싸우다 마침내 스스로 문을 닫게 되었다. 1952년 당시 박현숙 선생은 숭의 재건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일제의 강요에 항거하다 폐교를 한 숭의여학교는 1953년 4월, 박현숙 선생이 재단법인 숭의학원을 설립함에 따라 숭의여자고등학교로 재건되었다. 신사참배 터 숭의학원 설립. 그 자리는 우연히도 일제의 탄압을 상징했던 남산 캠퍼스, 경성 신사 자리였다. 숭의인들은 1955년 11월 23일 교사 건축공사의 첫 작업으로 신사 건물을 철거하며 다시 부활한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1924년 유치원 교사를 양성할 목적으로 보육과를 설치한 이후 재건 후에도 이 전통을 계승하고자 보육학교 설립이 추진되었다. 재건을 준비하던 당시 숭의여학교 출신인 이영보 선생이 한국 보육학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이를 숭의학원이 흡수 통합해 ‘숭의보육학교’가 출범한다. 이후, ‘숭의보육전문학교’ ‘숭의여자전문학교’를 거치며 학과 증설이 이뤄지고, 현재의 ‘숭의여자대학교’가 됐다. 한편, 1999년 5월 7일 이사장 취임식 예배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백성학 이사장은 “숭의 건학이념의 뜻이 깊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학교, 하나님이 기뻐하셔 언제든지 복을 내려 주시는 학교로 만들어가겠다.”라고 취임사를 전했다. 숭의 인물관. 숭의여자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숭의 인물관은 숭의를 통하여 의를 실천하고 신앙과 조국을 사랑한 인문들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기존의 김옥길 기념실과 홍종명 갤러리를 확장하고, 마펫 기념실과 박현숙 기념실, 평양 숭의 인물실을 추가하여 총 5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숭의 마펫 기념 교회. 숭의마펫기념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섬세한 인도 가운데 창립된 교회이다. 숭의 학교는 서울로 옮겨와 남산에 있던 일제의 신사참배 자리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한 살아있는 신앙의 학교이다. 이러한 영적 사명을 이어가기 위하여 숭의 마펫 기념교회는 2011년 1월 2일 설립되어 하나님의 높은 뜻과 목적을 이루어 가고자 하고 있다. 섬김과 나눔의 실천을 위해 헌금의 70% 이상을 이웃과 민족과 세상을 위해 나누고 베푸는데 쓰고 있다. 한편, 숭의여자대학교 공식 홈페이지와 캠퍼스 내에 위치한 숭의 인물관에서 숭의여자대학교의 기독교 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숭의여자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다수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하기도 했으며, 그 역사 또한 깊다. 현재에도 많은 여성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앞으로도 위와 같은 기독교 대학들이 기독교 인재들을 많이 배출해 기독교를 알리고 발전시키는데 큰 힘이 되길 소망한다.
-
성경에 나오는 식물이 궁금할 때, ‘제주성서식물원비블리아’ 찾아가 보자제주성서식물원비블리아 (제주=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제주도 한림읍 상명리에 있는 제주성서식물원비블리아에는 성경에 나오는 식물들이 가득하여 찾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이 해소되고, 직접 각종 허브 식물을 보고 따서 냄새 맡고 또 체험이 가능하여 몸과 마음이 힐링이 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제주성서식물원비블리아는 그냥 일반적인 꽃과 나무를 심어놓은 식물원이 아닌 성경에 나오는 식물을 테마로 해서 만들어진 식물원이다. 그 이름은 제주성서식물원비블리아 이다. 이곳은 이태용 목사와 김만임 목사 부부가 손수 만든 식물원으로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이스라엘 성지에 가서 성경에 나오는 여러 종류의 식물의 종자를 채취하고 돌아와 실험하고 키워서 만든 식물원이다. 과거 이태용 목사는 여미지식물원에서 21년 동안 식물 부장으로 재직 했는데 식물원에 근무하는 동안 우리나라에 기독교적인 관광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불교나 천주교에는 관광지가 많이 있으나 기독교는 관광지가 거의 없어 본인이 식물을 전공한 관계로 성경에 나오는 식물을 테마로 한 식물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 후 여미지식물원을 그만둔 후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에 가서 종자를 채취하고 종자를 뿌리고, 식물을 모으고 재배를 하여 준비를 하게 된다. 2010년도 8월에 현재 식물원 부지를 구입하고 개간하여 식물을 심고 가꾸어 2013년 10월 9일에 오픈을 하여 10월이 되면 8주년이 되어 간다. 식물원에는 100여 종의 성경에 나오는 식물과 제주 특산식물, 약용식물, 허브 등 1,300종의 식물이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 식물원을 찿는 관람객에게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성경 식물을 통하여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주성서식물원비블리아 식물원은 옥외 식물원과 온실식물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옥외 식물원에는 시편 23편에 나오는 장면을 표현한 “목자의 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갈보리 언덕” 사진 찍고 간단한 기도를 할 수 있는 팔복 교회, 에덴동산, 말씀의 정원 등과 성서의 내용을 테마로 한 정원과 예수상, 아담과 하와, 다윗과 골리앗, 아브라함과 이삭, 요나 등. 조형물과 쥐엄나무, 감람나무(올리브나무), 갈대, 월계수, 우슬초 등 여러 가지 성경에 나오는 식물과 아름다운 꽃,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또한 온실식물원에는 엘리아가 죽기를 간구했던 “로뎀나무”, 법궤와 성전의 기구를 만들었던 “조각목”,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을 만든 “가시나무”, 사시사철 꽃을 피우는 부게인빌레아 등 다양한 식물들이 식재 전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체험과 차를 마실 수 있는 교육장이 조성되어 있다. 교육장에서는 다육식물 화분 만들기, 허브 향초 만들기, 허브 비누 만들기, 허브 향기주머니 만들기 등. 체험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비블리아식물원에는 다른 식물원과 다른 3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 번째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식물을 한곳에서 다양한 종류를 보고 식물 해설을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성경의 궁금증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요나의 박넝쿨을 보고 요나의 박넝쿨이 덩굴 벋는 박이 아닌 이스라엘 피마자(아주까리)라 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각종 허브식물을 보고 따서 냄새 맡고 또 체험을 통해 몸과 마음이 힐링 된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1300종의 식물이 사시사철 피고 성경이야기 조형물 들이 아름다운 사진촬영 장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제주성서식물원비블리아는 예수님은 왜 무화과나무를 저주했을까?, 아브라함은 왜 에셀 나무를 심었을까?, 백합화는 어떤 꽃일까?, 겨자씨는 정말 큰 나무로 자라 새들이 깃들까? 성경에 나오는 식물에 대한 궁금증과 식물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장소로 쓰임 받고 있다. 제주성서식물원비블리아
-
100년 전의 보드게임을 재현시키다, ‘두 개의 세상, 공유와 독점’'희년함께'의 보드게임 '두 개의 세상, 공유와 독점'. 사진 제공: 희년함께 (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 성경적 토지 정의를 주장하는 기독교 사회선교단체 ‘희년함께’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기존 부루마블과 차이를 둔 새로운 차원의 보드게임을 출시했다. 토지 불로 소득 없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희년 함께'는 엘리자베스 매기의 ‘지주 게임’을 한국형으로 복원한 보드게임 ‘두 개의 세상, 공유와 독점’을 공개했다. 기존 부루마블과 모노폴리는 땅을 많이 가질수록 임대료 수익이 그만큼 늘어난다. 되도록 땅을 많이 차지하고 임대료를 비싸게 받아서, 결국에는 남을 파산시겨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이는 100년 전 '지주게임'을 본떠 만든 것들이다. 하지만, 원본 지주게임에는 또 하나의 부동산게임 룰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토지에 대한 독점 규제였다. 지주게임 원작자 엘리자베스 매기는 20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쓴 <진보와 빈곤> 속 ‘토지는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헨리 조지의 이론을 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전파하고 싶어했다. 헨리 조지는 “토지는 공공재인데 소수의 지주들이 토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게 되었을 때, 그 토지로부터 발생한 불로 소득이 소수의 지주들의 배를 불리게 할지는 모르나, 절대다수의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이러한 토지 불로 소득 구조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매기 여사는 이러한 토지 독점 구조의 병패를 지적하기 위해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지주게임'이다. 그런데 본래의 '지주게임'과는 다르게 후발 주자 보드게임들은 원작자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한 채, 오히려 독점 구조를 찬양하고 그야말로 땅따먹기에만 매진하는 게임으로 전락시켰다. '희년함께'의 보드게임 '두 개의 세상, 공유와 독점'. 사진 제공: 희년함께 이를 다시 개선하고자 ‘희년함께’는 토지 공유를 통해 기본소득을 나누는 세상과 토지 독점으로 누군가를 파산시키는 세상 두 개의 세상을 비교할 수 있는 보드게임 ‘두 개의 세상, 공유와 독점’을 출시했다. 이는 주사위를 굴려 도착한 땅에 집을 짓고 땅에 걸린 사람이 사용료를 내는 방식의 기존 부루마블과 달리, 개인이 그 땅을 소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 부루마블과 큰 차이점을 보인다. 대신 토지사용료를 지불하고, 그곳에 건물만을 지을 수 있다. 각 사람이 낸 토지사용료는 나중에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된다. 토지 가치 공유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쉽게 파산하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논의되는 기본소득의 개념도 담겼다. 한현구 기자는 게임을 직접 해 본 소감으로 “보통 보드게임을 하면 경쟁하고 저 사람을 죽이니 마니 하게 되는데, 함께 산다는 느낌을 줘 신선했던 것 같다. 토지공개념이라는 게 사실 말로 들어서는 당장 와 닿지 않는데, 그걸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라고 전했다. 한편, 성경에서는 구약을 ‘거룩한 나라’, 신약을 ‘하나님 나라’라고 요약한다. 하나님 나라의 모형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시내산 율법에 들어있다. 안식일과 안식년을 포함한 희년, 즉 시내산 율법의 핵심인 희년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것이다. 토지에 대한 권리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고, 모두가 자영농이 되고, 채무자가 부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며, 노예가 해방되어 자유인이 된 상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재능을 당당하게 꽃피우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요셉은 토지공개념 정책으로 대지주의 등장을 막고 토지와 집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차단하고자 했다. 요셉의 토지공개념과 노예해방 정책은 400년 후에 모세의 시내산 율법으로 완성된다. 모세는 토지를 팔았더라도 최장 50년이 되면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7년에 1번씩 노예와 채무에서 해방되고, 적어도 7일에 하루는 종과 가축까지 쉬게 하는 율법을 완성했다. 요셉의 놀라운 개혁정책은 신정국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세속국가 애굽에서 실시되었다. 이는 성경의 정신을 오늘날 세속 사회에서 얼마든지 구현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성경적 토지 정의를 주장하는 기독교 사회선교단체 ‘희년함께’는 예수원의 故 대천덕 신부에게 영향을 받아 성령님의 힘으로 희년을 실천하여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공동체를 세우고자 한다. 또한, ‘희년함께’는 온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희년을 실천하도록 전하고 가르치면서 교회가 희년 실천 주일을 지키도록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현실 속에서 성경의 이상을 구현해낼 많은 기독교 사회선교단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현재, ‘희년함께’의 보드게임 ‘두 개의 세상, 공유와 독점’은 ‘희년함께’ 홈페이지에서 예약주문 가능하다.
-
성경 속 등장하는 무화과나무의 의미무화과 나무. 사진 출처: 국립 생물 자원관 (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 무화과나무는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나무 중 하나다. 무화과나무가 가진 의미와 유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무화과나무의 열매인 무화과는 꽃이 피지 않아 ‘무화과’라는 이름이 붙었다. 무화과는 날 것으로 먹을 뿐만 아니라 건조 시켜서 보존 식량으로 더 귀중하게 여겼다. 건과 외에는 술, 시럽, 쨈 등을 만들기도 한다. 성경 속 무화과는 좋은 식량, 열매를 맺는 나무, 울타리, 나무 그늘로 표현되고 있다. 올리브와 포도, 무화과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3대 유실수이다. 성경에서도 무화과나무에 대한 언급이 많으며, 상징적인 의미로도 적지 않게 사용된다. 히브리어로 ‘테에나’라고 불리는 무화과는 구약에서 38번 등장한다. 성경에 나온 무화과나무를 조사한 결과, 무려 육십여 회나 찾을 수 있었다. 무화과는 에덴동산에 있었던 나무로서 생명 나무로고도 불린다. 선악과와 더불어 성경 초기부터 등장하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며 자신의 벗은 몸을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게 된다. 원죄와 수치를 가리는 자의적인 최초의 의상이라는 것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히스기야는 에굽, 블레셋 등과 동맹을 맺고 강국인 앗수르와 대적하여 눈부신 전공을 세웠던 유대의 왕이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선지자 ‘이사야’가 무화과 반죽을 가져와 그의 상처에 발라 낫게 되었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잎은 무성하나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며,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신앙의 내용이 없는 크리스천에 대한 교훈을 주기도 한다.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는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언한다. 열매 없어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는 멸망한 이스라엘의 표상으로 이스라엘 멸망을 뜻했다. 무화과나무에 대해 주목해야 할 이유는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는 시기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 성경은 재림 예수님께서 등장하시는 시기에 대해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태복음 24:32)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대화 중 하셨던 말씀이다. 당시 대화의 주제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서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 올 것이다.”라고 답하셨다. [마 24:32-33]을 보면 종말의 상징으로서 무화과가 쓰였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음을 비유적으로 들려줬다. 무화과나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고,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는 시기에 대한 그 답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무화과에 대한 성경 속 숨은 해석은 이밖에도 다양하다. 오늘날 우리는 그분이 오실 때까지 소망을 가지고 계속해서 기도 해야 한다.